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7. 히스파니아 내전 (188/326)

  < 187. 히스파니아 내전 >

  187

  "제정신으로 이런 짓을 벌이는 건가?"

  섹스투스는 충격에 빠져 있었다.

  갑작스레 행동을 개시한 그나이우스의 여론전은 날카로웠다.

  그는 전방위적으로 섹스투스에 대한 악질적인 소문을 흘렸다.

  부유한 그리스 지역만을 총애하고 여러 가지 특혜를 몰아주고 있다는 증거가 쏟아져 나왔다.

  물론 조작된 증거였다.

  하지만 원래 결백을 증명하는 건 의혹을 제기하는 것보다 몇 배는 더 많은 노력과 자료가 필요하다.

  섹스투스는 그나이우스가 이렇게까지 할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그가 제대로 된 대처를 하지 못하는 사이 그럴싸하게 조작된 증거를 기반으로 한 소문은 이미 히스파니아 전역을 뒤덮었다.

  히스파니아는 파트로네스의 책임을 다하지 않은 섹스투스를 규탄하고, 그를 따르지 않겠다는 성명을 연일 발표했다.

  히스파니아만이라면 몰라도 이런 기류가 북아프리카까지 서서히 침투하고 있다는 게 문제였다.

  로마 역시 혼란에 휩싸였다.

  "이런 건 당연히 대꾸할 가치도 없는 헛소문이다!"

  섹스투스는 매일같이 연단에 올라 자신의 무고를 호소했다.

  하지만 한 번 불붙은 의심의 눈초리는 쉽게 거두어지지 않았다.

  가장 뼈아픈 건 민중파 의원들의 불신이었다.

  그나이우스는 섹스투스가 자신의 기반을 유지하기 위해 귀족파의 도움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폼페이우스 사후 섹스투스가 찬성, 반대한 법안들의 목록이 그 증거였다.

  섹스투스가 마르쿠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귀족파의 뜻에 거스르려 하지 않았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건 딱히 무슨 정치적인 의도가 있어서라기보다는 그냥 별다른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막상 모아놓고 보니 석연치 않은 느낌을 주는 건 사실이었다.

  원래 거짓 선동이란 그럴싸한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것부터 시작한다.

  "아무래도 해명이 필요할 듯싶소."

  믿었던 같은 파벌 의원들도 조금씩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그나이우스의 공세는 확실히 날카로웠다.

  그는 민중파가 현재 가장 불안해하고 있는 점을 제대로 찌른 것이다.

  현 민중파 의원들이 겉으로 말은 하지 않았어도 섹스투스의 행보에 우려를 가지고 있었던 건 사실이었다.

  다만 어린 섹스투스가 가지고 있는 현실적인 불안감을 알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데 연달아서 신경 쓰이는 소문이 들려오니 불안감이 들끓을 수밖에 없었다.

  "해명은 무슨 해명! 이미 충분히 하지 않았습니까. 저건 그냥 악의적인 음해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묘하게 신빙성이 있는 근거들을 대고 있지 않소.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는 확실한 증거를 제시해 반격하지 않으면 민심이 흔들릴 수도 있을 거요."

  "그나이우스는 바로 그 점을 노리고 있는 겁니다. 이 정도에 흔들린다면 나중에 귀족파가 본격적으로 공작을 걸어왔을 때 대체 어떻게 대처하려고 그러는 겁니까."

  "그건 그렇지만··· 이번에 그나이우스가 자신을 따르는 의원을 통해 원로원에 안건을 제출하지 않았소."

  "잘 알겠습니다. 그럼 원로원에서 제가 그나이우스의 주장이 말도 안 된다는 걸 다시 한번 명명백백히 밝히도록 하죠."

  섹스투스는 본래 나이 문제 때문에 원로원 의원의 자격이 없었다.

  하지만 폼페이우스가 가지고 있던 총독직과 임페리움을 받았기 때문에 폼페이우스의 의원직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그는 그나이우스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기 위해 정식으로 원로원에서 연설을 가졌다.

  그런데 그나이우스는 교묘하게도 섹스투스의 이런 행위 자체가 공화정의 법적 질서를 뒤흔드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그의 주장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았다.

