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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전설의 재림-14화 (14/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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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야의 목덜미를 잡아 PC방에 끌고 왔다.

그런데 어지간히 칭얼댔다.

배고프다고~, 힘이 안 난다고~.

'마음 같아서는 쑥이랑 마늘을 먹이고 싶었는데.'

안타깝게도 PC방은 쑥과 마늘을 팔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핫바랑 코코아를 사서 맥였다.

똥차도 기름은 먹여야 굴러간다.

"선배는 안 므거요?"

"오구오구 브론즈 목구멍에 잘도 넘어가나 보네."

"저, 저 음료수 까먹어서!"

PC방 핫바를 오물오물 씹고 있던 유리야가 후다닥 도망간다.

스마트하게 갈궜어야 했는데 나도 모르게 살기를 띄고 말았다.

아무튼 유리야의 배때지에 고깃덩이가 들어갔다.

더 이상 배고프다는 핑계도 못 댄다.

"꿀떡꿀떡 잘도 먹었으니 됐지?"

"좀 부족한데……."

"원래 부족하게 먹는 게 맞아. 공부할 때도 배 가득 안 채워야 집중 잘되잖아 그지?"

"저는 배부르게 먹는데요? 먹으면서 하는데요?"

너의 그 배부른 꽃돼지식 공부법에는 전혀 관심 없다.

일반론을 내세우면 알아서 이해할 것이지.

방긋 웃으며 불성실한 학생의 태도를 질타한다.

"뒤지기 싫으면 일단 앉아."

"넵!"

"해."

"네."

그렇게 시작했다.

유리야는 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어제도 짚어봤지만, 오늘은 고민을 했다.

내가 학생에 대해 너무 모르는 것 같다.

1대1 전담 마크가 필요하다.

서로에 대해 더욱 알아갈 필요성이 있다.

'내 포인트를 위해서라도.'

만약 성과가 적었으면 나도 이렇게 열심히 안 한다.

그런데 성과가 무척 만족스럽다.

꼬박꼬박 300포인트씩 입금된다.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일자리다.

그렇기에 받아들일 수 있다.

약간의 타협까지는.

"근데 선배……."

"왜."

"배우는 건 좋은데…… 솔직히 너무 고되고 이해하기 힘들어요."

"그래? 그럴 수도 있지. 내가 그럼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이마트식 비유로 가르쳐줄게."

곰곰이 고민해본 결과, 한 가지 알았다.

내가 유리야를 너무 만만히 봤나 보다.

단순히 가르쳐주는 것으로는 안된다.

'얘는 국에다가 밥을 말아서 뭉갠 다음 호호 불어서 떠먹여줘야 돼.'

그 정도 각오는 하고 임해야 한다.

이곳은 전장이다.

첫 번째 게임이 시작됐다.

'아니, 씹어주기까지 해야 하나?'

스마일, 스마일.

아무리 이해 불가능한 상황이 와도 웃어야 한다.

미소야 말로 서비스의 극의가 아닌가?

"왜 아이템을 사는데 1분씩 걸려?"

"뭐 사야 되나 고민하고 있었어요."

"무슨 이마트 왔어? 가격표랑 유통기한 확인하게?"

무슨 아이템을 살지 보통 생각하고 가지 않나?

1초만에 사서 바로 라인에 복귀해야지.

이래서 과소비가 이루어지는 걸지도 모른다.

미리미리 자기가 살 품목을 체크하는 건 필수다.

귀환을 타는 시점부터 계산을 해야 한다.

라고 말하면 못 알아들을 것 같다.

"세일 품목 경쟁할 때처럼 후딱후딱 사라고. 다른 사람이 집어가기 전에."

"오, 무슨 느낌인지 알겠어요!"

한 마디로 눈높이 교육이 필요하다.

학생의 입장에서 보살펴준다.

그런 느낌으로 하루가 지나갔다.

* * *

유리야를 가르치는 보람.

