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 유리야를 갈구면 포인트가 올라! -->
믿을 수 없지만 정말로 약속을 지켰다.
유리야와 빕스를 오게 되었다.
"와, 진짜 이런데 얼마만에 오냐……."
입대하고 나서 거의 처음 와보는 것 같다.
인당 3만원에 달하는 고오급 뷔페.
감동의 쓰나미가 밀려 들어온다.
"휴가 나오면 맨날 놀러 가고 그러지 않아요?"
"그건 이등병, 일병 때나 그러지 이 자슥아."
정말 모르겠다는 듯 되묻는 유리야가 밉지가 않다.
이 은혜스러운 장소에 데려 와준 장본인이다.
그리고 이런 건 여자들은 모를 만하다.
'원래 짬 먹을수록 대우가 점점 박해져.'
군대에서 휴가 나오는 것도 처음 나왔을 때나 반긴다.
고생한다고 말해주는 것도 정말 처음 뿐이다.
나를 바라보는 가족들의 눈초리가 달라진다.
선임들에게도, 동기들에게도 물어봤지만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상병부터 또 나오냐는 소리 듣고, 상꺽부터는 용돈도 안 준다.
그렇게 궁핍하게 살다가 간만에 기름칠을 하게 됐다.
"휴가 나왔는데 용돈도 안 챙겨줘요?"
"그래, 내가 그렇게 구질구질하게 산다."
"헐, 슬퍼요. 많이 드세요."
니 접시에 있는 연어 초밥을 굳이 나한테 옮겨줄 필요는 없다.
먹고 싶으면 알아서 내가 퍼올 테니까.
그래도 마음 만큼은 고맙다.
'맞아. 얘가 심성 하나는 고운 애지.'
빡치는 행동만 골라 해서 문제다.
하지만 사람이라는 게 결국 진정성이다.
아무리 착한 척 하는 애도 본성이 꾸리꾸리하면 손절하게 된다.
내가 유리야 때문에 암 세포가 부글부글 끓어도 만나는 이유가 있다.
얘 만큼 순수하고 착한 애가 진짜로 드물다.
거짓말 같은 걸 할 만한 애가 아니다.
"선배."
"왜?"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
"두 개, 세 개 물어봐도 돼."
심지어 빕스도 사준 마당이다.
이렇게 이쁜 짓만 골라하면 얼마나 좋을까.
오늘 만큼은 웬만한 빡침은 이해해줄 요량이 있다.
"절대 이상한 질문이 아니고요. 그냥 순수하게 궁금한 건데요……. 선배는 이상형이 어떻게 돼요?"
"……."
대놓고 이상한 질문이고, 왜 궁금한 건지도 모르겠다.
깜빡이도 안 켜고 훅 들어오면 곤란하다.
하지만 딱히 어려워질 대답도 아니다.
"롤 잘하는 여자."
"헉! 얼마나요?"
"나보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이다.
그런 여자가 있다면 당장 사귀지.
프로게이머로 데뷔해서 미래가 탄탄대로일 텐데.
"너무…… 비현실적이지 않을까요?"
"원래 이상형은 비현실적인 거야."
"그, 그, 그 다이아 티어 정도는 어때요?"
"나한테는 다이아나 브론즈나 별 차이가 없어."
이것 또한 과장 하나 없는 진실이다.
물론 차이는 있겠지만 도찐개찐이다.
그리고 다이아 티어는 좋아할 수가 없다.
'인성 파탄자들 소굴이잖아.'
다이아 티어쯤 되면 롤에 인생을 절반쯤 걸은 애들이다.
근데 안 풀려서 마챌을 못 가니 항상 꼭지가 돌아있다.
전부 그런 건 아니겠지만 대체로 정상인이 드물다.
그런 세계에 있으면 정상인도 비정상인이 된다.
한 마디로 성격을 베린다는 소리다.
그런 여자를 만나고 싶진 않다.
"선배, 질문 더 해도 된다고 하셨죠?"
"그래, 그렇단다."
"저도 롤 잘해질 수 있을까요?"
세상에는 핵전쟁, 기아, 자연 파괴 온갖 문제가 있겠지만 이것 만큼은 대답을 하기가 힘들다.
아인슈타인도 포기할 만한 난제 중의 난제다.
나 뿐만 아니라 모두 그리 생각할 테다.
과연 브론즈5가 롤을 잘해질 수 있을까?
실버나 골드가 되는 건 또 모른다.
하지만 다이아 이상.
혹은 그 이상.
'당연히 안되지.'
그걸 말이라고 묻고 있냐.
유리야가 묻고 있는 게 그런 거다.
심지어 내핵을 뚫고 들어간 브론즈5다.
거기서 잘해져봤자 얼마나 더 잘해질까.
답이 뻔히 보이는 질문이다.
그래서 더 대답하기가 곤란하다.
"있지 않을까? 노력만 한다면."
