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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중 탐험 연구회.
다이빙 동호회 같은 이름이지만 실상은 게임 동아리다.
동아리 회장 최현석이 창단을 허락 맡기 위해 짱구를 굴려 지은 이름이다.
"레전설 우리 학교 학생이었어?"
"그걸 어떻게 알아. 들어봤어야 알지."
"심해들 밖에 없어서 쉽게 우승할 줄 알았는데 무슨 레전설이 있냐…."
심해, 롤의 낮은 티어 유저들을 가리키는 속어다.
그리고 수중 탐험은 심해를 빙 둘러 표현한 말이다.
한 마디로 수중 탐험 연구회는 양학하기 위한 동아리다.
동아리 대항전의 우승을 위해 대놓고 모였다.
롤을 잘하는 친구들끼리 작정을 했다.
그런데 본선에 올라가기도 전에 난적을 만났다.
"본선은 가야 상금 받을 수 있는 거 맞지?"
"예선 이하로는 땡전 한 푼 없대."
"하, 레전설을 무조건 잡아야 한다는 소리네……."
일반인들은 모를 수도 있다.
하지만 게이머 인생을 걷는 자는 모를 수가 없다.
실력, 그리고 광기.
눈에 띄는 짓거리만 골라서 하고 다닌다.
모르고 싶어도 귀에 콕콕 들어온다.
그런 레전설……로 추측되는 인물을 만났다.
물론 확실하지는 않다.
하지만 외나무다리다.
두들겨 보고 건널 여유가 없다는 소리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부딪혀봐야 한다.
다행히 단판 승부라면 가능성이 있다.
"만에 하나 진짜 레전설이라고 해도 이길 수 있어!"
공략법을 찾아낸 최현석이 흥분에 가득 차 입을 열었다.
총이 날아와도 궤도를 알면 피할 수 있다.
칼이 떨어져도 궤적을 알면…….
"못 피하지 않을까요?"
"무슨 목숨 세 개 짜리 슈퍼마리오도 아니고."
"……."
동아리 애들 말대로 힘든 일이다.
하지만 조금 더 간단한 일.
무작정 사리는 거라면 어렵지 않다.
상대의 신호가 떨어지는 즉시 도주한다.
"들어가시고~ 하는 선세레모니요?"
"하긴 뭐 집중하면 못 캐치할 정도는 아니지."
제아무리 매서운 킬각도 알면 피할 수 있다.
못 피한다 쳐도 최소 도망치는 건 할 수 있다.
그대로 쭉~ 빼서 포탑까지 이동하면 그만이다.
상대가 벼르고 벼른 킬각을 간단히 무위로 돌린다.
최현석이 다섯 번이나 영상을 돌려본 이유다.
현재 화제가 되고 있는 잉벤의 영상.
그리고 잉벤에 속속들이 올라오는 현장의 글.
한 마디 외치고 나서 킬각을 잡는 건 틀림이 없다.
레전설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그는 상당한 실력자다.
'몇 번이나 봤지만 킬각이 얼토당토 않은 수준이었어.'
다이아 티어인 자신의 눈으로도 모호했다.
잡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한데……
하지만 확신하고는 거리가 멀다.
한 번도 실패하지 않았다는 건 보통 실력으로는 불가능하다.
최소 자신 이상의 실력자.
방심을 하고 있을 때 해치워야 한다.
"그러니까 귀맵을 하자는 거네요?"
"귀맵이라니, 지가 들으라고 소리치는데 이용 안 하는 게 병신이지."
"하기야……."
상대의 방심을 이용한다.
아무리 괴물이라도 공략법이 있다면 무섭지 않다.
하물며 괴물의 아군들이 변변치 않다.
'나머지 애들은 분명 별 볼 일 없었으니까.'
네가 전투에서 승리할지 몰라도 우리들은 전쟁에서 이긴다.
수중 탐험 연구회 만반의 준비를 갖춘 채 경기에 임했다.