진작에 집어 던진지 오래다.

우리 아이가 보채지 않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물론 소기의 목적 자체는 달성했다.

[현재 보유하고 있는 포인트 : 6227]

'……진짜 노다지긴 하다.'

혼자 솔로랭크를 돌렸으면 3천 판은 했어야 할 어치다.

그런데 유리야를 갈구기만 해도 쭉쭉 들어온다.

심지어 시간이 지날수록 더 들어온다.

'내 코치법이 진가를 발휘한 덕분이지.'

한 가지 중대한 문제점을 깨달았다.

애초에 얘는 선택을 잘못했다.

이따금 있지 않은가?

나는 직업 적성이 안 맞는 것 같다.

다른 직업을 했으면 더 잘했을 텐데.

롤에도 비슷한 케이스의 문제가 존재한다.

'난 다 잘해서 별로 공감은 안 가는 문제지만.'

아무튼 서포터로 전향시키니 조금은 하더라.

여자들은 서포터를 더 잘한다.

그런 선입견 이전에 얘는 서포터를 해야 그나마 사람이다.

정말로 정답이긴 했던 걸까?

획득하는 포인트의 양이 달라졌다.

2~300점 겨우 얻던 게 400포인트 이상으로.

덕분에 6천 포인트가 넘는 엄청난 양을 쌓을 수 있었다.

이 어마어마한 포인트로 무엇을 하면 좋을지.

정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정말 쓸데없이 현실적이다.

[현재 손목의 상태 51/100]

[숫자가 0에 가까울수록 악화, 100에 가까울수록 회복이 촉진됩니다.]

숫자 하나당 100포인트.

총 4900포인트를 투자해야 했다.

그 많았던 포인트가 한순간에 사라지니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란 느낌도 들지만.

'조금 좋아진 듯도 한데?'

손목의 스냅에 살짝 윤활유가 발라진 기분이다.

솔직한 감상으로 엄청난 차이는 아니다.

설마 플라시보 효과는 아니겠지.

'하긴 뭐 첫술이니까.'

너무 많은 걸 바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아직 포인트가 남아있다.

적당한 분산 투자를 목표로 한다.

[구입 가능한 스킬 목록이 표시됩니다.]

-영어 회화 초급

-3분이면 따라하는 중국어 스피킹

-자신감이 중요한 실전 영어!

.

.

.

이전에도 봤었던 지나치게 실용적인 스킬들이 눈에 띈다.

곰곰이 생각을 해봤는데 쓸모는 있다.

교양 수업 학점 따는데 요긴할 것 같다.

'……일본어 수업이나 중국어 수업이나 그런 거.'

영어는 웬만큼 하니 딱히 필요는 없다.

물론 포인트를 엄청 투자하면 원어민 수준도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딴 걸 하기엔 포인트가 아까워서 문제지.

'내 진로가 프로게이머지, 프로 영어 강사는 아니잖아?'

만약 내가 일반적으로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한다.

외국어에 능통하게 된다면 어마어마한 어드밴티지다.

외국어 강사는 물론이고 그냥 취직 폭도 넓어진다.

외국 자본 회사에 들어가서 글로벌적으로 놀 수도 있다.

그 외에도 활용해 먹을 구석이 있기는 할 거다.

아주 참신한 비효율적인 투자 방법이다.

'저런 스킬을 대체 왜 준 건지 머리 뚜껑을 열어보고 싶다.'

딱히 기대도 안 하는 무능한 신이니 됐다.

당장 쓸 일이 있을 만한 스킬만 두어개 산다.

이전에 한 번 사용했던 신체 이상 완벽 회복(5초).

고작 5초에 불과하지만 제대로만 쓰면 요긴하다.

그리고 다른 하나.

-원숭이도 할 수 있는 수화 교실

-연봉 협상 -기초편-

-신체 이상 완벽 회복(5초)

'연봉 협상이라…….'

