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6. 정상회담 >
156.
원로원이 카이사르와 마르쿠스, 폼페이우스의 삼자 정상회담을 개최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은 곧바로 포로 로마눔에 내걸렸다.
포고문을 읽은 로마 시민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를 쳤다.
최근의 소란 때문에 장사를 할 수 없게 됐던 자영업자 중에는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는 사람들도 나왔다.
마르쿠스의 말대로 로마인들은 이 어이없는 자존심 대립에 완전히 질려버린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군단의 지휘권을 가진 마르쿠스와 카이사르까지 로마로 돌아온 것이다.
시민들은 또 다른 파벌싸움이 일어나지 않을까 마음을 졸이고 있었다.
그런데 그러기는커녕 가장 강한 힘을 지니고 있는 이들이 직접 갈등중재에 나선다고 하니 이보다 반가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회담은 원하는 이라면 누구라도 참관할 수 있다. 단, 회담을 방해하거나 소란을 부리는 자는 즉각 병사들에게 연행 될 것이다."
사흘에 걸쳐 정상 회담에 관한 여러 사항들이 대중에게 공개 되었고 적극적인 홍보가 뒤따랐다.
그러면서 자연히 클로디우스와 밀로의 폭주에도 제동이 걸렸다.
사실 마르쿠스가 행동에 나선 이상 클로디우스는 이런 일을 계속할 필요가 없었다.
그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갑자기 잠잠해지자 상대가 없어진 밀로도 당연히 할 게 없어졌다.
원래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이다.
민중파와 귀족파는 이제 서로 자존심 싸움을 벌이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카이사르와 마르쿠스에게 가서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줄줄이 늘어놓는 쪽을 선택했다.
"카이사르, 다른 건 몰라도 지금까지 밀로 그 놈이 끼친 손해에 대한 보상은 반드시 받아야 합니다."
"마르쿠스, 클로디우스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귀족파를 고발하는 짓거리를 다시는 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주게. 그리고 거부권을 남발해 국정을 마비시키는 행위에도 제한을 걸 필요가 있네."
마르쿠스와 카이사르는 적당히 자기 파벌의 요청에 맞장구를 쳐주며 차분히 회담을 준비했다.
특히 마르쿠스는 지금까지 소동을 일으켰던 주범인 밀로에게 엄중한 경고를 내렸다.
"자네가 지금까지 한 행동은 다른 의원들의 묵인 하에 저지른 일이니 책임을 묻진 않겠네."
"감사합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그럴 필요 없네. 자네가 소집한 자경단은 이 시간부로 해체하도록 하지."
"하, 하지만 클로디우스가 또다시 원외단을 이끌고 소란을 일으킬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밀로는 자신이 누리고 있는 폭력이라는 권력을 이대로 놓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귀족파 의원들의 뒤를 닦아주는 역할이라고 해도 귀족파는 하나의 인격체가 아니었다.
한 가지 사안에 대해서도 다양한 의견이 나오는 게 일쑤였고, 밀로는 그 틈을 노려 지금까지 방종한 행동을 계속해왔다.
애초에 그를 제대로 통제했다면 로마가 이렇게까지 시끄러웠을 리가 없다.
마르쿠스는 책상 위를 손가락으로 툭툭 두드리며 밀로를 차갑게 바라보았다.
"클로디우스는 카이사르 쪽에서 통제할 테니까 자네가 신경 쓸 필요는 없네. 앞으로 로마에서 법으로 허가받지 않은 무뢰배들이 날뛰는 일은 있어선 안 될 거야. 어차피 이번에 법을 확실히 제정해둘 생각이니 네가 하기 싫다면 하지 않아도 돼. 물론 그럴 경우 공권력이란 게 얼마나 무자비하고 강력한지 알게 되겠지."
욱한 감정을 숨기지 못한 밀로의 눈가가 꿈틀 움직였다.
"저는 호민관을 지내기도 했고 지금까지 귀족파 의원들을 위해 충심으로 활동해왔습니다."
"알고 있네. 그래서 아무런 책임도 묻지 않겠다고 하지 않나."
"그래도 지금까지 한 일에 대한 보상도 없이 일방적으로 그만두라고 하시면······."
"보상?"
마르쿠스의 어조가 점점 더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밀로는 심상치 않은 느낌을 받긴 했으나 물러서지 않았다.
지금까지 로마의 거리를 주름잡으며 쌓인 헛된 오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마르쿠스 님이 귀족파에게 전권을 위임받으셨다지만 이러실 수는 없습니다. 최소한 저에게 법무관의 자리라도 약속해 주십시오."
