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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 변혁 (253/326)

  < 252. 변혁 >

  252.

  충격적인 사실을 전해들은 키케로는 한참동안이나 말없이 헛웃음만 흘렸다.

  그러나 마르쿠스의 말에 딱히 의문을 표현하지도 않았다.

  잘 생각해보면 충분히 그럴만하다고 여겼던 까닭이다.

  "그러고 보니 브루투스일 리가 없긴 해···그자는 내가 카시우스와 함께 있는 걸 본 적이 없으니까."

  지금까지는 카토가 브루투스 정도에게만 그 사실을 말했고, 브루투스가 카이사르에게 밀고했다고 여기고 있었다.

  문제는 카토가 대체 어째서 카이사르에게 불었는지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카이사르에 대한 카토의 혐오는 진짜다.

  그래서 아무리 암살에 반대한다고 해도 스스로 그걸 불리는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 잘난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카이사르조차 품을 수 있다 이건가. 성인군자 나셨군.'

  도와주지 못할 거라면 최소한 방해는 하지 말아야 하는 게 아닌가.

  자신만 깨끗하면 된다는 그 짧은 생각에 절로 울화가 치밀고 미친 듯이 고성이라도 내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옆에 마르쿠스만 없었다면 지금쯤 시원하게 욕설이라도 내뱉었을지도 모르겠다.

  호흡을 고르며 화를 삭인 키케로가 씁쓸하게 웃고 있는 마르쿠스를 돌아보며 살짝 고개를 숙였다.

  "하여튼 귀중한 정보를 알려줘서 고맙네. 자네가 아니었다면 뒤통수를 맞은 줄도 모르고 로마 밖으로 쫓겨날 뻔 했어."

  "로마를 떠나시기 전에 카토 님의 얼굴을 한 번 보고 가실 겁니까? 그럴 시간 정도는 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아니. 지금 내 처지를 고려해 보면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척 조용히 떠나는 게 낫다고 보네. 지금 괜히 잘못 입을 놀렸다가는 로마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조차 힘들어질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이 빚은 반드시 갚아줘야겠지. 알렉산드리아에 도착하는 즉시 내 모든 인맥과 능력을 총동원해 배신자에게 대가를 치르게 해줄 걸세."

  "저도 그게 나을 것 같습니다. 괜히 지금 시끄럽게 일을 벌려봐야 좋을 게 없지요. 최대한 빠르게 가실 수 있도록 애써보겠습니다."

  마르쿠스는 키케로를 안심시켜주고는 유유히 그의 저택을 나섰다.

  모든 게 그의 생각대로 됐다.

  키케로가 당장이라도 카토에게 따져야겠다며 달려가는 우매한 짓거리는 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키케로는 현명한 사람이다.

  적어도 지금 로마에서 카이사르와 자신, 그리고 옥타비우스를 제외한다면 키케로의 지성을 따라올 이는 카토 정도밖에 없었다.

  게다가 키케로는 카토와 달리 아직까지는 여러 계층에 두루 인기가 많은 편이었다.

  단지 그의 유일한 약점은 카토와는 달리 목숨을 던져 신념을 관철할만한 기개가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너무 생각이 많은 지식인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하지만 그런 문제도 키케로가 로마 밖으로 나가면 상당수가 해소된다.

  어떻게 보면 그의 진가는 외부에서 조언자의 위치를 고수할 때 극대화 된다고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영향력을 카토나 다른 온건 귀족파를 치는데 써준다면 마르쿠스로서는 손 안대고 코푸는 격이나 다름없었다.

  마르쿠스가 저택 밖으로 나오자 기다리고 있던 옥타비우스가 정중하게 그를 맞이했다.

  "일은 잘 풀리셨습니까?"

  "물론. 이제 발 쭉 뻗고 구경만 하면 될 거야."

  "키케로는 이집트로 쫓아낸다고 치고···카토는 그대로 두실 생각이십니까? 전 카토도 어떻게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여유롭게 마차 위에 오른 마르쿠스가 피식 웃었다.

  확실히 옥타비우스라면 어떻게든 핑계를 만들어서 개혁에 장애가 될 가능성이 있는 자들을 모조리 쓸어버렸을 것이다.

  그건 자신의 방식이 아니라고 말을 했음에도 아직 옥타비우스는 미련을 버리지 못한 듯 보였다.

  "내가 로마의 유일한 절대 권력자가 될 거라면 그런 방식도 나쁘진 않겠지."

  "카이사르 님의 존재 때문입니까? 결국 두 분께서 권력을 나눠가지는 양상이 될 수밖에 없으니까?"

  "명심하게.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하게 되어있네."

  옥타비우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을 몇 번인가 되뇌었다.

  마르쿠스가 그 모습을 흡족하게 바라보며 물었다.

  "자네는 집단을 가장 확실히 단결시킬 수 있는 수단이 뭐라고 생각하나?"

  "그거야 확실한 보상을 쥐어주는 방식···아니, 그걸 말씀하시는 건 아니겠군요."