꿈과 희망이 가득 찬 답변을 들려준다.
어차피 내 일도 아니고.
그런데 본인은 상당히 진지하게 받아들인 모양이다.
"저 열심히 해볼게요!"
"그래……, 열심히 해보렴."
열심히 하는 건 중요하지 않다고 몇 번을 말한 건지 모르겠지만 노력이 의미가 없다는 소리도 아니다.
처음부터 그냥 잘하는 사람도 있다.
근데 노력해서 개화 하는 타입도 있다.
'물론 너는 아니겠지만.'
그런 강렬한 팩트 폭행을 날리기엔 내가 지금 기분이 무척 좋다.
맛있는 먹거리들을 골라 담을 수 있는 뷔페.
떠들썩한 분위기에도 살짝 취한다.
내가 이렇게 좋은 후배를 두고 있었구나.
유리야를 다시 보고 말았다.
그렇게 내 군생활 최대의 미스가 하나 더 추가됐다.
* * *
'아오 그러면 그렇지.'
그런 훈훈한 이야기가 있었던 것도 같다.
빕스에서 나와 데이트 비스무리한 걸 해버렸다.
애가 좀 띨빵하고 눈치가 없어서 그렇지 귀엽기는 귀엽네.
순진문구한 모습도 어떻게 보면 매력일 수도 있겠다.
한순간이라도 착각했던 내가 멍청이다.
PC방에 가서 속이 뒤집어졌다.
'알려주긴 뭘 알려줘. 알아들어야 알려주지!'
하나를 가르쳐주면 열을 아는 건 바라지도 않지만 열을 가르쳐주면 하나는 알아야지.
모르면 모르겠다고 말을 하던가 안다고 해놓고 나중에 보면 또 까먹고 있다.
여자만 아니었으면 뒤통수를 후려치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냥 나 빡치라고 인내심 테스트하는 거였어.'
그게 아니라면 말귀를 저렇게 못 알아들을 수가 없다.
가르쳐주다 빡쳐서 현실 탈주했다.
화장실 간다고 하고 집으로 와버렸다.
그리고 지금.
'PC방을 간 게 잘못이었나……. 아니, 안 갔으면 큰일났을 거야.'
유리야라는 인간조무사를 잘못 판단한 게 아니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절실히 깨달았다.
또다시 착각하는 일이 생기면 성을 간다.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이긴 했다.
동아리 대항전을 참가한 건 포인트를 벌기 위함이다.
그런데 그 포인트를 오히려 적자 봐버렸다.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5초에 500포인트?
이틀을 고생해서 얻은 총합이 229포인트다.
단순 계산으로 2초 회복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마음대로 살 수가 없다.
'유리야와 게임을 한 게 어떤 의미에서는 전화위복이 되긴 했지.'
유리야와 듀오 게임을 하며 쌓았다.
빡침도 쌓였지만 포인트도 제법 쌓였다.
동아리 대항전이 허무하게 느껴질 정도로.
[게임을 승리했습니다!]
[포인트를 313만큼 획득했습니다.]
시골 인심 마냥 팍팍 퍼주더라.
내가 동아리 대항전을 왜 했나 싶다.
개고생을 하며 빡캐리를 해봤자 얼마 주지도 않던데 고작 랭크 게임이 저렇게나 많이 줄지는 몰랐지.
'상대 수준이 어떻든 양학만 하면 된다는 건가?'
아무래도 레전이란 아이디는 점수대가 좀 있다.
휴가나 외박 나왔을 때 동기나 생활관 애들과 종종 돌렸다.
얼마 돌리지도 않은 것 같은데 어느새 플래티넘 2티어더라.
MMR도 높아서 다이아 티어를 만난다.
배치고사 때처럼 마음 먹고 하면 양학을 못할 것도 없는 티어다.
하지만 쓸데없이 오바할 필요도 없다.
'오바를 하기도 힘들고.'
다이아 티어에 가까워지면 되면 애들이 사리는 법을 안다.
혼자 수십 킬씩 쓸어담는 상황이 무조건 나오진 않는다는 소리다.
전성기 시절의 피지컬이 있다면 모를까 지금의 나로선 애매하다.
그에 반해 브실골, 얼마든지 가능하다.
내가 너무 복잡하게 생각한 걸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킬수에 비례한 듯도 했다.
지금까지 받았던 포인트 말이다.
'시스템이 간단한 건지, 아니면 허점 투성이인 건지 참.'
대체 기준이 어떻게 되는 건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롤도 어지간히 밸런스 막장이지만 무능한 신의 게임 시스템은 그 이상이다.
알 바 아니고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그만이다.
고생을 안 해도 된다면 환영하는 바다.
물론 조금 애달파지기는 한다.
'나 말고, 나를 만날 애들이.'
내가 브론즈, 실버에서 게임을 한다니.
적으로 만나는 애들은 대체 무슨 죄인가?
