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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전설의 재림-21화 (2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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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교육대 열혈 조교 윤병철 병장.

나보다 5개월이나 더 늦게 입대를 했음에도 병장이다.

무려 특급전사를 따서 2개월이나 먼저 조기 진급을 했다고 한다.

특급전사는 사격 18발, 윗몸 일으키기 2분에 82개, 3km 구보 12분 30초, 팔굽혀펴기 2분에 72개, 정신전력 90점이라는 고된 관문을 넘어낸 병사에게 주어지는 칭호다.

그야말로 엘리트 중의 엘리트!

나도 딸 수 있었는데 그날 따라 3년 전 17대1로 싸웠을 때 입었던 부상이 지끈거려서 간발의 차이로 3km 구보에 늦어버린 탓에 전투 프로에 만족해야 했다.

아무튼 윤병철 병장은 30사단으로 전입 오는 신병들을 좌로 굴러, 우로 굴러 빡세게 훈련시켜 사단 곳곳으로 보내는 말하자면 사단의 심장과도 같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만 정작 본인은 기본적인 구르기도 못하는 모양이다.

─아군이 당했습니다!

적이 학살 중입니다!

윤병철 병장의 배인이 앞구르기 끝에 장렬히 사망했다.

대포 미니언에 대한 과한 욕심이 화를 불러일으켰다.

물론 그전부터 라인전이 밀리고 있었으니 일어난 참사다.

파바바박!

퍼엉!

적팀의 원딜러 고르키가 앞부스터로 자신감 있게 딜을 때려 박는다.

살아남았던 힐라카의 체력이 반피가 넘게 깎인다.

잠깐 스쳤을 뿐인데 말도 안되는 화력.

힐라카는 깜짝 놀라 점멸까지 빠지고 말았다.

"트포가 벌써 떴네……."

"죄송요. 봇라인 조금 힘들어요."

'조금이 아닌 것 같은데?'

14분에 CS를 130개 가까이 챙기고 킬은 3개나 먹었다.

귀환하면 마법 관통력의 신발까지 갖출 것이다.

어마어마한 왕귀가 이미 현재 진행형이다.

"미드 안 봐도 되니까 봇부터 풀지 그랬냐."

"아니, 하필 배인 힐라카라 갱호응도 안되고 라인도 계속 밀려서 각이 안 나오잖아요."

정글러인 준규의 입장도 이해는 된다.

아군 봇이 배인&힐라카면 심하게 난감하다.

언제 한 번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조합이었다.

그런데 하필 그 한 번이 지금이라니.

예선전의 결승.

사실상의 4강이다.

지는 순간 일과가 대민 봉사 및 작업으로 강제 개변된다.

앞서 패배한 병사들과 같이 쓰레기를 주우러 다녀야 한다.

"일단 집중해. 한타 가면 내가 끊어볼 테니까."

"네, 형만 믿고 가야죠 뭐."

원딜이 아무리 잘 커도 내가 1코어만 뜨면 끊을 만하다.

지금까지 이런 위기가 한두 번 있었겠는가?

동아리 대항전 당시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진정 신경 쓰이는 것은 따로 있다.

콩샐러드의 파사딘이 지금 이 순간에도 성장 중이다.

충분히 디나이도 했고, 갱킹으로 한 번 잡기도 했지만.

'워낙 사기라서 이 정도 말리는 걸로는 부족해.'

좀 더 숙련도 있는 챔피언.

혹은 상성이 되는 픽을 했으면 모른다.

안타깝게도 르풀랑도, 리픈도 밴이 된 상태다.

아링으로는 이 이상 파사딘의 성장을 저지하기 힘들다.

파사딘이란 챔피언 자체가 대 마법사 하드 카운터다.

심지어 OP챔피언 1순위로 손 꼽히는 사기챔이다.

'카운터를 치려면 미드 AD를 해야 하는데…….'

해본 적이 없어서 문제다.

과거에만 해도 미드AD는 주류가 아니었다.

당연히 챔피언 폭에 있을래야 있을 수가 없다.

