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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팬티 브라자 -->
서포터.
팀을 위해 헌신하며 아군의 성장을 뒷바라지 하는 포지션이다.
스타크래프트로 따지면 메딕과도 같다.
아군 서포터 민찬우 병장은 제30기계화보병사단 의무근무대 소속으로 1년 반이라는 긴 시간 동안 불철주야 군의관들을 도와 사단 내 환자들을 성심성의껏 보살펴 주었으나 그런다고 당연히 힐량이 올라가진 않는다.
─아군이 당했습니다!
아군 원딜러 배인이 잘리고 말았다.
민찬우 병장의 힐라카가 열심히 힐을 했지만 그 힐량을 상회 하는 데미지가 들어간 탓이다.
상대 제12보병사단.
봇듀오의 강력한 압박과 그 틈을 놓치지 않는 정글러의 타이밍 갱킹이 매섭다.
요리조리 조리 돌림을 당한 배인은 또다시 킬을 상납했다.
심지어 봇 1차 포탑의 체력까지 거의 바닥난 상태다.
흉흉하게 압박해오는 기세가 마치.
"사스가 슈퍼 그랑죠……."
"그랑죠! 그랑죠! 마법으로 빛나는 그랑죠~!"
"팬티 브라자 얄짤 없이 썰리죠? 배인충 역겹죠?"
경기를 하는 장본인들보다 더 흥분한 것 같다.
제12보병사단의 별명은 슈퍼 그랑죠!
육망성 모양의 마크가 그랑죠를 연상케 한다.
'군챔스 분위기는 원래 다 이러나…….'
진지하게 승리를 위해 경기에 몰두하던 도중 힘이 쭉 빠지게 만든다.
마음 같아서는 관중들 아가리 좀 닫게 만들고 싶다.
당연하게도 나에게 그럴 권한은 없지만 한 가지 방법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파앗!
르풀랑의 W스킬 뒤틀림.
아군을 잡고 유유히 귀환을 타고 있던 적 정글러 탈리반 3세에게 접근한다.
표식과 함께 던져진 사슬이 목숨줄을 끊어낸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같이 귀환을 타고 있던 적 봇듀오가 뒤늦게 반격하지만 늦는다.
뒤틀림은 재사용시 처음 시전했던 위치로 되돌아간다.
제로 리스크의 순간적인 암살.
'3, 2…….'
심지어 아직 끝이 아니다.
상대는 나를 의식해 포탑에서 귀환을 타고 있다.
뒤틀림의 쿨타임을 기다리며 한 번 더.
얇은 벽을 넘어 적 원딜러를 노린다.
파앗!
넘은 순간 노린 듯이 쓰렉귀의 사슬낫이 날아왔다.
벽 너머에 미리 와드를 박아 놓은 모양.
확실히 회를 거듭할수록 게임의 수준이 높아지긴 한다.
'그래봤자 도토리 키재기지만.'
다이아의 생각 쯤을 예상하지 못할 내가 아니다.
피지컬이 떨어진 거지, 판단력이 흐려지진 않았다.
점멸로 피하며 때려 박는다.
터억!
퍼엉!
침묵의 표식과 궁극기에 의한 복사본.
두 개의 표식이 연달아 터지자 헤이클린의 체력바가 삭제된다.
남기고 간 발화에 의해 실낱 같이 남은 목숨줄도 타들어간다.
"오오! 팬티 브라자의 역습이다!"
"역습이 아니라 이미 이긴 거 아니야?"
"미드&정글이 잘하긴 하더라. 롤이 결국 미드&정글 게임이라……."
그놈의 팬티 브라자 소리 안 나오나 했다.
하지만 잠시간 닥치게 만든 것도 사실이다.
두 번의 암살을 숨을 죽인 채 지켜보았다.
[관람객들이 당신의 슈퍼 플레이에 진심 어린 환호를 보냅니다!]
[승리시 포인트를 67만큼 추가로 획득합니다.]
