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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전설의 재림-24화 (24/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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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콩샐러드 -->

그 어떤 상대도 빈틈은 있기 마련이다.

없다면 만든다는 간단한 방법이 있다.

그다지 유별날 것도 없는 이야기다.

'내가 헌터X헌터를 좀 감명 깊게 봤었지.'

우리 준규의 추천으로 본 만화 중 하나다.

거기에 보면 이런 스토리가 하나 있다.

새가 먹이를 낚아 채는 순간을 노린다.

사실 굳이 만화가 아니더라도 실제 동물 생태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뒤통수 치기다.

먹잇감을 노리는 순간이 가장 취약하다.

이는 동물이 아니라 인간도 마찬가지다.

호롱!

콰드득!

판정이 내려지기 직전.

코리아나의 쇼크웨이브를 가까스로 피해냈다.

르풀랑의 W스킬 뒤틀림은 재사용시 처음 시전했던 위치로 되돌아간다.

물론 되돌아간다고 해봤자 생명 연장의 꿈이다.

토이치를 제외한 네 명의 적에게 완전히 포위되어 있다.

어디로 어떻게 도망가도 빠져나갈 구멍은 요만큼도 보이지 않는다.

사앗…!

그래서 만들기로 했다.

금빛 사슬이 쓰렉귀의 발목에 감긴다.

내가 길동무로 데려갈까 가장 멀찍이 떨어져 쫓아오고 있었다.

점멸까지 써서 불현듯 접근하자 깜짝 놀라 맞점멸로 발을 뺀다.

하지만 한 번 묶인 사슬은 어지간해선 끊어지지 않는다.

이윽고 팽팽하게 당겨지며 속박시킨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전설님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속박 상태에서 침묵의 표식까지 터졌다.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그대로 사망.

한 줄기 도주 경로가 이어진다.

그 뒤를 따라 붙어온다.

치이이잉…!

아직 궁극기가 꺼지지 않은 싱나드가 폭주 기관차처럼 무식하게 달려온다.

심지어 유체화를 켜서 이동 속도가 미친 듯이 빠르다.

짐짓 따라잡는 듯도 보였으나.

사앗…!

그 직전에 쿨타임이 돌아왔다.

금빛 사슬이 싱나드에게 이어진다.

간발의 차이로 팽팽하게 당겨지며 시간을 번다.

시간을 벌었을 뿐이다.

금세 풀고 미친 듯이 쫓아온다.

그런데 한 번 더 이어지고 만다.

사앗…!

궁극기로 복사한 사슬이다.

또다시 팽팽하게 당겨지며 술래잡기의 끝을 고한다.

궁극기도, 유체화도 끝나버린 싱나드는 기름 빠진 자동차에 불과하다.

물론 기름이 빠지지 않은 자동차들, 나머지 적들이 부리나케 쫓아오고 있기는 하지만.

〈생명을 내리소서!〉

이미 시야에 아군 진영의 끄트머리가 보인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의무근무대 민찬우 병장의 약손이 닿는다.

체력이 순식간에 회복되자 상대는 더 이상 추적해올 의욕을 잃는다.

〈심판의 시간이다.〉

신병교육대 열혈 조교 윤병철 병장도 단단히 뿔이 났다.

은신 구르기로 역추적을 시작한다.

궁극기를 켠 배인은 적을 추격할 때 어마어마한 추가 이동 속도를 얻는다.

물론 쫓을 수 있을 때의 이야기다.

구륵!

콰락!

궁극기가 빠졌다고 하나 2코어가 나온 코리아나의 일격이다.

무겁게 박히며 뒤따라온 싱나드가 넘겨버린다.

이미 구르기를 소비한 배인은 못 피했다.

그 자리에서 퍼엉-! 벌레처럼 터져버린다.

─아군이 당했습니다!

처음 만났던 순간부터 초지일관 아주 변함이 없으시다.

하지만 이미 두 명의 적을 끊어버린 상황이다.