"자네의 신체와 재산이 성한 상태로 남아있을 수 있다는 게 최선의 보상이라 생각해본 적은 없나?"
"저는 로마 시민입니다. 누가 감히 제 공권을 훼손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확실히 로마 시민은 법에 따라 보호를 받지. 그런데 법을 아랑곳하지 않고 지금까지 마음대로 날뛴 무뢰배가 법에 대해 논하는 건 좀 우습지 않나?
밀로는 한 마디 반박도 하지 못하고 이를 갈았다.
지금까지 수많은 폭력을 일삼은 그는 자신도 모르게 허리춤에 맨 무기를 만지작거렸다.
촤앙!
바로 그 순간 스파르타쿠스의 검집에서 뽑힌 서늘한 칼날이 밀로의 목에 닿았다.
눈으로 좇을 수조차 없을 정도의 엄청난 속도였다.
이 한 수만으로도 밀로의 등에는 흥건하게 식은땀이 맺혔다.
"무기에서 손을 떼라."
나지막한 스파르타쿠스의 한 마디에 밀로는 허겁지겁 양손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이, 일부러 그런 게 아닙니다. 그냥 습관적으로 무기에 손을 올린 것뿐입니다."
"그러니까 내 자네에게 자경단을 해산하라고 하는 걸세. 자기도 모르게 무기에 손을 올릴 정도로 폭력에 익숙해진 사람을 그대로 놔둘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렇지?"
"······예."
폭력배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바로 자신보다 확실히 강한 자의 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진다는 것이다.
스파르타쿠스의 존재감과 실력에 압도당한 그의 마음속에서 저항의 의지가 완전히 사라졌다.
힘없이 걸어나가는 밀로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스파르타쿠스가 물었다.
"저대로 보내도 괜찮겠습니까?"
"지금은 괜찮아."
"언젠가는 손을 보겠단 말씀이시군요."
"그래. 저런 놈을 계속 가만히 놔둘 정도로 난 유하지 않거든. 저런 류의 인간은 반드시 다시 문제를 일으키게 되어 있어. 그러니까 적당히 엮을 건수가 생기면 보내버려야지."
밀로를 확실히 무력화시킨 마르쿠스는 느긋하게 회담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마침내 약속의 날이 밝아오자 마르스 평원은 이른 새벽부터 구경꾼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평원 주변은 개선식을 위해 모인 폼페이우스의 군단병들이 철통같이 경계를 섰다.
클로디우스와 밀로처럼 지은 죄가 있는 사람들은 그 압도적인 박력에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찔거렸다.
공병들은 그늘이 진 커다란 나무 아래에 세 사람이 앉을 고관 의자를 가져다 두었다.
그것과 거리를 좀 두고 원로원 의원들과 호민관들이 앉아서 볼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시민들은 그보다 좀 더 뒤에서 회담의 진행 상황을 살필 수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흙을 잔뜩 쌓아 올린 뒤 그 위에 올라가 자리를 잡기도 했다.
회담이 길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하인들은 간식과 음료를 준비하며 바쁘게 돌아다녔다.
마침내 시간이 되자 카이사르와 마르쿠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두 사람은 둘 다 자주색 단을 댄 토가를 입고 걸어 나왔다.
폼페이우스는 개선식 때 입기로 했던 갑옷을 입고 마치 과시하듯 두 사람의 중앙에서 손을 흔들었다.
산더미처럼 밀집한 군중들은 인사를 나누는 세 사람의 모습을 넋 놓고 쳐다보았다.
의례적인 예법을 주고받은 그들은 천천히 자리에 앉아 술잔을 교환했다.
"그러면 이제 슬슬 시작하도록 하지."
카이사르가 술잔을 받자마자 입을 열었다.
"그 전에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 있네."
가장 늦게 잔을 건네받은 폼페이우스가 차분하게 카이사르의 말을 받았다.
그의 목소리는 저 뒤에 있는 군중들에게 또렷하게 들릴 정도로 힘이 실려 있었다.
"그게 뭡니까, 마그누스?"
"나는 민중들과 정치적 동반자 카이사르와 함께할 것이지만 이번 안건에서만큼은 중립을 지키려 하오. 다들 아시다시피 마르쿠스는 명예를 아는 자로서 나의 가장 친한 벗이자 동방원정의 전우였고 이번 원정에서 물심양면으로 날 지원해 주었소. 나는 나의 친우인 마르쿠스를 공격할 마음이 없음을 이 자리에서 밝히는 바이고 되도록 나의 친구들 둘 모두 상해를 입지 않도록 중재를 맡으려 하오"
이건 카이사르와 마르쿠스가 아닌 이 회담을 지켜보는 원로원 의원들에게 하는 말이었다.
