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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빡대가리야 -->
내가 게임을 오랫동안 쉰 것은 사실이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인해 손도 대지 못했다.
'다쳤는데 뭘 어떻게 해…….'
심지어 군인 신분이다
녹이 슬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패치 내용도 못 따라가 많이 생소한 상태다.
그런 상황에서 피지컬도 아직 안 돌아왔다.
500포인트를 채 모으지 못했기 때문이다.
웬만한 수준의 상대를 만난다면 고전할 수밖에 없겠지만.
'그런 상대가 있을 리가 없잖아.'
고작해야 대학교 동아리 대항전이다.
내 입장에서는 참가하는 게 미안할 정도다.
그냥 걸어 다니기만 해도 나에게는 전부 킬각이다.
하물며 주챔프인 리픈을 잡았다.
탑라인을 반쯤 터트리는데 이른다.
나머지 절반을 채우기 위해 다이브를 실행한다.
"들어가시고~."
검을 빼들며 땅을 한 번 내리친다.
그 자체만으로도 상대는 잔뜩 쫄았다.
필사적으로 포탑 뒤에 숨으려고 한다.
쿠훙!
안타깝지만 이미 죽어있다.
벌어질 대로 벌어진 성장 격차.
스턴이 연계된 리픈의 콤보에 그대로 썰린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레전드님이 전장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선량한 참가자들에게 살짝 미안하긴 하다.
탑 라인전을 조금 심하게 터트렸다.
게임 시간 10분에 벌써 6킬.
'근데 원래 세상은 약육강식이야.'
그리고 솔직히…… 아쉽게 지는 것보단 압도적으로 지는 편이 속 편하잖아?
상대로 하여금 여한을 덜어주려고 최선을 다한 거다.
머릿속으로 가벼운 합리화가 이루어졌다.
"와, 미쳤다! 탑 고속도로 난 것 봐."
"유리야 누나 소개라고 해서 불안했는데 엄청 잘하시네요!"
"……."
유리야네 동아리 애들이다.
찬사를 받고도 찜찜하기는 처음이네.
어쩐지 처음 만났을 때부터 눈빛이 미심쩍다 했다.
'그 마음 나도 백분 이해하긴 해.'
나 같아도 유리야 소개로 누구를 만났다면 첫인상이 모호했을 것이다.
심지어 다른 장소도 아니고 대회.
자존심이 걸린 승부의 장이니 초조해 할 만도 하다.
하지만 실력은 언제나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탑라인을 터트리며 첫 번째 게임을 깔끔하게 캐리했다.
상대는 우왕좌왕하다 별 반항도 못한 채 게임을 내줬다.
[게임을 승리했습니다!]
[포인트를 78만큼 획득합니다.]
역시 대회에 참가하는 게 정답이었다.
혼자 솔로랭크를 했을 때의 30배에 달하는 양.
모르는 후배들 사이의 어색했던 자리도 실력 하나로 바꿔냈다.
아직 한 명 못마땅한 사람이 있어 보이지만.
"이번 판은 결과가 좋아서 다행인데 저희 동아리 전략이 미드봇 위주라 탑에서 무리하시면 안돼요."
"아, 그래요? 제가 미처 몰랐네."
"한 번이라도 지면 탈락이니 리스크 있는 플레이는 지양해주세요."
정글을 맡고 있는 김선형, 유리야와 같은 12학번으로 1년 꿇었다고 들었다.
한 마디로 나랑 동갑이다.
실력도 꽤 있어 보인다.
아무래도 내가 부캐로 하고 있다.
게다가 굴러온 돌이라는 입장이다.
유세를 떠는 것도 어찌 보면 이해는 간다.
'지켜보니까 정글이 좀 하더라고.'
나만큼은 아니지만 여기저기 유효갱을 성공시키고 다녔다.
그런데 나 때문에 활약이 묵혔으니 샘통이 났겠지.
원래 남자들이 겜부심이라는 게 있다.
'근데 내 앞에서 겜부심 부리면 안되는데?'
게임에 한해서 한없이 유치해질 수 있는 남자다.