* * *
확실히 오해를 받을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고 보면 나는 살면서 그런 일이 잦았다.
'처음 자대 배치 받았을 때도 한참 고생했지.'
선임 새끼 한 명이 진짜 별 것도 아닌 걸로 꼬투리 잡더라.
나중에 짬 먹고 알았는데 내 말투가 띠꺼웠단다.
먼저 온 게 뭐라고 대꾸도 못하겠고.
전역일에 전역빵에 오지게 때려서 풀긴 했다.
'이번 경우도 비슷한 걸 수도 있어.'
선세레모니를 했던 게 아니꼬워 보일 수도 있다.
세상에는 갓을 쓴 선비 분들이 은근히 많다.
그래서 이번에는 노선을 조금 바꿔봤다.
후웅!
아링의 물방울이 나이즈의 옷깃을 스친다.
아슬아슬한 판정이었지만 용케 맞았다.
한 가지 안타까운 건 아군이 나이즈다.
'확실히 상대가 잘하긴 해.'
바닷가로 현장 답사나 나갈 듯한 동아리가 꽤 한다.
경기 시작 전, 얼추 전적을 확인해봤다.
평균 티어가 플래티넘을 상회한다.
지금까지 만났던 상대들과 질적으로 다르다.
아군이 고전하는 것도 당연한 노릇이다.
나에게는 전혀 와닿지 않는 고민이지만.
"치도리!"
세코가 자랑하는 은신 갱킹이다.
살금살금 다가가 뒤통수에 강렬한 한 방!
─적을 처치했습니다!
레전드님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열심히 딜교환을 하고 있던 아링이 하늘나라로 떠났다.
아군에게나 잘해 보이지 나한테는 빈틈 투성이다.
멋들어진 킬캐치와 더불어 관중들의 환호.
"치도리 존나 강력한데?"
"저게 왜 치도리야?"
"스태틱 터졌잖아!"
"아~ 나루토?"
첫 번째 평타에 번개 피해를 더해주는 스태틱의 단도.
그 첫 번재 평타가 무조건 치명타인 세코와는 궁합이 좋다.
잘 커서 한 방에 적을 삭제해버리면 마치 모 닌자 만화의 필살기처럼 보인다.
'이런 게 바로 쇼맨쉽 아니겠어?'
경기도 이기면서 관중도 유쾌하게 만든다.
내가 얼마나 인성이 된 사람인지 가르쳐준다.
아무리 나에 대한 유언비어를 유포해도 진실은 언제나 하나!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운 짓은 해본 적이 없다.
난 살면서 저렇게 꼴사납게 죽어본 적이 없다.
─아군이 당했습니다!
적이 학살 중입니다!
봇라인에서 유리야가 또다시 내 뒷골이 땡기게 만들고 있다.
"힝, 점멸 아낄 걸 그랬다."
"상대가 잘하네요. 엄청 공격적이다."
"어쩌지?"
"우리는 최대한 사려만 봐요."
'내가 비슷한 말 한 세 번쯤 들었던 거 같은데.'
상대가 잘하니까 사리자.
앞서 두 번이나 들었음에도 변함이 없다.
결코 내 인성이 나빠서 욕을 하는 게 아니다.
나로 하여금 욕을 하게 만들 뿐이다.
"내가 정말 아끼는 후배인 유리야야."
"네, 네!"
"긴장하지 말고 천천히 알지?"
"네, 저 열심히 해볼게요!"
눈물이 나오도록 짠한가 보다.
눈썹을 치켜세우며 모니터를 뚫어져라 바라본다.
그런다고 변하는 건 하나도 없을 텐데.
'진짜로 눈물이 나오도록 맞아봐야 변화가 생길 텐데.'
안타깝게도 지양할 수밖에 없다.
소문을 듣고 온 구경꾼들이 한둘이 아니다.
다행히 그 기세가 처음보다는 많이 줄은 것 같다.
"후배도 아껴주고 평범하게 착한…… 선밴데?"
"레전설이었으면 방금 뒤통수 후려쳤다."
