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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저 이상의 실력자는 없을 겁니다."
"여기 있잖아요. 운 좋게 한 번 이긴 건 안 쳐주시는 건가~."
마저 이어진 대화.
확실하게 기선 제압에 성공했다.
승자는 승자, 패자는 패자의 눈높이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진 주제에 나보다 인기 많은 것도 마음에 안 들어.'
유리야가 꺅꺅거렸던 것도 절대 마음에 두지 않았다.
질투와 꼬장이 아닌 정당한 대우의 요구다.
콩샐러드의 용건은 전혀 다른데 있었다.
"저 이상의 실력자는 없겠지만 저희 이상의 팀은 있겠죠."
"……네?"
"아시다시피 롤은 결국 팀 게임이니까요. 결승전 우승, 응원하겠습니다."
찝찝함을 남기고 사라져버렸다.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이해를 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 * *
게임에서의 클랜.
대부분은 가벼운 친목 집단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다.
단순한 친목 집단을 넘어 가족에 준할 정도로 끈끈한 분위기가 조성된 클랜도 있다.
과거 카오스의 5대 명문 중 하나였던 NEX클랜이 그러했다.
그러했다, 과거형이다.
모종의 이유가 있어 해체되고 말았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
"하, 군대까지 와서 게임 대회 출전할 줄은 꿈도 몰랐네."
"그러게.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이지."
인연(因緣), 정말로 글자 그대로의 일이다.
제3보병사단 백골 부대의 장병들.
그들 하나하나가 과거의 인연이 얽힌 관계다.
같은 NEX클랜 소속으로 수년 간 알고 지내왔다.
그 NEX클랜의 상당수가 백골 부대에 소속됐다.
우연이라기 보다는 절반의 필연.
"결과적으로 아다리가 잘 맞은 셈인데…… 지금 생각해 봐도 그냥 후방으로 빠질 걸 그랬다."
"동반 입대인 이상 어쩔 수 없었죠."
前NEX클랜의 클랜장 이연학의 한탄은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다.
그도 그럴게 동반 입대, 열에 아홉은 전방으로 차출된다.
그것도 별다른 보직 없는 알보병으로 말이다.
지인, 혹은 형제와 같은 자대에 속할 수 있는 대신 가지는 패널티다.
동반 입영자들도 당연히 이를 숙지하고서 선택한다.
NEX클랜의 클랜원들은 상당수가 클랜원들과 동반 입대를 택했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20대 남자는 피할 수 없는 시련이다.
어차피 겪을 거 아는 사람끼리, 그리고 클랜이 해체되지 않게 막자.
클랜원들 대다수가 비슷한 시기에 입대하여 전역 날짜를 조정한 것이다.
"어떻게 아다리가 맞아도 하필 백골에 맞냐……."
"재수 옴 붙었지. 이등병 때는 진짜 자살하는 줄 알았다니까?"
"야, 니들 군생활만 힘드냐? 죄다 백골 갔는데 할 말 없는 사람이 어디있어."
입대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은근히 바라기 마련이다.
제발 자대에 아는 사람 한 명만 있었으면 좋겠다.
정말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기는 했다.
그런데 하필 제3보병사단.
최전방 GOP 위치한 대한민국 성인 남자라면 절대로 연관되고 싶지 않은 백골 부대다.
훈련병들이 자대 배치 받을 때 제발 이곳만은 나오지 않기를 빌고 빌고 또 비는 곳이다.
당연히 고생을 했겠지만 과거의 일이다.
덕분에 상병장이 된 지금 한 자리에 모일 수 있었다.
백골 부대 각지에 배정된 NEX클랜의 일원들이 군챔스에 참가했다.
결과는 따질 것도 없이 연승에 연승이다.
예선전 결승까지 깔끔하게 치고 올라왔다.
그리고 현재 결승으로 가는 마지막 길목을 지나치는 도중.
슈웅-!
백골 부대 제11포병대대 소속 김현욱 상병의 테러스티나가 과감하게 앞점프로 뛰어든다.
대포를 쓰는 챔피언 테러스티나, 군생활 동안 삭골이 나가라 곡사포를 끌고 다닌 보람이 당연히 있지는 않겠지만 나름대로 예리한 각이다.
예기치 못한 공세에 깜짝 놀란 적팀의 원딜러 이즈레알이 반격을 포기하고 줄행랑 친다.
펑!
펑!
줄행랑 치는 이즈레알을 향해 미친 듯이 쏴재낀다.
포구에서 쏘아지는 대포알들이 푹푹 박힌다.
마지막을 장싱해야 할 궁극기.
퍼엉-!
