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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전설의 재림-26화 (26/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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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기지 않는 콩샐러드의 패배.

경기의 결과를 확인한 NEX클랜은 충격에 빠졌다.

"아니, 그럴 리가 없잖아 그럴 리가."

"만약 정말이라고 해도 설마……

당연히 올라올 거라 생각한 선수가 져버려서가 아니다.

패배를 하게 만든 사람이 심상치 않기에.

레전설과는 과거의 악연으로 얽혀있다.

과거 카오스의 5대 명문 준 하나였던 NEX클랜.

그 해체에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한 인간이다.

3년이 지난 지금조차 이가 바득바득 갈린다.

"진짜로 레전설이 맞다고?"

"방송 관계자가 그랬다던데……."

"그냥 찌라시겠지. 이렇게 우연히 만나는 게 말이나 돼?"

이미 끝나버린 경기의 내용을 확인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레전설이라는 선수의 기량이 뛰어났다는 것.

원맨쇼를 펼치며 찍어 눌렀다고 한다.

비슷한 경험, 공교롭게도 NEX클랜은 가지고 있었다.

의기양양 최전력을 갖춰 출전했던 대회.

레전설에게 참패해 뼈아픈 흑역사까지 짊어졌다.

'만약 정말로 레전설 본인이라면…….'

클랜장 연학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레전설과 얽히고, 모종의 사건이 터지며 해체라는 말로에 접어들었다.

로드 오브 로드로 게임을 바꾸고 다시 한 번 클랜을 일으켜 세우려 했다.

하지만 과거의 불명예.

클랜원들 대다수가 입대를 선택했던 이유다.

전역을 하고 다시 한 번 새출발을 하고자 했다.

그러나 시간만으로는 씻겨지지 않는 것이 있다.

정말 레전설 본인이라면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언젠가 돌려주지 않으면 안될 빚이다.

"물론 그럴 리는 없겠지."

"무슨 만화나 소설도 아니고 이렇게 기회가 딱딱 맞아 떨어질 리가 없잖아?"

클랜원들의 가지는 의문 그대로의 생각을 이연학도 가지고 있다.

자신들의 전역은 머지 않았다.

전역을 하면 前명문 클랜으로서 진지하게 프로를 목표로 한다.

그를 위해 반드시 쓰러뜨려야 할 원수를 이리도 우연히 만날 리가.

그것도 외나무다리, 결승전이라는 무대에서 말이다.

상황이 이렇게 딱딱 맞아 떨어질 리가 있었다.

"맞는 것 같은데……?"

"뭐라고?"

"봐봐, 저게 사람이 할 짓이냐?"

긴가민가했던 것도 잠시, 인성질을 보니 확실하다.

자신이 아는 한 저런 쓰레기는 달리 없다.

NEX클랜의 명성을 되찾을 절호의 기회.

자신들은 수년간 호흡을 맞춰온 클랜이다.

제아무리 레전설이라고 하나 혼자.

원맨쇼는 무릎 꿇을 것이다.

그 이전에 한 명의 남자로서 용서할 수가 없다.

'세상에 어떻게 저런 쓰레기가.'

갸냘픈 미인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게 만들고 있었다.

* * *

동서고금, E-스포츠의 장르를 막론하고 일류 중의 일류의 선수에게만 허락된 것이 있다.

최초로 골든 마우스를 거머쥐고 감동의 눈물을 흘렸던 황제 임요환.

롤드컵을 우승하고 복받쳐 흐른 눈물을 참지 못했던 테이커.

그들의 공통점은 다름이 아니다.

"브론즈가 왜 즙을 짜고 있냐? 미쳤어? 유리야 정신 나갔냐?"

울 시간에 티어를 한 단계라도 더 올릴 생각을 해야지.

어디 내 앞에서 감히 감성팔이를 하고 앉아있어.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한테는 씨알도 안 먹힌다.

"저 진짜루 선배 보려고 KTX 타고 두 시간이나 걸려서 온 건데…… 밥 같이 먹으려고 오는 길에 군것질도 안 했는데……."

그다지 알고 싶지 않은 사생활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대체 어쩌라는 건지 영문을 모르겠다.

최소한 맥락이라도 있던가.

'짜짜루 단골 같은 녀석이 진짜루 같은 소리하고 있네.'

그야 당연히 오는 길에 안 먹었겠지.

축제에서 맛있는 거 사먹어야 하는데.

걸어다니는 할인 쿠폰도 대기하고 있는데.

내가 어이구 그래쪄여 우쭈쭈 곧이곧대로 믿어줄 만큼 긍정적인 인간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 만큼은 고민이 안될 수가 없다.

현실과의 타협이 긴급히 요구된다.

"와, 울렸어."

"여친이 이런 외지까지 왔는데 울린 거야?"

