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4. 변혁 >
254.
기세등등한 원로원은 자신들이 만든 법안을 포로 로마노에서 시민들에게 널리 알렸다.
그들은 기를 쓰고 물러나려는 마르쿠스를 본인들이 붙잡은 거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마르쿠스는 최근 정치보다는 더 다양한 일에 신경을 쓰는 것처럼 보이긴 했다.
어쨌거나 시민들은 이번만큼은 원로원의 결정에 전적으로 환영하는 모습을 보였다.
사실 그 환호는 원로원이 아닌 카이사르와 마르쿠스에게 향하는 것이었지만 원로원으로서는 그저 만족스러울 뿐이었다.
카이사르와 마르쿠스는 종래의 집정관들처럼 한 달씩 번갈아 가며 정무를 보기로 결정했다.
마르쿠스는 자신이 국정을 돌보는 첫날, 로마 행정의 대대적인 개편을 예고했다.
"저를 믿어주시는 여러분들의 뜻을 받들어 여러 가지 개혁에 박차를 가하겠습니다. 지금 로마의 행정력은 거대해진 국가를 통치하기엔 효율이 부족합니다."
"그럼 정무관의 수를 늘릴 겁니까?"
"물론 그것도 고려하고 있지만 정무관의 밑에 여러 관료들을 두고자 합니다. 정무관이 큰 틀을 잡아준다면 밑에 있는 관료들이 실무적인 일을 처리하는 방식이 되겠죠."
원로원은 적극적으로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았다.
대신 최근에 안찰관이나 법무관을 역임했던 귀족들은 상당수가 찬성 의사를 밝혔다.
최근의 로마의 행정과 사법은 나날이 복잡해지고 있었기에 정무관들에게 걸리는 부하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대신 정무관의 권한을 축소해서는 안 됩니다."
원로원이 바라는 조건은 자신들의 권익을 침범하는 일만 없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마르쿠스는 물론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다며 즉시 개혁안을 상정했다.
이건 단순히 행정 관료들을 충원하는 내용만이 담긴 게 아니었다.
로마의 통치 체제를 완전히 새롭게 개편하는 대개혁이었다.
이건 원 역사에서 아우구스투스가 했던 행정 재편을 바탕으로 마르쿠스가 적절히 개량한 것이었다.
가장 먼저 통과된 건 속주의 개편안이었다.
현재 속주는 거의 전부가 마르쿠스와 카이사르의 관리 아래에 있어 원로원이 어떻게 해볼 구석이 없었다.
마르쿠스는 여기서 상당수의 속주를 원로원령 속주라는 이름으로 빼냈다.
원로령 속주의 총독은 이전처럼 원로원이 파견할 권한을 지닌다.
단, 이 속주에는 군단이 상주하지 않았다.
마르쿠스가 일부러 군단이 상주할 필요가 없는 속주만을 골라 돌려주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해당하는 속주는 시칠리아와 사르데냐 섬, 그리고 현대의 남프랑스에 해당하는 나르보네시스, 그리스 남부에 해당하는 아카이아, 지중해의 크레타, 북아프리카와 누미디아 등의 속주였다.
누가 봐도 외적에게 침입당할 구석이 없어 상비군이 준두할 필요가 없는 지역들이었다.
그리고 이 원로원령 속주의 총독 역시 마르쿠스와 카이사르의 관리를 받았다.
대표적인 예시로 마르쿠스는 언제든 원로원에 해당 속주 총독의 해임을 요구할 권리를 지녔다.
나머지 속주는 지금처럼 마르쿠스와 카이사르가 직접적으로 통치했다.
이곳의 총독들은 두 사람이 마음대로 임명했으며 언제라도 내키는 대로 해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속주들은 최소 1개 이상의 군단이 상주하며 통수권자의 명령을 수행했다.
즉, 속주의 총독은 사실상 속주 행정의 책임자일뿐 지배자에 해당하는 위치는 아니었다.
속주의 합법적인 지배자는 여전히 마르쿠스와 카이사르였다.
그래도 원로원은 이 개편안을 두 손 들고 환영하며 받아들였다.
지금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태에 비교하면 원로원령 속주라도 총독을 임명할 수 있게 된 게 어디인가.
마르쿠스는 여기에 추가로 합법적인 근위대를 창설해 로마와 안티오키아에 주둔시켰다.
이는 그가 먼저 제안한 게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원로원이 다시 암살 같은 불미스러운 일이 터지지 않도록 해달라는 부탁을 받아 착수한 일이었다.
"10개 보병대로 구성된 군사들을 이탈리아와 시리아의 각 거점에 상주시키겠습니다. 이들은 무조건 로마 시민으로만 구성할 것이며 일반적인 병사들보다 더욱 높은 수준의 대우를 받게 될 겁니다."
현 로마 군단은 사실상의 직업군인으로 이미 복무연수와 월급, 퇴직금까지 완벽하게 구비되어 있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제 군단을 구성하는 상당수의 사람들은 로마 시민이 아닌 속주 출신의 사람들이었다.
