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9. 음모 >
239.
예상보다 격한 카토의 반응에 카시우스는 당황하며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 어째서 그러십니까? 카토 님은 누구보다도 더 공화정이 존속되길 원하시지 않으십니까?"
"당연히 원하지! 이 로마에서 나보다 더 공화정을 사랑하는 이는 한 손을 넘어가지 않는다고 확신하니까!"
카토가 거친 목소리로 서탁을 쾅쾅 두드렸다.
어찌나 분노에 차 보였던지 카시우스는 카토가 잔을 들어서 자신의 머리를 찍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할 정도였다.
"카이사르가 죽지 않으면 공화정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그는 왕이 되고 싶어 하는 게 분명해요. 마르쿠스가 로마에 머물고 있는 지금이 마지막 기회입니다. 카이사르를 계속 살려둔다면 마르쿠스가 동방으로 간 뒤에 본격적으로 왕정 수립을 위한 움직임을 시작할 겁니다. 그때가 되면 너무 늦어요!"
"그럴지도 모르지. 아니, 나도 비슷한 생각은 하고 있네. 내가 바보인 줄 아는가? 카이사르의 야망은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네. 십 년도 더 이전부터 줄곧 경고했었지. 그때마다 원로원이 뭐라고 했었는지 기억하나? 그건 너무 과한 해석이다, 개인적인 감정으로 확대해석을 하고 있다. 뭐 그런 말이 쏟아졌었지."
카토가 키케로 쪽을 힐끔 돌아보았다.
귀족파 중에는 나름 온건한 편에 속했던 키케로가 찔리는지 헛기침을 하며 카토의 시선을 피했다.
그는 카이사르가 야심 덩어리이긴 해도 공화정을 아예 무너트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고,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었다.
어쩌면 종신 독재관 같은 자리에 올라 권력을 마음껏 휘두르려는 마음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왕정 수립이라니.
이건 카시우스나 카토가 과하게 넘겨짚은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었다.
반면 카시우스는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면서도 암살에 반대하는 카토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이었다.
"그걸 다 아시면서 계획에 반대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설마 정정당당하게 카이사르를 탄핵하겠다 뭐 그런 마음을 가지고 계신 겁니까?"
"어떤 훌륭한 의도를 가지고 있더라도 그걸 이행하는 수단이 정당성이 없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네. 뒷구멍 협잡질로 로마 공화정의 순수성을 회복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 그 정신 상태가 심히 의심될 뿐일세."
"그러니까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지금 와서 카이사르를 정치적으로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까요. 그는 지금 우리보다 모든 면에서 더 우월합니다. 시민들의 지지, 정치적인 역량, 그리고 제도를 이용하는 응용력. 무엇 하나 귀족파는 카이사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어요."
카토가 코웃음을 쳤다. 그가 한심하기 그지없다는 얼굴로 카시우스를 바라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니까 죽이자고? 자네가 말하는 건 결국 감당을 못하니까 죽이겠다는 건데 이게 제3자에겐 어떻게 보일지 정녕 모르겠나?"
"그게 아니지 않습니까. 공화정을 위협하는 자를 배제하고 공화정을 되살리기 위한······."
"헛소리!"
카토의 언성이 한층 더 높아졌다. 그가 마치 전장에 나가는 병사처럼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이를 갈았다.
"법을 어길지도 모르는 자를 처리하기 위해 법을 어기자고? 그것도 전직 집정관이자 로마의 영웅으로 추대되는 자를 죽여? 자네에게 공화정의 순수성은 중요하지만, 로마 시민들의 권리는 중요하지 않나? 시민권을 존중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공화정의 순수성을 회복한다는 것인가."
카시우스는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하고 그저 입만 뻐끔거렸다.
뭐라고 설득을 하긴 해야겠는데 도저히 건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가 침묵에 빠지자 카토가 이번에는 키케로 쪽을 쏘아보며 말했다.
"참으로 실망이로군.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 키케로가 이런 어처구니없는 주장에 동의할 줄이야. 로마에서 최고의 법률가로 꼽히는 사람이 법을 어기는 데 앞장선다는 걸 대체 어떻게 받아들이면 되는 것인지."
"오해일세. 나는 무작정 카이사르를 암살하자는 게 아니야. 일단 감정을 가라앉히고 내 말을 들어보면 자네도······."
"듣고 싶지 않으니 그냥 짐 챙겨서 나가게. 나는 이유가 뭐가 됐든 이런 더러운 일에 끼어들 마음 없네. 부정한 수단으로 이룩한 평화는 결코 오래갈 수 없네. 독재로 공화정을 강화하려고 했던 술라랑 다를 게 없단 말일세. 암살로 공화정을 재건해봐야 결국 몇 년도 채 되지 못해서 다시 무너지겠지."