"진짜 사람 새끼가 할 짓인가……."

현장의 분위기가 급격하게 기울어지고 있다.

이곳저곳에서 매서운 눈초리가 찔러온다.

콩샐러드와의 대화에 정신이 팔려 있던 나머지 당하고 말았다

'유리야가 선즙필승을 시전하다니.'

유리야의 머리로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결과는 매한가지다.

여자들의 필살기 선즙필승, 시기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아니, 시기와 장소가 복잡할수록 위력이 더욱 배가 된다.

"쟤 누구라고? 레전설?"

"인지도 있는 애야? 인터넷에 올리면 좆되는 거 맞지?"

"이런 건 진짜 좆되게 해야 정신 차리지. 사람이 할 짓이 안 할 짓이 있지 어떻게 저런 갸냘픈 여자애를 울리냐."

여자 좀 울릴 수도 있지!

시대가 어느 때인데 남자랑 여자를 차별하고 난리야.

그런 편견이야 말로 진정한 남녀 평등 사회의 구현을 막는다는 것을 어찌 이해하지 못하는 걸까.

내가 민간인 신분이었다면 붙잡고 이해할 때까지 귀에 때려박아줬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대한민국 최약체 말년 병장의 신분이다.

무엇보다 상황이 안 좋아도 너무 안 좋다.

'일났다. 이건 미투각이다.'

MeToo #WithYou #나도당했다 #레전설#인성#쓰레기#사람 아님.

보기만 해도 식은땀이 줄줄 흐를 법한 태그가 잔뜩 달린 게시글이 올라올지도 모른다.

SNS 등지에서 한 번 퍼지기 시작하면 내 인생 사요나라, 군생활 강제 연장은 물론 프로게이머의 길도 불투명해진다.

마음 같아서는 눈물이 안 나올 때까지 쥐어 짜주고 싶지만 참아야 한다.

유리야의 등을 툭툭 토닥여주며 말을 잇는다.

마음에도 없는 말을 쏟아낸다.

"그랬구나. 오빠가 미처 몰랐네. 그냥 우연히 만난 줄만 알았지."

"어떻게…… 우연히 여기서…… 만나요…… 제가…… 사방팔방 물어서…… 겨우겨우."

"구우랬구나……!! 내가 차마 리야의 깊은 속뜻을 몰라봤어. 아주 내가 죽일 놈이야."

"그, 그 정도는 아닌데……."

다행히 금세 울음을 그쳤다.

눈가에서 더 이상 즙이 나오지 않는다.

여기저기서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 시발 화해했네."

"드라마 벌써 끝?"

"이런 건 깨져야 제맛인데."

'애초에 이어 붙은 적도 없고 이어 붙을 일도 없어!'

그냥 남들 좆되는 꼴 보고 싶어서 환장한 인간들이다.

지 일도 아닌 일에 어쩌고저쩌고 참견해 재끼는 놈들이 다 그러면 그렇지.

다행히 빠른 재치와 간쓸개 내주기로 무사 수습하긴 했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다.

"누구야? 여친이야?"

잔뜩 호기심에 찬 소대장님의 질문에 뭐라 대답할지 약 3초 고민했다.

* * *

당연한 말이지만 소대장님과는 돈독하다.

그냥 친한 형동생 사이라고 보면 된다.

그것도 심지어 한창 힘든 시절부터 동거동락 한.

적어도 소대장님 그렇게 생각하신다.

그도 그럴게 군대 간부가 절대 꿀 빠는 계급이 아니다.

많이 오해하는 사실이지만 신임 소위, 그리고 하사들은 기간병들보다 훨씬 힘들다.

남들 위에 선다는 것이 결코 녹록한 일이 아니다.

우여곡절 수많은 사건사고를 함께 넘어왔지 않은가?

분대장과 소대장의 관계는 끊을래야 끊을 수가 없는 끈끈한 인연이다.

'그렇다고 신경 써주는 척 면회를 끊어줄 필요는 절대로 없는데.'

뭘 알겠다는 건지 아직 일과 시간이 안 끝났음에도 불구 놀다 오라며 내보냈다.

자기 재량으로 면회를 끊어주겠다나 뭐라나.

예외적이긴 하나 가능은 한 부분이다.

부모님이 자영업자라 주말에 시간이 안 나는 병사들.

행보관의 허락 하에 평일 면회가 종종 이루어지고는 한다.

당연하게도 나랑은 상관이 없는 일이었는데 그렇지가 않게 되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콧물은 먹지 마라."

"안 먹었어요. 당긴 거에요. 진짜에요……."

훌쩍대는 유리야와 근처 카페까지 왔다.

소대장님이 달갑지 않은 배려 덕분이다.

아무리 대회 중이라고 하나 군인은 일과 시간에 어디 마음대로 이동하지 못한다.

