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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전설의 재림-10화 (10/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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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중 탐험 연구회 -->

갑분싸.

갑자기 분위기 싸해진다의 준말.

인터넷 유행어지만 현실에서도 이따금 공감 가는 상황이 생긴다.

바로 지금.

─챌린저 유리야님이 적을 처치했습니다!

마무리……!

저격수라는 컨셉에 걸맞게 원거리 저격이 가능한 헤이클린.

유리야의 궁극기가 한타의 엔딩을 장식했다.

웅성거리던 PC방 내부가 거짓말처럼 고요해진다.

아군과 적군은 물론 구경꾼들까지.

약속이나 한 듯 입을 다문다.

"저, 저, 저 저, 절대 일부러 한 거 아니에요!"

빡대가리야도 상황 파악을 할 만큼 열 받는 장면이다.

미드에서 꾸역꾸역 쳐드신 CS로는 부족했나 보다.

내 펜타킬을 뺏어먹는 것으로 마저 배를 채우셨다.

"야, 유리야."

"네, 네!"

"넌 정말 재능이 있어."

사람을 빡치게 만드는 재능이.

내뱉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1절부터 시작해 뇌절까지 할 의향이 있다.

하지만 지금이 클라이막스다.

밝게 웃으며 미소 짓는다.

마치 무릎팍도사의 게스트가 된 기분으로.

"내가 실수할까 봐 미리 신경 써준 거잖아 그지?"

"아뇨, 그러니까 그……."

"마침 실수하고 싶은 기분이었거든. 정말 장해. 정말 자랑스러워."

등을 툭툭 두들겨준다.

안간힘을 써서 힘을 빼려고 하고 있다.

굉장히 이상한 표현이지만 틀린 말이 아니다.

근육을 강제로 이완시키는 것도 힘든 일이다.

"와, 이걸 참네."

"펜타킬 뺏긴 걸 참았어?!"

"진짜 레전설 아닌가 본데……?'

관중들이 멋대로 떠들어댄다.

지들 멋대로 수긍하고 앉아있다.

'진짜 레전설은 대체 어떻게 반응하는지 나도 좀 같이 알자.'

사람이 너무 크게 다치면 오히려 고통을 못 느낀다고 한다.

이렇게 대놓고 훅 들어오니까 화도 안 난다.

차분한 마음가짐으로 다시 경기에 임한다.

아직 게임은 끝나지 않았다.

'도장을 어디에 찍을지 고민하는 정도지만.'

한타의 대승이 아니라 압승이다.

나이즈를 제외하면 사상자가 없다.

유리야마저도 죽지 않았다.

"좀 죽지 그랬냐."

"저, 저요?"

"내가 아끼는 후배에게 폭언을 퍼부을 리 없잖아. 바론이 참 질기네."

니 명줄 만큼이나.

처음 이니시를 당했음에도 살아남았다.

허겁지겁 타워 안까지 피신하는데 성공했던 모양이다.

한타가 시작된 바람에 적들도 안쪽까지 추격할 수 없었다.

아무튼 상대를 완전히 전멸시켰다.

그리고 아군은 딜러진이 건재하다.

─바론 백작을 처치했습니다!

바론 잡을 화력이 충분히 나온다는 소리다.

견제가 없는데 먹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유가 없음에도 안 먹으려던 걸 핑 찍어서 겨우 먹였다.

글로벌 골드로 환산했을시 약 4천 골드.

게임의 주도권 또한 이쪽에 있다.

확실하게 승기를 굳힌다.

* * *

"핑크 와드 깔면서 최대한 세코 막……."

굉장히 건전한 이름을 하고 있는 주제에 실상은 게임 동아리인 수중 탐험 연구회.

그 회장 자리를 맡고 있는 최현석이 침을 튀기며 말을 쏟아낸다.

상황이 워낙 긴박해 일분일초를 요한다.

그조차도 간파 당한지 오래였다.

─아군이 당했습니다!

핑크 와드를 깔러 간 서포터가 당해버렸다.

어둠 속에서 불현듯 튀어나온 세코.

