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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전설의 재림-4화 (4/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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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업 문제 간단 해결 -->

처음 게임을 시작했던 시간이 새벽 한 시.

한 판당 소요 시간은 평균 30분 전후다.

큐잡는 시간을 포함하면 대충 그 정도 걸린다.

그리고 현재 아홉 번째 판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거 설마 지는 건 아니겠지?'

현재 시간 5시 30분 경.

눈꺼풀이 무거워질 수밖에 없는 시간이다.

아무리 대한민국 육군 병장이라도 사람이다.

밤을 꼴딱 새면 졸리게 되는 건 당연지사다.

졸린 건 의외로 문제가 아니었다.

그도 그럴게 엔돌핀이 돈다.

─아군이 당했습니다!

배치고사는 한 판, 한 판의 중요도가 높다.

값어치로 따지면 두 배 이상.

배치고사에서 한 판 지면 나중에 2승, 3승으로 복구해야 한다.

물론 나도 사람인 이상 한 판 정도는 질 수 있다.

롤 자체가 워낙 팀운 게임이라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이미 8연승을 해버린 마당이다.

'10연승을 찍어야 꿀잠을 잘 수 있어.'

화려한 복귀식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이겨야 하는 입장이다.

위기에 처하자 졸음이 싹 달아난다.

눈앞의 게임에만 집중한다.

파앙!

방금 전, 아군이 바론 대치를 하다 잘라 먹혔다.

그리고 적은 신나게 바론을 치고 있다.

나는 봇라인 스플릿 도중.

'구리가스를 따내고 억제탑을 미는 게 최선이긴 한데.'

녹록지가 않아서 문제다.

적 미드라이너 구리가스.

아예 거리를 주지 않고 사릴 생각이 한가득이다.

파앙!

저렇게 멀리서 술통만 굴리고 있다.

내가 플레이하고 있는 리픈.

근접 챔피언이라 접근하는 게 힘들다.

터억!

터억!

미니언을 앞세워 포탑을 치는 게 할 수 있는 전부다.

물론 포탑만 깰 수 있어도 억제탑까지는 확정으로 민다.

바론과 교환한다면 나쁘지 않은 그림이지만 상대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

파아앙!

구리가스의 술통 폭탄이 작렬한다.

궁극기를 사용해 라인을 클리어했다.

지독한 녀석이다.

그렇게 해주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언제까지 사리나 두고 보자 했지?'

술통 폭탄은 전형적인 광역 포킹이다.

더해서 맞은 상대를 밀어내는 효과가 있다.

그러니까 맞기 직전에 앞으로 무빙을 밟으면.

쿠훙!

내 몸이 적 구리가스의 위치로 배달된다.

바로 스턴을 걸고 두들겨 팬다.

상대가 반응하기 전에 녹인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미드에서 아군 호구 먹고 잘 큰 구리가스다.

라둔의 죽음투구로 주문력을 왕창 올렸다.

반대로 몸은 당연히 물렁살이다.

깔끔하게 해치우고 포탑을 밀었지만.

─아군이 당했습니다.

적 더블 킬!

적은 전장의 화신입니다!

적팀이 바론 백작을 처치했습니다!

'사고란 사고는 다 치고 돌아다니는구나…….'

산 넘어 산.

아니, 산 넘어 에베레스트다.

아군이 어설프게 바론을 막다가 전멸했다.

어금니가 꽉 깨물어지는 상황이지만 목 마른 자가 우물 찾는다.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 아니 넥서스로 간다.'

다이아 티어답게 상대는 판단이 날카롭다.

두 명이 미드를 밀고, 나머지 두 명이 귀환을 했다.

원딜 배인과 서폿 랄라.

여기서 승부수를 던진다.

쿠훙!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E스킬 용기로 미끄러지며 점멸.

순식간에 접근해 스턴을 건다.

그리고 터트린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더블 킬!

티아매트와 궁극기.

점화까지 걸자 공중분해다.

적 봇듀오가 한순간에 증발해버린다.

'내 전매 특허 콤보인데 요즘 애들은 모르나 보네?'

과거 전성기 시절, 내 리픈이 필밴을 먹었던 이유다.

그것도 벌써 2년 전이니 잊혀질 만도 하다.

아직 두 명의 적이 남긴 했지만.

─아군이 당했습니다!

처음에 끊겼던 아군 정글러 이블퀸.

부활하자마자 몸을 던져서 적의 귀환을 끊었다.

─아군이 넥서스를 지목!

─아군이 넥서스를 지목!

─아군이 넥서스를 지목!

하는 건 쥐뿔도 없으면서 핑은 오질나게 찍는다.

그래도 기특하게 적의 귀환을 늦춰줬다.

필사적으로 쌍둥이 포탑을 부순다.

정말 간발의 차이로 넥서스를 터트리는데 성공했다.

'시발…… 배치고사에서 인생 게임을 하다니.'

해내고 나자 몸에 힘이 쫙 빠지는 느낌이다.

아홉 번째 승리를 쟁취해냈다.

