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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중 탐험 연구회 -->
세상이 정보화 사회, 지구촌 사회, 글로벌 사회가 됐다고는 하지만 사실 와닿지는 않는다.
인터넷 일은 인터넷 일, 현실 일은 현실 일.
정보의 바다에서 정보를 퍼낼 일은 있어도, 정보의 바다가 들이닥쳐 휩쓸릴 일은 보통 없다.
연예인 보는 경우가 드문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더욱 열광하는 걸지도 모른다.
기회가 오면 잡아야 직성이 풀린다.
"아니, 진짜로 있다고?"
"경영학과 선배가 여기 맞다고 하던데."
"선배가 죽으라면 죽을 거냐?"
"미친놈아, 그럼 따라오질 말던가."
한국대역, 한국대학교 학생들은 물론 인근 지역의 시민들까지 이용하는 번화한 상권이다.
그만큼 인산인해 북적거리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오늘은 분위기가 색다르다.
최근 한국대학교에서 성황리에 진행 중인 동아리 대항전.
정식 명칭 한국대배 E-스포츠 최강자전을 구경하기 위해 수많은 학생들이 몰렸다.
대회를 협찬한 한국대역 PC방 사장님들 얼굴에 미소가 절로 걸린다.
물론 그래봤자 대학교 내 행사일 뿐이다.
이만한 일로 난리가 날 만큼 요즘 학생들이 한가하지 않다.
그럴 수밖에 없는 소동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옛날에 레전설 진짜 개쩔었는데."
"나 팬이었어. 롤로 전향하자마자 1위 먹는 모습 캬……."
"우리 학교 선배님일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냐~."
얼마 전, 한 커뮤니티 사이트에 동영상이 올라왔다.
한국대학교에서 롤 대회를 연다고 카더라?
알아주는 대학교인 만큼 조금 화제가 됐다.
그래봤자 조금이다.
딱 잉벤의 화제글에 오르는 정도다.
그런데 오르고 보니 상당히 의아하다.
한 명, 지독하게 신경 쓰인다.
플레이가 범상치가 않다.
물론 잘하는 정도로 화제가 될 리는 없다.
-100% 맞음. 리픈 저렇게 잘하는 장인 달리 없다.
-아이디부터가 레전드네ㅋㅋ
-심지어 까까머리!
-리픈에 세코에 챔피언폭 고풍스러운 거 보소ㅋㅋㅋ
댓글란에서 한 차례 소란이 일었다.
의심이 된다는 게 그 이유다.
압도적인 실력과 다른 하나.
혹시라는 소리가 나오게 된 것은 필연이었다.
그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 모였다.
한국대역 명구네 PC방 사장님이 유독 함박 웃음을 짓고 있다.
"들어가시고~."
논란의 중심이 한 마디 중얼거린다.
그러자 주위가 갑작스레 웅성인다.
그도 그럴게 봤다.
"저거 맞지. 저거 맞지?"
"살인 예고잖아!"
"여기서 정말 킬각이 나와?"
논란이 되었던 첫 번째 이유다.
해당 유저의 플레이가 기묘하다.
아니, 잘해서 학살을 하는 건 그럴 수 있다.
학교 대회 수준이 높으면 얼마나 높겠는가?
인터넷에서나 너도 나도 다이아지 현실은 그렇지 않다.
다이아는 커녕 골드나 플래티넘만 돼도 잘한다고 떠받든다.
그런 대회에 진짜 다이아 티어가 출전을 하면 당연히 캐리한다.
실력 차이를 바탕으로 킬을 먹으면 누구나 잘해 보인다.
하지만 이번 건은 경우가 다르다.
쿠훙!
리픈이 대쉬와 함께 검을 빼들었다.
언뜻 봐도 킬각은 아니다.
상대는 따끈따끈한 풀피.
아무리 리픈이 강력해도 아이템이 나왔을 때의 이야기다.
그리고 상대가 물몸일 때의 이야기다.
탱커는 웬만하면 버틴다.
더군다나 상대가 플레이하고 있는 갓렌.
리픈의 카운터로 유명한 탱커 챔피언이다.
하도 단단해서 때려도 때린 것 같은 기분이 안 든다.
「진형을 무너뜨려라~!」
팽이처럼 빙글빙글 돌면 딜도 나름 강력하다.
때리다가 제 풀에 지쳐 꺾여나가야 정상이다.
그런데 이 사람의 리픈은 도저히 정상이 아니다.
"에이, 안 죽네. 개오바 쳤네."
"레전설은 무슨 꿀통통도 이거보단 잘하겠다."
정상적인 킬각이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실패.
그런 줄만 알았다.
쿠훙!
끝났다고 생각했던 공세가 몰아친다.
점멸과 대쉬로 순식간에 다시 거리를 좁혔다.
놀라운 선택이긴 하나 그래도 설마?
갓렌의 체력은 제법 남아있다.
게다가 점멸은 갓렌도 있다.
맞점멸로 도망가면 그만인 일이었다.
콰항!
리픈의 3타가 도망간 갓렌의 목덜미를 잡았다.
이어진 평타 한 방.