한 대 얻어맞았을 뿐인데 죽었다.

"아, 대기하고 있었네……. 미안 나 짤렸다."

미안하다고 끝날 문제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 서포터 하나 죽은 것은 큰 손해가 아니다.

문제는 은폐 감지.

언제 어느 때 세코가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치도리!"

들을 때마다 깜짝 놀라 눈이 떠진다.

하지만 듣고 나서는 이미 늦어버린 후다.

─아군이 당했습니다!

적은 전설적입니다……!

봇라인 미니언 웨이브를 정리하러 간 토이치가 잘리고 말았다.

반응할 틈도 없이 순살 당했다.

무려 11킬을 쓸어담은 세코.

안 그래도 물몸인 원딜러와 서포터는 스치기만 해도 죽는다.

시야가 없으니 대비도 할 수 없다.

이제는 나머지 적들도 우습게 보기 힘들 수준으로 성장했다.

"그냥 세코 없을 때 걸까?"

"쟤네 바론이야. 사려."

"사리면 더 불리해질 거 같은데……."

시간을 끌어 조합상의 우위를 점한다.

최대한 팀플레이, 한타 그림을 보려고 했다.

갑작스러웠던 바론 앞 한타 이후 게임이 급격하게 기울고 있다.

이곳저곳 쑤시고 돌아다니는 세코를 도저히 막을 수가 없다.

조금만 방심하면 목이 베인다.

쥐도 새도 모르게 어느새 다가와 딱 한 방 맞았을 뿐인데.

"치도리!"

모 닌자 만화의 필살기명과 함께 아군이 한 명씩 죽는다.

포탑을 끼고 있던 아군 미드라이너.

후배인 상우의 아링이 픽하고 쓰러졌다.

"인피까지 나오니까 다 원콤 나네."

"저 정도면 윤회안 개안한 급 아니냐?"

"나루토 작작 봐라."

구경꾼들은 웃고 있지만 당사자들은 표정이 썩어 문드러진다.

한 마디로 능욕을 당하고 있다.

최현석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건 의문 뿐이었다.

'연막 작전이었던 거야? 설마 처음부터?'

방심한 상대의 허를 제대로 찌른다.

선세레모니를 후회하게 만들어주겠다.

그런데 자신들을 상대로는 쓰지 않고 있다.

설마 정보가 새어나간 걸까?

아니면 모든 것이 전부 계획이었나?

궁금해 미칠 지경인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진짜로 레전설 본인일까?"

"레전설이 저렇게 장난끼가 많아?"

"모르지. 물어볼 수도 없고……."

귀맵이 들켰다면 무슨 낯짝으로 말을 걸겠는가.

팀원들도, 자신도 한탄 밖에 할 게 없다.

이미 게임은 8할 이상 넘어 가버렸다.

아니꼽게도 장난이나 치는 상대를 당해내지 못한다.

'…….'

공짜로 상금을 먹을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더불어 교내에도 살짝 이름을 떨쳐줘야지.

이번 동아리 대항전은 좋은 기회였다.

"아…… 쟤네 원딜 아무것도 안 하는데 이걸 져야 돼?"

원딜러인 경호는 특히나 이가 갈린다.

적 원딜러는 라인전부터 내내 자신에게 밀렸다.

지금도 딜을 하기는 커녕 우르르 몰려다니는 게 전부다.

세코만 없었으면 초반 차이고 나발이고 역전을 하고도 남았다.

그런데 그 세코 하나 때문에 진다.

패배를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아싸 치도리!"

부활해서 투덜투덜 미니언 웨이브를 정리하던 경호는 또 죽음을 맞이했다.

하도 죽어서 이제는 허탈하기 만하다.

강렬한 정전기가 몸을 타고 흐른다.

몸에 힘이 쭉 빠진다는 느낌이다.

일방적인 능욕에 머리가 텅 비어 정전이 온다.

자존심도, 상금도 고이 접은 수중 탐험 연구회는 백기를 들고 항복했다.

* * *

[게임을 승리했습니다!]

[포인트를 218만큼 획득합니다.]