카토는 아예 귀를 막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설득의 여지가 없음을 직감한 카시우스와 키케로는 한숨을 쉬며 카토의 집을 뒤로했다.
"카토는 계획에서 배제하는 게 좋겠네."
"안타깝습니다. 누구보다 든든한 지지자가 되어주실 줄 알았는데."
"자유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이니까. 좋은 의미로도 나쁜 의미로도 자신의 미학에 어긋나는 것과는 타협하지 않는 사람이지."
"독재자의 싹을 자르기 위해 오욕을 감수하는 건 공화정을 사랑하는 이로서 기꺼이 짊어져야 할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카토 님처럼 깨끗한 길만 걷고 싶은 마음이 왜 없겠습니까."
카시우스가 억울하다는 듯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키케로는 딱히 거기에 동의하지도, 반대하지도 않았다.
"그나저나 이제 어쩔 텐가? 카토의 협력을 받지 못했는데 누굴 추가로 끌어들여야 하지?"
"···우리에겐 상징이 되어줄 인물이 필요합니다. 제 친구 브루투스보다 이 역할에 더 적합한 사람은 없을 겁니다. 카토 님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이상 더욱더 그의 조력이 필요해요."
"브루투스는 카토의 조카일 뿐만 아니라 최근 카토의 딸과 결혼까지 하지 않았나? 게다가 그는 카이사르와 사적으로 친하기까지 하지. 암살을 반대하기만 하면 차라리 다행이지 카이사르에게 쪼르르 달려가서 전부 고해바칠 가능성도 있네."
"아니요. 공화정을 향한 그의 사랑은 진짜입니다. 옛날부터 알고 지낸 친구이니 확신할 수 있어요. 우선 제가 혼자 가서 그의 반응을 떠보겠습니다."
"그래. 좋을 대로 하게. 별로 기대는 되지 않지만 그래도 기다리도록 하지."
키케로의 허가가 떨어지자 카시우스는 곧바로 브루투스의 집으로 들어섰다.
그는 자신을 반갑게 맞이하는 처남의 의견을 묻고자 은근슬쩍 말을 빙빙 돌려 질문했다.
"자네는 공화정의 미래를 어떻게 생각하나?"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려운 질문이로군. 미래는 오직 신들만이 아시지 않겠나."
"하지만 그 미래를 쟁취해야 하는 건 우리 인간들일세. 자네는 거대한 악을 무너뜨리기 위해 자신도 악을 짊어져야 한다면 어떻게 할 텐가? 조금의 부정도 용납할 수 없다는 고고한 태도를 견지하는 게 옳다고 생각하나?"
"글쎄··· 하지만 정당하지 못한 과정을 거친다면 올바른 결과를 얻긴 힘들 거라는 생각은 있네. 이건 시대를 막론하고 언제나 통용되는 진리가 아니겠는가."
브루투스의 명쾌한 대답에 카시우스는 그를 설득할 수 없을 거라는 걸 깨달았다.
결극 그가 하는 말은 카토와 같다.
카시우스 혼자서 친우의 생각을 바꾸는 건 무리였다.
원 역사와는 다르게 브루투스는 마르쿠스라는 믿을 구석이 있었고, 무엇보다 아내인 포르키아의 설득에 시달릴 일이 없었던 까닭이다.
원래 카이사르를 극도로 증오했던 포르키아는 지금은 그렇게까지 카이사르를 향해 적의를 드러내고 있지 않았다.
그 증오의 원인이 됐던 카토의 자결 사건이 아예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설프게 설득해봐야 역으로 카이사르에게 계획이 새어나갈 수도 있다.
카시우스는 알겠다는 말을 남긴 채 터덜터덜 밖으로 나섰다.
"폭군의 싹을 잘라내는 게 이리도 험난할 줄이야."
그래도 포기할 마음은 없었다. 이미 그의 옆에는 믿음직한 스무 명의 동료들이 있지 않은가.
카이사르가 왕이 되려 한다는 야심을 확실히 드러내게 할 수만 있다면 카토나 브루투스의 생각도 바뀔지 모른다.
앞으로의 계획을 구상하며 돌아가는 그의 발걸음에 자연스레 한층 더 힘이 실렸다.
※※※
조금 뜬금없었던 카시우스의 방문은 브루투스에게도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다.
브루투스는 결코 눈치가 없다거나 미련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카시우스가 자신에게 했던 질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대강 짐작하고 있었다.
'카시우스··· 설마하니 그런 어리석은 짓을 정말 행동으로 옮기려는 건 아니겠지?'
만약 진짜 암살을 하려고 한다면 카시우스가 혼자서 단독으로 일을 벌일 리가 없다.
최소한 수십 명의 사람들이 그와 뜻을 함께하고 있다고 봐야 했다.