"인정. 님 좀 레잘알인 듯?"
"올~."
하이파이브를 하고 앉아있다.
내가 아무리 유리야를 막 대해도 뒤통수를 후려치진 않는다.
인권을 무시하지 않는 체벌 범위 내에서 고통을 안겨줄 뿐.
지금 나는 적의 뒤통수를 후려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슈루룩!
독단검이 빨려 들어가며 적 정글러 탈리반 3세의 이동 속도를 늦춘다.
그대로 달려가 뒤통수를 가격.
패시브의 추가 데미지가 더해지며 탈리반 3세가 깔끔하게 마무리된다.
'딱 뒤통수 때리고 다니는 컨셉의 챔피언이지.'
문제가 있다면 언제까지 때릴 수는 없다.
슬슬 라인전의 시간이 끝나간다.
이전에 써먹었던 솔바론도 각을 안 준다.
서포터가 부단히 돌아다니며 와드를 깐다.
한두 번 끊어먹자 단체 행동을 하고 있다.
바라지 않는 흐름이다.
5 대 5의 정면 한타 말이다.
'한타를 하는 건 불확정 요소가 너무 많아.'
내가 몸을 던져 한두 명 끊어줄 수는 있다.
그렇게 주요 딜러를 잡고 시작해도 왠지 질 거 같다.
우리팀의 자랑스러운 원딜러 유리야를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
그걸 알기에 빨리 끝내려고 부단히 돌아다녔다.
아군이 워낙 밀려서 상대에게 끌려 다닌다.
나 혼자 해줄 수 있는 건 한계가 명확하다.
'지금 이대로는 말이야.'
아끼고는 싶었지만 쓸 때는 써야 한다.
솔직하게 조금 안타깝긴 하다.
고작해야 아마추어 리그.
아니, 아마추어라는 표현조차 과하다.
조금 잘하는 일반인 수준이다.
다소 양학이 되더라도 지금은 쓸 때다.
[현재 보유하고 있는 포인트 : 501]
상점을 열기 위한 최소 포인트가 500.
이전 판을 이김으로서 충족시켰다.
유리야를 도와준 이틀[email protected]의 양이다.
딱히 사기 스킬까진 바라지도 않는다.
일반인 상대로 양심 털린 짓이다.
그냥 잠깐 돌아오기만 하면 된다.
이전에 배치고사를 봤을 때처럼 말이다.
바라자 모니터 앞에 떠오른다.
반투명한 신명조가 주르륵.
[구입 가능한 스킬 목록이 표시됩니다.]
-영어 회화 초급
-3분이면 따라하는 중국어 스피킹
-자신감이 중요한 실전 영어!
.
.
.
'내가 지금 외국어 학당을 잘못 찾아왔나…….'
지나치게 실용적인 스킬들이 보인다!
배워서 나쁠 건 없겠지만 내가 원한 건 이런 게 아니었다.
조금 더 찾아보니 다른 것도 있었다.
-원숭이도 할 수 있는 수화 교실
-연봉 협상 -기초편-
-신체 이상 완벽 회복(5초)
마우스 스크롤을 내리는 느낌으로 쭉 살펴봤다.
일단 내가 찾고 있던 스킬이 있기는 하다.
그런데 조금 많이 의아하다.
'겨우 5초라고?'
회복과는 달리 단기적인 쓰임새다.
시간이 짧을 거라 감안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짧잖아!
마음 같아서는 당장 따지고 싶다.
이 무능한 신 자식아 일처리 또띠 안 해?
안타깝게도 그럴 여유가 없다.
당장 게임이 진행되고 있는 와중이다.
바가지든 뭐든 일단 사고 본다.
5초,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하지만 분명 의미는 있어.'
우리 동네 치킨집을 가면 샐러드랑 맥주 첫 잔을 서비스로 준다.
근데 군대에서 외박 나가니까 오지게 덤탱이만 씌우더라.
그 당연함의 소중함을 입대 전에는 몰랐다.