숨 막히는 교전의 결과는 예고한 그대로였다.
"여기까지 보고 킬각 잡은 거야?
"이 정도면 진짜 예술이다……."
"아까 꿀통통이 더 잘한다는 사람 누구냐?"
아슬아슬하게 상대를 잡아낸다.
게임을 하다 보면 흔히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 아슬아슬함을 보통 예상하진 않는다.
그런데 저 의문의 사내는 당연한 듯 해낸다.
말을 하고 들어가서 틀린 적이 없다.
적어도 논란이 된 그 영상.
그리고 현재 진행되는 게임.
마치 천사소녀 네티처럼 예고된 범죄를 기가 막히게 성공시킨다.
"못하진 않는데…… 그래봤자 양학 아니야?"
"솔직히 킬 먹고 깽판 치는 건 나도 한다."
이렇듯 게임 대회에 사람이 모이면 무조건 있다.
자신의 게임 계급으로 우쭐대는 사람들.
롤에서 다이아 좀 찍었다고 거들먹거린다.
하지만 그들의 말이 꼭 틀린 것도 아니다.
아니, 그냥 쇼맨쉽이 좋은 랭커일 수도 있지.
아이디가 비슷하고, 유별난 행동 좀 했다고 레전설이다.
의심을 하는 건 그거대로 실례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심증은 따로 있다.
과거 그를 잘 알던 팬일수록 확신의 단계에 이르렀다.
〈야, 뒤질래?〉
〈아니요.〉
〈근데 왜 자꾸 죽냐?〉
〈히잉, 저도 죽기 싫어요…….〉
〈나도 널 죽이기 싫으니까 똑바로 해라.〉
영상에 나왔던 대화의 원문이다.
쥐꼬리만한 목소리를 누군가 옮겨 적었다.
레전설의 팬들은 이 대화를 듣고 찬사를 보냈다.
-남자 인성 보소ㄷㄷ
-남녀 차별 따위 하지 않는 이 시대의 진정한 페미니스트!
-캬, 이런 게 상남자지~
아군 원딜러가 죽자 바로 쌍욕을 퍼붓는다.
뭐, 친한 친구 사이면 그럴 수도 있다.
원래 친구들끼리는 서로 놀리려고 게임한다.
걔 존나 못해 내가 훨씬 더 잘해.
지가 나보다 잘한다고 했다고? 그 새끼 불러와라. 오늘 바로 피씨방 달린다.
남자 그룹에 흔히 있는 레파토리다.
문제는 남자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심지어 목소리도 엄청 귀엽다.
그럼에도 쌍욕을 피하지 못한다.
-레전설이 아닌 이상 불가능한 인성이다.
-군대를 갔다왔는데도 변함이 없네
-정말 한결 같은 사람이야!
과거 그를 대표하던 두 가지.
실력, 그리고 인성이다.
안 그래도 얼마 전 뜨겁게 달아올랐던 잉벤이 다시 한 번 불구덩이에 빠졌다.
그 진위를 직접 파악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다.
PC방에 온 행인들 모두가 기다리고 있다.
레전설의 인성질을 직접 목도할 수 있길!
─아군이 당했습니다!
적이 학살 중입니다!
이를 확인할 순간이 다가왔다.
영상에도 나왔던 원딜러가 세 번째 죽음을 맞이했다.
인성 안 좋아 보이는 남자가 드디어 폭발한 듯 입을 열었다.
* * *
유리야네 동아리 대항전을 도와주기 이틀 째.
하루건너 진행됐으니 엄밀히 따지면 사흘 째다.
시간이 지나도 유리야의 실력은 변하지 않는다.
"야."
"네! 네, 네……."
쥐꼬리만한 목소리가 새어 나온다.
잔뜩 쫄아 움츠러들어 있다.
죄인도 본인의 과실을 알고 있으렸다.
하지만 그 죄인이 여자.
보통 남자들은 정상참작을 해준다.
어떤 인간들은 나서서 실드도 쳐준다.
단언컨대 나한테는 그딴 거 없다.
"잘해보자. 너도 하면 할 수 있잖아."
"어, 어……? 욕 안 해요?"
"내가 언제 욕 같은 걸 했다고 그러니."
이 쌍노무자식아.
마음속 외침을 꿀꺽 삼킨다.
밥을 사준 것과는 별개의 이유다.
뒷자리가 유난히 소란스럽다.
구경꾼들이 좀 많지가 않다.
심지어 영상 찍는 사람도 있다.
"저 빡빡이가 레전설이라고?"
"군대 가서 성질 죽었나 보네."
"그냥 아닌 거 아니야?"
관중들이 미어텨져서 의자가 흔들릴 지경이다.
지금의 상황은 긴박한 이미지 관리를 요한다.
욕하는 게 찍힌다면 보통 일로 끝나지 않는다.
'……한국대 욕설남이라고 SNS에 뜰 수는 없잖아.'
요즘 SNS가 좀 무서운 게 아니다.
더군다나 나는 아직 군인 신분이다.
대한민국 최약체 말년 병장으로서 신변에 위협을 느낀다.