처음부터 밴을 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상정에 없었다.

파사딘은 분명 사기적인 챔피언.

하지만 어중간하게 하면 이만큼 계륵인 챔피언이 또 없다.

라인 클리어가 안돼서 한 번 기울어지면 무너진다.

설렁설렁 승부욕 없는 콩샐러드라면 문제되지 않는다.

그런데 밴픽부터 시작해 라인전부터 힘을 팍 주고 있다.

* * *

부왁!

파사딘의 궁극기가 공간을 격한다.

침묵이 둔화의 효과를 지닌 스킬들이 흩뿌려진다.

데구르…!

배인은 뒤로 굴렀지만 이미 체력이 뜯겨나간 후다.

사실상 타겟팅에 가까운 포킹이다.

심지어 반격도 허용하지 않는다.

3초에 가까운 침묵, 그리고 둔화다.

스킬도 못 쓰는데 느려지기까지 한다.

스턴이나 다름 없는 상태.

2013년의 파사딘이 사기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부왁!

점멸의 두 배 가까운 거리를 전조도 없이 한순간에 격한다.

흩뿌려진 스킬은 반항의 여지를 빼앗는다.

이번에는 리심의 체력이 뜯겨나간다.

가히 사기적인 위엄이다.

하지만 불안 요소가 없는 건 아니다.

견제를 너무 적극적으로 하면 역공에 당할 위험성이 있다.

반대로 너무 주저하면 상대에게 시간을 주고 만다.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위험천만한 외줄타기.

콩샐러드가 가진 실력과 기량이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낸다.

"무리해도 되니까 날개에 힘줘요. 제가 빼랄 때까지 푸쉬하면 됩니다."

"예, 알겠습니다!"

동시에 팀의 운영까지 완벽하게 소화한다.

콩샐러드, 산전수전은 다 넘어본 전직 프로게이머다.

운영에 있어 이 자리에 있는 누구보다 빠삭하다.

팀원을 부리는 세세한 오더 또한 마찬가지다.

─아군이 포탑을 파괴했습니다!

체력이 빠진 상대팀은 주춤할 수밖에 없다.

아예 전투 능력이 상실한 건 아니지만 행동이 크게 제약 받는다.

함부로 돌아다니다 끊기면 어떡해?

커버를 갈 수가 없게 된다.

이때 사이드 라인, 날개에 힘을 준다.

잘 성장한 봇듀오의 압박에 상대는 포탑을 내준다.

"고르키 정비하고 쏘냐는 그대로 올라와주세요."

"어, 저도 같이 정비하고 가면 안돼요?"

"콩샐형님이 말씀하시는데 어디서 토를 달아!!"

"바로 가겠습니다!"

팀게임의 오더는 기본적으로 속전속결이다.

아다리가 한 번 틀어지는 순간 손해로 이어질 수 있다.

메인 오더의 실력에 따라 이를 사전에 틀어 막는 게 가능하다.

봇라인에서 손해가 생기자 상대는 미드를 파고들려고 했다.

빠르게 백업을 온 쏘냐에 의해 차단됐다.

콩샐러드의 오더가 빛을 발한 결과다.

"저는 알아봤습니다. 그래서 제가 소리까지 친 거 아니겠습니까?"

"알긴 뭘 알아. 앵무새 새끼가."

"지금 중요한 타이밍이에요. 집중해주시는 게 좋습니다."

"당연하죠 형님!"

콩샐러드가 오더에 따라 게임의 승기가 자연스럽게 넘어온다.

볼 수 있는 손해는 최소한으로 줄인다.

밑그림은 차곡차곡 그려지고 있다.

'게임을 이기기 위해서는 결국 내가 커야 돼.'

라인전 단계에서 생각보다 아군이 잘해줬다.

다행인 일이지만 전적으로 의지해서는 안된다.

상대의 이니시, 혹은 암살에 한순간에 잘려나갈 위험성.

아무리 로드 오브 로드가 팀게임이라도 개개인의 실력 차이로 엎어질 여지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잘 큰 고르키가 마지막까지 활약해주리란 보장은 없다.

