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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불얼로 대표되던 시즌2의 롤판.
초신성처럼 나타나 한국 홀로 갈아엎었다.
대망의 롤드컵 우승으로 화룡점정을 찍었다.
이미 세계적인 스타가 돼버린 테이커를 모르는 롤 유저는 없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못한 사람.
실력이 아니라 운이 너무 없었다.
한 마디로 타이밍이 오질나게 안 좋았다.
─니들 레전설 기억하고 있냐?
한 온라인 게임 커뮤니티 게시판.
얼마 전부터 갑자기 화제가 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대부분의 이들에게 낯선 이름이다.
그럼에도 붙은 불이 꺼지지를 않는다.
그도 그럴게 레전설.
아는 사람은 도저히 잊을 수가 없는 세 글자다.
└레전드도 아니고 레전설은 뭐야?
글쓴이-그 레전드와 전설의 합성어지
└뉴비들은 모르려나? 캬 그립네ㅋㅋㅋㅋ
벌써 2년이나 지난 이야기다.
엄밀히 따지면 1년 하고도 10개월.
성인 남자가 군대에 다녀오는 기간이다.
즉, 레전설은 국방부 퀘스트를 수행하러 갔다.
이제 곧 전역날을 앞두고 있다.
과거 그의 추종자들은 기대로 한껏 달아올랐다.
─레전설이 누구냐면ㅋㅋ
지금 대세 AOS게임이 롤이잖아
근데 2년 전만 해도 카오스였거든?
그 카오스에서 레전드라는 유저가 있었는데······
로드 오브 로드(Lord of Lords).
스타크래프트의 뒤를 이은 차세대 E-스포츠다.
국민 게임으로 자리 잡은 5대 5의 AOS 장르 게임.
하지만 한국에 이런 AOS장르가 유행했던 건 처음이 아니다.
2011년 이전만 해도 카오스라는 게임이 한창 유명세를 떨쳤다.
국민 게임까진 아니어도 알 만한 사람들은 알았다.
한 가지 재밌는 건 그 카오스의 고수들.
현재 롤판의 프로게이머, 혹은 네임드가 되어있다.
└레전드가 그 카오스의 원탑이었다는 소리네?
└엥, 왕린이 원탑 아니었음?
글쓴이-걔도 원탑이라 불릴 실력이긴 했지
└뭔 소리야. 원탑이 왜 두 명 세 명씩 있어
그럴 수밖에 없는 독특한 환경이었다.
카오스는 랭킹 시스템이 무려 없다.
때문에 우기기만 하면 너도 나도 원탑!
까지는 아니어도 불분명했던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보편적으로 인정하는 고수들이 있는 법이다.
커뮤니티들을 보면 대략적으로 나온다.
SKY T1 S팀의 탑라이너 왕린.
유명BJ인 김민식도 인정을 받았다.
그들과는 한 가지 근본적으로 달랐다.
왕린도, 김민식도 상당한 실력자나 뒷배.
소속된 클랜에서 적지 않은 조력을 받았다.
레전드만은 예외였고, 그렇기에 더욱 유명했다.
─레전드는 특수 경계 대상이었지
일부 클랜에서는 영입하려고 굽실대고
적대 클랜에서는 대놓고 견제하고ㅋㅋㅋ
└그래서 결국 카오스 원탑이 누구야?
글쓴이-말했잖아. 랭킹이 없었다니까
└랭킹 없어도 그냥 붙어보면 알 수 있잖아
붙어본다고 결과가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AOS장르는 기본적으로 팀게임.
1대1인 스타크래프트와 달리 승패로 실력의 우위를 판정하기 힘들다.
물론 롤과 비슷하게 라인전이란 개념은 존재하지만 변명거리가 생긴다.
나는 라인전이 특기가 아니다.
암살과 운영을 훨씬 잘한다.
그렇게 우기면 할 말이 없다.
특히 유명 클랜 소속이라는 것.
한국 사회는 목소리 큰 쪽이 유리한 면이 많다.
이를 테면 져놓고 이런저런 변명을 붙인다던가.
개인인 레전드 혼자서는 판가름 내는 게 불가능했다.
─그러던 와중에 로드 오브 로드가 나온 거야
게임성도 괜찮고, 정식 대회도 열린다고 하고
무엇보다 랭킹 시스템이 있다는 게 파격적이었어
카오스 유저들이 대거 몰리면서 랭킹 쟁탈전이 벌어졌지!
└그 랭킹 쟁탈전에서 짱 먹은 게 레전드?
글쓴이-압도적으로. 2위랑 200점 차이 났었지 아마
└레전드에 전설이 곱해져서 레전설이 돼버렸자너ㅋㅋ
└ㄹㅇ추억이네. 원탑 인증이 제대로 사이다였는데
로드 오브 로드 시즌1, 독보적인 랭킹 1위로 군림했다.
