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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대에 위치한 한 PC방.
내부가 점점 북적거리고 있다.
구경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많아진다.
카메라가 바쁘게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무려 촬영이 이루어진다.
게이머라면 모를 수가 없는 오프게임넷.
명실상부 국내 최고의 E-스포츠 방송사다.
롤챔스 어디서 보니?
열에 아홉은 오프게임넷이라고 대답한다.
그런 오프게임넷에서 군챔스를 취재하고 있다.
군챔스도 넓은 의미에서는 롤 대회다.
충분히 방송을 할 만한 아이템이다.
"뭐야, 무슨 일이야?"
"지금 촬영하고 난리 난 거 같은데?"
구경꾼들이 몰려오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이내 되돌아가기 마련이다.
지상군 페스티벌.
글자 그대로 축제다.
축제에 볼 거리가 얼마나 많은데 잠깐 구경하고 말지.
한 번 멈춰진 발걸음이 다시 움직일 줄을 모른다.
어느새 구경꾼들이 벽이 될 정도로 많아졌다.
─콩샐러드님이 적을 처치했습니다!
그럴 만도 하다.
2013년의 10월.
롤을 하는 유저라면 모를 수가 없는 프로게이머다.
물론 前프로게이머, 이제는 입대를 해서 국방의 의무를 수행 중이다.
그렇다고 하나 그 이름값이 어디 가는 건 아니다.
믿기지 않게도 현재 경기를 치르고 있다.
호롱!
콰드득!
구슬 주위의 공간을 비트는 궁극기.
코리아나의 쇼크웨이브가 허공을 향해 터진다.
일명 공기팡스러운 장면이 나오자 몇몇 관중들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온다.
"와, 이게 이렇게 되네……."
"둘 다 미쳤다 정말."
결과적으로 틀어졌을 뿐이다.
판단 자체는 결코 틀리지 않았다.
봇라인 로밍을 갔던 콩샐러드의 코리아나.
상대 포탑 뒤로 돌아가 킬 견적을 낸 건 좋았다.
경기 내내 사람 다운 모습을 보여준 적 없는 배인이 코리아나가 던진 구슬에 명치를 얻어맞고 죽어버렸다.
문제는 그 뒤를 바짝 쫓아왔다는 사실이다.
파앗!
레전설의 르풀랑이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왔다.
그 찰나의 순간을 정확하게 반응해냈다.
방금 전 공기팡이 터진 건 그런 연유에서였다.
'그걸 반응한 놈이나 점멸로 피한 놈이나……."
"반응한 사람은 콩샐이니까 그렇다 치지만 피한 놈은 대체 누구야?"
만약 코리아나의 궁극기가 적중했다면 역관광 각이 야무지게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점멸로 피해냈고 동시에 쏘아졌다.
상대의 도주를 봉쇄하는 금빛 사슬.
사앗…!
아슬아슬 이어진 사슬이 끊어지지 않고 팽팽하게 당겨졌다.
속박이 되자 도주는 꿈도 꿀 수 없다.
르풀랑에게 솔킬을 따인다.
와아아아아-!
마치 경기장이라도 온 듯 PC방 안이 요란스럽게 울린다.
더 이상 단순한 구경을 넘어 경기 관람이 됐다.
그만큼 몰입해 있다는 소리다.
어쭙잖은 롤챔스 프로팀들 경기력을 아득하게 웃돈다.
적어도 경기의 긴장감 만은 확실하게 그러하다.
다른 선수들은 몰라도 저 둘.
"저기요."
"예?"
"죄송한데…… 르풀랑은 누구에요? 코리아나는 알겠는데."
"아~ 콩샐러드 아시는구나! 혹시 모르시는분들에 대해 설명해드리면…… 진. 짜. 겁. 나. 잘. 합. 니. 다!"
경기를 구경하던 한 행인의 물음에 오프게임넷의 스태프가 신나서 대답한다.
단순히 알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열성팬인 모양.
그렇게 드물지도 않은 이야기다.
시즌2 아니, 올해 초까지만 해도 현역으로 활동하던 선수다.
과거 뿐만 아니라 현재까지도 손 꼽힐 정도로 인기가 있다.
군대를 가버렸음에도 그를 그리워하는 팬들이 한가득이다.
이 PC방에 있는 관중들만 해도 대다수는 콩샐러드 때문에 경기를 보게 됐다.
계기는 분명 그러했던 것 같다.
어느새 두 선수의 충돌에 초점을 둔다.
"아니, 그래서 르풀랑은 누구에요?"
"하…… 이거 말해도 되려나~."
"곤란하면 안 말하셔도 되고요."
"확실한 건 아닌데~ 레전설 본인이라는 정보가 상당히 유력합니다!"
"아, 예……."
입이 싼 스태프에 의해 관중들 사이에 드문드문 이야기가 퍼진다.
레전설이 누구야?
아, 알지 알지 그 인성파탄자!