그런 어리석은 뜻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많겠나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카이사르 님은 적이 많으니까. 과격한 귀족파 의원들 중에는 차라리 그분을 죽이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많을 거야.'
방금 전 카시우스가 보였던 표정을 떠올린 브루투스는 내심 확신했다.
그건 이제 막 계획이나 짜볼까 하는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
이미 굳은 신념을 가슴에 품은 이들이나 보일 법한 그런 얼굴이었다.
'카시우스··· 진짜 어쩌자고 그런 바보 같은 선택을 했나.'
카시우스는 브루투스의 절친한 친우이며 동시에 누이의 남편이기도 하다.
그가 바보 같은 행동을 하다가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자신 역시 흙탕물을 뒤집어쓸 가능성이 높았다.
가문이 통째로 뒤흔들릴 가능성도 낮다고는 할 수 없었다.
지성은 높아도 결코 대범하다고는 할 수 없는 브루투스는 돌연 엄습해오는 불안감에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카시우스가 이 이야기를 대체 어느 선까지 하고 다녔는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경솔하게 입을 놀렸을 것 같지는 않지만 이건 아무리 봐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조금만 말이 와전돼서 새어나가면 당장이라도 로마에 피바람이 불어올 것이다.
그는 허겁지겁 집을 나와 마르쿠스가 머물고 있는 크라수스 가문의 저택으로 걸음을 옮겼다.
"불쑥 찾아 봬서 죄송합니다."
"죄송할 게 어디 있나. 어서 오게, 브루투스."
응접실로 안내된 브루투스는 느긋하게 차를 기울이고 있는 마르쿠스의 모습을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그의 앞에는 이제 갓 성인이 되었을까 말까 한 젊은 청년이 앉아 있었는데 왠지 모르게 자꾸만 시선이 갔다.
그의 시선을 알아챈 마르쿠스가 싱긋 웃으며 두 사람을 소개시켜 주었다.
"그러고 보니 직접 보는 건 처음인가? 옥타비우스, 자네도 이름은 익히 들어보았겠지? 이쪽이 그 유명한 브루투스라네. 브루투스, 자네도 인사하게. 내가 돌봐주고 있는 가이우스 옥타비우스일세. 아주 재능이 출중하고 총명한 젊은이라 이렇게 자주 이야기를 나눈다네."
"아, 예. 반갑네, 옥타비우스. 재기 넘치는 젊은 청년을 이렇게 또 한 명 알게 되니 정말 기쁘군."
"저야말로 공화정의 토대를 만든 위대한 가문의 후계자를 만나게 되어 기쁩니다."
브루투스는 자기보다 한참 어린 평민 청년을 결코 경시하지 않았다.
마르쿠스가 이 정도로 극찬을 한 인재라면 친하게 지내서 나쁠 건 없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자리에 앉은 그가 마르쿠스와 옥타비우스가 기울이고 있는 찻잔을 보며 눈을 반짝였다.
"그게 요새 유행하고 있는 차라는 물건입니까?"
"그래. 자네도 맛 좀 보겠나?"
"동방의 귀족들이 즐기는 기호품이라는 말은 익히 들어보았습니다. 맛을 볼 수 있다면 저야 영광이지요."
공손히 잔을 넘겨받은 브루투스는 조심스럽게 잔에 입을 대보았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모습을 지켜본 마르쿠스가 피식 웃으며 천천히 찻잔을 입에 가져갔다.
"지금까지 한 번도 접해보지 않았던 향과 맛일 테니 처음엔 익숙지 않을 걸세. 그러고 보니 자넨 지금 한창 보급 중인 커피도 마셔보지 못했겠군."
"이야기는 들어봤습니다. 그 검은 색 액체를 말씀하시는 거죠? 잠이 오지 않는다는 신기한 음료라고 소문이 자자하더군요."
"그래. 다음에 오면 그땐 커피를 내줄 테니 한번 마셔보게. 처음엔 너무 쓰다고 느낄 테니 설탕을 듬뿍 타서 건네주지."
"더없이 친절한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브루투스는 그렇게 말하며 조심스럽게 마르쿠스의 눈치를 살폈다.
"뭔가 할 말이 있나?"
"···예. 어쩌면 사소한 문제일 수도 있는데······."
우물쭈물하던 브루투스가 옆에 있는 옥타비우스를 힐끔 곁눈질했다.
다른 사람이 있는 곳에서 섣불리 말하는 건 조금 꺼려졌지만, 자리를 피해달라고 하면 오히려 불필요한 의심을 받게 될 수도 있다.
차라리 그냥 아무렇지도 않은 척 태연하게 이야기를 꺼내는 게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마음을 굳힌 그가 최대한 어색하지 않은 어조로 물었다.
"혹시 카시우스가 다녀간 적이 있습니까?"
< 239. 음모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