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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전설의 재림-22화 (22/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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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걱!

서걱!

묵직한 평타에 미니언이 쓸려 나간다.

처음으로 해보는 자드라는 챔피언.

어색했던 움직임도 금방 익숙해졌다.

'아예 본 적이 없는 챔피언도 아니니까.'

적으로서는 제법 상대해봤다.

적응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다.

무엇보다 시스템의 도움을 받고 있다.

'딱 잘라 떨어지듯 입감이 되는 건 아닌데.'

어떻게 움직이는 게 최선의 판단일지.

감이 빠르게 온다는 느낌이다.

라인전을 시작한지 4분 가량.

점점 더 움직임에 힘이 붙는다.

화락!

챠라락!

그림자를 깔며 표창 견제.

이번에야 말로 숨도 못 쉬게 압박하고 있다.

파사딘이 CS에 손도 못 대도록 엄포를 놓는다.

그럼에도.

'부족해.'

내가 한창 활동 하던 당시에도 파사딘은 현역으로 쓰였었다.

물론 당시와는 다소 달라졌겠지만 한 가지는 틀림없다.

잘 크기만 하면 사기 챔피언.

어쭙잖게 말려서야 이전 판의 행보를 되풀이할 뿐이다.

'무엇보다 운영에서 밀린다는 게 커.'

솔직하게 인정한다.

게임을 지며 여실히 통감했다.

지금의 나는 현 메타를 모르는 퇴물에 지나지 않는다.

상대의 의도대로 흘러가기 전에 라인전에서 치명타를 먹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 픽을 한 자드다.

하지만 어떻게?

과거에도 간단히 쓰러뜨렸던 상대가 아니다.

상대는 반쯤 현역이나 다름이 없다.

그에 반해 나는?

이제 막 다시 손을 대기 시작한 초라하기 그지 없는 복귀 유저다.

승산을 따지는 것조차 자만일지 모른다.

냉정하게 생각해본다면 분명 그러하다.

'……냉정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잖아.'

승산, 계산, 그런 자질구레한 것들 생각하지 않았다.

적어도 과거의 나는 그러했다.

달라져야 할 이유가 있을까.

철이 들었다는 표현은 옳지가 않다.

더 이상 도전하는 것이 두려워졌을 뿐이다.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 먹은 이상 버려야 할 자세다.

한 치의 물러섬도 없는 정면 승부다.

구오오…!

자드의 궁극기 죽음의 선고.

직접 써보는 것은 처음이다.

하지만 벌써 손에 익은 듯 매끄럽다.

대상은 당연히 파사딘.

누적된 견제로 체력이 깎였다.

6레벨을 찍자마자 승부수를 띄운다.

부왁!

물론 눈 뜨고 장해줄 상대일 리 없다.

공허한 파동이 흩뿌려진다.

피할 수 없는 광역 둔화.

연이은 궁극기로 완벽한 도주를 꾀하지만.

'읽었어.'

파사딘이 도망친 바로 그 자리.

정확하게 그림자를 까며 표창을 날린다.

맞는다면 궁극기가 터지며 점화와 함께 킬각이 나온다.

맞지 않아서 문제다.

상대는 점멸로 과감하게 회피했다.

포탑 안쪽까지 추적하는 건 자충수가 될 수 있다.

무리하게 들어가다간 역공을 맞는다.

이미 침묵의 쿨타임이 돌아왔을 것이다.

스킬도 못 쓰고 허우적대다 죽을 수 있다.

'……그래서 침묵이 빠진 타이밍을 노렸던 건데.'

회심의 킬각이 무위로 돌아갔다.

서로 정비를 마친다면 다음 킬각을 잡기 애매해진다.

같은 실수를 두 번 해줄 만큼 호락호락 할 리가 없다.

그렇게 안심하게 만든 순간.

화락!

한 번 끝났던 공세를 다시 한 번 몰아친다.

앞서 깔아 놓은 그림자 분신과 위치를 바꾼다.

반응할 틈을 주지 않고 점멸로 박아 넣는다.

침묵을 당하기 전에 먼저 일을 터트린다.

치지직…!

간발의 차이다.

실낱과도 같았을 방심.

안심했던 상대에게 불의의 일격을 선사한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꽉 막혀있던 숨통이 트인다.

* * *

벌써 3년이 넘게 지난 이야기다.

당시 상정은 신물이 올라와 있었다.

세상 모든 것이 따분하다고 생각했다.

'금수저의 한가로운 불평이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진로와 약속된 미래.

부럽기 그지 없는 환경이라는 건 안다.

하지만 자신으로선 그다지 달갑지 않았다.

보장된 미래란, 무엇을 해도 바뀌지 않는다의 동의어다.

헤어나올 수 없는 울타리.