당장은 와닿지가 않는 이야기다.

그러나 언젠가 분명 남 이야기가 아니게 된다.

그도 그럴게 프로게이머, 직장인들처럼 정해진 월급을 받지 않는다.

'협상을 어떻게 하냐에 따라 더 받을 수도, 덜 받을 수도 있겠지.'

혹시 모르니 배워둔다는 느낌이다.

300포인트.

마침 포인트도 딱 그만큼 남는다.

[현재 보유하고 있는 포인트 : 27]

그토록 많던 포인트가 전부 증발했다.

다 쓰고 나니 피로가 밀려온다.

이번 말출 동안 참 별의별 일이 많았다.

'수명이 한 10년쯤 줄어든 기분이야.'

생각지도 못한 기연.

포기했던 꿈을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그거는 딱히 피로할 건덕지가 없는데 문제는 과정이다.

포인트를 얻는 과정에서 나 자신을 너무 학대해버렸다.

특히 그 돌대가리를 가르치는 게 워낙 고됐다.

내일 있을 출타 복귀.

남은 하루 만큼은 나 자신을 위해 쓰겠다.

-선배!

-선배 뭐해요? 저 한가해요. 오늘 토요일이에요!

-자요?

-어, 방금 읽었다. 빨리 답장해요!

-왜 씹어요ㅠ.ㅠ

.

.

.

문자가 한 17개쯤 와있더라.

17개 전부 봤지만 전부 깨끗하게 씹었다.

안 보고 싶었는데 양이 너무 많아서 무서웠다.

'내가 니 브론즈 승급전을 왜 도와줘!'

이틀이나 가르쳐줬으면 알아서 실버를 찍어야지!

전화가 왔길래 마지막으로 받았다.

실버, 사람 되기 전에 연락하지 마라.

'혹시 모르니 차단도 박자.'

〈유리야님을 정말로 차단하시겠습니까? 취소/확인〉

망설임 없이 확인 버튼을 가볍게 연타한다.

이로써 나의 즐거운 연휴는 아무도 방해하지 못한다.

분명 그랬어야 했다.

〈통신보안, 상병 조만식입니다. 형, 통화 돼요?〉

"어, 통신보안. 만식이냐?"

부대에서 갑자기 전화가 왔다.

딱히 드문 일은 아니고 종종 있는 일이다.

별일 있어서 하는 게 심심하면 전화해서 노가리 깐다.

만식이는 우리 중대 인사계 행정병이다.

인사계들이 으레 그렇듯 사교력이 뛰어나다.

아직 상병이 꺾이지 않았음에도 특별히 말을 놓게 해줬다.

'그래야 피차 편하기도 하고.'

행정병은 중대의 실세 중의 실세다.

친하게 지내서 절대 나쁠 게 없다.

이를 테면 실드를 쳐준다던가.

믿던 도끼에 발등 찍혔다.

〈행보관님이 내일 5시 전까지 무조건 복귀 하라는데요? 자기 6시 칼퇴라고.〉

"아, 그래? 또 무슨 꼬장을 부리려고 진짜……."

일반적인 출타 복귀 시간은 위병소 통과 기준 오후 8시다.

하지만 그보다 일찍 오면 마일리지를 준다.

8시간 모으면 휴가 1일 추가.

'일병, 상병 때는 4시 복귀 칼같이 지켰는데.'

4시 복귀 두 번 하면 다음번에 하루 붙여서 나갈 수 있다.

곧 있으면 전역인 나에게는 알 바가 아닌 일이다.

그러다 보니 병장들이 복귀 시간을 잘 안 지킨다.

술 먹고 취해 가지고 볼 빨개져서 돌아오거나.

9시가 넘어서 대대 간부들을 노심초사하게 만들거나.

병장들이 라도 사고를 자주 치니까 노파심에 하는 소리다.

"야, 나는 안 늦지. 걱정 붙들어 매라 그래."