  잠시 생각에 잠긴 옥타비우스는 이번 마르쿠스의 행보를 기초로 그가 원하는 답을 도출해냈다.

  "그렇군요. 귀족파라는 적의 존재를 일부러 남겨놓으신 거로군요. 그것도 정말로 위협적인 수준은 되지 않도록 모든 힘을 다 잘라내고 껍데기만 남겨두는 방식으로."

  "역시 이해가 빠르군. 그래. 아군의 결속을 강화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적의 존재일세."

  이는 로마가 몇 번이나 치른 전쟁으로 이미 검증이 끝난 것이었다.

  한니발과 치른 포에니 전쟁도, 바야투르와 맞서 싸운 흉노 전쟁도.

  정치적으로 대립하는 집단들이 각자의 이해관계는 차치하고 모든 힘을 하나로 모아 적을 치는데 주력했다.

  저것조차 되지 않는 단체는 이미 하나의 집단으로서 묶여 있을 최소한의 조건마저 상실한 것이라 봐야 한다.

  마르쿠스의 의도를 짐작한 옥타비우스는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른 구도를 말로 풀어내며 확실한 그림을 잡아나갔다.

  "귀족파를 다 쓸어버리고 마르쿠스 님과 카이사르 님이 공동으로 최고권력자가 되면 어떤 방식으로든 파벌이 생길 가능성이 있지요. 그건 아직 원하는 바가 아니다. 그러니 카토를 이용해 시간을 좀 더 벌겠다···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카토라면 좋은 적이 되어주겠죠.

  치명적인 위협은 되지 않으면서 적당히 짜증은 나는 그런······.

  "

  "그 외에도 몇가지 효용성이 있네. 그것들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드러나겠지."

  두 사람이 탄 마차 밖으로 팔라티노 언덕의 전경이 시기 적절하게 비쳐들었다.

  같은 풍경을 지켜보던 옥타비우스가 혼잣말처럼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역시 저 위치에 황궁을 세우면 딱 좋을 것 같은데······."

  원 역사에서 옥타비우스가 거대한 궁을 세운 위치와 거의 동일한 지대였다.

  마르쿠스가 피식 웃으며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지금은 아니지만 슬슬 그럴만한 시기가 다가오고 있긴 했다.

  몇 가지 일만 처리하고 나면 의외로 그때가 훌쩍 가까워질지도 모르긴 하겠다.

  마르쿠스는 현재 시민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정치적인 싸움은 그다지 안중에 두지 않았다.

  그가 진짜로 집중하고 있는 건 소모적인 정치 논쟁보다 훨씬 더 시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제도의 시행이었다.

  ※※※

  지난 몇 달간 로마의 화제의 중심은 단연코 카이사르였다.

  로마를 상징하는 영웅이 원로원에서 암살당할 뻔 하는 초유의 사건이 터졌고, 그 범인은 로마의 이름난 귀족들이었으니 그 파장은 상상을 초월했다.

  게다가 그 범인들이 추방형을 당하는 도중 호송선을 탈취하려다가 그대로 수장당하는 사고까지 터졌다.

  사안의 경중만 따지자면 일년내내 회자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대사건이었다.

  덕분에 여러 자잘한 사건들은 별다른 이슈조차 되지 못하고 묻혀버렸다.

  키케로는 이 틈을 타서 재빠르게 로마를 떠나 이집트로 도피했다.

  평소였다면 키케로나 되는 인사가 요양을 핑계로 로마를 빠져나갔다는 소식은 곧장 파다하게 파졌을 것이다.

  하지만 키케로의 탈출소식조차 잠깐 시민들의 입에 오르내리다가 잦아들었다.

  지금 떠도는 모든 이슈를 잠재울 만큼 굵직한 사안들이 연달아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이번 소문의 주인공은 카이사르가 아니었다.

  최근에 잠잠하던 마르쿠스가 시민들의 관심을 잡아끄는 대사업을 연달아 발표한 것이다.

  첫 포문은 역시 오랜 준비 끝에 개장한 호텔이었다.

  시내의 중심에 어마어마한 규모로 세워진 호텔은 당연히 사람들의 모든 이목을 집중시켰다.

  1층에 세워둔 로비는 살롱 같은 식으로 만들어 상류층 사람들이 교류를 나눌 수 있도록 설계됐다.

  긴 의자에 누워 온갖 호사스러운 요리와 차, 커피 등을 즐기며 체스와 카드 게임까지 즐길 수 있다.

  여기에 요리사도 로마에서 최고로 이름 높은 사람들을 채용해 마르쿠스가 직접 레시피를 구해다주었다.

  고대에서 충분히 쓸 수 있는 발전된 요리기법과 그걸 응용한 고급음식들, 그리고 세련된 접객은 단숨에 로마 부유층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심지어 누구보다 유행에 민감한 카이사르조차 일주일에 몇 번씩 호텔을 방문해 시간을 보냈다.

  카이사르는 이미 사전에 마르쿠스에게 여러 번 음식을 대접받은 적이 있어 차나 커피에 굉장히 익숙했다.