부끄럽게도 때늦은 사춘기를 겪고 있었다.

유일하게 흥미를 가졌던 것이 바로 게임이었다.

20대 초반 남자들의 공통된 관심사다.

조금 빠졌다는 점만 빼면.

'그런데 즐기던 스타판이 갑자기 망해버렸지.'

다음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어떤 것을 보면 좋을까.

자연스럽게 카오스로 연결됐다.

원래부터 관심도 있었거니와 다른 차선책도 없다.

그래서 어느 날 카오스 리그에 관람을 갔다.

큰 기대를 하진 않고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몰입하고 말았어.'

규칙도, 재미 포인트도 잘 모르던 게임이다.

한 명, 이목을 끄는 선수가 있었다.

한 마디로 외톨이.

해설자들은 최성훈 그를 그렇게 소개했다.

홀로 적진에 뛰어드는 불나방과도 같다.

그런데 그 불나방이 적진을 아주 불바다로 만들었다.

팀 게임에서 저런 솔로 캐리가 가능하구나.

신기한 사람이구나 생각했다.

자신도 되고 싶다고 여겼다.

때마침 롤이라는 신규 게임이 나왔다.

카오스와 비슷한 AOS장르.

원래부터 게임은 잘하는 편이었다.

생각보다 많이 잘하더라.

인생 처음으로 흥미라는 것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 흥미는 시작케 만든 장본인에게 깨지고 말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최성훈 그가 레전설이었다.

또다시 그와 마주하게 됐다.

군챔스 바로 이 자리.

'채 얼마 하지도 않았을 텐데…….'

거슬리는 레전설의 주력 챔피언을 전부 잘랐다.

그리고 자신은 전력을 다해 게임에 임했다.

노렸던 대로 첫 번째 세트의 승리.

다음 세트에서 부랴부랴 파사딘의 카운터인 자드를 꺼내왔지만 안된다.

연습이 돼있을 리 없다.

만약 했다고 해도 턱없이 부족할 것이다.

파사딘은 AP챔피언의 카운터지만 AD 상대를 못하는 게 아니다.

스킬 구조 자체가 아득히 OP인 챔피언.

OP라는 말은 웬만한 상성을 타지 않는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분명 처음에는 숙련도가 충분하지 않았어.'

얼마 하지 않았을 텐데도 이만한 실력.

레전설이라면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그래봤자 압박 정도다.

막말로 파사딘은 6레벨 전까지 CS를 못 먹어도 되는 챔피언이다.

확정 침묵과 사기적인 이동기, 손 꼽히는 성장 포텐셜.

대신 대회 무대에는 수동적이라는 단점이 있다.

이를 콩샐러드 자신이 메인 오더로 보충해낸다.

승리를 위한 가장 완벽한 전략이다.

그것도 게임이 정상적일 때나 가능한 이야기다.

─아군이 적에게 당했습니다!

봇라인에서 사달이 일어났다.

상대 미드&정글의 4인 다이브.

사전에 예측해 동선을 불러주지만 버티는 것도 한두 번이다.

'어쩔 수가 없는 일이지.'

만약 자신이 몸 담고 있던 게임단의 녀석들이었다면 포탑을 내주는 선에서 그쳤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군챔스.

팀원들도 프로는 커녕 프로지망생, 아마추어조차 되지 않는다.

대처 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결국 다이브 킬을 헌납하게 됐다.

"콩샐님 어떡하죠? 저희 일단 상대보다 못 크진 않았는데."

"아까처럼 날개 운영 해볼까요?"

"글쎄요…."

첫 번째 세트와는 완전히 대조적이다.

스노우볼이 굴러가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

자신이 개입해서 비틀어볼 여지가 없다.

이는 운영적인 요소 또한 마찬가지다.

아군을 돌려서 자신이 성장할 시간을 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독 행동이 가능해야 한다.

화락!

챠라락!

미드 라인 1차 포탑 앞.

자드의 표창 견제를 제대로 맞자 체력이 두 움큼 뜯겨나간다.

방어 아이템인 손목 보호대를 둘렀음에도 터무니 없는 데미지다.

파사딘이 대회 무대에서 안 쓰이는 이유.

포탑 수성에 약하며 코어 아이템이 너무 많다.

갖출수록 기하급수적으로 강해지지만 갖추기 전에는 상황을 탄다.

그중에서도 자드와의 1대1은 특히 까다롭다.

한 번 말리기 시작하면 밑도 끝도 없다.

대놓고 조여오는 압박에 목이 타들어간다.

조냐의 물시계가 아직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빨리 나온다면 게임이 이보다 더 편해질 수 없다.

반대로 나오지 않으면 아예 우주 끝까지 말려버린다.