하지만 세상은 원래 약육강식이다.
약하면 먹힌다.
포식자가 피포식자의 기분을 살필 이유는 솔직히 없다.
다른 사람 계정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떳떳한 내 계정이다.
-님들 저 레전설임. 캐리해드림!
이렇게 당당히 말을 해도 된다는 소리다.
밴픽창에 들어가자마자 인사한다.
브론즈 친구들이 대답해준다.
-레전설이 누구야?
-잉벤에서 봤는데 옛날 랭커래
-정말 본인? 유명한 사람이야?
피해의식에 쪄들은 윗구간 애들과는 다르다.
반응이 신선하다 못해 팔딱팔딱 방금 낚은 잉어와도 같다.
다시 한 번 낚시 아닌 낚시를 던져준다.
-저 찐임. 진짜임
-니가 레전설이면 난 테이커다!
-와, 우리팀에 레전설이랑 테이커 있어?
-ㅋㅋ애들 귀엽다
'난 니들이 더 귀여워.'
혼자 했으면 이런 브론즈 친구들을 만날 기회도 없었을 것이다.
배치만 봐도 보통 골드 티어에 안착하지 않는가?
누구누구랑 듀오를 한 덕분이다.
파릇파릇한 부계정이 유리야의 손에 더럽혀졌다.
몇 판 듀오를 하고 나자 MMR이 수직 하락.
내핵을 뚫고 들어가 박히기 직전이 됐다.
브론즈5가 묻은 덕에 진귀한 체험도 한다.
-거 조용히 게임이나 합시다.
-네, 알겠습니다 아버님. 소란 피워서 죄송합니다.
무작정 무시를 할 만한 티어대도 아니었다.
말투에서 연륜이 묻어 나온다.
내가 이래 봬도 노인 공격은 하지 않는다.
'우리 중대 행보관님이랑 말투가 흡사하네. 딱 봐도 춘추가 있어 보여.'
양학을 한다고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살짝 들뜨고 말았다.
아무튼 목적을 달성하는 건 쉬운 일이 됐다.
가볍게 아버님 효도 관광 시켜드렸다.
하아!
날아간 음파가 적 개서스의 뒤통수에 작렬한다.
체력이 반밖에 남지 않은 상태.
레드 묻혀서 툭툭 때리면 죽는다.
하지만 구태여 와드 방호를 타서 배달해준다.
이~쿠우!
범의 일격에 의해 날아간 개서스는 도착했다.
아버님이 플레이하시는 다리우트가 기다린다.
도끼를 크게 휘둘러 막타를 드셨다.
다리우트(2/1/0)-고놈~~ 갱킹 한 번 야무지게 오눼~!!
리심(7/0/2)-그럼요 아버님
다리우트(2/1/0)-고생하는데 말 편하게 혀^^
'세상에, 휴먼 아재체를 이토록 스무스하게 소화하시다니!'
내 직감이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다.
띠동갑이 최소 두 번은 더 돌 것 같은 분이다.
물론 아버님 라인 외에는 얄짤없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더블 킬!
전설님은 전설적입니다……!
음파를 맞힐 때마다 킬이 나온다.
믿기지가 않지만 적들이 천사다.
자기를 죽여 달라고 시위하고 있다.
내 눈에는 그렇게 밖에 보이지 않는다.
'게임 정말 편하다. 롤이 이렇게 재밌었구나~.'
킬양보 따위 않고 족족 쓸어담는다.
같은 구간에서 유리야와 게임을 했었다.
짐 덩어리 하나 없을 뿐인데 날아갈 것만 같다.
이 내가 플래, 다이아도 아니고 브론즈에서 게임을 하고 있으니 당연하다.
결과는 따질 것도 없이 승리.
아버님도 솔킬을 따시며 만족스러운 게임을 하셨다.
'님도 보고 뽕도 따고, 보람도 보고 포인트도 따고!'
한 마디로 일석이조.
그런 유쾌한 게임이 되었어야 했다.
[게임을 승리했습니다!]
[포인트를 2만큼 획득했습니다.]
'……뭐?'
가볍게 승리는 했지만 포인트도 그만큼 가볍다.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머리가 띵하다.
아니, 대체 왜?
'킬도 22킬이나 먹었고 아버님도 효도 관광 시켜드렸는데 왜?'
아버님은 상관없다 치더라도 포인트가 너무 적다.
플래티넘 부캐인 레전으로 한 것과 차이가 없다.
유리야랑 할 때는 분명 팍팍 퍼줬는데.
알게 되었다.
그러고 보면 처음부터 수상했다.
대패 삼겹살만 사줘도 감지덕지한 마당에 고급 이탈리안 레스토랑.
한술 더 떠 빕스까지 사줬을 때 알아봤어야 했다.
아끼는 후배의 숨겨진 사생활을 파헤칠 시간이다.
========== 작품 후기 ==========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추천과 코멘트는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