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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7. 로마의 미래 (248/326)

  < 247. 로마의 미래 >

  247.

  결국 암살미수범들은 누구 하나 빠짐없이 국외추방에 동의하고 번복하지 않겠다는 각서까지 써냈다.

  카이사르는 이 결정을 존중하겠다는 문서를 작성해 포로 로마노에 공개했다.

  물론 카이사르는 이것만으로 끝내지 않았다.

  그의 대변인을 자처하는 쿠리오가 카이사르가 어째서 암살범들을 처형하지 않는지, 국외추방으로 끝내는 이유가 무엇인지 로스트라 연단에서 줄기차게 연설을 해댔다.

  "카이사르 님께서는 아무리 흉악한 암살범들이라도 로마인은 로마인이라고 생각하고 계십니다. 물론 몇몇 법을 어긴 흉악한 범죄자들까지 존중할 필요가 있냐고 여기시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저 역시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원로원은 자신들에게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면 시민권의 효력을 정지시키는 최종권고를 발동했는데 어째서 우리는 하면 안 되느냐 하고요."

  "옳소! 암살자들의 사정을 봐줄 필요가 어디 있나!"

  "그냥 처형해버립시다! 국외추방은 너무 약한 형벌이에요!"

  시민들이 아우성치기 시작하자 쿠리오가 천천히 손을 저으며 목소리에 한층 힘을 주었다.

  "우리는 그렇게 주장할 수 있습니다. 왜냐면 화가 나니까요. 카이사르 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흉노족의 말발굽에 짓밟혀 지금의 호사를 누리지도 못했을 이들이 감히 그분을 시해하려 했으니 어찌 분노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하지만 카이사르 님은 자신은 그래서는 안 된다고 판단하신 겁니다. 로마를 이끌어나가는 막중한 책임을 지닌 사람은 원칙에 따라야지 감정에 휩쓸려서는 안 된다고 여기신 겁니다.

  그분이라고 화가 나지 않았을까요.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 죽을 뻔한 겁니다. 아마 여기 있는 그 누구보다도 카이사르 님의 분노가 컸으리라 확신합니다.

  "

  감정을 가라앉힌 시민들이 잠잠해지자 쿠리오에 이어서 돌라벨라가 카이사르의 결정을 찬양하는 발언을 시작했다.

  "사실 재판을 받을 권리, 그리고 사형 대신 국외추방을 받을 권리는 로마인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건 당연히 범죄를 저질렀을 때를 가정한 조항이기도 합니다. 만약 악독한 범죄자라고 이런 권리를 박탈한다면 차후 악용될 소지가 너무 많지 않겠습니까? 카이사르 님은 그 점까지 염두에 두고 이런 결정을 내리신 겁니다."

  민중파의 의원들은 이어서 저마다 한마디씩 거들며 원로원 최종권고의 비합법성을 비판해댔다.

  사실상 이 사건을 기점으로 원로원 최종권고는 과거의 유물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원로원으로서는 지금까지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왔던 강력한 무기를 또다시 잃어버린 셈이었다.

  시민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힘입어 암살자들의 추방 절차는 막힘없이 진행됐다.

  스무 명이 넘는 파트라키가 지닌 막대한 재산이 먼저 국고로 귀속됐고, 그들이 타고 갈 배와 호위병들이 정해졌다.

  암살자들은 구금되어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감히 재산을 빼돌릴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래도 그들은 절망까지는 하지 않았다.

  일단 목숨만 붙어 있으면 언제든 다시 시작할 기회는 오는 법이다.

  재산을 몰수당한다고 해도 그들은 전직 원로원 의원이었으며, 여전히 귀족파에 많은 연줄을 지닌 파트라키였다.

  상황만 받쳐준다면 바로 다시 재기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카이사르와 마르쿠스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암살자들을 추방하는 모든 절차를 마무리 짓는 원로원 회의가 끝난 뒤, 카이사르는 마르쿠스를 자신의 관저로 초대했다.

  "자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주었네. 정말 이걸로 다 끝낼 셈인가?"

  "예. 그렇게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저나 카이사르 님이 할 일은 이걸로 끝입니다. 더 해서도 안 되고요."

  "뭔가 수를 더 쓸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군. 재산 몰수 정도로 자네가 만족할 줄은 생각 못 했네. 물론 저들이 무더운 사막 지대에서 쾌적하게 생활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지만······."

  "자업자득입니다. 여러 번 기회를 줬음에도 그릇된 선택을 했으니 대가를 치르는 거죠."

