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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전설의 재림-12화 (12/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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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리야를 갈구면 포인트가 올라! -->

떠올려 보면 이상하긴 했다.

엊그제 유리야와 빕스에 갔을 때.

디너의 샐러드 바만 해도 엄청 비쌀 텐데 스테이크까지 시켜주더라.

못 먹고 다닌다고 토로했던 게 그토록 심금을 울렸나 보다.

괜찮다고 했음에도 고마워서 그렇다며 선심을 팍팍 써왔다.

미안해서 커피는 내가 샀지만 이런 거 보통 거꾸로 아니야?

'물론 내가 혀 깨물고 죽는 한이 있어도 유리야에게 스테이크를 사줄 일은 없겠지만.'

돌이켜 생각해보자 의아한 구석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당연히 내가 유리야에 대해 다 알지는 않는다.

그래도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씀씀이가 헤프지 않았다.

"너 혹시 그렇고 그런 일 하는 건 아니지?"

본인에게 대답을 듣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얘가 좀 덜떨어지긴 해도 얼굴만은 괜찮다.

물론 그 얼굴을 내세워 무언가 할 애는 아니다.

원래 나쁜 짓도 머리가 좋아야 할 수 있는 법이다.

'심성 하나는 바른 아이잖아.'

모자란 구석이 있을 뿐 착한 아이다.

그런 아이일수록 속이기 쉬운 것도 사실이다.

누군가 잘못된 길로 꼬시면 넘어가고도 남는 녀석이다.

〈그렇고 그런 일이 뭐에요?〉

"……평생 몰라도 돼."

상상을 뛰어넘어서 잠깐 당황했다.

하지만 아직 걱정이 끝난 게 아니다.

이를 테면 다단계라거나.

어느 날 갑자기 외국에서 특허 받은 획기적인 발명품이라며 평범한 옥장판을 50만원에 팔 것 같아서 두렵다.

〈아무리 저라도 다단계에는 안 속아요!〉

"원래 다단계 속는 사람들이 다 자기는 안 속는다고 그래. 너가 지금 처한 상황을 솔직하게 토로해보렴."

〈저 진짜 그런 거 안 하는데요…….〉

나도 어디까지나 농담으로 끝내고 싶다.

그런데 이 녀석 묘하게 부유하다.

빕스에서 밥을 사면서도 여유 있는 표정, 특유의 때려주고 싶은 우쭐함이 보였다.

카페 가서도 카라멜 마끼아또 비싸니까 카페라떼 시켜서 시럽 듬뿍 타먹는 녀석이었다.

그런 녀석이 한두 푼도 아니고 인당 무려 5만원짜리 식사를 부담 없이 쏴재낄 리 있나.

무언가 숨기는 게 분명 있다는 소리다.

"5초 준다. 지금 말하면 용서해줄게. 근데 숨겼다가 걸리면 진짜 피도 눈물도 없다. 위협 아니란 것만 알아둬라."

〈지, 진짜 아무것도 없는데…….〉

"그래, 그렇게 니 인생 마지막 5초를 허무하게 낭비해. 후회는 니 몫이지. 복학하면 얼굴 매일 볼 텐데."

〈헉! 진짜루 별 일 아니에요오.〉

별 일 아니면 말을 쳐하세요오.

나도 니까짓 것 걱정하기 싫으니까.

그러면 그렇지 역시 숨기고 있는 게 있었다.

〈그냥 재미삼아 시작한 건데 어쩌다 잘돼 가지고…….〉

"사설이 길다. 요점만 말해."

〈그러니까 저를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저에게 후원을 해주셔서…….〉

'뭐, 후원?'

무슨 노래방이라도 다니는 거야?

아니면 설마 하는 원교?

친구가 소개해줬는데 돈 많은 아저씨들이랑 밥 먹고 같이 수다 떨고 하면 돈 듬뿍 준데요!

이딴 거에 속아 넘어갔을 가능성이 잠깐 떠올랐다.

〈저 그런 나쁜 짓 안 해요!〉

"그래, 돈 많은 아저씨들 취향도 고려해줘야지."