테러스티나의 궁극기 미사일 탄환은 마법 피해와 함께 상대를 멀리 밀어낸다.
그 탓에 가끔 딜계산을 실패하면 방생이 되고 만다.
지금의 상황이 딱 그러하다.
이즈레알은 마지막 순간 힐을 썼고 한 틱, 아니 두 틱 차이로 살았다.
힐을 쓰지 않아도 살았겠지만 워낙 긴박한 상황이었다.
채 숨을 돌릴 겨를도 없이 떨어진다.
퍼어엉!
백골 부대 토우중대 소속 김성환 병장.
TOW, 대전차 유도탄을 의미한다.
물론 롤에서 그 병과를 살릴 일은 없겠지만 적어도 카서트의 궁극기는 유도탄이나 다름 없다.
"아나 또 성환이가 킬 먹었네."
"팀 게임이잖아."
"알지, 내가 다 설계한 거 아니겠냐?"
김현욱 상병의 테러스티나가 딜교환을 야무지게 끝내고 김성환 병장의 카서트가 마무리한다.
카오스 시절부터 몇 년이나 팀워크를 맞춰온 NEX클랜의 사이는 끈끈하다.
개인의 독단보다는 팀워크를 중시하는 전형적인 조직형.
보다 효율 좋게 승리로 향하는 지름길을 닦아낸다.
이미 첫 번째 세트를 깔끔하게 승리로 장식했다.
그리고 두 번째 세트도 이내 가져올 수 있었다.
결승전 진출이 가볍게 확정된 순간이다.
"아~ 너무 쉬운데? 상대가 안되잖아 상대가."
"우리 같은 팀이 어디 또 있겠냐?"
"하긴 뭐 전부 같은 클랜 소속이니까."
두 명이나 세 명도 아니고 무려 다섯 명.
제3보병사단 백골 부대의 선수들은 전부 NEX클랜 소속이었다.
아무리 동반 입대, 동시 입대 온갖 필연이 겹치다 한들 의아한 일이다.
한 마디로 쇼부를 봤다.
간부들과 상담을 했다는 이야기다.
우승을 할 테니 같은 클랜 애들과 나갈 수 있게 도와 달라.
각 자대 간부들과 전부 이야기를 하는 건 어려웠다.
하지만 나름대로 짬도 있고, 발언권도 있다.
상병장씩 달고 있으니 당연하다.
한 가지 끼얹었을 뿐이다.
"지면 최소 백골컷인데……. 설마 그럴 일은 없겠지?"
"백골컷이 뭐냐 난 외박도 못 나갈 것 같다."
이길 수 있다, 나가게만 해줘라.
자대 간부들 입장에서는 나쁠 거 없는 이야기다.
이기면 아주 땡 잡은 셈이 아닌가?
TV같은 기물은 따로 보급이 내려오지 않는다.
그래서 오래된 걸 꾸역꾸역 어거지로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끔 사단 체육 대회 같은 거 할 때 부상으로 업어오면 부대가 난리가 난다.
그런 TV를 얻을 수 있는 기회.
대대 간부들이 환장을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하지만 그들도 나름대로 귀찮은 과정이 소요되는 만큼 조건을 단다.
백골컷, 옆머리 무탭, 윗머리 9mm다.
탈모인이 동료 아닐까 돌아볼 만큼 임팩트 있는 헤어스타일이다.
빡빡이가 기본인 군대에서조차 저 정도로 깎으면 행보관이 반항하냐고 물어본다.
물론 아무리 백골 부대라 하더라도 신병교육대를 졸업하면 백골컷은 안 한다.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은 보통.
큰소리 뻥뻥 치고 온 3사단 장병들로서는 상당히 부담이 가는 입장이지만.
"콩샐러드가 암만 잘해봤자 혼자인데 우리가 질 리가 없잖아?"
"그렇지. 결승전까지 시간도 있고 대비만 넉넉히 해놓자."
부클랜장 이진우 상병은 팀의 정글러를 맡고 있다.
전체적인 오더와 전략 등도 책임진다.
말하자면 클랜의 참모 역할.
현재 군챔스에서 가장 화두에 오르고 있는 콩샐러드는 분명 말도 안되는 실력자다.
군생활 이전에도 우러러보던 탑 클래스의 게이머.
군생활 이후에는 아예 쳐다보지도 못할 전설급의 프로게이머가 돼버렸다.
어찌 된 영문인지 은퇴를 하고 입대를 했더라?
자신들 앞을 막아서게 됐지만 문제가 되리라고는 생각하진 않는다.
아무리 그가 잘한다 한들 혼자.
팀워크에 이골이 난 자신들을 이겨낼 수 있을 리가 없다.