  마르쿠스의 의미심장한 말에 카이사르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그러고 보니 이번 일을 처리한 사람이 옥타비우스라고 했나? 듣자 하니 나와도 관계가 있다지?"

  "예. 카이사르 님의 종손뻘쯤 되겠군요. 어렸을 때부터 제가 안티오키아에서 쭉 돌봐주고 있었습니다."

  "이제 막 성인이 될까 말까 한 나이일 텐데 아주 일처리가 깔끔했어. 상당한 재목으로 보이는데 어떤가?"

  "예상하시는 그대로입니다. 아니, 카이사르 님이 생각하시는 것보다도 더 능력이 좋은 아이일 겁니다."

  "그럼 사위로 삼을 생각도 하고 있겠군."

  마르쿠스는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하고는 커다란 지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직 로마의 사람들은 가이우스 옥타비우스란 자가 누구인지 거의 알지 못했다.

  카이사르조차 이제 막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시점이니 다른 이들은 말할 것도 없으리라.

  그렇기에 마르쿠스 대신 일을 맡기기에 이보다 제격인 사람이 없었다.

  아니, 사실 일을 맡길 필요조차 없었다.

  이번에도 마르쿠스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암살자들을 다루는 일을 옥타비우스에게 일임했고 그가 어떻게 일처리를 하는지 지켜볼 뿐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옥타비우스는 이런 류의 일에서 그를 실망시킨 적이 없었다.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 확신했다.

  ※※※

  온 로마가 암살자들의 추방 날짜를 기다려온 듯했다.

  당연히 그들을 배웅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명망 있는 귀족에서 모든 걸 빼앗기고 추방당하는 그들에게 조롱을 퍼부어주기 위해서였다.

  빽빽하게 모여든 군중들은 암살자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거친 함성과 욕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개중에는 카이사르의 밑에서 복무한 자들이 상당수 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로마에 있는 거의 대다수의 젊은 남성들은 카이사르의 밑에서 복무를 한 이들이었다.

  그게 갈리아 전쟁이든, 알프스 산맥 방어선이든, 흑토 평야 전선이든 어떤 식으로 한 번 이상은 전투에 나간 사람이 많았다.

  그런 그들에게 카이사르의 밑에서 군단장까지 역임했으면서 암살을 주도한 데키무스는 씹어 먹어도 시원치 않을 배신자였다.

  "데키무스, 이 배은망덕한 새끼!"

  "임페라토르에게 받은 은혜를 원수로 갚아?"

  "넌 로마군의 수치다 데키무스!"

  데키무스에게 쏟아지는 욕설이 너무 커서 다른 암살자들에게 향하는 욕은 들리지도 않을 정도였다.

  데키무스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병사들에게 이끌려 마차 위에 올랐다.

  그들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는 그 순간까지도 조롱과 욕설은 끊이지 않았다.

  브룬디시움까지 호송된 암살자들은 거기에서도 온갖 욕을 먹으며 배 위로 올랐다.

  그들을 태운 배는 상당히 화려하면서도 커다랬다.

  죄인들을 호송하는 배치고는 너무 호사스러운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대해에서도 버틸 수 있을 만큼 안정적인 선체에 긴 항해를 버틸 수 있을 만큼 충실한 물자도 선적됐다.

  "그래도 최소한의 도리는 지켜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카시우스가 배 내부에 갖춰진 여러 물품들을 둘러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데키무스는 여기까지 끌려오며 겪은 정신적인 충격이 다 가시지 않았는지 말없이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카시우스는 완전히 넋이 나간 그를 뒤로하고 트레보니우스와 앞으로의 일을 의논했다.

  "혹시 항해 일정에 대해 들은 게 있으십니까? 시리아 속주로 이동해서 거기서 육로로 내려가나요?"

  "내가 듣기로는 우선 이집트로 간 다음에 홍해를 건널 거라고 하더군. 무더운 사막을 지나가는 것보다는 좀 흔들리긴 해도 배를 타고 가는 시간이 긴 게 더 낫지 않겠나?"

  "그렇겠군요. 여기서 사막 지대를 행군해본 사람은 거의 없을 테니까요."

  "그래도 정말 다행일세. 내 생각보다 배도 훨씬 훌륭하고 포도주에 과일들까지 준비되어 있지 않나. 아무래도 마르쿠스가 우리를 위해 힘을 좀 써준 게 아닌가 싶군."

  트레보니우스가 천에 쌓인 채로 은밀히 반입된 포도주를 잔에 따라 한 모금 들이켰다.

  느껴지는 향과 맛 모두가 의심할 여지 없는 고급품이었다.

