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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전설의 재림-16화 (16/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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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군인들!

군인 신분인 성인 남성만 무려 60만 명이 넘는다.

육해공군 다 합치면 무려 그 정도나 된다.

그중에서도 땅개, 아니 육군이 대략 48만 명이다.

정말 압도적인 머릿수를 자랑한다.

그러다 보니 온갖 문제도 생긴다.

경기도, 강원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심지어 제주도까지.

전국 팔도 사람들이 뒤섞이는 만큼 생길 수밖에 없는 부작용이다.

군대 가면 별의별 사람 다 만난다는 이야기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야."

"일병 윤성빈!"

"뒤질래?"

"아닙니다."

"알아따따. 표정 관리해라."

"예, 알겠습니다……."

완장을 달고 있는 상병이 일병을 괜히 갈군다.

저렇게 신경 툭툭 건드리는 거.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당연히 짜증 난다.

하지만 하는 사람은 짜증나게 한 만큼 즐겁다.

저런 소소한 갈굼을 군생활의 낙으로 삼는다.

실제로 그러고 다니는 인종들이 있다.

사회에서 어찌 이런 짓을 하고 다니겠는가?

요즘은 후배들도 쫌생이가 많아서 못 갈군다.

'군대에 있을 때 잔뜩 즐기고 가야지~."

천상천하 유아독존.

선만 안 넘기면 간부들도 뭐라 안 한다.

30사단 방공대대 1중대 2소대 2분대장 박준규는 지금의 군생활이 굉장히 흡족하다.

물론 갈구기만 하지도 않는다.

당근과 채찍, 고루 사용해야 뒤탈이 없다.

일도 잘 못하는 후임을 작업병으로 발탁해준 건 그런 연유다.

"부대에 있으면 얼마나 고생이냐. 행보관 떽떽거리고, 허구헌날 작업 부르고, 선임들 눈치 봐야 되고~."

"……예, 그렇습니다."

"대답이 느리네?"

"빠르게 하겠습니다!"

"내 덕에 여기 와서 축제 구경도 하고, 걸그룹도 볼 수 있게 돼서 좋지?"

"그렇습니다!"

'개뿔이 시발 새끼가…….'

행보관 떽떽거리고, 허구헌날 작업 부르고, 선임들 눈치를 봐도 부대에 있는 게 훨씬 편하다.

니만 없으면.

윤성빈 일병은 마음속으로 분을 삭혀야 했다.

'저런 놈이 어쩌다가 롤을 잘해 가지고.'

박준규 상병, 몰랐는데 로드 오브 로드의 엄청난 고티어 유저였다.

입대 전에 마스어 티어까지 찍어봤다는 실력자.

지상군 페스티벌 롤 대회의 사단 대표로 뽑혔다.

그리고 그 박준규 상병이 자신을 전우조로 지명했다.

자신은 선수도 아닌데 4박 5일 쓰레기를 줍게 됐다.

심지어 박준규 상병과 같은 생활관을 쓰며 말이다.

군생활이 진짜 배배 꼬여버렸다.

앞으로 4개월은 넘게 봐야 하는 얼굴이다.

찍소리도 못하고 예스맨이 되는 수밖에 없다.

'그 레전설한테 게임을 배웠다니 그럴 만도 한가.'

과거에 카오스를 했던 성빈은 기억한다.

생활관에서 레전설 관련 화두가 나왔을 때.

박준규 상병이 발작을 하며 뭐라뭐라 했었다.

그때는 허세 잡는 줄 알았는데 의외로 맞을지도 모르겠다.

사단 대표로 뽑힐 고티어 유저라면 정말 레전설을 알 수도 있다.

자기 성격 망친 게 레전설 때문이었다는 건 인정해주기 싫지만 말이다.

성격이라는 게 그리 쉽게 바뀔까?

그냥 타고난 본성, 합리화에 지나지 않는다.

그 장본인을 만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여어~ 히사시부리!"

명백히 의아한 인사 소리가 들려왔다.

* * *

"우리 준뀨, 진짜 오랜만이다! 잘 지냈지?"

"예…… 뭐."

"어떻게 이런 데서 만나냐. 우연도 이런 우연이 다 있네."

진짜로 반갑다 못해 눈물이 나올 지경이다.

개고생 하나 싶었는데 쓸 만한 녀석이 왔다.

이전에 카오스 시절부터 알고 지낸 동생이다.

'내가 사람 한 명 만들었는데.'

드~럽게 못하던 애를 쓸 만한 수준까지 키웠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이 녀석은 약과였다.

'진짜 유리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어.'

지금이라면 아무리 말귀를 못 알아들어도 흐뭇한 미소로 바라봐줄 수 있을 것 같다.

이 녀석의 실력이 많이 죽지 않았다면 든든한 조력자다.

"두 분…… 아는 사이십니까?"

"니 후임이야? 대단하네. 후임도 있고."

"다, 당연히 있죠."