궁극기도 전부 빠져 이빨 빠진 호랑이다.

파앗!

사앗…!

한 번 더 싱나드를 향해 목줄이 묶여진다.

이제는 뿌리치는 쪽이 아니라 잡는 쪽이다.

나머지 두 명의 아군이 합류하자 상대는 도망가는 게 고작이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싱나드를 잡고 바로 바론 트라이.

이미 세 명이 잡혀버린 상대는 견제조차 불가능하다.

그래도 혹시 하는 마음에 어슬렁 거리던 적 탈리반 3세.

사앗…!

사슬을 한 번 그어주자 꽁무니가 빠져라 도망간다.

이 시점에서 결정이 난다.

소환자의 전장에 구슬픈 괴수의 울음소리가 울려퍼진다.

─아군이 바론 백작을 물리쳤습니다!

예선전 결승, 마지막 세트의 승패가 나뉘어진 순간이었다.

* * *

"와, 시발! 이겼어. 콩샐러드를 이겼어!"

"세상에…… 개똥 쌌지만 기분은 좋다."

신교대 운병철 병장의 솔직 담백한 고백대로 한껏 들뜰 만도 하다.

前이라고 하나 프로게이머, 심지어 이름값은 현직 프로들보다 윗줄이다.

특히 시간이 멈춰 있는 군인들에게는 훨씬 더 마음속 깊이 와 닿는다.

동경하던 존재를 현실에서 이겨버린 셈이다.

축구로 따지면 국가대표 선수를 꺾어버렸다!

그 자리가 비록 동네 조기축구회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감동의 물결이다.

'군챔스가 그래도 동네 조기축구회보다는 윗줄이지.'

이래 봬도 스폰서부터가 장난 아닌 대회다.

육군참모총장배!

따라 불러보면 어감이 입에 착착~ 붙는다.

정말로 스폰하시는 거 맞나 하루에도 두 세번씩 의문이 들 정도다.

아무튼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던 경기에서 이겼다.

과거 한 번 꺾었던 상대를 다시 한 번 꺾어냈다.

나로서는 솔직히 본전도 못 찾은 느낌이다.

'아니, 이겼으니 본전은 찾은 셈인가. 씁쓸하네.'

얌전히 꿀 좀 쪽쪽 빨려고 하다가는 안되겠구나.

계기가 되었던 건 사실이다.

설렁설렁 해도 될 정도로 엉성한 목표가 아니다.

현직도 아니고 前프로게이머를 상대로 고전했다.

앞으로 어지간히 필사적이지 않으면 힘들 수 있다.

물론 지금 당장은 순수하게 승리를 기뻐하는 게 순리다.

[3전 2선승 마지막 세트를 승리로 장식했습니다!]

[포인트를 378만큼 획득했습니다.]

[다전제 최종 승리에 대한 보상으로 782포인트를 추가로 획득합니다.]

[도저히 믿겨지지 않는 승리에 관중들이 얼어붙었습니다.]

.

.

.

[……진심 어린 환호에 의해 2309포인트를 추가로 획득합니다.]

메세지가 떠오름과 동시에 PC방 내부가 술렁인다.

술렁인다고 느꼈던 게 단 1초.

이내 귀가 멍멍해질 정도로 박수 소리가 울려퍼진다.

흥분한 관중들의 만들어낸 진동에 건물 바닥이 흔들린다.

순간 다른 세계에 와버린 줄 알았다.

모두의 시선, 이목, 관심이 나 하나에 집중된다.

만약 메세지가 아니었다면 부정을 했을지 모른다.

설마 그런 일이 있겠냐고.

그 정도로 어안이 벙벙한 상황이다.

잠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보여온 행동에 대한 대처가 늦어버렸다.

제9보병사단 백마 부대의 에이스, 콩샐러드가 악수를 청해왔다.

"경기 재밌었습니다. 곧 전역하시죠?"

"예, 뭐…… 당연히 해야죠."