  비록 로마에서 쫓겨나는 몸이긴 해도 원로원 의원으로서의 품위까진 잃지 않아도 될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카시우스가 트레보니우스에게 잔을 받아들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이렇게 국외추방으로 끝날 수 있던 것도 그의 덕분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이집트 역시 마르쿠스의 영역이나 마찬가지니 가는 길도 편안할 겁니다. 제가 좀 알아봤는데 아라비아 반도 역시 마르쿠스의 말이 그 지역의 왕보다도 더 권위가 있다고 하더군요. 아마 우리를 신경 써서 대우해주라는 말이 이미 하달됐을 겁니다."

  충격에서 어느 정도 회복된 그들은 열심히 장밋빛 미래를 그리며 피할 수 없는 항해를 즐겨보기로 마음먹었다.

  호송선이 항구를 벗어나고 며칠이 지나도록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브룬디시움에서 출항했을 때처럼 날씨는 화창했고, 파도도 그리 높지 않았다.

  "지금의 날씨가 꼭 우리들의 미래를 상징하는 것 같아 위안이 좀 되는구만."

  그 말이 씨가 되었을까.

  갑작스레 안개가 자욱하게 끼더니 한 치 앞도 제대로 구분하기가 힘들어졌다.

  "이보게, 이게 어떻게 된 건가?"

  카시우스가 다급하게 병사 한 명을 잡고 물어보았다.

  "아, 걱정하지 마십시오. 원래 이 지역은 안개가 자주 낍니다. 올바른 방향으로 왔다는 신호이니 그냥 마음 편히 계십시오. 바다는 날씨가 변덕스럽거든요."

  병사가 걱정하지 말라는 듯 태연하게 답하니 카시우스도 마음을 진정시키고 호송선의 내부로 다시 들어갔다.

  "원래 이 지대는 안개가 많이 낀다는군요. 걱정할 필요 없답니다."

  그의 말을 들은 암살자들은 안심한 채로 모포를 깔고 바닥에 누웠다.

  "지금 같은 날씨에는 위로 올라가 봐야 구경할 것도 없으니 그냥 여기에 있는 게 낫겠군요."

  "그런데··· 난 저번에 한 번 알렉산드리아까지 갔었는데 그땐 이런 안개가 끼지 않았었는데?"

  "당연히 맨날 안개가 끼진 않겠죠. 병사도 자주 낀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트레보니우스 님이 가셨을 때는 어쩌다가 안개가 끼지 않는 날이었나 보지요."

  카시우스는 대수롭지 않게 트레보니우스의 말을 흘려버리고 다른 의원들처럼 적당히 자리를 잡고 누웠다.

  다행히도 배 내부에 포도주라면 썩어 넘칠 정도로 많이 보관되어 있었다.

  오히려 물보다 포도주가 더 많을 정도라 암살자들은 평소보다 덜 희석한 상태로 포도주를 마셨다.

  밖에는 안개로 자욱한 상황이고 슬슬 항해가 길어지니 무료한 마음이 커졌는지라 들이켜는 술의 양도 그에 비례해 많아졌다.

  로마에서 누리던 모든 부귀영화를 잃고 어쩌면 다시는 고향에 돌아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울적함도 한몫했다.

  결국 점점 더 주거니 받거니 하며 거나하게 취한 암살자들은 예외 없이 전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두고 보자··· 내 이렇게 끝나지는 않는다. 반드시 카이사르 그놈이 보란 듯 재기에 성공해서 공화정을 다시······.'

  카시우스 역시 알딸딸한 머리를 부여잡고 기분 좋게 숙면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콰앙!

  코를 골며 자고 있던 암살자들은 돌연히 들려온 커다란 소리에 튕겨 나오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야, 이게 무슨 소리지?"

  오랜 시간 전장에 몸을 담았던 데키무스가 가장 빠르게 반응했다.

  "설마 배가 암초에라도 부딪친 건가?"

  카시우스는 사방이 어두웠기 때문에 일단 갑판으로 올라가는 길을 찾기 위해 주변을 더듬거렸다.

  그러던 와중 그의 손에 뭔가 축축한 액체가 닿았다.

  "뭐야··· 어제 포도주를 마시다가 흘렸······."

  카시우스는 순간 느껴지는 강렬한 위화감에 말을 다 끝마치지 못했다.

  포도주를 흘린 것치고는 손에 닿는 액체의 양이 너무 많았다.

  반사적으로 손가락을 입에 가져가 맛을 확인해 본 그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바, 바닷물이다. 바닷물이 들어오고 있어!"

  < 247. 로마의 미래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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