전화를 끊으려던 찰나, 의아함을 느꼈다.

6시 칼퇴?

만식이가 면목이 없다는 듯 말을 잇는다.

〈행보관이…… 형한테 부탁할 게 있대요.〉

"……."

행정보급관의 부탁.

부탁이라 쓰고 협박이라 읽는다.

육군 장병들에게 있어 행보관이란 그런 존재다.

그런 존재긴 한데 너무 심한 거 아니야?

부대 위해 뼈빠지게 일했던 말년 병장한테?

복귀 시간을 굳이 당겨가면서 말을 해야 돼?

"아니, 대체 왜?! 북한군이 쳐들어온 것도 아닌데 말년 병장을 이렇게 대해도 돼?"

〈저는 그냥 전했을 뿐이에요 형…….〉

"이건 너무 꼬장이지! 내가 뭘 잘못했다고? 나 지금까지 사고친 적…… 별로 없어."

아예 없다고 말하기에는 양심이 살짝 찔린다.

하지만 나 정도면 충분히 A급이다.

간부들이랑도 얼마나 친한데.

물론 행보관은 워낙 괴팍해서 친해질 수 있는 정도가 명확하다.

그래도 내가 이런 취급 받을 사람은 절대 아니다.

그리고 이런 건 니가 사전에 컷을 해줘야지!

-형, 저도 칠 수 있는 실드 다 쳤어요. 다 걸고."

"그래, 만식이 믿지. 근데 어떻게 다시 안되냐…?"

구차한 건 알지만 조귀 복귀 진짜 극혐이다.

8시 간당간당하게 들어가는 게 휴가의 꿀맛이다.

그런데 3시간이나 일찍 복귀를 하라니!

무슨 실수를 한 것도 아니고 행보관 꼬장이다.

이런 식으로 나오면 나도 막 가는 수가 있다.

전역하자마자 국민신문고랑 병무청에 다 찌른다.

〈형 들으면 더 빡치실 수도 있는데…… 유격 때문이에요.〉

"그 영감 노망났어?! 나보고 말년에 유격을 가라고?"

내가 말년 계획을 상당히 잘 짠 편이다.

딱 보니까 10월 중순쯤 해서 유격하겠네.

전역일도 그쯤 되니 이때 말출 몰아서 가면 되겠다.

안심하고 있었는데 행보관이 꼬장을 핀다.

말출 따닥따닥 붙이면 유격 훈련 갈 수 있잖아?

갈 수는 있겠지, 근데 솔직히 그건 너무한 대우지!

"국가가 나한테 해준 게 뭐냐?"

〈없죠. 원래 좆같은 게 군대 아니겠습니까?〉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유분수지 말년에 유격을 가라니.

행보관 꼬장이 심한 편인 건 알았지만 이건 좀 아니다.

연락해준 만식이가 괜시리 원망스러워진다.

〈형, 제가 들어보니까 쇼부가 아예 안될 눈치는 아닌 것 같거든요? 아직 희망 있어요.〉

물론 만식이의 잘못은 없다.

그날 따라 행보관의 기분이 안 좋다?

지나가던 상병장 한 명이 험한 꼴을 당하는 건 일상이다.

그게 작업이면 개고생 하는 거고.

담배 관련이면 흡연자들 묵념이고.

말년 병장인 나까지 타겟이 되다니 예상치도 못한 일이다.

'하지만 아직 여지는 있어.'

만식이가 말한 쇼부와 희망을 믿는 게 아니다.

자대로 복귀하는 순간 주도권은 행보관에게 넘어간다.

말년에 훈련 끌려간 선임을 몇 명 봐왔기에 농담으로 치부할 수도 없다.

'이런 일로 쓰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지만…….'

어쩌면 선견지명이 싹튼 걸지도 모르겠다.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배워둔 스킬.

무능한 신의 가호를 시험해볼 좋은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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