〈우쒸! 저 이래 봬도 인기 많거든요?〉

그래서 지명도 많이 들어오고 그런다?

아저씨들 비위 좀 맞춰주면 돈다발이 굴러 들어온다?

압박 심문에 의해 범인은 자신의 죄상을 낱낱이 실토해왔다.

〈인터넷 방송에서 시청자들이 후원해준 거에요!〉

"뭐? 니가 여캠을 한다고? 돌았냐?"

〈히익……. 여, 여캠 아니에요. 그냥 게임 방송이에요오…….〉

브론즈가 게임 방송을 한다고? 미쳤니? 돌았니?

말을 하려다 내뱉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재밌어졌다.

"그렇구나, 내가 오해를 했구나. 미안하다 리야야."

〈왜 그러세요 무섭게…….〉

"왜 그러긴. 친애하는 후배가 방송을 한다는데 당연히 응원해줘야지."

〈저, 정말요?〉

그리고 한 가지 깨닫게 되었다.

유리야와 게임을 했을 때 어째서 포인트가 팍팍 오른 건지.

[업은 당신의 행적에 의해 쌓입니다. 게임 이외에도 여러가지로 방식으로 쌓을 수 있습니다.]

대회에 출전한다.

영향력을 미친다.

이름을 알린다.

기타 등등.

무능한 신은 분명 그렇게 말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게임 이외에도, 그리고 영향력.

나는 단순히 내가 유명해지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닌가 보다.

굳이 힘들여가며 빡세게 캐리할 필요가 없다는 소리다.

어떤 식으로든 영향력만 미치면 된다.

이를 테면 인지도가 있는 사람을 내 뜻대로 조종한다거나.

한 마디로 요약하면 더욱 간단해진다.

'유리야를 갈구면 포인트가 오른다는 거네?'

취사병이 조리기능사 따는 수준으로 쉬운 일이다.

내 주특기를 마음껏 발휘할 수 있다.

겸사겸사 스트레스 풀이까지.

"근데 방송을 한다고 하니 오빠가 하나 걱정이다."

〈걱정이요……?〉

"그래, 리야가 빡…… 아니, 조금 실수가 잦은 편이잖아. 못된 시청자들이 괴롭히지 않을까 해서."

〈헐, 맞아요. 못한다고 막 구박하고 그래요! 저도 못하고 싶어서 못하는 게 아닌데…….〉

어지간히 쌓인 게 많은 듯 징징대기 시작했다.

마음 같아서는 나도 동참하고 싶지만 일단 대의를 위해 참는다.

한 가지 궁금했던 부분도 깨닫게 되었다.

'못하고 싶어서 못하는 게 아니었구나.'

어떻게 하면 그렇게 못할 수가 있나.

사람 인내심 테스트 하는 방법도 가지가지다.

본인 피셜로는 손이 안 따라준다고 이야기한다.

'아무튼 니 잘못 맞네.'

딱따구리 마냥 귀 따가운 칭얼거림도 슬슬 한계를 자극한다.

한 번 푸념 들어주니 1절, 2절, 뇌절까지 하고 있다.

적어도 내 생각이 들어맞은 셈이니 됐다.

"오빠가 어제는 전역 문제 때문에 고민도 있고 기분이 너무 다운돼서 먼저 집에 갔거든?"

〈네, 저도 알죠…….〉

"집에서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까 유리야를 체계적으로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 무럭무럭 드네?"

보내온 카톡을 대량으로 읽씹했음에도 뻔뻔하게 거짓말을 내지르고 있다.

원래 거짓말이라는 건 타이밍이다.

중요한 건 상대가 믿고 안 믿고다.

그리고 얘는 바보라 속이기 쉽다.

〈저 감동했어요…….〉

"이런 당연한 걸 가지고 뭘. 그럼 도와줄 테니 방송 주소 좀 알려줄래?"

〈헉!〉

육성으로 헉이라 내뱉는 인간 처음 봤다.