'내가 주챔 잡으면 다이아 정도는 충분히 양학하지.'
굳이 스킬을 쓸 것도 없다는 소리다.
스킬을 쓰지 않아도 될 상황을 만들면 그만이다.
이렇듯 하나하나 일방적인 암살을 할 때는 현란한 피지컬이 필요하지 않다.
물론 말마따나 쉬운 일도 아니다.
암살이라는 건 반드시 상황이 받쳐줘야 한다.
단적으로 말해 라인 주도권과 시야 장악.
그 상황을 아군 정글러가 바삐 움직이며 만들어주고 있다.
"가르쳐준 보람이 있네. 뭐, 챌린저도 못 찍은 마스터 나부랭이긴 하지만."
"저는 형이랑 달리 지금도 마스터 티어에서 실력 유지하고 있는데요?"
"야! 나는 안 하고 있는 거고…… 그리고 우리집 강아지도 훈련만 잘 시키면 마스터 티어는 찍어."
우리집 강아지가 웬만큼 똘똘해서 롤도 시키면 잘할 거라고 믿는다.
어찌나 눈치가 빠른지 조금만 싼 사료를 줘도 안 먹는다.
동물 병원에서 약 타서 밥에 섞어주면 그것도 안 먹는다.
"예, 마스터 티어 찍으면 꼬옥 세상에 이런 일이에 출현시키십쇼."
"내가 정말 마음만 먹으면 최초로 롤하는 강아지가 나올……."
"왜 그래요?"
"……우리집 강아지보다 못한 녀석이 떠올랐어."
우리집 강아지와 현재 진행형으로 애정을 붓고 잇는 애제자.
과연 어느 쪽이 더 유망한지 몹시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솔직하게 우리집 강아지가 조금 더 낫지 않을까.
'그냥 탈주를 시켜도 브론즈5는 안 갈 것 같은데.'
아니다.
내가 유리야에게 숙제를 하나 내주었다.
실버 찍기 전까지 연락하지 말라고.
어쩌면 이미 해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로부터 벌써 며칠이나 시간이 지났다.
열과 성을 쏟아 부었던 이틀은 분명 헛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 그렇겠지. 걔도 일단 사람인데."
지금까지 가르쳐준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스스로 길을 찾지 못했을 뿐이다.
유리야도 하면 되는 아이다.
내가 믿지 않으면 누가 믿어 주겠는가?
첫 번째 제자가 그 증명을 마치고 있다.
터억!
잠복하고 있던 준규의 거미여왕이 실뭉치를 쏘았다.
맞은 대상은 적 정글러 탈리반 3세.
부활해서 정글링을 돌려던 걸 잔인하게 또 잡아 먹는다.
─아군이 적을 처치했습니다!
누구한테 배웠는지 밉살스럽게 잘한다.
하지만 위험하다.
상대 정글에 너무 깊숙이 잠입했다.
적 봇듀오는 물론 미드라이너까지 합류하고 있다.
파아아앙-!
미드 구리가스의 술통 폭탄이 끼얹어진다.
이미 포위망이 좁혀진 와중이다.
어떻게 맞아도 연계 CC기에 죽는다.
거미여왕은 거미줄로 시간을 버는 게 최선이다.
〈숨을 곳은 없어!〉
그 아래에 쓰렉귀의 궁극기 장판이 깔아진다.
글자 그대로 도망갈 구석이 없다.
하지만 결코 의미 없는 발버둥이 아니다.
파앗!
파앗
연속 뒤틀림으로 순식간에 적의 측면을 파고 든다.
르풀랑은 궁극기로 일반 스킬을 복사해 사용할 수 있다.
이동기로 쓴다면 그만큼 데미지가 격감하지만 나는 킬을 먹은 상태다.
터억!
사앗…!
표식과 함께 그어지는 사슬.
헤이클린의 뒷덜미를 정확히 스친다.