이것으로 9연승.

다시 생각해봐도 어이가 없는 게임이었다.

-미드 봇 사람임? 세 명이 리픈 하나를 못 막아?

-아니ㅋㅋ 탑이 리픈 키운 게 잘못이지

-백정 새끼가 탑갱 안 온 게 잘못ㅅㄱ

나도 어이가 없는데 적들은 오죽할까.

게임이 끝나자마자 전적창에서 싸우고 난리가 났다.

알고는 있었지만 다이아 구간 자식들은 전체적으로 답이 없다.

'남탓할 줄만 알지 상대가 잘했다고는 생각을 안 한다니까.'

어설프게 잘하는 애들이라 쓸데없이 프라이드만 높다.

어차피 곧 지나칠 구간이니 딱히 신경 쓰진 않는다.

조금 다른 녀석도 눈에 띄었다.

-리픈님 ㄹㅇ레전설? 잉벤 보니 진짜 같은데ㄷㄷ

솔직히 내 입장에서는 별 감흥이 없다.

이런 경우가 어디 한두 번이었겠는가.

오늘만 해도 적지 않게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가 재밌긴 하다.

-레전설이 누군데?

-시즌2 랭킹 1위. 지금으로 치면 테이커?

-아~ 역시! 맞라인 설 때부터 알아봤음

방금 전까지 정글 탓을 하던 탑라이너가 우두루급 태세 전환을 마쳤다.

남탓을 하던 다른 녀석들의 태도가 속속들이 돌변한다.

'다이아 구간이 이래서 재밌어.'

계급 사회 느낌이 물씬 풍긴다.

잘하는 사람만 만나면 굽실댄다.

남자들의 사회라는 게 이런 느낌이 있다.

철저한 실력주의.

때에 따라선 인성보다 앞서기도 한다.

물론 나는 인성도 굉장히 된 사람이지만.

'솔직히 틀린 말은 아니야.'

적어도 인성 관련해서 물의를 일으킨 적은 없다.

아무튼 선택의 시간이다.

종지부를 찍을지, 아니면 이쯤 해서 그만 둘지.

'마지막 한 판 정도는 마무리를 하고 가는 게 순리겠지.'

원래 졸음이라는 게 고비만 넘기면 버티는 것이 어렵지 않다.

그리고 그 고비는 진작에 넘긴지 오래다.

배치고사의 초절정 팀운 없는 판.

방금 전 승리를 쥐었으니 여러모로 할 만하다.

이런 판을 설마 두 번 만날 리 있을까.

만난다 해도 이겨낼 자신이 있다.

슬슬 게임에 감도 잡힌다.

'그렇게 뭐 많이 변하지도 않았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다.

1년 하고도 10개월.

짧은 시간은 아니지만 시간을 점프하는 수준도 아니다.

그 사이에 내가 게임을 아예 포기한 것도 아니다.

민간인 입장에서는 오해할 수 있지만 군인도 사람이다.

휴가 나가면 당연히 게임하고 왁자지껄 논다.

패치된 사항을 어느 정도는 따라가고 있었다.

'새발의 피 수준이긴 하지만 어차피 시간 문제…… 어?'

열 번째 큐를 돌렸다.

큐는 생각보다 이르게 잡혔다.

수락을 누르려던 마우스를 채 클릭하지 못했다.

'아니, 갑자기 왜 이래.'

9연승을 마치고 힘이 쫙 빠졌던 게 착각이 아니었던 건가.

완벽하게 회복했던 손목이 갑자기 당긴다.

잊고 있던 통증까지 느껴진다.

착각인가 싶어 조심스레 움직여봤다.

손목 안쪽이 찌르는 듯 아프다.

회복하기 이전 상태로 되돌아왔다?

'아무리 무능한 신이라고 해도 그렇지 시간제였어?!'

심지어 타이밍도 최악이다.

배치고사 마지막 판을 남겨둔 상황.

화려한 복귀 신고를 마치려던 찰나에 날벼락이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장본인에게 설명을 요구한다.

무능한 신은 부르기도 전에 도착해 있었다.

[당신이 가진 포인트를 전부 소진했을 뿐입니다.]

신명조가 아니라 궁서체.

눈치 채고는 있었지만 글씨체가 다른 건 착각이 아니었나 보다.

'포인트라니 설마 그거?'

처음 영문 모를 글자가 떠올랐을 때 분명히 보았다.

게임을 승리하라던가, 포인트를 모으라던가.

포인트로 스킬을 구입할 수 있다던가.

[게임 승리시 활약에 따라 포인트를 획득합니다.]

[포인트를 소모하여 스킬을 구입할 수 있습니다.]

병영도서관에서 하도 많이 본 내용이라 건너뛰었다.

나에게는 딱히 필요하지도 않다.

증명은 방금 마친 참이다.

'그런 거 없어도 다 뚜까 팰 수 있는 실력이 있는데 뭣하러.'

정 필요하다면 쓰겠지만 당장은 아니다.