롤을 시작한 게 얼마 안됐거나, 애초에 롤 자체를 잘 모르는 사람.
그들조차 적어도 한 가지는 깨닫게 됐다.
저 두 사람은 미친 존재구나.
현재 경기를 치르는 선수는 10명이지만 관중들의 눈에는 두 명밖에 보이지 않는다.
PC방 내부에 있는 대형 TV앞.
오직 두 사람의 행보만이 이목을 끌어모은다.
* * *
두 번째 세트는 접전이라 할 것도 없이 빠르게 흘러갔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파사딘이라는 챔피언.
캐리력이 무궁무진한 미드 챔피언인 건 맞다.
그럼에도 대회에서 잘 안 쓰이는 데는 이유가 있다.
한 번 상대가 주도권을 가져가면 할 수 있는 게 거의 사라진다.
'라인 클리어가 안되는 챔피언이거든.'
굴러가는 스노우볼을 막아낼 제동 장치가 될 수 없다는 소리다.
미드 라인에서의 1대2 교전 이후 원사이드하게 마무리됐다.
첫 번째 세트의 굴욕을 그대로 되돌려준 셈이다.
하지만 현재 진행되는 마지막 세트.
구륵!
콰락!
코리아나가 구슬을 던지고, 장판을 깔고, 다시 당겨오는 그 삼박자에 의해 미니언 웨이브가 깔끔하게 정리된다.
라인 클리어가 특기인 챔피언이다.
콩샐러드는 집착 따위 없다는 듯 간단히 챔피언을 바꿔 들었다.
'원래부터 조합 따라 하고 싶은 걸 하던 녀석이었지.'
줏대가 없는 게 아니라 강점이다.
스타크래프트 마냥 한 종족만 잘하면 땡이 아니다.
여러가지 챔피언들을 고수준으로 할 수 있다는 건 까다로운 요소다.
마지막 세트는 안정적인 선택을 해왔다.
반대로 나는 여전히 공격적인 선택이다.
말하자면 창과 방패의 싸움.
파앗!
미드 2차 포탑 앞에서의 대치 상황.
코리아나의 라인 클리어는 성가시다.
하지만 뚫어낼 방도가 없다는 소리는 아니다.
터억!
사앗…!
순간적으로 거리를 좁혀 긋고 빠져 나온다.
던져진 침묵의 표식이 사슬에 스치며 터진다.
적팀의 서포터 쓰렉귀의 체력이 한 움큼 뜯겨나간다.
'르풀랑에겐 굉장히 반가운 구도이긴 한데.…….'
간단한 견제지만 대상 체력을 절반은 뺄 수 있는 콤보다.
몇 번만 반복해도 상대 입장에선 피가 말린다.
이러다 또 맞고 죽기라도 하면 어떡하지.
어쩔 수 없이 정비를 하게 되고, 아군은 그 빈틈을 노리기만 된다.
분명 그래야만 했지만 진척이 생각보다 지지부진하다.
그 체력이 만족스럽게 깎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터억!
사악……!
이번에 맞은 대상은 적 탑라이너 싱나드다.
분명 사슬을 정확히 적중시켰다.
그럼에도 살짝 기스가 난 정도의 데미지.
탱커니 만큼 당연히 단단하겠지만 본질적인 이유는 그게 아니다.
상대 코리아나가 내가 노리는 타이밍에 실드를 씌워준다.
글자 그대로 창과 방패.
"못 뚫을 것 같은데 빠지고 정비할까요?"
"저희 탑라인 웨이브 쌓였어요!"
글로벌 골드도, 포탑 상황도 유리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렇다 할 재미를 보지 못했다.
꽉 움츠러들은 상대에게 치명타를 먹이지 못하고 있다.
'아니, 정비는 차악의 선택이야.'
굉장히 일반적인 선택이다.
대치해봤자 의미가 없으니 오브젝트를 까던가, 다음 기회를 노리자.
즉, 운영을 해보자는 이야기다.
그런데 그 운영에서 확실하게 상대가 한 수 위다.
어설프게 시간을 끌리면 따라잡히고 만다.
지체할 시간은 결코 길지가 않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낸다.'
사용할 수 있는 카드를 아껴서는 넘어설 수 없는 상대다.
아니, 아끼지 않는다 해도 버겁기 그지없는 강적이다.
오히려 지금의 상황이 반쯤 기적이다.
초반 게임이 잘 풀린 덕에 압박할 수가 있다.
하지만 이 주도권은 언제 넘어가도 이상하지 않다.
상대의 특기가 운영이라면 나는 나만의 특기, 나밖에 할 수 없는 모든 것을 퍼붓는다.
* * *
당황스럽다기 보다는 어이가 없다.
분명 미숙했을 숙련도가 경기 중에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무르익었다.
아니, 그 정도로 손발처럼 다뤄내는 이는 챌린저는 물론 프로를 포함해도 손가락에 셀 수 있는 정도다.