내 마음을 대변해주는 듯한 포인트 획득량이다.

5초짜리 회복이 500포인트였다.

지금까지 따낸 걸 모두 털어서 게임을 이겼다.

그런데 보상이 218.

'이 시팔 진짜…….'

무려 282 포인트나 적자다.

혹시나 하고 봤는데 스킬을 돌려주지도 않았다.

고리대금업자도 형님 소리할 만큼 악질적인 시스템이다.

본전을 뽑기 위해서는 최소 두 판은 더 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동아리 대항전은 아까로 끝이다.

대학교 행사 치고 이틀이면 꽤 길게 한 거다.

'무능한 신 자식이랑 쇼부 좀 쳐야겠는데.'

그 외에도 묻고 싶은 말이 한두 마디가 아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주위가 어수선하다.

어수선하기를 넘어 귀가 따가울 지경이다.

"이겼다. 이겼어! 나도 마지막에 한타 잘했지?"

"침착한 프리딜 좋았어요. 누나 짱 잘하던데요?"

"그치~? 나도 못하지 않지이?"

유리야가 꺅꺅거리며 지 동아리 애들이랑 난리가 났다.

니가 넣은 프리딜이 내 분신 딜량보다 낮을 텐데?

마음 같아서는 팩폭을 때려주고 싶지만 고단하다.

'손목도 나가기 직전이고 왜 이렇게 보람이 없냐.'

피를 말리는 인생 게임을 하고 나면 기운이 쏙 빠진다.

그런데 나는 신체적으로도 맛이 가기 일보 직전이다.

그냥 평범하게 생각해도 손목의 상태가 좋지 않다.

의사 양반한테 반깁스 풀지 말라는 소리를 몇 번이나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전고투 했으니 저리다 못해 찢어질 것 같다.

요근래 무리를 한 만큼 적어도 며칠은 푹 쉬지 않으면 안될 상태다.

'그래도 도와준 본인이 즐거워 보이니 됐나.'

포인트를 위해 참가한 거기도 하지만 주목적은 도와주기 위해서다.

하도 맞을 짓을 골라 하는 탓에 나도 모르게 많이 갈궜다.

혹시라도 마음의 상처가 있을까 풀어주고 싶었다.

그래서 왔는데…… 또 갈궈버렸다.

애가 정말로 맞을 짓만 골라서 하는 걸 어떻게 해!

많이 풀 죽었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그런 기색은 없어 보인다.

상대였던 수중 어쩌고 사람들과 인사를 주고 받고 있다.

굉장히 해맑은 표정으로 잔뜩 웃으며 신이 났다.

학교 생활을 즐긴다는 느낌이 물씬 풍긴다.

"선배도 같이 인사해요~. 주인공이 안 오면 어떡해요!"

"그래, 가자꾸나."

솔직히 조금 찔리는 입장이다.

아무리 양학이라고 해도 조금 많이 죽였다.

랭크 게임에서도 이 정도로 죽이면 이유 없이 나를 미워한다.

욕도 안 했는데 갑자기 신고가 박혀서 채팅 금지를 먹은 적도 있다.

괜히 갔다가 원망 어린 시선이 콕콕 찌를 것만 같아서 가만히 있었다.

의외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진짜…… 잘하시네요. 한 수 배웠습니다."

"님도 잘하시던데요 뭐."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잘한다는 말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겉치레스러운 인사를 건넨다.

그런데 어째선지 상대가 눈치를 본다.

"저기 혹시 그……."

"네?"

"아, 아닙니다."

싱거운 녀석이었다.

아무튼 이걸로 대회는 종료.

암 걸리는 유리야도 더 안 봐도 되겠지.

속으로 씹고 있는 당사자가 또 말을 걸어온다.

"선배…… 저 할 말 있는데요.."

"니가 바보라서 정말 다행이다."

"씨이, 저 바보 아니거든요?"

누군가 말했지.

스스로 바보라는 걸 깨달으면 바보가 아니라고.

자리에 돌아오자 유리야가 어울리지 않는 진지한 얼굴로 말을 잇는다.