"분대장까지 달았어? 상상도 못했네. 세월이 많이 흐르긴 했나 봐."

하긴 2년이나 지났으면 환골탈태는 아니어도 번데기는 벗을 때가 됐다.

얘가 분대장이 돼서 카리스마를 발휘한다니.

상상도 안되지만 물어볼 대상은 있다.

"얘 부대에서 잘 지내냐?"

"예, 잘 지냅니다."

"그래? 그러면 다행이고."

"근데 저……."

"응?"

"히사시부리가 뭡니까?"

모를 만도 하다.

언뜻 들으면 굉장히 희귀한 조류의 부리를 의미하는 전문 용어처럼 들리니까.

하지만 이 녀석과 오래 있었으면 알 텐데?

"준뀨가 애니 많이 보잖아. 일본어로 오랜만이라는 뜻이야."

"그렇……습니까?"

"그런 거지."

"……."

뭐지?

내가 건드려서는 안되는 치부를 언급한 건가.

준규의 표정이 많이 좋지 않다.

하긴 얘도 후임 앞에서는 가오 잡아야지.

"야, 근데 니가 소개해줬던 소드 아트 오프라인 재밌더라. 동기가 보길래 같이 봤는데 볼 만하던데?"

"……그만 하십시오."

"알아따따. 난 그냥 반가워서 그랬지."

후임 앞에서 덕밍아웃 좀 시켰다고 얘가 표정이 팍 죽었네.

난 그냥 예전에 니가 재밌다고 하길래 생각 나서 그랬지.

아무튼 옛 제자를 보니 참으로 반갑다.

이번 페스티벌 내내 재밌게 있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야."

"일병 윤성빈."

"어디 가서 입 나불나불 거리면 죽는다."

"예."

"예에?"

"예, 알겠습니다!"

그런데 준규 녀석은 그렇지 않나 보다.

* * *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지상파 채널.

CBS 뉴스에서 진행되는 뉴스 데스크다.

육군에서 대대적으로 개최하는 행사인 만큼 취재가 붙는 건 특이한 일도 아니다.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육군 장병들이 과연 어떻게 나라를 지킬까요? 지상군 페스티벌은 이를 눈으로 확인하고 함께 즐길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그런데 올해에는 한 가지 특별한 행사가 추가되었다고 하죠?〉

지상군 페스티벌.

충청남도 계룡시 일대에서 열리는 육군 주관의 공식 행사이자 군 문화를 알리는 대규모 축제다.

장갑차 탑승 체험, 공연, 전시, 병영 훈련 체험, 드론 경연대회 외에도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매년 수많은 방문자들이 이를 보기 위해 찾아온다.

올해에도 풍성하게 준비되어 진행 중이다.

하지만 한 가지, 작년과는 다르다.

다름 아닌 E-스포츠 대회.

〈시청자 여러분들은 알고 계시나요? 축구에 월드컵이 있다면 게임 대회, E스포츠에는 롤드컵이 있습니다. 얼마 전, 대한민국 대표 선수들이 우승컵을 쥐며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죠. 육군 장병들도 그 열기에 뒤지지 않는다고 하네요! 조승철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 마디로 축약해 군챔스다.

군챔스가 현재 진행형으로 열리고 있다.

현장의 상황을 제 3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보도한다.

"넓은 PC방 내부를 육군 장병들이 가득 채운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현재 이곳에서는 군챔스, 군인들의 게임 대회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카메라가 비치는 넓은 PC방 내부.

군인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게임에 몰두 중이다.

하지만 일반 PC방과 달리 떠들썩, 요란한 추태를 보이는 사람은 없다.

"마치 프로게이머처럼 진지한 분위기로 희비가 갈리는 상황에서도 장병들은 포기하지 않고 한 마음, 한 뜻으로 뭉쳐 싸우고 있습니다. 현실과 가상 공간, 비록 전장은 다르지만 동료를 아끼는 전우애와 필승의 신념은 전방의 군인들과 다를 바가 없어 보입니다. CBS뉴스 조승철이었습니다."

기자의 말대로 정말 진지하게 게임에 임하고 있다.

그 모습은 사뭇 군대가 제대로 돌아가는 것 같다.

당연하게도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갔냐?"

"일병 이영훈. 간 걸로 보입니다."

"탑갱 안 와? 리픈이 탑에 살잖아!"

"……리픈은 탑이지 말입니다."

뉴스 송출이 끝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태도가 돌변한다.

여기저기서 순간적인 상황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욕설과 함께 격한 반응이 터져 나온다.

그들이 잘못된 게 아니라 그만큼 이기기 위해 필사적이기 때문이다.

제201특공 여단.

보기만 해도 강력해 보이는 이들이 똘똘 뭉쳤다.

필승의 신념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경기에 임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이란 벽은 노력만으로 깨부수기 힘들기도 하다.

챠락.

한 번의 도움닫기.

리픈과 다리우트의 눈치 싸움이 시작된다.

참지 못한 다리우트의 도끼가 허공을 가른다.