부족한 데미지는 1코어로 뽑아온 죽음의 불타는 손길이 보충해준다.
그리고 마지막 한 입.
콰흑!
거미줄에서 내려온 거미여왕이 헤이클린을 잡아먹는다.
2대4로 시작했던 교전은 어느새 2대2.
심지어 아군 쪽에 한 명이 추가된다.
슈욱-!
기갑수색대대 2중대 2소대 소속 정상호 상병의 쇈이 거미여왕에게 궁을 탔다.
그 결과 상대는 탑라인을 빼면 전멸.
정확히 미드&정글 차이로 게임이 터지며 예선전 준결승, 8강 경기의 승리를 가져왔다.
[게임을 승리했습니다!]
[포인트를 246만큼 획득했습니다.]
[관람객들의 진심 어린 환호에 의해 109포인트를 추가로 획득합니다.]
스킬을 사용하지 않아서인지 이전 경기보다는 적다.
하지만 순수익을 따지면 비교도 안되게 개이득.
일부러 주챔프를 꺼낸 보람이 있다.
'깨달아버렸거든.'
구태여 열심히 연습할 필요가 없더라?
16강 경기가 끝났을 때 나는 보았다.
의외로 신 자식이 생각이라는 게 있었다.
망할 놈의 포인트를 유용하게 쓰는 방법.
[자드 숙련도 ☆☆☆☆☆]
[잭트 숙련도 ☆☆☆★★]
[제임스 숙련도 ☆☆☆☆☆]
[제우스 숙련도 ☆☆☆★★]
.
.
.
포인트로 무려 챔피언 숙련도를 올릴 수 있다!
애매하게 연습을 할 바에야 주챔프로 빠르게 포인트를 벌어서 찍는 게 이득이라는 소리다.
내가 르풀랑 하나는 따라올 사람이 없으리 만큼 완벽하다.
"요즘 르풀랑 리메이크 되고 아테나의 부패한 술잔부터 올리는데 언제적 죽불손이에요?"
"……닥쳐. 흥해서 간 거야."
관심이 있는 챔피언인 만큼 르풀랑의 최근 근황에 대해서도 알고는 있다.
준규의 말마따나 템트리가 바뀌었더라.
스킬 리메이크가 행해진 결과다.
'차차 적응해 가야지.'
아무튼 압도적으로 경기력으로 게임을 캐리해냈다.
뒤에서 씨부렁씨부렁 말 많던 관중들.
찍소리도 못할 만큼의 차이를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아, 팬티 브라자가 결국 이겨버렸네."
"왜 하필 팬티 브라자가 올라가냐?"
"팬티 브라자만은 안 올라가길 바랬는데!"
"……."
이따금 오해를 받는 사실이다.
사단 별명이 웃긴 탓에 약한 부대라고, 꿀 빠는 부대라고 착각을 해댄다.
30사단은 북쪽에서 서울로 향하는 핵심 길목을 지키는 기계화보병사단 중 하나다.
만약 우리 사단이 널널한 부대였다면 서울 방어에는 치명적인 공백이 생길 것이다.
'라고 꺼라위키에서 봤었지.'
솔직히 공병대대 소속이라 삽질밖에 한 게 없어서 중요한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다고 한다.
최소한 니들보다 군생활을 못한 건 없다!
사단 별명 하나로 나의 강렬한 하드 캐리가 개그쇼가 돼버리다니 살짝 안타까운 기분이 든다.
'하긴 다른 사단들도 다 별명이 있고 사정은 다 비슷할 거야.'
떨어진 애들이 울분을 못 참고 부들부들 하는 것일 뿐이다.
저런 거에 하나하나 진지하게 반응하면 나만 손해다.
슬슬 뱃가죽이 등에 달라 붙고 있다.
"오늘 메뉴 뭐냐?"
"몰라요. 어차피 사먹을 거잖아요."
"아니, 뭐 그렇기는 한데……."