갈굴 때도 느꼈지만 리액션 하나는 일류의 반열에 드는 녀석이다.

〈그, 그…… 아는 사람이 보면 창피해요. 비밀로 해주시면 안돼요?〉

"나만 볼게. 오빠도 안돼?"

〈선배…… 나중에 놀리실 거 같아요.〉

'이 녀석 은근히 날카로워?'

아무래도 방송 주소까지는 포기해야 할 듯싶다.

지나치게 몰아붙이면 먹잇감이 도망칠 수 있다.

〈진짜진짜 절대로 찾아보시면 안돼요?〉

"그래. 절~대로 찾아보지 않을 테니 마음 푹 놓으렴."

'절대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는 게 사람 심리라는 걸 모르나 보구나.'

사실 마음만 먹으면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인터넷 방송 사이트 많아봤자 다섯 개가 안된다.

각 사이트 돌아다니면서 한 번씩만 둘러봐도 금세 찾을 것이다.

하지만 나도 쟤 면상 굳이 찾아보기 싫다.

내가 그렇게 한가한 사람도 아니다.

당장의 목표만 이룰 수 있으면 족하다.

* * *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내친 김에 만나자고 했다.

유리야의 사정 따위 알 바냐.

그리고 얘 원래 부르면 쫄래쫄래 잘 기어나온다.

〈어디서 만날 거에요?〉

"지난 번에 만났던 PC방? 아니면 더 가까운 곳?"

〈저희 집은…… 어떠세요? 동생이 쓰는 컴퓨터 한 대 더 있어요.〉

1대1로 가르치는 거라면 집이 여러모로 편할 것이다.

그도 그럴게 PC방에서는 큰소리로 떠드는 것도 눈치 보이고, 누가 이걸 데이트로 착각이라도 하는 순간 내 혈압도 오른다.

하지만 집에서 한다면 최소한 그럴 일은 사라지겠지.

"부모님도 계실 텐데 그건 좀 그렇잖아."

〈두 분 다 늦게 들어오셔서 괜찮아요. 동생도 학원 늦게 끝나요.〉

'아, 그래?'

그렇다면 더더욱 각하다.

"내가 너랑 빈 집에 단둘이 있을 자신이 없다."

〈아, 그, 그렇네요. 그럼 PC방에서…… 뵐게요.〉

저번에는 그렇게나 말귀를 못 알아 듣더니 이번에는 한 번에 감이 온 모양이다.

만약 내가 유리야랑 밀실에 갇혀있다.

살인 사건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

아무리 이성적으로 자제하려고 해도 유리야의 인내심 테스트는 도를 넘는다.

'포인트를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나 자신을 너무 학대하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지난번에도 빡쳐서 뒤통수 치고 탈주할 뻔한 걸 가까스로 참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짐을 하고 왔다.

일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원래 접객업 알바 하다 보면 진상 고객들 많이 오잖아. 그중에서도 특히 개진상이라고 생각하면 편하지.'

철저하게 사무적인 태도로 임해야겠다.

포인트를 쉽고, 편하게 쌓을 수 있는 방법이다.

정신적인 스트레스 정도는 단념하는 것이 옳다.

이윽고 기다리던 암 덩어리가 도착했다.

"죄송해요. 조금 늦었죠?"

"괜찮아. 하루이틀 일도 아니고."

약속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무려 4분 38초나 늦었다.

이미 업무 모드에 들어갔기에 하나도 화나지 않는다.

정말로 하나도.

"날씨가 갑자기 건조해져서 화장이 잘 안 먹었어요."

"그렇구나. 여자들은 남자들이 잘 모르는 사정이 있는 거지?"

화장을 대체 어떻게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알 것 같다.

굉장히 여자여자하게 입고 나왔다.

인터넷 사이트 보면 흔히 있는 여친룩.

지금 이 자리를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나왔는지 모를 녀석이다.

'애초에 생각이라는 걸 안 하는 녀석이니까.'

벌써부터 나사가 살짝 풀릴 뻔했다.

오늘 내내 긴장을 풀면 안될 듯하다.