  거기에 가끔씩 요리에 딸려 나오는 새로운 식기의 취급도 능숙해 자연스럽게 다른 귀족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역시 카이사르 님이십니다. 못하시는 게 없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커피라고 하나요? 이 음료도 마치 예전부터 마셨던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드시는군요."

  "새로운 무언가에 도전하는 걸 무엇보다 즐기는 성격이라서 말이지. 자네들도 곧 익숙해질 걸세. 한 번 맛을 들이면 또 이만한 게 없을 것 같거든."

  카이사르의 이런 적극적인 모습은 자연스럽게 시설의 홍보로 이어졌다.

  며칠 지나지도 않아 호텔의 로비는 귀족들과 기사계급으로 가득 찼고, 시민들도 선망에 가득한 눈빛으로 호텔을 바라보았다.

  로마에 사업차 들린 외지의 거상들이나 사신들도 당연히 이곳에 머물렀다.

  마르쿠스는 당연히 새로운 식문화를 퍼트리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과 카이사르가 세운 위대한 승리의 업적을 형상으로 남기는데 주력했다.

  지금이야 사람들이 로마를 구한 영웅으로 두 사람을 칭송한다지만 그런 기억은 언젠가는 희미해지기 마련이다.

  개선식도 마찬가지다.

  순간의 환희를 극한까지 증폭시켜주는 역할을 하지만 지속력은 그리 길지 않다.

  조금 더 길이길이 남을 만하려면 구체적인 형태가 필요하다.

  그래서 마르쿠스는 로마의 역사상 가장 크고 화려한 개선문을 세웠다.

  본래 개선문은 공화정에서도 개선장군의 위업을 기리기 위해 건립하곤 했다.

  마르쿠스는 기존의 개선문들이 초라해질 정도로 커다랗고 웅장한 문을 만들었다.

  기술자들과 돈을 있는 대로 붓다보니 역사에서도 유명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개선문보다도 두 배나 커다란 결과물이 완성됐다.

  여기에 개선문의 옆에는 로마의 위대한 승리를 기념하는 박물관까지 만들어 놓았다.

  단순히 1회용으로 보고 그치는 게 아니라 유명한 사건들을 재현하는 공연용 회장까지 딸린 박물관이었다.

  그리고 당연히 박물관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건 첫 번째가 마르쿠스, 두 번째가 카이사르의 승리였다.

  마르쿠스는 박물관 건립을 구실로 자신이 파르티아 전쟁 때부터 거둔 모든 승리를 다시 한 번 로마 시민들이 되새길 수 있도록 만들었다.

  마르쿠스의 최후의 적수가 된 바야투르는 사실보다도 더욱 거대하고 위협적인 적으로 묘사됐다.

  앞으로 로마의 어린아이들은 가장 무서운 악귀가 한니발이 아닌 바야투르라고 인식하게 될 것이다.

  그래야 그 바야투르를 무찌른 마르쿠스의 명성이 끊임없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수 있을 테니까.

  의외로 마르쿠스가 마지막으로 세운 건 거대한 교도시설이었다.

  언뜻 보면 시민들의 편익과 크게 상관이 없어 보이는 물건이었으나 이는 중대한 의미를 가진 시설이었다.

  로마는 현재 날이 갈수록 확장되면서 인구를 불려나가는 중이었다.

  당연히 각종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았고 이 중에는 범죄들도 많았다.

  문제는 이 시대에는 제대로 된 교도시설이 없어 범죄자를 처리하는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대충 감옥에 가둬두거나, 추방을 하거나, 신분을 박탈해 노예로 삼는 게 다라고 해도 무방했다.

  범죄자가 시민권자가 아니라면 그냥 형벌을 때려도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갈수록 로마 시민권자의 수가 급증하고 있었고, 자연히 시민권을 지닌 자들이 일으킨 범죄가 늘어나니 골치 아픈 일들이 하나 둘씩 계속 늘어났다.

  로마 시민권자들은 고대 사회에서 이례적으로 고도로 발달한 인권을 누리는 자들이었던 까닭이다.

  마르쿠스는 이런 문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미리 교도소라는 새로운 제도를 도입했다.

  당연히 인권보호가 정착된 현대의 교도소가 아니라 시설은 열악했고, 강제 노역도 강도가 무시무시했다.

  하지만 이런 점이 오히려 시민들에게 환호를 받는 요인이 됐다.

  "범죄나 놈들이 죽을 때까지 노역에 시달리는 걸 보니 속이 다 시원하구만."

  "아무렴. 그런 놈들은 평생 가둬두고 굴려야지."

  속속들이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고 변화를 이끌어내는 마르쿠스의 모습에 로마는 예전 그가 안찰관을 역임하던 때를 떠올렸다.

  시민들은 앞으로 자신들의 생활상이 한층 더 발전할 거라 여기고 아낌없는 지지를 보내주었다.

  토양에 뿌린 씨앗은 확실하게 뿌리를 내리고 자라났다.

  이제 잎을 피워내기만 하면 된다.

  때가 무르익었다.

  < 252. 변혁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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