손목만 고쳐줘도 차고 넘친다는 사실이 증명됐다.

그런데 갑자기 고쳐준 손목을 다시 원상복구 시키고 있어.

'공짜가 아니라고 쳐도 손목 고치는 게 그렇게 힘들 리가 없잖아?'

내가 병영도서관을 하루이틀 들락거린 것도 아니고 요점은 완전히 꿰뚫었다.

저 포인트인지 뭔지로 손목을 고친 거겠지.

그렇기에 더욱 의아한 일이다.

"가만히 둬도 낫는 손목을 고치는 게 힘들어?"

이 무능한 신 새끼야.

턱 끝까지 차오른 말을 꿀꺽 삼켰다.

사정을 듣기 전까지는 차분함을 유지한다.

[당신의 생각 이상으로 손목의 상태는 좋지 않습니다.]

"댁이 의사야? 의사보다 잘 알아?"

[민간 병원에서 정밀 진단을 받는 걸 추천드립니다.]

"……."

딱히 심하게 다치지는 않은 것 같다.

괜히 민간 병원에서 돈 쓰기도 싫다.

군의관이 별 부상 아니라고 해서 생각도 안 하고 있었는데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다.

곰곰이 곱씹을수록 불안해진다.

원래 군의관들이 신뢰도가 낮다.

어느 곳을 다쳐도 맨날 똑같은 약만 주고, 따듯한 물 많이 마시라고만 한다.

"혹시 장애가 남거나 그런 건 아니지?"

[일상 생활에는 지장 없습니다.]

"휴, 뭐 별 거라고 겁주고 있어."

[하지만 프로게이머로서는 다릅니다.]

회복 기간이 2개월이 아니라 훨씬 더 걸린다.

회복을 한다고 해도 완전히 이전처럼 돌아가진 않는다.

'무능한 신의 말을 전부 믿는 건 아니지만…….'

짐작 가는 바가 사실 없지는 않다.

손목 회복이 군의관에게 들은 것보다 더디더라.

그냥 물 안 좋고, 시설 안 좋은 군대에 있어서 그렇다고 여겼지만 여기까지 들으면 부정하기가 힘들다.

[제가 당신에게 나타난 이유입니다. 본래라면 당신은 프로게이머를 할 수 없습니다.]

"……."

딱히 말문이 막힌 게 아니다.

지금의 상황이 드디어 이해가 됐다.

어째서 나에게 이런 기연이 떨어졌는지.

기연이 아니라면 프로게이머를 할 수 없는 미래였다.

"그래서······ 그 포인트를 쓰면 고칠 수 있다는 거야?"

[신뢰해주시는 겁니까?]

"믿고 않고 자시고가 어디 있겠어."

이러니저러니 잘난 척 떠들었을 뿐 알고 있다.

나는 어디까지나 도움을 받는 입장이다.

물론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거래.

저 녀석은 나의 스타성을 원한다고 했다.

그리고 난 취업 걱정을 덜고 싶다.

그렇다 해도 입장이 바뀌진 않는다.

[그럼 처음부터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당신이 게임 시스템이라고 말하는 그것은 편의상 참고했을 뿐 근본적으로 따지면 다릅니다. 혹시 '업'이라고 들어보셨는지요?]

파프리카TV의 Up버튼이라면 알지.

한 2초 고민했지만 역시 아니다.

업이라 함은 카르마(Karma).

과거의 행동이 미래에 영향을 미친다.

윤회 사상도 카르마가 바탕이 된다.

살짝 머리가 아파지는 이야기다.

[게임으로 따지면 경험치입니다.]

"……그거 신성 모독 아니야?"

[그런 관점은 저에게 없습니다.]

인간이 아닌 만큼 상식 자체가 다를 수 있다.

아무튼 무능한 신의 요지는 알 것 같다.

경험치……, 아니 업이 부족하다고 한다.

"그 업을 쌓으면 손목도 고칠 수 있다는 거네?"

[그렇습니다.]

"하아…… 어떻게 쌓을 수 있는지 들어나 보자."

생각보다 귀찮은 일이 돼버렸다.

날로 먹는 줄 알았는데 상당히 깐깐한 모양이다.

하지만 나쁜 이야기는 아니다.

취업 걱정을 덜겠다는 건 반쯤 농담이다.

반대로 나머지 절반은 진지하다.

전역한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거다.

하지만 프로게이머로서의 꿈도 마찬가지다.

군대를 갔다오니 낙동강 오리알 신세.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업은 당신의 행적에 의해 쌓입니다. 게임 이외에도 여러가지로 방식으로 쌓을 수 있습니다.]

대회에 출전한다.

영향력을 미친다.

이름을 알린다.

기타 등등.

딱딱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는 듯하다.

그렇다면 됐다.

쉽게 포인트를 쌓을 방법이 떠올랐다.

'오랜만에 얼굴 좀 볼까.'

씹었던 후배의 연락을 재고할 필요성이 생겼다.

========== 작품 후기 ==========

3, 4화 일부 수정되었습니다.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추천과 코멘트는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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