그리고 시즌2가 시작하자마자 바로 1위.
당연한 듯 찍으며 가버렸다.
군대로 Bye Bye.
허무한 결말이지만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한국 남자로 태어난 이상 거부권이 없다.
그렇기에 아쉬움이 흘러나온다.
그도 그럴게 당시의 랭킹 2위가.
─부정할 수 없는 원탑이 레전설이었다면
혜성 같이 나타나 그 뒤를 바싹 붙은 zl젼 고수가······
니들도 알지?
모르면 진짜 어디 가서 롤유저라고 하지 마라
└아, 테이커?
글쓴이-당시 아이디는 파전고였음
└레전설 군대 안 갔으면 지금 롤챔스 어떻게 됐을까
└롤챔스가 아니라 롤드컵 우승팀이 바뀌었을지도?
물론 어디까지나 추측의 범주에 지나지 않는다.
로드 오브 로드의 솔로랭크.
랭킹이 높다고 대회에서도 잘하는 건 아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화두가 달아오른다.
추측이란 건, 인간의 상상이란 건 무궁무진하다.
만약이라는 가정 하에 너도 나도 한 마디.
그 진위를 파악할 수 있는 순간이 이제 곧이다.
레전설의 전역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 * *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소대장님."
"그냥 편하게 형이라고 부르라니까?"
"말출 다녀오면 형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얼굴도 가물가물한 손병장님.
가장 고참인 선임부터 시작해서 맞선임까지.
앞서 선임들이 밟았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다.
나에게도 과연 이 순간이 찾아올까?
결국 찾아왔고 드디어 말출을 나가게 됐다.
소대장님과 끌어안으며 뜻 깊은 인사를 나눈다.
"야, 프로게이머 되면 우리 3중대 1소대 잊으면 안된다. 알았지?"
"······."
어제 롤드컵을 소대장님도 역시 보신 모양이다.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우승!
대대 전체가 난리가 났지만 우리 3중대 1소대는 더했다.
〈형 테이커랑 아는 사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그럼 같이 게임도 하고 그랬겠네.〉
〈최성훈 병장님도 전역하면 프로게이머 하시는 겁니까?〉
부정을 해도 지들끼리 신나서 떠들더라.
이해는 하는 게 로드 오브 로드.
중대 내에서 내가 좀 유명인이다.
'이래 봬도 왕년에 랭킹 1위였으니까.'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입대 날짜가 2012년 1월 21일.
당시만 해도 로드 오브 로드의 인기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자대에 전입한 후에도 1년 가까이 별 일 없었다.
롤보다는 스타 얘기가 대세였다.
그 스타 얘기를 하는 선임들이 전역했다.
시간이 지나 상병을 달았을 때였을까.
부대 내에 갑자기 로드 오브 로드 열풍이 불었다.
새로 부임한 소대장님이 롤충이었던 게 계기가 됐다.
'그전부터 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방아쇠 역할을 한 거지.'
아무튼 그때부터 내 이름이 대대적으로 알려졌다.
쟤 옛날에 롤에서 엄청 유명했다더라.
오~ 검색하니까 아이디도 나오는데?
이등병, 일병이었다면 고생 깨나 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미 풀린 상병이라 오히려 특권이었다.
외박 나가서 술 얻어 먹는 대신 같이 게임 하며 캐리해줬다.
특히 소대장님과는 돈독한 사이가 되었다.
그 소대장님이 되도 않는 소리를 하고 계신다.
사실대로 말할까, 곱씹은 나는 빙 둘러 고개를 저었다.
"저도 전공이 있고, 졸업도 해야 돼서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무슨 대학이고 전공이야! 어제 상금이 100만 달러라는 거 못 들었어?"
"…….'
나도 귀가 있고 눈이 있는데 당연히 들었다.
롤드컵의 우승 상금이 100만 달러.
한화로 무려 12억원이다.
'다섯이서 나눠도 2억원이 넘잖아······.'
평범한 직장에 취직하면 최소 5년 내지 7년치의 연봉이다.
실제 저축할 수 있는 금액을 생각한면 훨씬 오래 걸린다.
나라고 어찌 탐이 안 나겠는가.
"아시잖아요 이거."
반깁스의 신세를 지고 있는 오른 손목.
심장 위치까지 들어서 보였다.
들떴던 낯빛이 가라앉은 소대장님이 말을 이어온다.
"아······ 그랬지. 그래도 낫고 나면 할 수 있는 거잖아. 그치?"
"네, 나중에 잘된다면 연락 드리겠습니다."