촤라락!

그 순간 승패, 아니 사활이 정해졌다.

스킬 눈치 싸움에서 패배해버린 대가다.

막무가내 달려드는 리픈을 도저히 막을 수가 없다.

"탑 갱 안 오냐고! 니가 안 와서 죽었잖아!"

"아, 갱 좀 작작 부르십시오. 솔킬이지 않습니까?!"

"……좀 따일 수도 있지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전체 스코어 11 대 3.

얼핏 봐도 불리한데 특히 탑 라인의 상황은 절망적이다.

어떻게든 라인전을 이겨야 하는 유통기한 챔피언인 다리우트가 주구장창 따이고 있다.

리픈의 칼날이 스치기만 해도 죽을 만큼 예리하게 벼러지는 중이다.

결국.

─더블 킬!

트리플 킬!

숙명의 한타에서 당연한 듯 쓸어담는다.

리픈이 칼춤을 출 때마다 추풍낙엽 떨어진다.

우수수 떨어진 낙엽을 쓸듯 지나간 길이 깨끗하게 쓸린다.

"하…… 진짜 시발 쟤네 뭔데 저렇게 잘해?"

"탑차이가 넘사벽인 것 같습니다."

"정글 차이잖아! 갱 똑바로 안 와?!"

"솔킬을 안 따이면 되지 않습니까? 저희만 있는 것도 아닌데 억지 좀 그만 부리십시오!"

"……미안하니까 화내지 마."

전장에서는 상관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는 것이 군인의 상식이다.

하지만 정말로 급박한 상황.

때로는 위계질서를 무시해야 할 때도 있다.

물론 지금의 상황과는 전혀 상관 없는 이야기다.

"팬티 브라자라 방심하고 있었지. 이렇게 잘할 줄 누가 알았겠냐?"

"그러게나 말입니다. 예선전 첫 경기부터 탈락할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우리 바로 짐 싸야 하냐…?"

"축제 끝날 때까지 쓰레기 줍고 간다고 들었습니다."

"시발…… 어디 짱 박혀 있을데 없으려나."

"아, 똑바로 좀 하십시오. 선임이고 나발이고 보고하는 수가 있습니다."

"그러지 마……."

이렇듯 먹혀버리는 경우도 군대에서는 흔히 있다.

아무튼 현재 예선전이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

전국 각지 총 40여개의 사단과 여단.

어떻게 보면 부대간의 대항전 구도가 이루어졌다.

일명 팬티 브라자.

언뜻 보기에는 만만해 보이는 부대 마크를 가진 사단이 특공 부대를 꺾으며 크게 선전 중이다.

"졌다……. 팬티 브라자를 도저히 당해낼 수가 없다."

"쓰레기는 오상병님이 다 주으십시오. 전 할 만큼 했습니다."

"연대책임 몰라? 연대책임?! 우리가 비록 한날 한시에 태어나진 않았지만 쓰레기는 같이 줍고 가야지……."

"아, 모르겠습니다. 진짜 근데 잘하기는 하는 것 같습니다."

그 외에도 몇몇 사단과 여단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주목 받는 팀은 아무래도 제9보병사단.

로드 오브 로드의 열성 유저라면 모를 수가 없는 네임드가 눈에 띈다.

사샤샤샥-!

순식간에 네 명의 적이 썰려 나간다.

그 한 방, 한 방의 데미지는 적다.

AP가 아닌 AD캐스터.

그가 입대를 한지 얼마 안 있어 리메이크가 되었다.

"와, 마이 장인 솜씨 어디 안 갔네."

"롤챔스에서 미드 마이 보고 반한 게 엊그제 같은데."

그럼에도 무차별한 학살을 자행한다.

님들 콩샐 미드 마이 못 봄?

롤챔스 최초로 미드 AP마이를 선보이며 솔로랭크를 마이충으로 들끓게 만든 장본인이다.

마이라는 챔피언이 리메이크가 되었음에도 그의 실력은 어디 가지 않았다.

마이충의 아버지답게 게임을 가볍게 캐리한다.

킬을 잔뜩 먹은 마이의 칼날에 사샤샥 썰린다.

─더블 킬!

트리플 킬!

쿼드라 킬!

듣도 보도 못한 미친 스피드로 달려들면 상대 챔프는 어어? 소리만 연발하다가 순식간에 써컹써컹!

한 번 킬리셋을 하는 순간 멈출 수 없는 살인 전차다.

압도적인 실력 격차까지 더해지자 일방적이다.

"그냥 우승팀 정해진 거 아니야?"

"……실화냐? 인간적으로 너무 사기잖아!"

"롤챔스에 나와야 할 프로게이머가 왜 군챔스에 나오고 있어……."

형평성을 가뿐하게 깔아뭉갠다.

병사들 사이에서 불만이 터져나올 만도 하다.

하지만 그런 사기적인 실력의 소유자.

48만이란 숫자는 불가능도 가능케 만든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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