"전역 이후 기대하겠습니다."

"……네?"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의문에 찰 시간도 없다.

주위가 또다시 떠들썩, 아니 떠나갈 듯 요동친다.

박수 갈채에 또다시 잠시 삼켜져 버렸다.

'아니 뭐 처음 있는 일도 아니긴 한데…….'

정식 대회에 나오는 건 처음이지만 대회 자체가 처음은 아니다.

카오스도 나름대로 인기 있었던 게임인 만큼 대회가 열린다.

여러 곳 돌아다니며 싹쓸이 좀 했다.

그런 만큼 이런 분위기에 면역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당시와는 느낌이 전혀 다르다.

근 2년 동안 깊숙하게 잠자고 있던 감정이 깨어났다는 기분이다.

"캬~ 완전 상전이네 상전. 악수 받는 태도 봐."

"껄렁껄렁 하다니까? 레전설이 그러면 그렇지."

"프로 데뷔하면 꺼라 위키에 사건/사고 반드시 추가한다."

"표정부터가 개띠꺼워."

'…….'

아니, 당황해서 조금 늦을 수도 있지!

표정은 타고난 건데 뭐 어쩌라고.

보태준 것도 없는 것들이 사람 성질 나오게 만든다.

'대체 왜 당황을 했던 건지 알 것 같아.'

항상 악역 같은 느낌으로 있다가 훈훈하게 조명을 받으니 정신을 못 차릴 만도 했다.

아무튼 콩샐러드와의 악수는 나름의 의미가 있었다.

그가 전하려는 바가 무엇인지 싫어도 눈치 챈다.

'얼마나 잘 나가나 두고 보자는 소리네.'

경기가 끝나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이다.

PC방 내부에 구경꾼들이 장난 아니게 많아졌다.

하나하나 숫자는 못 세봤지만 최소 서른은 넘지 않을까.

간부 몇 명을 제외하면 군인들은 작업을 위해 전부 차출됐다.

서른 명이 축제를 구경하기 위해 온 민간인들이라는 소리다.

그 민간인들이 과연 누구 때문에 미쳤다고 PC방을 점령했을까?

"괜찮아! 괜찮아!"

"콩샐러드 오빠 사랑해요!!"

"팀이 못하면 질 수도 있지!"

초절정 인기 스타를 방불케 하는 팬미팅이 실시간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콩샐러드 팬들의 목소리가 우렁차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나를 향해 손가락질 하는 것 같다.

'꼬우면 이겼으면 되잖아. 왜 나한테 그래!'

쟤가 못해서 나한테 실력으로 쳐발린 건데 팬실드 역겹네.

진 주제에 산뜻한 척 악수하러 왔을 때 알아봤어야 했다.

내가 한동안 은퇴 상태라 정치라는 것을 파악하지 못했다.

'선즙필승을 한 번 했어야 했나.'

안타깝게도 남자가 하면 효과가 반절, 아니 그냥 추하기 짝이 없다.

얼마 전까지 프로의 자리에 있었던 선수답게 정치력이 장난이 아니다.

이것이 바로 경력의 차이인가.

"그럼 부탁 드리겠습니다. 잠시 실례."

대체 뭘?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인사를 건네며 돌아섰다.

아주 자연스럽게 자기네 팬들과 소통을 하러 떠났다.

그럼 혼자 남게 된 나는?

"르풀랑도 엄청 잘하긴 하더라."

"누구였다고 했지? 레전더리?"

"레전설리일 걸?"

"들어본 적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안타깝게도 일반인들 누구나가 알 만큼 인지도가 있지는 않다.

그도 그럴게 활동했던 것이 2년 전.

어지간한 골수 유저가 아니라면 기억하는 것이 더 이상하다.

"콩샐 오빠 괜찮아요! 전 그래도 오빠 응원해요!"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다.

일반인들에게는 TV에 나오는 프로게이머가 훨씬 더 인기가 있다.