마르쿠스가 군인으로 20년을 복무하면 로마의 시민권을 부여한다는 법안을 정식으로 통과시켰던 까닭이다.
그래서 일부러 새롭게 만든 보병대를 보통의 군단과는 차별화해둔 것이다.
이는 로마 시민들만이 지원할 수 있는 일종의 엘리트 부대이자 마르쿠스의 친위대였다.
말이 좋아 친위대지 로마에 중무장한 병사들을 떡하니 놔둔다면 존재만으로도 무언의 압력이 가해진다.
그리고 마르쿠스는 혹여나 원로원을 자극할 만한 법안을 통과시킬 때는 반드시 그들에게 줄 당근을 함께 곁들였다.
"로마의 법제는 날이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고 종교적인 절차는 물론 행정도 서로 충돌하는 영역이 많아 중재가 쉽지 않습니다. 저는 이런 문제의 해결을 위해 원로원이 나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르쿠스의 입발린 칭찬에 의원들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화답했다.
"역시 우릴 생각해주는 분은 마르쿠스 님 밖에 없습니다. 저희야 당연히 찬성이지요."
"다만 현재 수백 명에 이르는 의원님들이 전부 참여하게 되면 오히려 행정의 비효율을 초래하게 될 우려가 있습니다. 해서 우선 스무 분 정도를 추려서 위원회를 구성할까 합니다. 이름은 일단 콘킬리움 콘술(집정관 자문 위원회)라고 하겠습니다."
"종신직입니까?"
"물론 아닙니다. 1년을 주기로 계속 교체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직책을 수행하기 적절치 않다고 판단되면 중간에 경질될 수도 있습니다."
마르쿠스와 카이사르를 수상이라고 한다면 이 위원회는 사실상 내각의 역할을 수행하게 될 단체였다.
마르쿠스는 여기서도 원로원을 배려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인사의 추천권은 마르쿠스와 카이사르가 절반, 나머지 절반은 원로원에서 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물론 원로원의 대다수는 두 사람의 수족이나 다름없었으니 사실상 거의 전원을 자신의 입맛에 맞는 위원들로 구성할 수 있다.
그럼에도 겉으로는 원로원이 무려 절반이나 되는 추천권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들의 만족도는 대단히 높았다.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건 마르쿠스가 박아놓은 자격요건이었다.
'위원회의 위원이 될 수 있는 의원은 최소 2대 이상 원로원 의원직을 역임한 귀족 가문으로 한정한다.'
다시 말해 키케로나 수레나스, 베르킨게토릭스처럼 자신이 최초로 원로원에 입성한 신참자들은 제외된다는 뜻이다.
원로원은 알게 모르게 신참자들과 전통 있는 귀족가문의 격을 나누는 분위기가 있었고, 최근에는 그런 경향이 더 강해졌다.
속주에서 대규모로 들어온 신참자들 때문이었다.
이런 불만을 알고 있는 마르쿠스는 이런 식으로라도 파트라키들의 위신을 세워준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원로원이 추천한 이들은 모두가 최소 200년 이상의 전통을 자랑하는 명문가 출신 의원들이었다.
마르쿠스는 이들을 전부 승인해줌으로서 원로원의 체면을 확실히 봐준다는 인상을 심어주었다.
그러나 위원회는 명목상 내각이었을 뿐 마르쿠스와 토론을 하거나 주도적으로 자신이 맡은 부처의 일을 처리하지 않았다.
그들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조언자이자 중재자였다.
대충 정치와 행정의 기틀을 잡아둔 마르쿠스는 다음으로 어떻게 보면 가장 중요한 일에 착수했다.
바로 재정과 세금, 그리고 곡물의 수송에 관한 문제였다.
다행히도 해군 쪽은 폼페이우스 때부터 이어져 내려온 군함들이 건재했기에 편성이 어렵지 않았다.
"해군의 중요성은 이제 속주에 주둔하는 상비군 이상으로 중요한 문제입니다. 적어도 지중해 내에서 무역과 수송선에 위협을 끼치는 해적들이 존재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저는 항구적인 해군을 창설해 로마가 해적의 위협에 시달리는 일이 없도록 만들겠습니다."
군함들도, 병사들도 이미 마련되어 있었기에 따로 재정을 투입할 필요도 없었다.
해군이 상주할 기지들을 건설하기만 하면 됐다.
당연히 이 안건 역시 아무런 반대 없이 무난히 통과되었다.
마르쿠스는 지중해를 크게 6구역으로 나누고 주요 지역에 해군 기지를 설치했다.
그뿐만 아니라 갈리아와 게르마니아의 강들과 이집트의 나일강, 그리고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 유역에도 소규모의 함대를 만들어 주기적으로 순찰을 돌도록 만들었다.
이들의 목표는 각 속주에서 로마로 오는 곡물선의 안전을 지키는 게 첫 번째.