"아, 근데 아쉽다. 관중들이 있어야 게임 할 맛도 나고 이기는 보람도 있는데."
"어쩔 수 없지. 다 작업으로 끌려갔다며?"
"결승 가면 관중들 질릴 정도로 볼 수 있을 거야."
예선전을 뚫는 마지막 관문을 가볍게 통과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자신들을 떠받들어줄 관중.
탈락한 장병들이 작업으로 차출된 탓에 PC방 내부가 한적해졌다.
박수 한 번 제대로 못 받았으니 손맛이 없다.
대어를 낚고 사진도 못 찍었다는 기분이다.
역시 대회는 관중들이 있어야 압박감도 느껴지고 동기 부여도 되는 법이다.
그런데 그 동기.
반대편의 부스는 한껏 달아오른 모양이다.
100인석이 넘어가는 대형 PC방의 반대편이다 보니 눈치채는 게 늦어버렸다.
와아아아아-!
순간 바닥에서 1cm가량 공중에 붕 떠버린 줄 알았다.
갑작스러운 진동에 어리둥절했던 것도 잠시.
백골 부대의 선수들 전원 알게 되었다.
"저쪽도 승부가 난 건가?"
"관중 오지게 많나 보네."
"콩샐러드라면 그럴 만도 하긴 한데……."
경기에 집중하느라 생각은 못하고 있었지만 기억은 한다.
중간 중간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긴 했다.
PC방 안쪽에 자리 잡은 탓에 채 모르고 있었다.
그 콩샐러드의 경기인 만큼 어찌 보면 당연하다.
반대로 이쪽 부스는 같은 예선전 결승임에도 조명 받지 못했다.
인지도의 차이가 하늘과 땅.
하지만 결승전에서 이겨 주인공이 되는 쪽은 자신들이리라.
자리에서 일어난 백마 부대의 선수들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적진 관찰, 염탐이라기 보다는 분해서.
대체 얼마나 잘난 경기를 하고 있길래 떠들썩하나 부들부들하다.
'그래봐야 원맨쇼 수준이겠지.'
개인이 아무리 잘해봤자 위협은 안된다.
오히려 날뛸 수 있을 때 한껏 날뛰어봐라.
성난 사자를 길들여낸 조련사는 더욱 큰 관중들의 호응을 얻기 마련이다.
그렇게 도착하게 된 반대편 부스.
예상했던 대로 원맨쇼는 원맨쇼였다.
다만, 그 원맨의 대상자가 전혀 엉뚱한 사람이다.
"레전설이 콩샐러드보다 잘했나?"
"옛날에는 더 높았지. 그냥 압도적이었을 걸?"
달팽이관을 타고 들려오는 관중들의 대화가 전혀 이해되지 않는다.
반대쪽 달팽이관으로 고대로 타고 다시 빠져나간다.
하지만 아무리 알아듣기 어려운 말도 반복 학습을 하면 이해가 된다.
이해가 안되더라도 최소 암기는 된다.
머릿속을 미친 듯이 헤집는다.
도저히 떠올리고 싶지 않은 세 글자.
'갑자기 웬 레전설……?'
자신들 NEX클랜이 해체가 된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한 인간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봤자 3년 전.
다시 NEX클랜은 화합이 되어 전역 후의 재도약을 노리고 있다.
그 앞을 또다시 막아서고 있다.
* * *
'뭐, 팀 단위로 참가한 인간들이 있다는 소리겠지.'
깊이 되새길 것도 없는 이야기다.
롤은 결국 팀 게임이다, 자신네 이상의 팀이 있다.
어떻게 했는지도 몰라도 팀단위로 연습해서 참가한 사단이 있다는 소리일 것이다.
'내가 가장 봉으로 삼는 인종들이니 상관없지만.'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다.
과거에도 한두 번 마주친 게 아니다.
그도 그럴게 홀로 클랜도 없이 활동했던 나다.
롤과 달리 클랜 단위 활동이 기본이었던 카오스다.
떼거지로 몰려다니는 애들 요리하는 방법은 누구보다 잘 안다.
그딴 것보다 지금 당장 신경이 쓰이는 요소는 따로 있다.
'어디서 감성팔이 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잠깐 콩샐러드와 심도 깊은 이야기를 나누느라 잊고 있었다.
그냥 평생 잊어버렸으면 싶었다.
어여 가라고 마음 같아서는 궁둥이를 차고 싶었던 유리야.
"저, 저 진짜루…… 선배 보려고 온 건데…… 선배 막 막말 하고…… 오해하고……."
즙을 짜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연참은 내일 모레부터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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