콩샐러드처럼 확실하게 캐릭터성 있고 여러가지 이슈도 만든 선수라면 더더욱이다.

그러니 만큼 다 이해는 하는데 니가 왜 그러고 있냐?

"야, 유리야…… 여기서 뭐하냐?"

"저, 저 콩샐러드 선수한테 사인 받았어요!"

"그래? 우연이네. 나도 걔랑 막 한 게임 하고 온 참인데."

유리야가 잔뜩 신나서 방방 뛰고 있다.

소중한 듯 손에 들고 있는 건 콩샐러드의 사인지는 아니겠지.

설마가 당연한 듯 적중하며 내 깊은 빡침을 불러 일으킨다.

"집에 간 거 아니었니?"

"아직 4시도 안됐는데 벌써 가면 안되죠~. 잔뜩 즐길 거리가 얼마나 많다구요!"

"잔뜩 즐길 거리가 PC방에 있지는 않잖니?"

"저도~ 그랬다고 생각했는데~ 선배가 가라 해서~ 딴데 가려다가~."

'내 혈압을 자극 시키다가~.'

한 대 쳐맞으면 겁나게 아픈 정도로는 안 끝날 텐데.

가독성 끊길 때마다 마빡 오지게 때리고 싶은 걸 가까스로 참고 있다.

PC방 내부에 손님들이 한둘이 아니다.

소문이 났는지 오히려 경기가 진행 중일 때보다 훨씬 많아진 것 같다.

저만한 인파를 뚫고 사인을 받아온 유리야의 행동력은 인정해줄 만하다.

그러니까 충청남도 계룡시에서 열리는 육군 지상군 페스티벌까지 찾아왔겠지.

지가 좋아하는 선수한테 사인 받고 신나서 방방 뜨고 난리가 났겠지.

'확 마 진짜.'

대체 왜 왔나 물어보고 싶지 않은 정도로 궁금했는데 그 이유를 이제서야 알 듯하다.

어디선가 소문을 듣고 온 모양이다.

아이돌 빠순이 마냥 프로게이머 쪽도 은근히 오빠 부대가 만만치 않다.

그렇게 지극정성 콩샐러드를 빨아재꼈는지 내가 차마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아뇨, 그냥 순수하게 팬심인데……. 저 정말 모르고 왔어요."

"우쭈쭈 그랬어요? 원하는 거 다 봤으면 어여 가라."

손을 쫙 펼쳐 유리야의 마빡을 확 감싸 찌그러뜨리려던 찰나.

아직 할 말이 남았는지 당사자가 팬을 이빠이 끌고 와버렸다.

아직 못 다한 말이 있는 모양이다.

가까스로 신경을 제어해 이번에야 말로 정치를 탈피해주겠다.

"아까는 말을 이을 환경이 아니었어서…… 잠시 시간 괜찮으시죠?"

"저는 이미 다 말씀 드렸는데."

"유쾌하시네요. 이런 게 짬이라는 건가요? 결승전 우승 응원하겠습니다."

"……."

역시나 산뜻하게 이미지 관리 한 번.

자신을 꺾고 올라간 상대를 걱정해주는 척을 한다.

굉장히 머리 아픈 상황이지만 나도 왕년에 정치 좀 한 사람이다.

"당신보다 강적이 있을 리가 있나. 프로게이머가 이런 데서 져서 군생활이 꼬인 게 아닐지 저는 당신 걱정이 되네요."

"상대가 레전설이었으니 어쩔 수 없죠."

"하~ 이거 뭐."

한껏 수그러든 마인드라면 우승 인터뷰에서 한 번 언급 정도는 해줄 수 있다.

물론 본인이 간절하게 부탁을 한다는 전제 하에 이야기지만.

이래 봬도 내가 패자에게는 나름 관대한 편이다.

진정 콩샐러드가 하려던 말은 그런 게 아니었다.

========== 작품 후기 ==========

말년병장 특) 배배 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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