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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신에게 사랑받는 남자 (308/326)

  < [외전] 신에게 사랑받는 남자 >

  남들과는 다른 운을 타고 난 사람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런 사람들은 흔히 신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는 평을 듣는다.

  참으로 당혹스럽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나 역시 그런 부류에 속한 사람이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지금 로마에서 베르킨게토릭스라는 내 이름을 모르는 이들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갈리아가 낳은 불세출의 기재.

  히스파니아의 구원자.

  흉노 전쟁의 영웅.

  카이사르의 검.

  신에게 사랑받는 남자.

  이 거창한 수식어가 모두 나를 지칭하는 뜻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너무 과분한 감도 있지만 로마에서 나의 주가는 연일 상한가를 치고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조금 더 솔직해지자면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었다.

  그것도 엄청 부담스럽다.

  가장 큰 문제는 그걸 입 밖으로 낼 수 없는 신분이라는 점이었다.

  카이사르 님은 몇 번이나 강조했다.

  '자네는 이제 갈리아만이 아니라 히스파니아에까지 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일세. 심지어 브리타니아와 게르마니아까지 자네를 부러워하고 있지. 그러니 어렵겠지만 그들의 열망에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주게. 자네의 행보가 그들에게는 희망이 되어줄 테니까.'

  이런 말을 하는데 뭐라고 하겠는가.

  아, 죄송한데 저는 그럴 그릇이 아니라서 마음껏 엄살 부리겠습니다. 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카이사르 님의 말은 구구절절 옳은 말이었다.

  갈리아에서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는 가끔 고향을 방문하기만 해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도착 일정을 몇 주 전부터 들은 각 지역의 부족장들이 전부 모였으며, 어린아이가 있는 유력자들은 한결같이 아이들의 손을 잡고 찾아왔다.

  영웅의 정기를 조금이라도 받을 수 있게 머리를 만져달라 하지를 않나, 한 번 만져주면 신이게 은총을 받기라도 한 것처럼 호들갑을 떨며 좋아한다.

  로마에게 바라는 요구를 전달하는 걸 넘어 아예 대놓고 기도를 올리는 자들마저 있었다.

  부담스럽다.

  엄청나게 부담스럽지만 일단은 참았다.

  히스파니아라고 별반 다르지는 않았다.

  흉노 전쟁에서 히스파니아의 구원자라는 명성을 얻은 덕분인지 그쪽은 나를 타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카이사르 님의 소개로 히스파니아 최고 유력가문의 딸을 아내로 맞이한 덕도 보았다.

  아내는 아름다웠고 헌신적이라 나 역시 하루하루가 행복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그쪽 언어에도 능통해졌고 히스파니아에 갈 때마다 지역의 유지 이상으로 환영받기 시작했다.

  시간이 꽤 지난 지금은 갈리아와 히스파니아, 브리타니아와 게르마니아까지도 로마의 원로원 의원을 배출하고 있었다.

  그래도 머나먼 이국땅에서 로마로 온 사람들은 제아무리 원로원 의원이라고 해도 불안할 수밖에 없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이민족 출신으로 완벽한 로마의 주류로 편입된 나는 동경의 대상이었던 모양이다.

  동방에서 건너온 이들이 수레나스와 스파르타쿠스에게 느끼는 감정과 유사하다고 봐도 좋았다.

  "베르킨게토릭스 님, 이럴 땐 어떻게 처신하면 좋을까요?"

  "베르킨게토릭스 님, 이런 부탁에는 거절을 해야 하나요?"

  "베르킨게토릭스 님, 로마인으로서의 교양을 갖추려면 역시 키케로 님의 서적 정도는 필수로 읽어야 합니까?"

  수많은 질문들이 매일 같이 쏟아졌다.

  내 전공은 엄연히 군사 쪽인데 그런 쪽으로는 누구도 물어보는 이가 없다는 게 촌극이었다.

  그도 그럴 게 동방에는 사관학교가 있지만, 아직 북방에는 그런 기관이 자리 잡지 않았다.

  히스파니아와 갈리아, 브리타니아가 하나로 통합되었기에 각 부족들도 더 이상 전사 육성에 매몰되지 않았다.

  국방은 로마의 정규군이 책임지고 있으니 로마에 있는 원로원 의원들이 그런 분야에까지 신경을 쓸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특히 생산력이 날이 갈수록 폭증하고 있는 브리타니아와 갈리아는 문명의 발전에 제대로 중독된 모습을 보였다.

  마르쿠스 님은 '문명뽕에 거하게 취했다'라는 표현을 쓰셨는데 확실히 뭔가에 취한 것 같은 느낌이긴 했다.