폼페이우스는 명예에 죽고 명예에 사는 로마인이었다.
일단 중재자 역할을 맡기로 한 이상 진영 논리보다는 자신의 소임을 다하는 게 평소 그가 가진 이미지에 더 어울렸다.
게다가 폼페이우스가 마르쿠스와 사적인 친분이 굉장히 깊다는 건 이미 로마에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민중파로서는 조금 아쉽긴 해도 폼페이우스가 중립을 지키는 게 타당하다고 여겼다.
혹시나 모를 정에 이끌려 갈팡질팡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철저한 중립을 지키는 게 변수가 없기 때문이다.
양쪽 파벌이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하는 듯 보이자 폼페이우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말을 이었다.
"또한 회담 중에 소란을 부리거나 결정에 납득하지 못하는 자에게는 즉각 퇴정 조치를 취하겠소. 이는 집정관이든 호민관이든 예외 없이 일괄적으로 적용되는 사항이니 모두 유념해 주길 바라오."
이번에도 불만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이미 마르쿠스와 카이사르는 원로원으로부터 이번 일의 해결을 위해 전권을 위임받았다.
이제 와서 다른 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다.
고요해진 좌중을 둘러본 폼페이우스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도로 자리에 앉았다.
"이제 정리가 끝났으니 본격적으로 논의에 들어가면 될 듯싶소."
"고맙습니다, 마그누스. 본격적인 회담에 앞서서 저도 한 말씀 드리도록 하죠. 우선 이 자리에 모인 수많은 로마 시민들에게 사과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정치인들의 무익한 다툼에 휘말려 선량한 시민들이 너무 오랜 기간 상처를 받았습니다. 이건 명백히 저를 포함한 모든 위정자들의 잘못입니다."
"저도 책임을 통감하는 바입니다. 진심으로 사죄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카이사르와 마르쿠스가 평원 뒤편에 늘어선 시민들을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원로원 의원들은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자신들을 노려보는 시민들의 시선을 피했다.
자연스럽게 원로원 의원들에게 한 방 먹인 카이사르는 우아하게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텅 비어버린 머리숱을 숨기기 위한 월계관을 잘 고정한 그는 여유로운 미소와 함께 화두를 제시했다.
"로마 정계에 안정을 가져오는 건 양쪽 모두의 공통적인 목표인 듯하니 합의를 보기 쉽겠군. 어떻게 생각하나?"
"예. 우선 시민들이 가장 불안해하는 부분부터 해결하고 넘어가도록 하죠."
"그러면 우선 이것부터 확실히 하면 되겠군. 양쪽이 운용하는 원외단과 자경단은 지금 이 시간부로 해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비슷한 사건이 일어난다면 병사들을 동원해 즉결 처분을 하도록 하지."
"이견 없습니다."
마르쿠스가 시원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동시에 건너편에서 구경중인 시민들 사이에서 격한 환호성이 솟구쳤다.
이토록 쉽고도 간단한 일을 어째서 지금까지 질질 끌었는지 모르겠다며 성토하는 목소리도 들렸다.
"폭력단을 해산하는 큰 틀은 합의를 봤으니 이제 세부사항을 조율해 보도록 함세. 우선 이쪽의 요구사항부터 말할 테니 들어주게. 우선 그동안 밀로가 부린 난동으로 로마에 막대한 손해가 발생했네. 시민들은 물론 귀족들 중에서도 재산에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많은 실정일세. 이 부분은 어떻게든 보상을 받았으면 하는 게 우리가 바라는 것이네."
"꼭 밀로가 혼자서 난동을 부리는 것처럼 말씀하시는군요. 손뼉은 부딪쳐야 소리가 나는 법입니다. 이쪽만을 일방적으로 탓하기엔 그쪽도 저지른 일이 많지 않습니까. 어느 한쪽의 잘못으로 이 일을 몰아가려고 하면 영원히 평행선을 달릴 뿐입니다."
"그것도 일리가 있는 말이군.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나? 그쪽에서 타협안을 제시해 보게."
"우선 가장 먼저 보상을 받아야 할 사람들은 억울하게 피해를 입은 시민들입니다. 의원들의 경우는 어차피 상호간의 피해를 입힌 것이기 때문에 손해 배상을 청구한다고 해도 준 돈을 다시 돌려받거나 받은 돈을 다시 토해내는 경우가 될 수밖에 없겠죠. 그러니까 일단 우선순위를 제대로 정해서 보상정책을 시행해야 합니다."