오더도 중요하지만 마지막 캐리는 자신의 역할이다.

밑그림이었던 오더는 파사딘이 성장할 시간을 벌기 위함이었다.

두 번째 코어 아이템이 완성되자 전혀 다른 챔피언이 된다.

이제는 단순한 견제의 수준을 넘어선다.

부왁!

라인전 단계에서 못다 한 성장을 하기 위해 혼자 사이드 라인을 돌던 배인.

이렇듯 혼자 돌아다니는 원딜러는 잘라먹기 좋은 먹잇감이다.

침묵에 걸린 배인은 특기인 은신 구르기도 못하고 잡아먹힌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한 번 뒤를 잡힌 순간 끝장이다.

현재 파사딘의 궁극기는 한 번, 한 번의 도약 거리가 사기적이다.

배인이 죽고 나서야 뒤늦게 레전설의 아링이 등장하지만 도주에는 무리가 없다.

샤락!

아링의 3단 대쉬조차 가볍게 따돌린다.

쏘아진 유혹을 망설임 없는 점멸로 피해낸다.

이로써 또 한 턴 시간을 벌어낸 셈이다.

'2코어까지 오면 아링으로는 파사딘 마크가 불가능해.'

챔피언 자체가 파사딘의 하위 호환이다.

심지어 너프까지 먹어 딜적인 측면이 부족하다.

물론 이는 자신이 유도해낸 상황이다.

레전설은 자신조차 인정하는 실력자다.

시간이 지난 지금도 허투루 볼 수 없다.

하지만 하나, 치명적인 약점을 품고 있다.

챔피언 폭이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과거에서 아직 탈피하지 못한 상태다.

파사딘은 이를 정확하게 카운터 친다.

'시대가 달라졌어.'

웬만한 챔피언으로는 파사딘의 초반 성장을 저지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운영 주도권도 빼앗긴다.

그 운영에 대해서도 자신이 한 수 위.

2년이란 공백은 단순한 재능 하나로 어찌할 수 있는 격차가 아니다.

분명 그라면 지금의 게임으로 그 사실을 인지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이제 와서 연습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만에 하나 한다고 해도 턱없이 모자르다.

벼락치기로 넘어설 수 있을 만큼 자신은 무르지 않다.

'기대라…….'

자신에게 1위 자리를 박탈했던 자.

한계라는 끝을 알려줬던 자.

터무니 상황을 만든 건 자신이다.

그럼에도 기대를 하고 만다.

그 기대가 어긋나더라도 콩샐러드는 멈출 생각이 없었다.

* * *

너무 안이한 생각을 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예상할 수 없었던 것도 맞다.

허를 정확하게 찔러오는 저격밴.

첫 번째 세트는 파사딘의 독주를 막지 못한 채 패배하고 말았다.

라인전을 압살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물론 결정적인 패인은 봇라인, 특히 배인충이 기대에 저버리지 않는 활약을 해버렸기 때문이 크지만.

"죄송합니다……. 진짜 욕을 먹어도 할 말이 없네요."

"저 형 앞에서 그런 말하면 안돼요."

"네?"

"……."

"크흠, 그런 게 있습니다."

준규의 헛기침은 그렇다 치고 예상을 하지 못했다.

상대가 내 챔프폭을 두루 꿰고 있더라.

설마 그렇게까지 할까 싶었다.

'즐겜 장인 콩샐러드가 그 정도로 면밀하게 대처하다니.'

르풀랑, 리픈, 그리고 끠즈.

내가 주력으로 삼는 챔피언들이다.

올라오는 과정에서 다소 활약을 한 건 사실이지만 혼자 다 해먹은 수준은 아니었다.

귀중한 밴카드를 3개나 소비할 가치가 있었나?

아무리 생각해도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끠즈는.

'아직 꺼낸 적도 없었고.'

상대가 나를 알고 있지 않고서야 설명이 되지 않는 상황이다.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몰라도 확실하다.