  <섹스투스는 공화정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있다. 스무 살도 되지 않은 어린 청년이 원로원 의석을 얻은 사례는 공화정의 역사에서 찾아볼 수가 없다.

  자랑스러운 공화정의 역사가 섹스투스의 자각 없는 폭주로 훼손되고 있는 것이다. 로마가 언제부터 직위의 세습을 인정하는 국가가 된 것인가. 지금이라도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로마를 본연의 모습으로 되돌릴 필요가 있다.>

  섹스투스는 전략의 부재를 실감했다.

  여전히 그나이우스와 비교하면 압도적인 세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의 얼굴엔 더 이상 여유가 감돌고 있지 않았다.

  '그나이우스가 홀로 이렇게까지 주도면밀할 리가 없어. 분명 뒤에 누군가가 있다.'

  섹스투스는 형의 성격을 잘 알았다.

  지략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으나, 즉흥적이고 그때그때 떠오르는 발상에 의존하는 유형의 사람이다.

  그러나 지금 그나이우스는 섹스투스가 제대로 대응하기 힘들 정도로 정교한 여론전을 펼치고 있었다.

  이건 절대 그나이우스가 선호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섹스투스에겐 그의 형에게 없는 날카로운 직감이 있었다.

  그나이우스를 조종하는 누군가가 있는 것이다.

  '마르쿠스 님이라면 알아낼 수 있을 것 같지만······.'

  마르쿠스의 도움을 받는다면 그나이우스가 뭘 하든 찍어 누를 수 있을 테지만, 상황상 그것도 불가능했다.

  그나이우스는 섹스투스가 마르쿠스에게 의존하지 못하도록 민중파를 동요시킨 게 틀림없었다.

  여기서 섹스투스가 마르쿠스에게 의존하는 태도를 보인다면 그나이우스의 선동에 힘을 실어주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현재 흔들리고 있는 폼페이우스 가문의 클리엔테스들과 섹스투스의 자존심이 누군가의 손을 빌린다는 걸 허용하지 못했다.

  그는 길게 고민하지 않았다.

  민중파를 소집해 의견을 취합한 뒤, 즉각 원로원 회의를 소집했다.

  "그나이우스는 지금 명백히 로마의 법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공권력을 동원한 제재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하지만 히스파니아 속주는 그를 지지한다고 하고 있는데······."

  "그건 그나이우스의 거짓 선동에 놀아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 히스파니아 속주에까지 죄를 물을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나이우스는 자신이 저지른 죄의 대가를 치러야만 합니다."

  로마 시민을 처벌할 수 있는 죄목은 법령으로 확실하게 제한되어 있다.

  섹스투스는 그나이우스에게 경반역죄와 불경죄, 그리고 폭력선동죄를 적용해 로마로 압송해올 것을 정식으로 요청했다.

  그러나 이게 의결된다고 해도 그나이우스가 순순히 끌려올 리는 없었다.

  섹스투스의 이 행동은 군사적 충돌을 일으키겠다는 선전포고나 마찬가지였다.

  키케로가 우려 섞인 목소리로 섹스투스를 만류했다.

  "한 번만 더 생각해보게. 그래도 아직은 정치적으로 해결할 여지가 있지 않겠나. 여기에서 강압적인 수단을 쓴다면 여러 가지로 복잡한 상황이 펼쳐질 수도 있네."

  "아니요. 여기서 손 놓고 가만히 있으면 오히려 혼란이 더 가중될 겁니다. 저는 지금 돌아가는 이 일련의 상황에서 거대한 음모의 냄새를 맡을 수 있습니다. 이건 단순히 그나이우스의 폭주가 아닙니다. 정체불명의 세력이 로마에 혼란을 일으키기 위해 공작을 펼치고 있는 겁니다."

  "확실히 돌아가는 모양새가 조금 꺼림칙하긴 하네만······."

  "그러니 초장에 바로 뿌리를 뽑아버려야 합니다. 물론 여기 계신 분들은 이렇게 물리적인 수단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걸 원치 않으신다는 걸 압니다. 하지만 지금 그나이우스는 원로원의 이런 자비를 믿고 폭거를 저지르는 것입니다. 전 이런 악질적인 범죄를 저지르는 자들에게는 마땅한 물리적 제재가 가해져야 한다고 확신합니다."

