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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챔스 -->
병장 정기 8박 9일로 1차 말출.
그리고 포상으로 2차 말출을 나간다.
돌아와서 대기 기간 동안 꼬장 좀 부리다가 전역을 하는 게 본래의 내 말출 계획이었다.
그 완벽한 계획이 행보관의 꼬장으로 인해 꼬이게 됐다.
오후 5시 03분.
자대에 돌아와 당직 사령에게 복귀 신고를 끝낸 상태다.
당직 사관에 대한 신고는 보다 가볍게 마쳤다.
금일 당직 사관인 2소대 부소대장과는 친하다.
절차를 마치고 행정반에서 총기를 수령 하기 직전.
"오~ 최성후이!"
"……병장 최성훈."
때마침 들어온 행정보급관이 반갑게 맞이해주신다.
하지만 이쪽은 전혀 반갑지가 않다.
최대한 힘아리가 없는 목소리로 운을 띄운다.
내 기분이 썩 좋지 않다는 것을 말투로 어필한다.
"쪼까 일찍 불렀다고 삐진 거 아니제?"
"암다~."
"뭐라꼬?"
"아닙니다."
행보관이 보라며 내준 대회 안내 서류를 훑어본다.
대략적인 내용은 이미 듣고 왔다.
굳이 살펴볼 이유는 없지만 모르는 척하며 말한다.
"저 말출 중인데 이런 거 때문에 부르는 건 좀 그렇지 않습니까? 솔직히."
내 남은 군생활, 행보관에게 대들 수 있는 얼마 안되는 기회다.
그리고 겸사겸사 원하는 것을 얻는다.
생각하자 눈앞에 반짝 떠올랐다
[패시브 스킬 『연봉 협상 -기초편-』 의 효과가 발휘됩니다.]
'이딴 것도 연봉 협상이야……?'
내 프로게이머 인생, 처음 있는 연봉 협상이 행정보급관이라니.
그것 참 경사스러운 기념 일이지만 기뻐하고 싶진 않다.
눈 앞에서 행보관이 썩소를 날리고 있다.
"다쳐가꼬 하는 거또 없는 문디가 겜 대회는 참가해야 하지 않켔나?"
"아니, 행보관님! 환자한테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됩니다. 그러니까 이등병들이 눈치 보여 가지고 아프다고 말도 못하고 선진 병영이 이루어지지 않는 거 아닙니까?"
"마! 그 이등병이 닐 팔아무따 아이가?"
"네……?"
행정병인 만식이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설명해준다.
행보관이 중대 정신교육 시간에 물어봤다고 한다.
우리 중대에서 누가 제일 게임 잘하냐?
'이 교활한 늙은이 같으니.'
일병 이상 애들은 눈치가 있어서 안 말했을 것이다.
혹은 무서워서라도 안 말했겠지.
순진무구한 이등병들을 악랄하게 이용한 장본인이다.
"어디서 이등병 괴로피따 소리 나오면 알제? 전역하기 싫으면 마 함 그래 봐라."
"저 살면서 후임을 갈궈본 적이 없습니다."
"입에 침이나 바르꼬. 행보관이 모를 것 같나?"
"……."
갈군 게 아니라 교육이다.
행보관님은 그런 것조차 마음에 안 들어하신다.
참 풀고 싶은 오해지만 지금 당장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다.
"제가 군생활 진짜 열심히 한 거 아시지 않습니까?"
"우리 최성후이 행보관이 다 알제."
"근데 말출인데 조기 복귀 시키시고~, 부대에 인재가 부족한 건 저도 알지만…… 솔직히 조금 서운하려 합니다."
"마, 군생활이 원래 그리자 안캈나? 좀만 더 고싱할 수 있제?"
발음도 불분명하고 교활하신 분이지만 본성이 악하신 분은 아니다.
애들 부려 먹은 만큼 챙겨주는 것도 잘하신다.
그 부분을 믿고 감성적인 어필을 한 결과.
"행보관이 최성후이 전역날까지 편하게, 하고픈 거 다 하게 해주께 걱정 말그라."
"제가 손목이 아직 완전히 안 나았습니다. 게임 대회 정도는 상관없지만 일과가 약간……."
"다~ 빼주면 되는 거 아이가?"
"그리고 부대를 위해 조기 복귀를 선택한 말년 병장의 비애…… 전역 대기를 최대한 줄여주시면 조금은 아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 혀 다~. 하고 싶은 거 다 혀~."
지금 행보관의 말 유야무야 믿으면 안된다.
며칠 지나면 망각 주기 와서 흐지부지해진다.
증인까지 세워서 확실하게 못을 박아야 한다.