* * *
살금살금.
갱킹의 기본은 바로 이 네 글자다.
안 들키고 잘 가서, 상대를 잘 죽이면 된다.
투욱!
은신 이동을 사용해 적의 뒤로 접근했다.
뒤통수를 가격하자 깜짝 놀라 도망간다.
적 미드라이너 트와이스 페이크가 점멸로 내뺐다.
"들어가시고~."
슈루룩!
독단검이 빨려 들어가며 트페의 체력을 바닥낸다.
바닥냈을 뿐 죽인 건 아니지만 괜찮다.
딱 2초 기다리면 죽는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레전드님을 도저히 막을 수 없습니다!
레드 버프에 의한 깔끔한 딜계산.
손목이 안 좋을 뿐 머리까지 맛이 간 건 아니다.
이번 판은 정글 세코를 하고 있다.
사정상 라인을 교환하게 됐다.
'아니, 뭐 해달라니까 해주더라고.'
손목이 좀 피로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라인전은 잔무빙도 해야 되고 움직일 구석이 많다.
정글러는 갱갈 때 빼고는 크게 안 움직여도 된다.
그리고 다른 한 가지 이유가 있어 권했다.
─아군이 당했습니다.
적이 학살 중입니다.
정말 개탄스럽게도 아군 탑이 당해버렸다.
나와 라인을 교환해준 친구가 고전 중이다.
"아, 리심 때문에 초반에 말려서……."
"안타깝네요. 근데 아시다시피 미드봇 위주로 봐야 되잖아요? 탑이 무리하면 안되는데."
"……."
했던 말 고대로 되돌려주고 있다.
유치하긴 하다만 자존심 싸움이다.
저 친구도 나 만큼 할 자신이 있으니 라인 교환을 했겠지.
근데 이걸 어쩐다?
'라인을 살리고 말고는 정글러 마음이거든.'
이전 판에 지도 탑을 안 봐줬으니 할 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거기서 한술 더 떴다.
정글러는 영악해야 한다.
동선을 어떻게 잡냐.
그리고 자신의 위치를 언제 노출시키냐.
이 두 가지로 상대의 플레이를 유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내가 봇라인에 모습을 보이면 상대는 마음 놓고 탑갱을 간다.
갈 마음이 없다가도 생기게 된다.
흔히 말하는 대각선의 법칙이다.
'그 법칙은 봇에서 이득 봤으면 탑에서 사리라는 소리지만.'
반대로 적 입장에서는 봇에서 손해를 봤으니 탑이라도 따야지.
나는 등을 조금 떠밀어줬을 뿐이다.
악조건을 버티지 못한 아군 탑의 기량 문제다.
"죽어도 괜찮아요. 아래가 흥했으니 미드봇이 캐리하면 되죠."
"네……. 최대한 버텨보겠습니다."
당하는 입장에서는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분명히 잘했는데 왜 이렇게 게임이 안 풀리지?
내가 그렇게 만들었으니까
이런 식의 트롤링은 직접 말해주지 않는 이상 보통 모른다.
웬만한 실력자들도 그럴지언데 일반 유저는 말할 것도 없다.
전 판만 해도 고개가 뻣뻣하던 녀석이 잘 익은 벼처럼 수확 대기 중이다.
여기서 더 몰아붙여서 멘탈을 가루로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인성질도 적당히 해야 한다.
특히 현실에서는 뒤탈이 있을 수 있다.
복학하자마자 밤길 조심하며 다니는 것은 사양이다.
오히려 여기서 대인배스러운 모습을 보인다.
못해도 괜찮다며 대수롭지 않게 넘겨준다.
'군대를 갔다 와서 그런지 나도 성질이 참 많이 죽었어.'
별짓 하지도 않았는데 기분이 풀린 것 같다.
무엇보다 당장 게임을 이기는 게 중요하다.
그도 그럴게 봇라인이 위태위태하다.
슈욱!
봇라인 뽑기 기계가 대성황이다.
던질 때마다 끌려가는 느낌.
절대 내 기분 탓이 아니다.