손목을 다치고 나서야 깨달았다.
내가 머릿속에 떠올린 플레이.
손이 받쳐주질 않자 못한다.
'아주 잠깐 참지 않아도 된다는 소리지.'
현재 흘러가는 게임의 상황은 예상했던 그대로다.
상대는 조심히 한타 준비를 하고 있다.
지금 필요한 건 도화선이다.
"야, 유리야."
"네, 저 열심히 하고 있어요!"
"열심히…… 하고 있구나. 기특하기도 하네."
전혀 기특하지도 않고 때려주고 싶은 마음만 한가득이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중요한 건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 잘하는 거다.
그런데 이 녀석도 하나 잘하는 게 있다.
착각이 아닐까 유심히 살펴본 결과 확실하다.
"빨리 미드 가서 파밍해봐. CS 많다."
"헉, 지금 바로 갈게요. 맛있겠당!"
의심 하나 없이 부랴부랴 뛰어간다.
마음 같아서는 먹던 것도 뺏고 싶은 CS를 주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버거킹!〉
적들이 잔뜩 대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용쪽 부쉬에서 우르르 튀어나온 적들이 유리야를 덮친다.
탈리반 3세의 깃창 돌격과 궁극기 대변동에 의해 한타가 열린다.
'전부터 봤는데 참 죽이고 싶게 움직이더라고.'
내가 괜히 유리야를 몇 번 때렸던 게 아니다.
사람의 폭력성을 불러일으키는 무언가가 있다.
상대로 하여금 도저히 참을 수가 없게 만든다!
타고난 재능으로 미끼 역할을 훌륭히 소화해냈다.
이번 만큼은 솔직하게 칭찬을 해준다.
바라지 마지 않던 한타 구도다.
"치도리!"
킬에 눈 멀어있는 적 원딜러를 잘랐다.
느슨해진 상대 가드를 뚫고 들어왔다.
뒤늦게 대비를 해봤자 안된다.
타라랑~♬
뻔하게 그어지는 파워센도쯤 가뿐하게 회피한다.
지금의 나에게는 그럴 수 있는 피지컬이 있다.
적 쏘냐의 궁극기를 환영으로 씹는다.
하지만 아직 반심하긴 이르다.
아군 원딜러도 전투 불능이다.
미드인 나이즈는 네네톤에게 물려 죽었다.
이렇게까지 해줘도 전황은 상대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결정타가 필요하다.
적팀의 남은 딜러 아링이 미끄러지듯 유혹을 날려온다.
슈웅~!
원딜러를 끊기 위해 은신 이동이 빠졌다.
파워센도를 피하기 위해 궁극기도 빠졌다.
각을 좁히고 날려오는 유혹은 도저히 피하기 힘들다.
통상적으로는 분명 그래야겠지만.
'어림도 없지.'
속임수 박수를 세워 막아낸다.
입롤에 가까운 플레이지만 지금의 나에게 불가능은 없다.
─트리플 킬!
아링은 나를 노려온 대가를 치른다.
앞대쉬를 해왔으니 당연히 죽어야지.
그 사이 환영으로 만든 분신이 쏘냐를 처치했다.
[신체 이상 완벽 회복(5초)의 시간이 종료되었습니다.]
물론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단 한 번 쓸 수 있는 기회가 소진됐다.
하지만 그로 인해 한타를 깔끔하게 터트릴 수 있었다.
─쿼드라 킬!
무식하게 반항하던 네네톤도 쪽수 앞에서는 장사가 없다.
다구리를 까자 버티지 못하고 무릎 꿇는다.
마지막 남은 적은 탈리반 3세.
두둥실~
의리 없게 혼자 도망치다 붙잡힌다.
유진의 인어가 점멸 물방울로 가뒀다.
센스 있는 플레이에 감사를 표하며 먹잇감을 향해 칼을 내리치려던 그 순간.
타아앙-!
외마디 총성과 함께 갑분싸가 찾아왔다.
========== 작품 후기 ==========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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