"만식아, 들었지? 내 말출 스케줄 타이트하게 조정해줘라."
"알겠습니다~."
우리 중대는 전역 대기 기간이 최소 1주일이다.
내 선임 군번들이 전역 대기일로 장난질을 한 여파다.
부대 내 전투력 유지가 안된다면서 행보관이 전역 대기일을 통제했다.
'까놓고 말해 그냥 꼬장이지.'
하지만 아무리 악법이라도 군인인 이상 따르는 수밖에 없다.
상관이 까라면 까야지.
할 말이 없는 것이다.
할 말이 있게 만들어 주셨다.
대한민국 육군, 기간병들에게 가장 영향력 있으신 분이 누구신가?
중대장?
권한이 센 건 맞지만 어차피 행보관님 손바닥 위다.
대대 이상은 몰라도 중대에서는 짬 먹은 부사관이 가장 실세다.
"그럼 내일부터 4박 5일, 빡세게 고생하고 오겠습니다! 행보관님 부디 만수무강 하십시오."
연봉 협상 기초편의 효과가 발휘된 덕일까.
아니면 행보관님도 미안한 마음이 일말 있었던 걸까.
원하는 보상은 스무스하게 받을 수 있었다.
이 이상 받으려 하다가는 역효과.
적절한 타이밍에 좋은 쇼부를 봤다고 생각했지만.
"우승할 수 있제?
"잘 못 들었습니다?"
"우승할 수 인냐고. 마,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것도 있어야 하지 안캈나?"
"……."
적당한 말년의 여흥이 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무언가 필사적이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
행보관의 표정이 단 한 마디의 대꾸도 용납하지 않았다.
* * *
"형, 저 마음이 착잡~합니다."
"소대장님이라고 불러."
"형이라고 부르라면서요."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지……"
말출을 나갈 적 포옹까지 했었던 소대장님.
1주일 만에 다시 어색한 재회를 하게 됐다.
부대를 복귀한 다음날, 현재 레토나를 타고 이동 중이다.
소대장님은 이준형 하사와 앞자리에 타고 있다.
시선이 교차하지 않은 탓에 조금은 덜 어색하다.
하지만 도착하고 나면 4박 5일 지겹게 마주해야 한다.
"이렇게 된 거 유종의 미를 거두자. 너 롤이라면 자신 있다며?"
"있기야 한데…… 부담감이 조금 지나치긴 합니다."
"그렇긴 하지~."
어째서 행보관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을까?
말출 중인 나를 복귀시키는 선택을 했을까?
어긋나있던 퍼즐이 끼어 맞춰졌다는 느낌이다.
군챔스 우승 부상이 무려 50인치 TV!
평소 행정반TV에 불만이 많던 행보관님이다.
이번 기회에 하나 뽑아오려고 작정한 듯싶다.
'진짜 교활한 늙은이야 교활한 늙은이.'
군용 차량 레토나를 타고 무려 3시간을 이동해 도착했다.
충청남도 계룡시, 이곳에 위치한 계룡대라는 군부대.
후방에 위치한 부대답게 시설이 상당히 괜찮다.
민간인의 시선을 많이 의식한 듯싶다.
'나도 군생활을 이런 데서 했어야 했는데!'
전방으로 차출된 이상 꿈도 꿀 수 없다.
말년까지 와서 한탄을 하기에도 늦었다.
이미 이곳은 축제가 진행 중인지 민간인들이 한창 돌아다닌다.
확실히 대회가 열리기는 하나 보다.
예정을 듣기로 예선전을 미리 하고 마지막 날에 본선 경기를 치른다고 한다.
우리 말고도 전국 각지의 사단과 여단들에서 대표팀이 올라온다고 들었다.
'그리고 우리 30`사단에서도.'
오늘 현지에서 팀원들을 만날 예정이다.
과연 쓸 만한 녀석들이 있기는 할지.
군대가 으레 그렇듯 일처리를 대충한다.
사실상 복불복에 지나지 않는다.
우승할 욕심이 있기에 걱정이 된다.
그도 그럴게 내 프로게이머 인생 첫 번째 정식 대회다.
동아리 대항전은 어디까지나 학생들간의 이벤트.
이전에도 몇몇 대회에 참가는 해봤으나 그냥저냥이다.
하지만 군챔스는 이래 봬도 상당한 스폰서가 붙어있다.
〈육군참모총장배 로드 오브 로드 E-스포츠 리그〉
'스바라시하구만…….'
무려 별 네 개 짜리 4성 장군님이 스폰서로 붙어 계시다!
그런 으리으리한 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계룡대 내부에 있는 PC방 앞.