그리고 해상무역에 종사하는 무역선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하고, 혹여나 난파된 상선들이 있다면 그들을 구조하는 게 두 번째였다.
로마의 무역 비중은 이제 해로가 육로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하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지중해만이 아니라 홍해와 아라비아, 페르시아만을 완벽히 손에 넣었기 때문이다.
마르쿠스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대규모 범선의 제작에도 열을 올렸다.
전국 각지에서 우수한 설계자들을 초빙해 기존의 갤리선이 아닌 대양을 항해할 수 있는 범선의 제작을 의뢰했다.
물론 기본적인 설계도나 개념은 마르쿠스의 능력으로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진척속도는 어마어마하게 빨랐다.
마르쿠스가 다스리는 한 로마는 언제까지나 문제가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지금까지 한 모든 일들은 돈을 쓰는 일이지 벌어들이는 일과는 거리가 멀었다.
돈을 펑펑 쓰며 정책을 남발하기는 쉽지만 그만큼 국고로 벌어들이는 양이 충분하지 않는다면 재정은 파탄나기 마련이다.
안 그래도 그는 흉노 전쟁을 치르면서 엄청난 양의 기금이 고갈되었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더욱이 로마는 어지간한 중세의 국가와는 비교도 되지 않게 시민권자에 대한 복지가 잘 되어 있었다.
온갖 무료 오락 시설과 빈민 계층에 대한 무상 곡물 지원, 도로의 보수와 행정, 국방 시스템의 재정비.
이 모든 게 바로 돈이었다.
지금까지 여러 금융개혁으로 국고를 늘려놓지 않았다면 지금까지의 개혁은 꿈도 꾸지 못했으리라.
문제는 지금은 괜찮아도 마르쿠스 사후에도 멀쩡히 잘 굴러가리란 보장이 없단 점이다.
누가 최고의 자리에 앉아 있더라도 국가의 재정이 파탄나지 않도록 여러 안전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었다.
일단 세금을 걷으려면 확실한 호구조사가 먼저 뒤따라가야 하는 법이다.
마르쿠스는 아우구스투스가 했던 방식을 참고해 대규모의 호구조사를 실시했다.
동시에 빈약한 조세제도를 완전히 뜯어 고쳤다.
로마의 조세는 '넓고 얕게 걷는다'는 원칙을 기조로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까딱 잘못하는 순간 좁고 얕게 걷는 방법으로 변질되기 딱 좋다.
로마 시민은 직접세라고는 노예 해방세와 상속세를 부담할 뿐이고, 간접세로는 사치세와 관세, 소비세 정도였다.
속주민들도 속주세로 10분의 1을 납부한다는 것 외엔 별 다를게 없었다.
앞으로 로마 시민의 수는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고 속주민들의 비중은 점점 낮아질 수밖에 없다.
즉, 세금이 나올 구석이 적어지면 적어지지 많아질 구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큰 문제가 도사리고 있었다.
이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시민권자에게도 직접세를 걷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 걷지 않았던 세금을 걷게 된다면 엄청난 조세 저항에 부딪치는 게 자명한 이치였다.
마르쿠스는 이걸 천천히 해결하기로 했다.
어차피 자신이 죽을 때까지는 돈으로 걱정할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조세제도는 평생에 걸친 사업으로 삼고 수십 년에 걸쳐 개선해 나가면 되는 것이다.
'5의 세금을 가져가더라도 수입이 30 이상 늘어나게 되면 기꺼이 바치겠지. 이런 식으로 가닥을 잡아야겠군.'
아직 사람들의 생산력을 올려줄 수 있는 수단은 많이 남았다.
구황작물 보급, 더욱 발전된 농사법, 시비법 등등을 미끼로 활용해 조금씩 세금을 바치게 하면 저항을 최소한도로 줄일 수 있으리라.
거의 1년이 넘게 새로운 제국의 기틀을 다지는 데 매달렸지만 역시 현실은 생각보다 더 어려웠다.
처음 잡았던 목표치의 완수는커녕 진척도가 7할조차 간당간당했던 것이다.
'브루투스에게 그렇게 큰 소리를 쳐놨는데 이래가지곤 내가 죽을 때까지 제대로 된 체계를 만들 수 있을지 모르겠네.'
속주 총독을 할 때보다 세 배쯤 되어 보이는 서류 더미의 산을 바라보는 마르쿠스의 눈이 암담함으로 물들었다.
하지만 우는 소리를 해봐야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게 서글픈 현실이다.
마음을 다잡은 마르쿠스는 외교 쪽으로 분류된 서류 더미를 뒤지며 관료들을 호출했다.
"다음 차례는 한나라인가···다른 건 몰라도 이놈들을 가만히 놔둬선 안 되지."
짜증으로 범벅이 되어 있던 마르쿠스의 얼굴에 오랜만에 활기가 감돌았다.
싫어하는 이의 불행을 보며 즐기는, 악동과도 같은 미소였다.
< 254. 변혁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