  굳이 무기 들고 싸우지 않아도 배가 터질 정도로 음식을 먹고 포도주에 취할 수 있는데 누가 쌈박질을 하겠는가.

  툭하면 강을 넘어와서 시비를 걸던 게르마니아도 잠잠하니 그야말로 천국이 따로 없었다.

  그래도 모든 게 잘 풀리기만 하는 건 아니었다.

  동방의 국가들과 다르게 북방 민족들은 이제야 제대로 된 문명이 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점이 걸림돌이었다.

  게다가 동방은 위대한 마르쿠스 아우구스투스 덕분에 하나로 통합된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반면 북방은 여전히 갈리아, 브리타니아, 히스파니아, 게르마니아로 확실히 구분되고 있다는 점도 컸다.

  특히 예전부터 로마의 영토였던 히스파니아는 가끔씩 이상한 텃세를 부리기도 했다.

  그럴 때면 당연하다는 듯 반발하는 갈리아 쪽과 충돌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지리적으로도 붙어 있었기 때문에 특히 더 이 양쪽의 갈등이 심했다.

  게르마니아는 흉노에게 받은 피해를 복구하느라 정신이 없었기에 딱히 타지역에 신경을 쓰지 않았고, 브리타니아는 섬이라 어느 정도 따로 노는 경향이 있었던 까닭이다.

  하루 이틀 된 문제가 아니다.

  당장 사흘 전만 해도···.

  "베르킨게토릭스님!"

  "베르킨게토릭스 님, 이야기를 들어주십시오."

  정정한다.

  오늘도 반복되는 현실이었다.

  누가 봐도 나 화났소하는 표정으로 들어오는 두 사람을 보고 있으려니 절로 한숨이 새어 나온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자신의 표정이 어떨지 어렵지 않게 상상이 갔다.

  "오늘은 또 어떤 일인가?"

  언제나의 반복인가 싶었는데 느낌을 보니 뭔가가 싸했다.

  평소와는 다르게 뒤로 자신의 클리엔테스들을 줄줄이 거느리고 온 거 보면 꽤나 큰 문제인 것 같았다.

  "들어보십시오, 이 히스파니아 놈이···."

  "뭐라고? 갈리아 촌놈 주제에 어딜 혀를 함부로 놀려?"

  "뭐라? 너 지금 베르킨게토릭스 님도 촌놈이라 하는 거냐?"

  "저분은 갈리아 촌놈이 아니라 위대한 로마 시민이시다 이 야만인 놈아!"

  중재를 부탁한답시고 찾아와서는 또 지네끼리 싸우고 있는 두 사람을 보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각각 갈리아와 히스파니아를 대표해 원로원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저 둘은 항상 저런 식으로 싸워댔다.

  이유는 당연히 자신들의 고향의 이권을 위해서다.

  로마의 다른 의원들은 당연히 섣불리 둘 중 한 명의 편을 들지 않았다.

  그랬다가 갈리아나 히스파니아에서 미움을 사면 자신들이 얻어먹을 수 있는 떡고물이 줄기 때문이다.

  저 두 사람이 원로원 의원이 되기 전부터 이런 다툼은 쭉 있어왔다.

  예전에는 나도 각 지역의 분쟁을 막아야겠다는 사명감으로 적극적으로 중재에 임했다.

  갈리아는 내 고향이었고, 히스파니아 역시 나와 적지 않은 연이 있었으니 분쟁을 막는 게 내게 주어진 책무라 여겼던 것이다.

  엄청난 실수였다.

  그렇게 몇 번 중재에 성공하고 나니 다음부터는 분쟁이 일어날 때마다 저들은 재판장이 아니라 내 집으로 달려왔다.

  카이사르 님도 내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이쪽으로 일을 떠넘겨 버렸다.

  카이사르 님 본인이 전면에 나서는 것보다는 내 쪽에서 해결하는 게 그림이 좋다나 뭐라나.

  능력이 있는 사람이 일을 떠맡는 건 당연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동감한다.

  당연히 능력이 출중한 사람이라면 해결사로 중용되어야 마땅하다.

  문제는 나는 이런 쪽으로는 능력이 완전히 꽝이라는 사실이다.

  솔직히 털어놓자면 해결사로서의 내 명성을 드높인 무역 분쟁 사건의 중재안은 내 머리에서 나온 게 아니었다.

  나는 그저 카이사르 님이 술자리에서 했던 말을 기억하고 그대로 읊은 것뿐이었다.

  그랬더니 갈리아와 히스파니아에서 적당히 알아서 해석해서 어찌어찌 중재안이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리고 졸지에 나는 그토록 치열하게 싸우던 두 지역의 분쟁을 단숨에 끝낸 지성을 갖춘 남자로 등극해 버렸다.