오늘 이곳에서 예선전 경기가 치러질 예정이라고 한다.
얼핏 둘러봤지만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후방 부대 답게 별의별 곳이 다 있다.
'전방에도 있기는 하지.'
이름만 PC방인 쌍팔년도 윈도우XP들이!
물론 이곳과는 달리 군부대 내부에 있는 시설이다.
현재 이 PC방은 군부대 외곽에 위치한 명실상부 민간 PC방이다.
계룡대는 군시설과 민간 시설이 함께 공존해 있다.
군시설은 이보다 더 안쪽에 있다고 한다.
오늘 이곳에서 살아 남아야만 된다.
"혹시 지면…… 바로 돌아갑니까?"
"그렇지는 않고 쓰레기 줍는다고 들었어."
패배자는 봉사를 빙자한 쓰레기 청소 작업으로 차출.
잘못하면 말년에 쓰레기 한 1만 개 주워야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롤은 결국 팀 게임.
혼자서는 상당히 애달파진다.
'부디 굴릴 만한 녀석이 와야 할 텐데……. 어?'
솔직하게 큰 기대를 안 했다.
팀원들은 보나 마나 지지리 궁상.
혼자 캐리 못하면 지게 만드는 이상한 애들이나 붙여주겠지.
그런데 익숙한 뒤통수가 눈앞에 아른거린다.
내 첫 번째 제자, 쑥과 마늘로 사람을 만든 녀석이었다.
* * *
2013 지상군 페스티벌 육군참모총장배 E-스포츠 로드 오브 로드 토너먼트 리그.
한 마디로 줄이면 군챔스다.
군인들의 축제라고 하면 왠지 가벼워 보이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대한민국 현역 육군의 수가 무려 48만 명이다.
전역자나 예비군을 제외하고 현역만 말이다.
48만 명 중에 인재가 없는 것이 더 힘들다.
각 사단과 여단을 대표하는 팀들이 만들어진다.
평균 5천여 명에 달하는 여단.
평균 1만 명을 상회하는 사단.
그 수많은 현역병 사이에서 에이스만 골라 뽑혔다.
"아저씨 이등병이에요?"
"이병 김상정! 예, 그렇습니다!"
"아, 귀엽다. 나도 옛날에 이랬는데."
제9보병사단의 에이스들이 서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이렇듯 현지에서 조우해 즉석으로 팀을 꾸린다.
계룡대의 한 PC방 앞은 군인들로 인산인해다.
"부대에서나 계급 따지지, 밖에서 만나면 다 아저씨에요. 편하게 말 놓으셔도 돼요."
"그렇습니까?"
"원래 이등병 때는 긴장하게 돼있어~ 그런데 다들 티어 어디세요? 전 다이아요."
그렇게 북적스러운 와중이지만 할 것은 해야 한다.
인사와 함께 간단한 자기 소개.
가장 먼저 확인하게 되는 것은 아무래도 계급이다.
다른 부대 사람이라도 이등병이면 얕잡혀 보인다.
병장 계급을 달고 있는 한 병사가 우쭐거린다.
일반인들 사이에서 다이아면 분명히 높지만.
"나도 다이아였어요. 지금은 플딱이지만."
"저는 다이아5."
"에이~ 다이아3부터가 진짜 다이아죠."
군대 만큼 인재풀 다양하게 있는 집단이 또 없다.
1만 여명이 넘는 제9보병사단에서 고르고 고른 에이스들이다.
최소로 잡아도 다이아 정도는 돼야 뽑힐 수 있다.
그렇게 계급 다음으로 한 차례 티어 자랑이 이어졌다.
롤 대회에 나오게 된 만큼 따질 것도 없이 당연하다.
한 명을 제외하곤 전부 소개를 마쳤다.
"이등병 아저씨는 티어 어디였어요?"
"그러게, 아저씨도 함 말해주세요!"
"챌린저였습니다!"
"네?"
"하하, 이 아저씨 농담도 할 줄 아시네."
"적응 개빠르시다. 벌써 먹혔어~."
당연히 농담일 줄 알았다.
챌린저가 뉘집 개이름도 아니고.
애초에 챌린저면 프로게이머를 해야지, 왜 군대에 오고 앉아있어?
그런 사람도 있었다.
"아이디가 혹시 어떻게 되세요?"
"이병 김상정! 티어 챌린저, 아이디 콩샐러드 이상입니다."
"……형님으로 모셔도 되죠?"
AP마이의 아버지로 알려졌으며 롤챔스에도 숱하게 나온 프로게이머.
콩샐러드를 비롯해 독특한 귀인들이 산재해 있다.
48만 명쯤 되면 온갖 사람들이 다 오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