"나 무빙 했는데 또 끌렸어……."
"성훈형이 괜찮대요. 우리는 천천히 후반 봐요."
유리야가 울먹거리며 징징댄다.
그에 대답하는 꼬라지가 가관이다.
괜찮아요, 대놓고 끌려서 스펠 다 빠졌지만 괜찮아요!
우리에겐 꿈과 희망이 가득 찬 미래가 기다리고 있으니까!
'하나도 안 괜찮아!'
봇라인을 분명 두 번이나 따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인전을 이길 기색이 안 보인다.
탑에서 라인전을 할 때부터 눈치는 깠는데 생각 이상으로 못한다.
'쟤네가 이전 상대보다 잘하는 애들인 건 나도 아는데.'
첫 번째 상대였던 산악 동아리.
니들이 산에서나 날고 기지 게임에서는 아니잖아.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가볍게 원투펀치 날려줬다.
그리고 이번 두 번째 상대는 종합 게임 동아리다.
게임 동아리 답게 나름대로 실력이 있다.
그래봤자 나한테는 턱도 없지만.
까꿍!
적 정글러 리심과 마주쳤다.
엄밀히 말하면 기다리고 있었다.
적 블루 지역의 부쉬에 박스를 깔고 대기했다.
속임수 박스가 튀어 나오며 적에게 공포를 건다.
상대는 짧은 시간 행동불능에 빠진다.
뒤통수를 후려치자 깜짝 놀란다.
이~쿠!
생존 욕구가 충실한 녀석인 듯하다.
궁극기가 아깝지도 않은지 냅다 까버린다.
점멸과 방호까지 아낌없이 사용해 도주했다.
까꿍!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였겠지만 나갈 때는 아니란다.
도망가는 경로를 예측해 박스를 깔아뒀다.
상대는 다시 한 번 공포에 질린다.
"들어가시고~."
공포에 질린 상대에게 독단검을 던지며 점화.
리심은 그제서야 덧없는 도주를 포기했다.
얌전하게 최후를 맞이한다.
'정글은 완전히 멸망시켰고, 문제는 탑이랑 봇인가.'
내 라인을 이겼다고 게임을 이기는 게 아니다.
팀게임이 가진 구조적인 문제.
나머지 팀원들이 못하면 질 수밖에 없다.
탑이 망한 건 인과응보지만 봇은 너무 상정 외다.
풀어줬는데도 못하니까 살짝 화나려고 한다.
갈구기 이전에 이기는 게 급선무다.
'라인전 단계에서 한 번 터트리면 좋은데…… 어디 보자.'
적팀의 봇듀오가 아군을 압박하고 있다.
원딜 이즈레알과 서포터 풀리츠크랭커가 세차게 몰아친다.
2킬 먹여준 유리야가 겁나 때려주고 싶은 무빙을 밟는다.
"살려줘! 풀츠가 나 끌라 그래!"
쭉 도망갔으면 사는 걸 이상하게 돌아다니다가 각을 줬다.
빼도 박도 못하게 각도가 좁혀지며 그랩.
풀리츠크랭커의 로켓 주먹이 쏘아진다.
점멸이 없는 유리야의 운명은 사요나라.
이즈레알이 앞비전을 하며 호응한다.
마법 화살에 갈갈이 찢겨 죽는다.
"들어가시고~."
"히잉……."
유리야의 죽음을 배웅해줬다.
꼭 그런 의미로만 말한 건 아니다.
보고 있자니 사고 칠 각이라 미리 왔다.
푸욱!
유리야가 죽는 사이에 적의 배후에 접근했다.
은신 이동으로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살며시.
비전이 빠진 이즈레알을 먼저 보내준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더블 킬!
레전드님은 전장의 화신입니다!
풀리츠크랭커도 그 뒤를 따라간다.
결과적으로 생각했던 상황이 됐다.
적 봇듀오를 따내고 오브젝트인 용을 챙겼다.
"갱 오는 거 알고 일부러 끌린 거 알죠?"
"야, 유리야."
"네, 선배."
"게임 끝나고 보자."