인사를 마치고, 친한 부대원들과도 포옹을 했다.
남자들 사이에 참 남사스럽게.
알고 있음에도 막상 닥치니 하게 된다.
위병소문을 지날 때쯤 돼서야 머릿속이 들끓는다.
'잘된다면이라.'
시야에 비치는 오른 손바닥.
쥐었다, 폈다.
쥐었다, 폈다.
머리에서 보낸 신호보다 늦는다는 느낌이다.
낫는 도중이고, 재활이 필요하니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하지만 낫는다고 과연 할 수 있을까.
2년이나 되는 공백을 메울 수 있을까.
'글쎄…….'
남들이 가지는 기대치.
소대장님이 아니더라도 잘 알고 있다.
특히 몇몇 커뮤니티에서는 과한 관심을 쏟는다.
과거의 이름값을 기대하는 사람이 많다.
장본인인 나로서는 씁쓸하다.
솔직하게 결정하지 못했다.
'당연히 하고는 싶지만.'
사실 반쯤 접었던 꿈이다.
스타크래프트도 아니고 AOS장르로 어떻게 먹고 살아?
심지어 스타크래프트 판도 조작이다 뭐다 터지면서 망했다.
그런데 군대에 있는 동안 세상이 변해버렸다.
같이 어울리던 녀석들이 프로게이머를 하고 있다.
어제는 한 녀석이 롤드컵을 우승하고 상금까지 타가더라.
하지만 앞으로의 인생을 생각해야 한다.
리스크와 리턴.
실패하면 2~3년 공치는 걸로는 안 끝난다.
3개월만 지나면 스물 네 살이다.
슬슬 현실이라는 것을 마주할 나이다.
흥미 본위로 프로를 희망하기는 힘들다.
'이럴 줄 알았으면 군대를 미뤘을 텐데.'
이제 와서 후회를 한들 어쩌겠나.
지나간 과거는 돌이킬 수 없다.
현실과의 상담이 필요하다.
* * *
입대를 하기 전의 나는 솔직히 풀려있었다.
꽉 막혀 살았던 고등학교 3년.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놀게 된 건 필연이다.
먹고 마시고 하는 건 둘째 치고 게임에 대한 한이 깊었다.
'시간만 있으면 저 새끼들 다 족치고도 남는데.'
카오스 시절에 워낙 별의별 일이 다 있었다.
특히 클랜 자식들과는 오죽 얽혔다.
그때마다 아쉬웠던 것은 시간.
학생인 이상 어쩔 수가 없다.
하지만 대학교에 들어가며 해금됐다.
마음껏 한바탕 제대로 날뛰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는 그 시간이 너무 지나고 말았다.
'정말 하고는 싶지만…….'
지난 사흘간 현실적으로 고민했다.
프로게이머를 한다면 뭐부터 시작해야 하나.
일단 잊고 살았던 로드 오브 로드를 다시 뼈빠지게 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2년이란 시간은 짧지가 않다.
과거의 실력을 회복하는 것.
자신은 있지만 시간이 분명 많이 걸린다.
'손목도 완전히 나으려면 2개월은 걸릴 테고.'
2개월 후라니 너무 늦고 만다.
기다려서 한다고 해도 얼마나 성공할지 모른다.
애매하게 성공을 할 바에야 진로를 택하는 게 낫기도 하다.
'그냥 복학해서 구멍난 학점이나 메꾸는 게 맞겠지.'
프로게이머.
세간의 기대.
현실이란 벽은 녹록지 않다.
나도 이제 내 인생을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으면 안될 나이다.
괜찮은 대학교에 입학은 했지만 학점 관리를 역시 못했다.
당연한 인과응보.
다가오는 겨울 방학에 반드시 계절 학기를 수강해야 한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한 번 해볼까.'
방금 결심한 마당에 구차하지만 미련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사흘동안 최대한 손목의 상태를 관리했다.
한두 판 정도는 게임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가능성이 있다고 여겨지면 재고를 해볼까?
부질없는 미련이라는 건 누구보다 잘 안다.
게이머의 인생을 접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다.
마지막 미련의 종지부를 찍기 위해 컴퓨터를 켰다.
정말 오랜만에 로드 오브 로드에 접속했다.
다소 변하기는 했어도 익숙한 화면이다.
'그런데 좀 많이 변한 거 같은데?'
대규모 그래픽 업데이트라도 있었던 건지.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면 이해라도 하겠다.
모니터 앞에 3차원으로 글자가 붕 떠있다는 느낌이다.
[게임의 신이 당신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합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Yes or No.]
'……지저스.'
세 번의 기회.
취직 걱정을 타파할 마지막 찬스가 찾아왔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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