'믿기지가 않지만…….'
직접 상대했으며 그로 인해 패배했다.
상당한 충격을 받았던 걸지도 모른다.
마지막 세트 밴픽 도중 상정은 자신도 모르게 자드를 잘랐다.
더 이상 의미가 없음에도 말이다.
르풀랑, 리픈, 그리고 끠즈.
자드가 추가된 이상 밴카드로 레전설을 압박하는 건 불가능하다.
아니나 다를까 르풀랑을 내줘야 했다.
그리고 자신은 코리아나를 꺼냈다.
제법 데자뷰가 일어나는 구도다.
'한창 1위를 사수하던 시절 수십 번도 더.'
자신은 결국 패자로 남았지만 의미가 없는 건 아니다.
당시의 기억은 2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분명 이 정도가 아니었다는 사실.
레전설의 실력은 과거와 비교해 눈에 띄게 줄었다.
공백이 있었던 만큼 당연한 일이다.
침착하게 한다면 아직 승산은 있다.
"레드 지역을 아예 버린다는 생각으로 움직여주세요. 5분 가량만 조심해주면 됩니다."
콩샐러드의 오더에 따라 팀원들이 분주히 움직인다.
라인전 단계에서의 손해, 그리고 상대 르풀랑의 위협.
전체적인 전황은 불리하지만 동선을 좁히면 극복하지 못할 것도 없다.
불리한 상황에서는 모든 것을 지키는 게 불가능하다.
레드 지역은 과감히 버린다.
블루 쪽의 시야만 장악하고 바론을 지키는 마인드로 견제한다.
큰 손해 없이 시간을 조금만 더 끌 수 있다면 승기는 넘어오게 된다.
'이미 꽤 시간을 끌었어.'
가능하다면 10분, 최소로 잡아도 5분이면 된다.
운영적인 기교가 우위에 있기에 가질 수 있는 선택지다.
무엇보다 조합이 가진 성장 기대치와 원딜의 실력이 앞선다.
후반에 갈수록 게임이 점점 유리해진다.
결정적으로 르풀랑의 존재감이 격감한다.
서로 아이템이 갖춰진 정식 한타에서 무력한 챔피언이다.
'그는 늘 그런 류의 챔피언만 골라했었지.'
스스로 리스크를 즐기는 듯 보였다.
게임에서 리스크라는 건 리턴의 동의어다.
많이 짊어질수록 돌려 받는 보상 또한 커진다.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다가 공중제비까지 성공시키고 만다.
승산이 진작에 날아가버린 게임을 홀로 뒤집어 엎는다.
상식으로는 도저히 단정할 수 없는 존재.
파앗!
일순간에 일어난 참사다.
아군 원딜러 토이치가 끊겨버렸다.
그것도 손짓 하나 반항하지 못하고 허무하게.
─아군이 당했습니다!
적이 학살 중입니다!
르풀랑이 탑라인 2차 포탑 앞 부쉬에 숨어있었다.
귀환을 타지 않고 몰래 대기하고 있었다는 소리다.
아무런 의심도 없이 파밍을 하던 토이치가 뒤통수를 제대로 얻어 맞고 사망.
콩샐러드 자신도 아예 생각조차 못했다.
하지만 그만큼 일반적인 판단이 아니다.
상대는 이미 전부 정비를 하기 위해 귀환을 탔다.
홀로 적진에 남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후회하게 해준다.
치이이잉…!
궁극기를 켠 싱나드가 무섭게 돌진한다.
빠른 속도로 르풀랑을 뒤를 잡는다.
르풀랑은 분명 생존기가 탁월한 챔피언이지만.
쿠! 챵!
「버거킹!」
깃창 돌진과 함께 탈리반 3세의 궁극기가 둘러싼다.
이를 피하기 위해 르풀랑은 궁극기를 빼는 수밖에 없다.
그곳에는 포위망을 빙돌아 좁혀온 자신이 대기하고 있다.
호롱!
콰드득!
자랑하는 생존기가 전부 빠진 르풀랑이다.
쇼크웨이브가 빠져나갈 틈 없이 감싼다.
점멸을 사용해도 걸리게 되는 위치다.
물론 이렇게 되면 궁극기를 세 개나 쓰는 셈이다.
하지만 시간을 끄는 게 목적이니 아쉬운 투자는 아니다.
상대의 주력인 르풀랑을 자르면 얻을 수 있는 이득도 심심치 않다.
제압 골드는 물론 바론도, 용도 상대는 시도할 수 없게 된다.
시야 장악 또한 이쪽이 지금보다 넓게 가져갈 수 있다.
최소 3분 이상의 시간을 토이치와 맞바꿨다고 여겼다.
─아군이 당했습니다!
적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운영적인 관점에서 내려버린 판단.
시야를 너무 넓게 잡았기에 놓쳐버린 사소함.
레전설의 르풀랑이 다시 한 번 기묘한 역주행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