"네엥……."
첫 판부터 느끼고는 있었다.
이 녀석 정말 다이아 맞아?
랭겜 천 판이나 했다며?
불현듯 생각이 들었다.
많이 했다고 꼭 잘하는 건 아니지 않을까…….
내 기준에서는 많이 하면 당연히 잘해져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세상에는 여러 사람이 있고, 그 여러 사람에 유리야는 왠지 포함이 될 것 같다.
그 불안한 생각 때문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띠꺼운 녀석이 말한 대로 한 판 지면 끝이다.
'일단 이 판은 한숨 덜었지만.'
7킬을 쓸어담으며 압도적으로 성장했다.
용을 챙김으로서 상대의 흐름도 끊었다.
애초에 상대 수준이 전 판과 도찐개찐이다.
좀 더 잘한다고 해봤자 귤과 오렌지의 차이다.
'최소 한라봉 정도는 돼야 명함을 받아주지.'
이후의 게임은 아주 간단하게 일단락.
……까지는 아니고 수차례 말썽이 있었다.
뽑기 기계에서 인형이 뽑히듯 유리야가 쏙쏙 잡아 끌린다.
"히잉, 죄송해요. 나 자석 달렸나 봐."
돌대가리가 자성을 띤 자철석이라면 이해는 된다.
계속 끌리면서 상대에게 꽁킬을 헌납한다.
그런 유리야의 말썽과는 상관없이 게임은 마무리 되어간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혼자 적을 끊고 돌아다닌다.
상대 정글을 장악하고 들어오는 족족 잡아먹는다.
그렇게 아예 숨도 쉬지 못하게 해놓고 계획을 실행한다.
내가 플레이 하고 있는 세코라는 챔피언.
초반에만 강하지 중반만 지나면 유통기한이 온다.
리픈을 할 때처럼 무쌍을 찍는 건 불가능하다는 소리다.
'대신 솔플하기에는 이만큼 좋은 챔피언이 없어.'
오브젝트 챙기는 능력이 탁월하다.
약속된 시간이 되자마자 몰래 들어갔다.
갓 젠이 된 따끈따끈한 햇바론을 먹어치울 시간이다.
크롸라라라-!
로드 오브 로드에서 가장 강한 오브젝트다.
동양의 용과 같은 형체를 한 괴물 자식.
당연히 혼자 잡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세코는 정글 아이템만 두루 두르면 할 수 있다.
궁극기인 환영으로 자신의 복제품을 만든다.
정글몹 한정 추가 데미지가 두 배로 가해진다.
─바론 백작을 처치했습니다!
가장 강한 오브젝트.
혼자서는 못 잡는 괴물.
그만큼 막대한 보상이 떨어진다.
지는 게임도 역전시킬 만한 영향력이다.
하물며 이기는 게임은 말할 것도 없다.
게임의 승패에 결정타를 쑤셔 박았다.
[게임을 승리했습니다!]
[포인트를 123만큼 획득합니다.]
게임 승리시 활약에 따라 포인트를 얻는다고 했던가.
과정이 고돼서인지 보상 또한 쏠쏠하다.
동아리내 민심 또한 사로 잡았다.
"이 형 무슨 프로게이머에요? 게임을 혼자 끝내버리시네."
"와…… 나 이렇게 잘하는 사람 현실에서 처음 봐."
깐족대던 녀석도 더 이상 찍소리도 못한다.
지가 못하는 판을 캐리해줬으니 당연하다.
심지어 대수롭지 않은 듯 웃어 넘겼다.
인망 있는 선배의 모습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손목이 다소 시큰 거리지만 못 버틸 정도도 아니다.
순풍에 돛 단 듯 완벽하게 승승장구하고 있긴 한데.
근데…… 왜 이렇게 찝찝하지.'
하지만 내 기분은 찝찝 그 자체다.
설마가 왠지 현실이 될 것 같은 기분이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한 상태에서 검색해봤다.
'지저스…….'
누군가 말했다.
진정한 적은 내부에 있다고.
========== 작품 후기 ==========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추천과 코멘트는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