바로 목적지인 PC방으로 발을 돌리려던 찰나.

"저…… 선배."

"왜?"

"저 오늘 어때요……?"

"딱 봐도 새 렌즈를 사서 눈이 연갈색이 되었고 아이라인이랑 화장법이 바뀌어서 눈이 확 트여 보이네. 틴트 색도 바꿨니? 정말 예쁘구나."

"……???"

"자, 시간 낭비하지 말고 어서 가자."

이상한 헛소리에 낭비할 시간은 눈곱 만큼도 없다.

너에게는 매일매일 별 다를 게 없는 나날이겠지만, 나에게는 귀중하디 귀중한 말년 출타의 하루다.

얼타는 유리야를 목덜미를 잡고 빌딩 3층에 있는 PC방, 아니 PC카페에 왔다.

일반 PC방에 비해 요금이 두 배 가까이 비싸다.

강력하게 요구해온지라 어쩔 수 없었다.

아쉬운 건 내 쪽이라 거부하지 못했다.

'본인이 낸다고 하니 허락한 거지만.'

절대로 얻어먹는 게 아니라 과외 비용 같은 거다.

공부에 과외가 있듯,게임에도 비슷한 게 있다.

농담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한다.

전문 사이트들도 제법 성화다.

'나도 옛날에 몇 명 굴리긴 했었는데.'

그 과거의 기억을 바탕으로 다시 한 번 게임계의 교편을 잡았다.

가르치는 학생이 교편으로 내려치고 싶을 만큼 한숨이 나오지만 원래 인생사 고진감래다.

"내가 너처럼 모자란 학생을 가르치는 건 처음이지만 그만큼 배울 게 많다는 의미기도 하니 가르치는 보람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부디 가르치는 대로 잘 따라오길 바란다."

"네, 저 선배가 실망하지 않도록 열심히 할게요!"

주먹을 불끈 쥐고 화이팅을 외친다.

의욕 만큼은 뒤지지 않는 녀석이다.

그런데 미안하지만 더 실망할 것도 없기 때문에 그런 서두는 안 붙여도 된다.

안 붙여도 된다고 생각했다.

─아군이 당했습니다!

만날 때마다 나를 놀래키는 재주가 있다.

정글을 잡고 봇을 세 번 따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는다.

변명도 잊지 않는다.

"죄송해요. 서포터가 와드를 안 깔아줘서……."

'유언은 그게 다니?'

엊그제의 나라면 그렇게 쏘아붙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의 나는 대단히 침착하다.

넓은 마음으로 보다듬어 줄 의향이 있다.

"그래? 실수할 수도 있지. 내가 정확히 15초 전에 적 정글이 봇라인 시팅한다고 말을 했지만 못 들었을 수도 있겠지."

"헐, 정말요? 죄송해요. 근데 시팅이 뭐에요?"

죄송하면 죄송할 짓을 하지 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심각했다.

'아하, 그렇구나! 시팅이란 단어 자체를 모르는구나~.'

시팅은 상대가 그쪽 라인을 노리고 있다는 말이다.

그래, 모를 수도 있지.

어쩌면 내가 처음부터 너무 많은 걸 바란 걸 수도 있겠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을 가르친다는 생각으로 천천히 원스탭, 투스탭 나아가야겠다.

이~쿠우!

우물로 간 유리야 대신 적들을 하나하나 족치면서 말이다.

다행스럽게도 유리야만 못하는 게 아니다.

적도 엄청나게 못한다.

그도 그럴게 브론즈니까.

'대항전 때처럼 개빡겜은 안 해도 돼서 다행이네.'

게임하다 가장 빡칠 때는 아군이 못할 때, 가 아니라 못하는 아군 때문에 질 때다.

최소 패배할 일은 웬만하면 없을 것이다.

암 덩어리 업고도 캐리하고도 남는다.

한 가지가 심히 걱정되긴 하지만.

'브론즈에서 게임하다 암 걸리면 보험 처리 되냐?'

========== 작품 후기 ==========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추천과 코멘트는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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