누군가 장난삼아 병무청이나 국민신문고에 찌르는 순간 큰일 난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락지 맞아죽듯 군인한테는 하늘이 무너져 내릴 만큼 심각한 일로 번질 수 있다.
잘못하면 전역일이 늦어지는 정도가 아니라 육군 교도소에 갇힌다.
"긴장하지 말고 천천히 알지?"
"네, 저 열심히 해볼게요!"
─아군이 당했습니다!
적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열심히 한다고 말한지 30초도 안 지났다.
또다시 멍청하게 얼타다 적에게 꽁킬을 내줬다.
적당히 사리면서 파밍하는 게 왜 힘든지 도무지 모르겠다.
'아, 행복해. 캐리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해.'
절대로 화를 내면 안된다.
아군이 당해도 스마일.
미소를 잃지 않는다.
[게임을 승리했습니다!]
[포인트를 168만큼 획득합니다.]
각고의 인내 끝에 무사히 게임을 끝마쳤다.
다행히 상대팀 수준이 그다지 높지 않았다.
유리야가 사고를 쳐도 어찌저찌 캐리가 가능했다.
"근데 왜 이렇게 주위가 소란스러울까? 혹시 유리야 넌 아는 게 있니?"
아는 게 있긴 하니?
별 기대 없이 묻자 역시 모른다는 표정이다.
밝게 웃고 있자 유진이가 대신 해서 대답해준다.
"아…… 그게 말하기 좀 뭣한데……."
"에이, 무슨 일인데 그래? 형도 좀 알자."
"그러니까 지금 형 때문에 모인 거 같거든요?"
"응? 나?"
살짝 어안이 벙벙해지려다 말았다.
조금 듣자 살살 감이 온다.
아무래도 부캐 아이디를 잘못 지었나 보다.
'군인 머리도 티가 안 날 수가 없겠고.'
당장 스마트폰을 열어 사건의 전황을 살펴보았다.
학교 축제가 으레 그렇듯 촬영 같은 게 있었나 보다.
우리 쪽도 촬영을 했는데 게임에 집중하느라 눈치를 못 챘다.
그것 자체는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진짜 문제는 퍼졌다는 부분이다.
누군가 커뮤니티 사이트에 동영상을 올렸다.
그 댓글란에 소란이 불거져있다.
-인성 보소. 저 새끼 빼박 레전설
-타이밍부터가 딱 레전설인데?
-ㅋㅋ빡빡이들 인성이 그럼 그렇지
-인성이 머리카락 길이에 비례하잖아!
군인이라 어쩔 수 없이 깎는 거잖아 이 미필 새…….
나도 모르게 스마트폰을 두들기던 손을 멈췄다.
마치 내 일인 것처럼 흥분하고 말았다.
"옛날에 인성 안 좋은 유저가 있었나 봐요."
"세상에, 나랑은 완전 딴판인 사람이네."
"근데 그 유저가 성훈형이라고……."
"그런 얼토당토한 유언비어가 퍼지고 있다니. 인터넷이 참 무섭긴 무서워. 그지?"
"그렇네요……."
노려보자 동아리 애들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아무튼 사건이 일어난 경위는 알았다.
'이것 참 터무니 없는 오해를 하고 있구만.'
내가 누구인지 때려 맞춘 건 둘째 치고 한 가지 어이가 없다.
나는 결코 인성이 나쁜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나만큼 된 사람은 보기 드물 정도다.
'하긴 내가 너무 잘하다 보니까 질투하는 사람들이 많긴 했어.'
필시 나를 시기하던 녀석들이 퍼트린 악성 루머가 분명하다.
검소하고 선량했던 마리 앙투아네트가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 망언을 했다며 역사가 왜곡된 것처럼 말이다.
군대를 갔다온 사이 세간의 편견과 오해에 맞서 싸우는 입장이 돼버렸다.
억울한 일이지만 아직 확정이 아니다.
인터넷 루머가 으레 그렇듯 재미난 가십거리를 만나서 신났을 뿐이다.
이런 류의 사건은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흐지부지해진다.
아니, 어쩌면 좋은 기회가 온 걸지도 모른다.
내가 얼마나 인성이 바르고 유쾌한 사람인지 재인식을 시켜준다.
* * *
"잘하긴 잘하네……"
수중 탐험 연구회의 회장.
최현석은 찌뿌둥한 얼굴로 영상을 세 번째 돌려보고 있다.
영상에 나오는 상대를 바로 다음 상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진짜 레전설일까요?"
"글쎄…… 적어도 하나는 확실하지."
상대의 실력이 도무지 종 잡을 수 없다.
어느 정도인지 도저히 파악이 안된다.
다이아 티어인 자신조차 말이다.
하지만 공략법이 없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기발한 해법이 떠올랐다!"
상대의 공격 패턴을 알아냈다.
그것은 강약약 강강강약 강중약!
같은 얼토당토 않은 소리가 아니라 진지한 이야기다.
같은 영상을 무려 네 번이나 돌려본 이유다.
정체불명의 유저가 가진 결정적인 단점.
살인 예고를 뒤집을 꼼수를 말이다.
========== 작품 후기 ==========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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