콩샐러드는 내가 레전설이라는 사실을 안다.

그리고 가장 신경 쓰이는 한 가지.

"비단 져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라 정글 입장에서 게임이 좀 답답했어요."

"제가 갱호응 되는 서포터를 좀 해볼까요?"

"그래주면 좋긴 하지만…… 일단 파사딘을 어떻게 해야 하는데."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나는 안다..

파사딘은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다.

성장하기 힘들지만 성장만 하면 미친놈이다.

때문에 초반 라인전 단계에서 말려 놓아야 했다.

조금 부족하긴 했어도 운영으로 극복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운영조차도 밀린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단순히 잘하는 것만이 아니야.'

2년 동안 쉬고 있었던 건 손만이 아니다.

소위 말하는 뇌지컬.

게임의 흐름을 생각하는 능력도 뒤쳐져 있다.

은퇴했다고 하나 전직 프로게이머다.

팀 게임에서의 경험이 자릿수가 다르다.

어째서 살아있는 전설이라 불렸는지 깨닫게 된다.

'하지만 좁힐 수 없는 격차도 아니지.'

전성기 시절에도 나의 특기는 뇌지컬적인 부분이 아니었다.

피지컬을 기반으로 한 압도적인 라인전 능력.

두 가지를 전부 잃게 되니 주춤했을 뿐이다.

하나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한다.

[자드 숙련도 ☆☆☆☆☆]

[잭트 숙련도 ☆☆☆★★]

[제임스 숙련도 ☆☆☆☆☆]

[제우스 숙련도 ☆☆☆★★]

.

.

.

포인트를 모으고는 있기는 했지만 부족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전화위복.

유리야와 보냈던 중식 시간이 헛되지는 않았다.

'아니, 점심 시간이지…….'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군대식 말버릇은 어쨌든.

[현재 보유하고 있는 포인트 : 2019]

아슬아슬 목표했던 포인트를 달성할 수 있었다.

유리야를 사람 만든 나의 활약에 시청자들이 눈물겨운 찬사를 보내준 덕분이다.

[자드 숙련도 ★★★★★]

이전부터 반드시 익히고 싶었던 챔피언이다.

내 플레이 성향에도 정확히 맞아 떨어진다.

연습을 할 시간이 없었지만 마침 무능한 신의 게임 시스템이 다소 도움이 된다.

'처음으로 도움됐다는 느낌이네.'

나라를 위해 희생한 2년이 다소는 보상 받는 느낌이다.

허비해야 했던 2년을 보다 빠르게 따라잡을 수 있을 듯하다.

'근데 좀 아깝기는 해.'

숙련도가 오른다고 얼마나 극단적인 변화가 있을까.

내가 마음만 먹으면 금방 만렙 찍을 수 있다.

그렇다고 생각을 했는데.

[아링 숙련도 ☆☆★★★]

'…….'

생각보다 시간이 소요되는 모양이다.

부정할 수 없는 증거가 눈앞에 보인다.

내가 입대를 했던 날짜가 2012년의 1월 28일.

그리고 아링이 처음 출시됐던 게 그 작년의 12월이다.

최초의 한국형 챔피언이라 애착이 있어 제법 했건만 그럼에도 부족했나 보다.

아니면 이후로 패치가 된 내용이라거나.

혹은 달라진 메타가 영향을 미친 걸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시대에 뒤쳐졌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더 올라갈 곳이 남아있다는 건 좋은 일이야.'

솔직하게 필사적이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왕년에 좀 했으니 어떻게든 되겠지.

낙관적인 생각을 했던 것도 맞다.

살짝 정신을 차렸다는 기분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콩샐러드.

이번 군챔스에 상당히 목을 맨 듯하다.

'하긴 이등병이면 한창 휴가에 목 말라 있을 때니까.'

미안하지만 이쪽도 져서는 안되는 이유가 있다.

내 군생활의 안녕, 모발의 자유, 올드 게이머로서의 자존심.

그쪽에서 전력을 퍼붓는다면 나도 잠자코 당해줄 생각은 없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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