"무리한 부탁했는데 와주셔서 정말 살았어요. 선배 아니었으면 저희 1승도 못했을 거에요."

"그래, 앞으로도 행복하게 살고."

"우쒸! 저 진지하게 하는 말이에요."

너랑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게 어색해서 그래.

얘도 나름대로 여자 사람이다.

그리고 나는 여자에 면역이 없는 군인이다.

심지어 유리야가 외모는 무척 괜찮다.

13학번 탑급이라고 동기에게서 들었다.

믿고 싶지 않지만 눈앞의 현실이 그러하다.

처음에는 얼굴만 봐도 설레서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한 3일 만나니까 설렘은 커녕 정나미가 떨어졌지만.'

얼굴도 되고 나쁜 애도 아닌데 성격 답답한 정도는 감수할 만 하지~.

일병 정기 휴가의 반 정도를 저 녀석에게 쏟아부었다.

내 군생활 최대의 미스 중 하나로 손꼽힌다.

"몸도 안 좋으시면서 무리한 건 아니죠? 생각보다 경기가 길어져서 걱정했어요."

"너 왜 그래. 어디서 보고 외운 말이야?"

"그런 거 아닌데요……. 선배 걱정돼서 말한 건데요."

'이 녀석이 생각이라는 걸 하게 되다니…….'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뜰까 싶지만 처음 만났을 때로부터 1년이 넘게 지나긴 했다.

이 녀석도 나름의 발전을 했어도 이상하지 않다.

그것이 아직 명확하게 표출되지 않았을 뿐.

이틀 전, 나도 모르게 살짝 감동했던 적이 있다.

고장난 시계도 하루에 두 번은 맞는 거겠지.

그런 건 줄 알았는데 조금 다른 생각도 든다.

내가 너무 선입견에 쌓여 바라본 걸 수도 있겠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달라진 것 같기도 하다.

오늘따라 유리야가 많이 이상하다.

"선배."

"응?"

"끝나고 혹시 시간 있으세요……?'

'아니, 얘 대체 왜 이래. 무섭게시리.'

답지 않게 우물쭈물 하면서 말을 못 잇는다.

정말 사람 당황하게 만드는 재주 하나는 타고 났다.

별 게 아닐 걸 알면서도 기대하게 만든다.

"딱히 뭐 있진 않지."

"다행이다. 밥 사드린다고 한 거 기억하시죠?"

당연한 말이지만 이번 건도 공짜가 아니다.

저번과 마찬가지로 채무 관계를 이행한다.

끝나고 적당히 밥이나 얻어 먹기로 했다.

그런데 유리야는 조금 더 할 말이 있는 눈치다.

"제가 내일 빕스 예약했는데 혹시 싫지 않으시면……."

"싫을 게 뭐야. 몇 시 예약인데?"

"그러니까 그…… 여섯 시 반?"

겁나 믿음직스럽지 않지만, 혹시 날짜를 착각한 게 아닌지 묻고 싶지만! 호의를 거부하지는 않는다.

이 녀석도 나름 용기 내서 말을 꺼낸 걸지도 모른다.

빕스라니, 학생 형편에 무리한다.

'군인 형편에 할 소리도 아니지만.'

그런데 무리를 왜 하는 걸까?

용기는 또 왜 내는 걸까?

얼굴에 살짝 홍조가 인 게 혹시라는 상상을 하고 만다.

아무리 상대가 유리야라도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니, 나도 남자다.

여자가 호의를 표하는데 어찌 기분이 나쁠 수 있을까.

이러니저러니 해도 상당히 귀엽게 생긴 상판때기다.

오래 보다 보니 익숙해지다 못해 초탈해서 그렇지 가끔 입 다물고 있으면 다른 사람처럼도 보인다.

'설마 그린라이트인가 뭔가 하는 건 아니겠지?'

어처구니 없게도, 믿을 수가 없게도 그런 식으로 밖에 생각이 안되는 상황이다.

그런 식겁한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한 가지, 중대한 맹점을 뒤늦게 깨달았다.

========== 작품 후기 ==========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추천과 코멘트는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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