다시 한 번 시민들 사이에서 격한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러면 시민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하는 건 국고에서 충당하면 되겠나?"
"로마의 예산에 여유가 없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입니다. 본래 이런 일이 터졌을 때는 사고를 일으킨 장본인들에게 배상을 받는 게 원칙입니다만······."
마르쿠스가 의원들이 앉아 있는 좌석을 슬쩍 돌아보았다.
누구도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고 딴 짓을 하는 척 눈동자를 여기저기 움직이느라 바빴다.
"저는 동료 의원들에게 전권을 위임받고 이 자리에 선 몸. 책임도 응당 나눠지는 게 대표로서 해야 할 일이겠지요. 피해액 일부는 제가 보상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나도 여기서 인색하게 굴면 안 되겠군. 우리 쪽에서 저지른 일의 일부는 내가 보상하도록 하지."
마르쿠스와 카이사르가 원정에서 벌어들인 돈에 비하면 시민들 몇몇에게 보상금을 주는 건 새 발의 피 수준도 되지 않았다.
그래도 저지른 잘못이 있는 의원들의 안색은 환하게 펴졌다.
클로디우스나 밀로와 같이 일을 저지르고 다닌 의원들은 막 원로원에 들어온 신참들이거나 뒷배가 그리 튼실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구린내가 나는 일을 처리하는데 명문가의 높은 이들이 나설 리가 없다.
그러니 자연히 가장 발언권이 낮은 자들이 주로 이런 일을 떠맡게 되는 것이다.
이런 신참들은 아무리 귀족이라고 해도 빚에 쪼들려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원로원에 들어오려면 호민관이든 재무관이든 선거에서 당선되어야 하기 때문에 자금의 압박을 느끼는 이들이 특히 많았다.
그래서 죽어도 보상을 내놓지 않으려고 그렇게 갖은 기를 썼던 것이다.
마르쿠스와 카이사르는 주머니를 풀어 이런 젊은 의원들의 환심을 사기로 사전에 이야기를 맞춰 두었다.
계획대로 피해보상에 대한 걱정을 덜은 젊은 의원들의 자세가 한결 편안해지는 게 눈에 보였다.
카이사르와 마르쿠스는 이후로도 여러 가지 합의안들을 쭉쭉 가결해 나갔다.
때로는 논쟁도 하고, 언성을 높이는 척 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밀린 법안들이 워낙 많았기 때문에 하루가 끝나도록 다뤄야 할 안건들이 절반도 줄어들지 않았다.
"우리의 개선식 문제에 관해서도 논의를 해봐야하네."
두 번째 날에 열린 회담에서 카이사르는 드디어 자신들에 관련된 주제를 꺼내놓았다.
키케로가 원로원에서 이 이야기를 했을 때는 모두가 싸움에 정신이 팔려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어차피 싸움은 일단락됐고, 회담의 전권이 두 사람에게 있으니 주변에서 잡음이 나올 이유도 없었다.
"개선식을 포기하지 않으면 로마에 들어갈 수 없다는 조항 말씀입니까?"
"그래. 일부 귀족들이 그렇게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여기서 회담을 나누고 있는 게 아닌가. 이걸 해결해야 우리가 로마로 들어갈 수 있고 이 자리에서 합의한 내용도 더 깔끔하게 지킬 수 있겠지."
"그건 동감합니다. 그러면 개선식을 포기할 겁니까?"
"설마. 내가 법적으로 검토해 봤는데 우리가 로마로 들어가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네. 자네와 나의 지위는 현재 특별법으로 보호받고 있고, 우리는 로마로 들어올 때 군단을 해산하지 않아도 된다는 조항이 법안에 확실히 적혀 있네."
"그러면 단순히 서로 다른 두 법안의 내용이 충돌하는 것 아닙니까. 카이사르 님의 말씀도 일리는 있지만 다른 쪽의 주장도 완전히 틀린 건 아닙니다."
카이사르가 유감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키케로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럴 때는 로마 최고의 법률가에게 자문을 구해야겠죠. 어떻습니까, 키케로. 당신의 고견을 듣고자 합니다."
"예, 말씀드리겠습니다."
갑작스레 지목을 당한 키케로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목청을 가다듬은 뒤 연단에 올랐을 때처럼 수려한 연설을 시작했다.
자신이 얼마나 이 사안에 해박하고 다양한 관점에서 법안을 검토했는지를 설명하는 데만 20분가량 시간을 쓴 그는 드디어 본론을 말했다.
"···그런 이유로 저는 최근에 제정된 법이 더 우선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일반적인 법률보다는 특별한 목적성을 띤 법률이 더욱 우선되어야 한다고 보고요.