군인들은 P.X에서 세금을 제외한 가격으로 음식을 사먹을 수 있다.
그 차이가 제법 커서 휴가를 나가면 깜짝 놀란다.
그리고 지상군 페스티벌도 일단은 군인들이 여는 축제다.
이곳에서 판매하는 먹거리들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이 가능하다.
나라를 위해 고생하는 만큼의 특권이다.
그런데 그 사실을 누군가 눈치챈 듯하다.
불청객이 찾아왔다.
"오~ 귀엽다. 누구지?"
"혹시 행사 온 가수 아닐까?"
"가수는 아니겠지. 가수가 설마 저렇게 길 잃은 꼬꼬마처럼 돌아다니겠냐."
자리에서 일어나 PC방 밖으로 나가려던 도중.
타사단 아저씨들의 이야기가 귀에 들어온다.
군인인 이상 귀에 안 들어올 수가 없다.
민간인일 때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입대한 이후로 요상해졌다.
관심 없던 걸그룹들 이름까지 막 외우게 된다는 게 정말 헛소리가 아니었다.
여자한테도 과하게 관심을 가지게 된 덕에 이전에 한 번 큰 미스를 저질렀다.
"뭐야, 누구 여친인가?"
"남친 만나러 왔나 본데?"
"감동이겠다. 아 개부러워."
무시를 하려고 했지만 힘들다.
대체 얼마나 곱상하게 생겼길래 소란이 이는 걸까?
군인 눈이 높아봐야 얼마나 높겠냐만은 나도 모르게 고개가 돌아간다.
"선빼!! 여기에요! 여기에욧!"
'…….'
내 군생활 최대 미스의 장본인.
익숙한 상판때기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 * *
전국 각지 총 40여 사단과 여단이 출전한 역대급의 대형 리그다.
각 사단들 사이에 경쟁심이 불붙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그중에서도 메이커라 불리는 사단들.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유명 부대들은 그만큼 자부심이 깊다.
어떻게 해서든 성적을 내라.
상층부에서 압박이 내려오지 않았다면 군대가 아니리라.
""조국이 부르면! 맹호는 간다!""
PC방 내부가 떠나가랴 울려 퍼진다.
수도기계화보병사단.
가장 이름값이 높은 사단 중 하나 답게 기세부터가 사뭇 남다르다.
주변의 관심이 쏠리게 되는 것도 당연한 이치다.
"와, 누가 보면 무슨 파병이라도 나온 줄 알겠네."
"근데 구호 존나 세보이긴 한다."
"쟤네 실제로도 세. 8강 갔잖아!"
前마스터 티어 유저가 무려 두 명.
강력한 전력과 필승의 신념으로 8강 무대까지 치고 올라왔다.
하지만 이에 맞서는 팀도 만만치 않다.
전력도, 기세도 전혀 뒤지지가 않는다.
"잘하는 팀들은 사단 마크부터 간지가 흐른다니까."
"호랑이 대 백마야?
"호랑이 대 페라리지!"
제9보병사단.
사회 교과서를 끄적이기만 했어도 모를 수가 없는 백마고지 전투의 승리자인 백마 부대다.
마크 또한 상당히 간지나 페라리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그 명성에 걸맞게 군챔스에서도 막강한 전투력으로 8강의 자리에 이름을 올렸다.
장병들 사이에서는 이미 우승팀이 확정이 된 게 아닌가?
그런 소리까지 나오고 있을 정도다.
"군대 와서 프로게이머를 보다니……."
"콩샐러드 미드 마이 완전 혁명이었는데."
"콩샐은 마이만 잘하는 게 아니라 그냥 다 잘해."
"네 다음 이등병~."
이등병이기에 오히려 더 잘한다.
케케묵은 상병장들과 달리 파릇파릇한 민간인인 손길로 매경기 유별난 활약을 선보이며 캐리한다.
수도 사단까지 꺾는다면 우승까지 직행하리라.
그 장본인은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