  섹스투스가 완강하게 주장하고 나서자 다른 의원들은 섣불리 반박하지 못했다.

  지위나 나이가 어쨌든 섹스투스에게는 10개 군단을 동원할 수 있는 임페리움이 있다.

  게다가 그가 명령을 내리면 언제라도 달려올 충직한 군단이 이탈리아 반도 전역에 퍼져 있었다.

  반대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마르쿠스 정도겠지만, 그는 딱히 섹스투스를 제지할 마음이 없어 보였다.

  결국 누구도 이견을 달지 않았다.

  사실 귀족파 입장에서는 나설 필요가 없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민중파의 내분에 불과했고, 자신들은 이 상황을 최대한 이용하기만 하면 된다.

  섹스투스는 이번 일을 기회로 삼아 자신의 결단력과 군사적인 능력을 한꺼번에 보여 줄 심산이었다.

  "원로원의 이름으로 공문을 하달하겠습니다. 그나이우스는 로마에서 법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가장의 권위를 정면으로 거스르고, 거짓된 소문으로 혼란을 조성했습니다.

  게다가 이런 행위로 속주의 통치를 어렵게 만들었으니 그 죄목이 너무나도 명백한 바. 가문의 일원이 저지른 죄는 가장인 제가 직접 바로잡아 보이겠습니다. 6개 군단과 그들을 수송할 수 있는 함선을 동원해 히스파니아로 진군하겠습니다.

  "

  "6개 군단이나?"

  이번 건 좀 컸다.

  의원들 사이에서 가벼운 동요가 일어났다.

  그나이우스는 정식으로 반란을 일으킨 것도 아니고, 그저 여론전을 펼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그를 잡으러 가는 데 4만에 가까운 병사들과 수십 척이 넘는 군함을 띄우겠다는 것이다.

  이건 일종의 무력시위나 다름없었다.

  그런 분위기를 읽은 섹스투스가 좌중을 둘러보고 천천히 힘을 주어 강조했다.

  "너무 과한 힘을 쏟아붓는다고 생각하시겠지요. 맞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이미 그나이우스는 히스파니아 전역을 장악했다고 봐야 합니다. 여기서 어설프게 병력을 보내봐야 역으로 격파당할 뿐입니다. 세르토리우스의 반란을 기억하십시오. 그나이우스는 언제든 제2의 세르토리우스가 될 수 있습니다."

  "만약 그나이우스가 병력을 동원해 저항한다면 전투를 벌일 것인가?"

  불안감을 숨기지 않는 키케로의 물음에도 섹스투스는 결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습니다. 이렇게 단호한 대처를 하지 않는다면 그나이우스의 뒤에서 암약하는 자는 또다시 기회를 엿볼지도 모르니까요. 그런 어설픈 공작으로는 로마의 체재를 흔들 수 없다는 걸 확실히 보여 줄 겁니다."

  원로원은 결국 섹스투스의 뜻대로 그나이우스를 로마로 압송하기로 결의했다.

  민중파도 결국은 섹스투스의 뜻대로 따르기로 납득한 것이다.

  내전을 벌이는 건 안타까운 일이지만, 섹스투스가 이렇게 단호하게 나가는 걸 반기는 의원들도 있었다.

  아무래도 차기 민중파의 수장으로서 강단 있는 모습을 보여 주길 원하는 사람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섹스투스는 모든 사항이 전부 결정된 뒤, 마지막으로 마르쿠스를 찾아 그의 의견을 물었다.

  "주변에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킬까봐 그동안 찾아뵙지 못했습니다."

  "이해하네. 그리고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하네. 그런 소문이 퍼지고 있는데도 나에게 의존하려고 했다면 나부터 꽤나 실망했을 걸세."

  "그렇게 말해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런데 마르쿠스 님은··· 이번 일의 배후에 누가 있는지 알고 계십니까?"

  "자넨 그나이우스가 흑막이 아니라고 확신하는 것 같군."

  섹스투스는 부인하지 않았다.

  이건 의심이 아닌 확신이었다.