설사 그 일과가 빨리 끝났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오후 일과가 끝나는 5시 30분까지 대기해야 한다.

현재 시간 3시 53분, 끅끅대는 유리야를 달래야 하는 신세다.

테이블 위에 카페라떼, 그리고 단물.

휘핑크림을 잔뜩 얹은 달달한 초코라떼를 앞에 두고 앉아있다.

일단 본인에게 사정 청취부터 시작해보기로 했다.

"뭐가 그렇게 서러웠니? 진정됐으면 들어나 좀 보자."

"아니에요. 하나도 안 서러워요. 눈물도 안 나와요."

"진짜 서러운 게 뭔지 보여줄까 아니 그냥 순수하게 몰라서 그래. 내가 감정이입을 잘 못하는 편이라."

그러니까 유리야는 어찌저찌 내 친구들한테 물어서 내가 대회 참가했다는 사실을 알고, 지상군 페스티벌까지 찾아왔다는 이야기다.

결국 니가 놀고 싶어서 찾아온 건데 왜 나한테 화를 내고 지…….

참아야 한다.

이런 하찮은 이유로 내 군생활이 연장될 수는 없다.

"그랬구나. 그랬어. 그랬던 거야."

"그랬어요……."

"암암, 근데 다음부터 울지 마라.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여자가 즙 짜는 여자야."

"히익……."

농담으로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성적인 대화가 불가능한 인종은 질색이다.

그중에서도 즙부터 짜고 보는 여자는 진짜 혈압이 터진다.

즙을 짜는 순간부터 시시비비를 가리는 게 아니라 일단 무조건 울린 사람 잘못이 된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그런 인간은 그냥 상종을 안 한다.

하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내가 유리야를 미워하진 않는다.

앞으로도 질리도록 보고 살 사이다.

보고 살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황금 알을 낳는 거위를 왜 놔줘.'

잔뜩 디립따 먹여서 토실토실 황금알을 숭숭 낳게 해야지.

포인트 때문에라도 절대 놔줄 수가 없다.

물론 포인트 때문만은 아니다.

그 이전의 이야기다.

"차라리 욕을 해. 말도 못하고 끙끙대지 말고. 흥분할 때 말실수한 걸로 꼬투리 잡을 만큼 내가 옹졸하진 않으니까. 니 성격 알아서 하는 소리야."

"네…… 근데 저 욕 잘 못 하는데."

욕 못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다 내숭이지.

상판때기 훌륭하다고 인성까지 비례하는 건 아니다.

물론 유리야는 좀 별개의 생물이긴 하다.

'생물이 맞기는 한 건지.'

최소 호모 사피엔스가 아닌 건 확실하다.

그러니까 브론즈에서 갈팡질팡 정신을 못 차리지.

하지만 오늘 만큼은 친애하는 후배를 위해 시간을 투자해줄 수 있다.

"기분이다. 오늘은 내가 쏜다."

"헐, 선배가요? 괜찮은데. 제가 쏴도 되는데. 티어 올랐다고 많이 받았어요."

"……뭘?"

"승급 기념 별풍선!"

해맑게 웃으며 손가락 10개를 쫙 편다.

두 번 연속으로 팡팡!

200개를 받았다는 소린가?

살다살다 브론즈의 승급 기념 별풍선 같은 소리도 다 들어본다.

학교 성적으로 따지면 30점 맞았는데 외식 하는 소리 아니야.

유리야와 있다 보니 별난 경험도 아니게 됐다.

그쪽 시청자의 감성은 모르겠지만 이번 만큼은 나도 물러섬이 없다.

"됐고 얻어먹어. 너는 꼭 해봐야 하는 경험이 있다."

"겨, 경험이요? 어떤 경험 말하는 거에요……?"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경험."

볼따구가 빨개진 채 눈동자를 동그랗게 안 떠도 딱히 무서운 경험은 아니다.

그저 모르고 사는 것보다는 나은 정도.

솔직히 몰라도 되긴 하는데.

'너는 좀 알아야 돼 인간적으로다가.'

상판때기 아래 빈약한 몸.

카페 의자에 앉아있는 유리야의 갸냘픈 팔목을 쭉 훓어본다.

이어져 있는 몸뚱어리는 나름대로 나올 곳 나오고 들어갈 곳 들어가 있긴 하지만.

"그런 경험은 좀 이르지 않을까요……?"

"니 나이대 애들은 보통 다 경험해."

"헉……. 정말요?"

'당연하지. 물론 사정상 늦거나 못하는 애들도 있긴 해도.'

대부분은 다 20대 초반에 경험한다.

유리야도 한 번 경험을 해보지 않으면 안된다.

그 첫 경험을 오늘 이곳에서 나와 함께할 예정이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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