지금 논쟁 되는 사안은 이 두 가지 경우 모두에 해당하기 때문에 당연히 카이사르와 마르쿠스는 개선식을 포기하지 않아도 로마에 들어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무엇이 우선되든 간에 혼동을 피하기 위해서는 충돌되는 법안의 내용을 수정할 필요가 있겠지요.
"
"길고도 유익한 설명 참으로 고맙습니다. 로마에서 키케로만큼 법을 깊이 있게 연구한 학자가 없다는 건 여러분 모두가 알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저는 그의 의견을 받아들여 최근에 제정된 신법을 우선으로 적용한다는 원칙을 채택하겠습니다. 이건 아주 민감한 사항인 만큼 전권을 위임받았다고 해도 제멋대로 처리하지는 않을 겁니다. 이의가 있으신 분들은 얼마든지 발언을 요청하십시오.
"
카이사르가 원로원 의원들과 한명씩 눈을 맞추며 천천히 주변을 훑어보았다.
당연히 손을 드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법적인 문제로 카이사르와 키케로를 동시에 상대하려는 사람이 로마에 얼마나 있겠는가.
한참을 기다려도 아무런 말이 나오지 않자 카이사르와 마르쿠스는 이 합의안도 가결시켰다.
이다음 순서로 이루어진 건 클로디우스의 마구잡이식 고발과 그로 인해 빚어진 혼란의 수습이었다.
일단 클로디우스가 건 근거 없는 재판은 전부 무효로 돌아갔다.
그리고 앞으로는 아니면 말고 식으로 무차별적인 고발을 하면 역으로 법적인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제정하기로 합의했다.
마르쿠스는 불안해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 법안은 소급적용이 되지 않는다고 확실히 못 박았다.
이후로도 두 사람은 때로는 귀족파에 유리하게, 때로는 민중파 쪽이 웃을 수 있게 적절한 균형감각으로 법안을 처리해나갔다.
그리고 두 번째 날을 지나 세 번째 날이 거의 저물어갈 무렵.
마르쿠스는 회담을 지켜보고 있는 시민들에게도 발언의 기회를 주었다.
"혹시 이 자리를 빌려 정무관들에게 호소할 거리가 있는 분 계십니까?"
마르쿠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방에서 자신의 말을 들어달라는 시민들의 애원이 빗발쳤다.
무작위로 지목된 시민들은 지금까지 힘들었던 점들을 토로하며, 이를 해결해 줘서 고맙다고 감사를 표했다.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의 경우는 꼭 이를 알아봐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몇 번이나 고개를 숙였다.
시민들의 우레와 같은 성원이 점점 열기를 더해가자 마르쿠스는 자신이 사전에 섭외한 시민을 지목해 앞으로 나오게 했다.
"친애하는 시민분께서는 어떤 말을 하길 원하십니까."
"수부라에서 작은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루키우스라고 합니다. 지난 몇 달 저는 지옥과도 같은 고통 속에서 살았습니다.
제 가게가 사람들이 많이 밀집하는 거리의 바로 앞에 있다는 게 비극이었습니다. 폭력을 일삼는 패거리들은 거의 매일 같이 제 가게 앞에서 싸움을 했고 그로 인해 제 가게는 난장판이 되었습니다.
앞에서 매일 같이 싸우고 있으니 장사는 되지 않고, 임대료는 비싼 지역이라 고정 지출은 계속해서 나가는 악몽 같은 상황을 견뎌야 했습니다.
이 손해를 보상해주신다고 하니 저로서는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하지만 이번 난리에 직접적인 피해를 겪은 저 같은 사람들은 더 근본적인 해결책을 원하고 있습니다.
"
"근본적인 해결이라면?"
"마르쿠스 님과 카이사르 님이 나서니 몇 달을 끌어온 이 문제가 겨우 3일 만에 끝났습니다. 이게 의미하는 바가 뭐겠습니까. 저는 앞으로도 이런 갈등이 생길 때 빠르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제도를 원합니다!"
루키우스의 외침에 미리 심어둔 바람잡이들이 일제히 호응하며 마르쿠스와 카이사르의 이름을 연호했다.
그러자 일반 시민들도 목소리를 드높이며 저항할 수 없는 거대한 흐름을 만들기 시작했다.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평민회를 열자는 주장까지 터져 나왔다.
"이런, 이런, 이거 정말······."
카이사르가 곤혹스럽다는 미소를 지으며 마르쿠스를 돌아보았다.
마르쿠스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시민들의 뜻이니 받들어야지요. 내일은 이 주제로 논의를 하기로 하죠."
< 156. 정상회담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