  "마르쿠스 님도 그나이우스를 만나보지 않으셨습니까. 그가 이렇게 체계적인 여론전을 펼칠 자로 보였습니까?"

  "사람은 변하는 법이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나도 그나이우스가 이런 방법을 택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네."

  "역시 그렇군요. 저도 당연히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건 아무리 봐도 이상해요."

  마르쿠스는 그나이우스의 배후에 카이사르가 있는 걸 알았으나 그 사실을 직접 말해주지는 않았다.

  카이사르의 말대로 이 일은 섹스투스가 직접 처리하는 게 맞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고작 이 정도의 일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다면 어차피 자신의 세력을 유지하는 건 무리였다.

  "자넨 그나이우스의 뒤에 있는 자가 누구라고 보고 있나?"

  "후보는 몇 명 추려뒀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물증이 없는데 그들의 이름을 거론하는 건 저에게 득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옳은 결정일세. 확실해지기 전까지는 가볍게 행동하지 말고 신중하게 움직이도록 하게."

  섹스투스는 짧은 한숨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사실 말은 이렇게 했어도 유력한 용의자는 이미 마음으로 찍어둔 상태였다.

  그나이우스의 동향은 섹스투스도 그동안 보고를 받고 있었다.

  북아프리카에서 히스파니아로 올라갔던 그의 소식은 갈리아로 넘어갔다는 보고를 마지막으로 한동안 끊겼다.

  그리고 갑자기 다시 나타나더니 사람이 달라진 것처럼 놀라운 수완으로 히스파니아를 손에 넣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나이우스답지 않은 정교한 행보로 사람을 놀라게 만들었다.

  어쩌면 섹스투스가 군단을 동원해 강제로 무력진압을 할 것까지 예상해 조치를 취해놨을 수도 있다.

  아니, 처음부터 섹스투스가 이렇게 나오기를 유도하지 않았을까 하는 불안감도 있었다.

  현재 로마에서 이렇게 솜씨 좋게 타인을 조종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섹스투스는 가장 먼저 두 사람의 이름이 떠올랐다.

  카이사르와 마르쿠스.

  그중에서도 그나이우스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장소가 갈리아라는 걸 고려하면 이제 더 이상 심증의 영역이라 할 수 없다.

  다만 한 가지 의문인 점은 카이사르가 과연 이렇게 쉽게 꼬리가 잡히도록 일을 처리했을까 하는 점이다.

  어쩌면 의심을 해도 섹스투스가 뭘 어쩌겠냐는 오만의 발로일 수도 있다.

  아니면 제3자가 카이사르를 용의선상에 올리기 위해 수작을 부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럴 경우 유력한 용의자는 마르쿠스가 된다.

  마르쿠스가 뒤통수를 칠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았으나, 정치에서 영원한 아군이란 없는 법이다.

  직접적으로 드러내지만 않는다면 경계한다고 해서 손해를 볼 건 없다.

  섹스투스는 솔직히 누구를 믿어야 할지 아직 확신을 할 수 없었다.

  '만약 그나이우스를 뒤에서 조종한 게 카이사르가 맞다면 어떻게 해야 하지?'

  그나이우스를 토벌하고 다시 히스파니아를 수복한다고 해도 고민거리는 남았다.

  그나이우스를 부추긴 자가 카이사르라면 섹스투스도 무언가 대처를 해야만 했다.

  어떻게 보면 현재 당면한 가장 큰 적은 그나이우스 따위가 아니라 카이사르일지도 몰랐다.

  6개 군단과 대규모의 함선을 동원한 작전은 섹스투스가 카이사르에게 보내는 경고이기도 했다.

  자신도 이 정도로 할 수 있으니 섣불리 자극할 생각은 하지 말라는 그런 의지의 표명이었다.

  군단을 소집한 섹스투스는 망설이지 않았다.

  6개 군단을 실은 수십 척의 함선이 지중해의 물살을 가르며 히스파니아로 뻗어 나갔다.

  부서지는 파도 위로 구름 섞인 스산한 태양이 군단의 앞길을 비추고 있었다.

  섹스투스의 시선은 히스파니아로 나아가면서도 그 위에 있는 갈리아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절대로 호락호락 당하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제는 반격할 시간이었다.

  < 187. 히스파니아 내전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