그렇게 되기 직전.

여기서 한 번 자드를 잡아 반전을 노려야 한다.

잡아서 제압 골드를 먹을 수 있다면 게임이 풀린다.

밀리고 있는 자신들이 둘 수 있는 최선의 승부수다.

「하앗-! 덩크슛!」

바위의 궁극기는 발동된 시점에서 멈출 수 없다.

제9보병사단의 정글러, 이채식 상병의 갱킹이다.

그림자 분신이 빠진 자드의 약한 타이밍을 제대로 찔렀지만.

구오오…!

자드는 궁극기로 상대의 스킬을 한 번 씹을 수 있다.

하물며 레전설, 그 정도도 반응하지 못할 리 없다.

그조차 예상해서 그려낸 설계다.

부왁!

침묵과 함께 광역 둔화.

아무리 잘 성장한 상대라도 마찬가지다.

스킬도 못 쓰고, 느려지면 샌드백 신세로 전락한다.

탱커라면 모를까 딜러.

암살자인 자드는 당연히 버틸 수 없다.

움켜진 바위의 주먹이 일직선으로 내질러진다.

하아!!

미터법으로 따지면 단 1/100.

롤로 따지면 1/15 티몽 미터.

그 자그만 오차로부터 비틀어지기 시작한다.

* * *

확신은 있었다.

하지만 근거를 대라면 없다.

말하자면 근거 없는 자신감.

직감이란 게임에서 상당히 중요한 요소다.

모든 상황을 계산 하에 들어갈 수는 없지 않은가?

'직감이 예리하면 그 숫자가 잘 나올 확률이 높아지지.'

단순히 운이 걸린 도박이 아니다.

주사위를 원하는 대로 굴리는 노하우라던가.

혹은 주사위의 내부를 조작하여 높은 눈이 나오도록 한다던가.

실제로 도박의 세계에서는 있는 이야기다.

'……아니, 뭐 딱히 찔리는 건 아니고.'

어쩌면 지금의 상황은 두 가지 다 해당될지 모른다.

한껏 신체의 스펙을 끌어당겼다.

직감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투자다.

서로가 서로를 노리는 상황에서 회심의 역전을 노린다.

하아!!

내질러진 바위의 주먹을 실 한 오라기 차이로 피해냈다.

침묵에 걸린 이상 무빙 외에 다른 방도가 없었다.

상대가 돌진하는 방향, 그리고 내 직감.

피해낸 이상 공격권은 이쪽이 가진다.

경직 상태인 바위는 모든 공격을 허용한다.

뒤늦게 점멸을 사용한다 한들 이미 죽음이 확정된 후다.

콰직!

자드의 궁극기 죽음의 선고.

3초간 가해진 피해의 일부가 고스란히 터진다.

안 그래도 성장을 잘한 내 풀콤보를 견뎌낼 수 있을 턱이 없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전설님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투자한 상대의 노림수가 무위로 돌아갔다.

이것만으로도 반쯤 게임이 터진 셈이다.

충분히 만족해도 된다는 소리다.

'나는 충분한 수준으로 만족한 적이 없어.'

파사딘은 본전이라도 찾기 위해 필사적이다.

한 번이라도 나를 잡아 제압 골드를 얻는다.

게임을 조금이라도 더 이어나가기 위한 발판.

가뿐히 즈려밟아 종지부를 찍어준다.

'2초, 1초…….'

상대의 다음 스킬 쿨타임이 채워지는 타이밍이다.

하지만 바로 피하지 않는다.

내가 아는 콩샐러드, 그는 대단히 침착한 남자였다.

긴박한 상황일수록 한 템포 끊어치는 버릇이 있다.

그 특유의 호흡은 2년이 지난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부왁!

궁극기와 함께 흩뿌려진다.

맞았다면 최소 사망.

아무리 잘 컸다 한들 협공을 당하면 장사가 없다.

하지만 각개격파, 그리고 주요 스킬을 피해낸다면 180도 반대의 결과가 도출된다.

챠라락!

방금 전, 내가 있었던 자리 위로 표창이 스쳐 지나간다.

공격에 집중했던 파사딘은 피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거의 동시에 들어간 마지막 일격도 함께 말이다.

치지직…!

패시브가 묻은 평타와 점화.

마무리를 하기에는 더없이 적합한 일격이다.

콩샐러드는 괴물 같은 반응 속도로 피할 뻔했다.

피할 뻔.

아무리 반응 속도가 좋아도 평타와 점화는 타겟팅이다.

타들어가는 목숨이 되살아날 일은 없다는 소리다.

─더블 킬!

전장의 화신!

반이 아니라 전부.

충분이 아니라 이상.

첫 번째 세트의 굴욕을 차고 넘치게 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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