  신문에서도 대대적으로 보도가 나왔다.

  <무력만이 아니라 지성까지 갖추었다? 카이사르의 검 베르킨게토릭스 의원의 놀라운 진면목에 대하여>

  이런 말도 안 되는 제목의 기사가 불러일으킨 파장은 어마어마했다.

  아내는 신이 나서 기사를 오린 뒤 집안에 장식하고,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뿌리고 다녔다.

  제발 그러지 좀 말라고 했지만, 주변은 이걸 내가 겸손을 부린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하지 말라고 하면 할수록 이상한 쪽으로 명성만 높아질 뿐이었다.

  차라리 그때 바로 인정했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텐데 지금은 너무 일이 커져 버렸다.

  내 운이 너무 좋다는 점도 일을 키운 주범 중 하나였다.

  그 이후로도 여러 가지 문제가 올 때마다 적당히 둘러댔을 뿐인데 요상할 정도로 갈등이 쉽게 봉합됐다.

  그 결과가 지금 이 꼴이다.

  "이야기 좀 들어주십시오. 이번에 회의에서 나온 각지의 식량수급과 예산 배분에 관한 문제인데···."

  타들어 가는 내 심정과는 무관하게 두 의원들이 뭐라뭐라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들어보니 언제나처럼 돈과 관련된 문제였다.

  좋아.

  대강 들어봐도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애초에 나는 군대를 이끌고 전투를 지휘하는 전략가이자 전사다.

  이쪽 분야라면 속이 시원해질 정도로 확실한 답을 줄 수 있는데 대체 왜 이딴 문제가 계속 나에게 오냔 말이다.

  그런 심정과는 반대로 주둥이에서는 거의 조건반사적으로 엄숙하면서도 나지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흐음···대강 어떤 상황인지는 알겠군."

  거짓말이다.

  머리랑 입이 따로 놀고 있는 이 현실이 너무나도 원망스럽다.

  "오오오! 역시 베르킨게토릭스 님이십니다."

  "대략적인 설명만 들으셔도 전부 꿰뚫어 보시다니···역시 카이사르 님의 오른팔이십니다."

  "크흠, 너무 과한 찬양은 그쯤 하기로 하지. 그런데 이런 문제는 사실 내가 아니라 아우구스투스께 가야 하지 않나? 결정권은 그분에게 있으니까."

  "당연히 저희도 그분을 찾아뵀었습니다. 그게 절차상 맞으니까요. 하지만 위대한 아우구스투스께서는 역시 저희들의 마음을 잘 헤아려주시더군요. 우리들의 문제는 역시 베르킨게토릭스 님이 가장 잘 알고 계시니 베르킨게토릭스 님의 의견을 그대로 채용할 거라고 하셨습니다. 카이사르 님이 강력하게 추천하셨다고 하더군요."

  "허허···그런가? 카이사르 님께서도 날 너무 과대평가하신 모양이로군."

  제발 얼마 남아 있지 않은 그 머리카락도 죄다 빠져버리길.

  하지만 그 바람과는 반대로 빠지고 있는 건 내 머리인 게 슬플 따름이다.

  "과대평가라니요. 정확한 평가를 하신 것이죠. 위대한 아우구스투스 역시 전략에 능통하시면서도 정치와 경제, 사회 전반을 전부 꿰뚫어 보고 계시지 않습니까. 베르킨게토릭스 님이 그런 위대한 아우구스투스와 비슷한 재능을 가지고 계시다는 건 우리 갈리아의 자랑입니다."

  "갈리아만이 아니라 히스파니아에서도 베르킨게토릭스 님은 영웅, 아니 모든 영웅을 뛰어넘는 대영웅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두 의원이 데려온 클리엔테스들은 자신들의 신앙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양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미친 듯이 소리를 질러댔다.

  "베르킨게토릭스! 베르킨게토릭스! 베르킨게토릭스!"

  축복받은 운을 타고났다는 건 아무래도 내 착각이었던 게 확실하다.

  차라리 흉노족 기병대에게 돌격해 적장의 목을 베어오는 게 속이 편하지 않을까.

  신에게 사랑받는 남자는 개뿔.

  대낮부터 정원을 쩌렁쩌렁 울리는 연호를 듣고 있으려니 마음만 심란해져 슬쩍 고개를 돌려보았다.

  옆에서는 아내가 자랑스러운 남편의 위용에 감동해 눈물을 글썽거리며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할 수만 있으면 큰소리로 외치고 싶다.

  감동하지 말라고!

  < [외전] 신에게 사랑받는 남자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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