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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예견된 결과 (119/326)

  < 118. 예견된 결과 >

  118.

  "우와아아아! 로마 놈들에게 기마 민족의 힘을 보여주자."

  무타레스가 호기롭게 일갈했다. 그는 절대 자신들이 질 리가 없다는 자신감으로 충만해 있었다.

  그만큼 병사들의 사기는 높았다.

  처음에는 불안해하던 카렌도 승리를 자신할 정도였다.

  파르티아군은 드넓은 평야 지대에서 싸웠을 때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이런 지형에서야말로 기병의 기동성을 최대한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파르티아군은 크게 군을 두 개로 나누었다.

  1만 3천의 궁기병은 무타레스가 이끌고 4천의 중장기병은 카렌이 지휘를 맡았다.

  원래는 무타레스가 중장기병을 이끌고 돌격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마지막에 그가 생각을 바꾸었다.

  아무리 자신감이 넘쳐흐른다고 해도 6만의 대군을 향해 정면으로 돌격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거기에 만에 하나 전황이 불리해질 경우 궁기병은 적과 거리를 유지하며 싸우기 때문에 도주하기도 용이했다.

  그는 노련한 카렌이 돌격대를 맡아야 한다는 핑계로 억지로 궁기병의 지휘권을 가져왔다.

  카렌은 무타레스의 속내가 훤히 짐작됐지만 쓸데없는 분쟁을 피하고자 뜻대로 따라주었다.

  모든 게 자신의 뜻대로 된 무타레스는 자신 있게 궁기병들을 진격시켰다.

  이번 전투에서 승리하기만 하면 그는 실각된 수레나스를 제치고 파르티아 권력의 핵심으로 급부상할 것이다.

  "궁기병들은 로마군의 정면을 향해 화살 세례를 퍼부어줘라. 기동력이 없는 놈들은 우리를 쫓아올 수 없다."

  "잠깐, 너무 성급하게 거리를 좁히는 게 아닌가. 로마군이 가지고 있는 활도 제법 사거리가 나온다고 했는데 조금은 주의를 해야 하지 않겠나."

  "일반 궁병의 사거리가 궁기병보다 조금 더 긴 거야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이쪽이 아예 피해를 보지 않을 수는 없겠죠. 어차피 금방 우리 궁기병의 사거리 안쪽으로 들어올 텐데 그러면 맞사격을 하면 되는 겁니다."

  무타레스도 아예 생각이 없지는 않았다.

  다만 그는 양측의 활 성능이 어느 정도 차이가 나는지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파르티아군의 접근을 지켜보는 로마군은 침착하게 방패를 들고 대열을 느슨하게 벌렸다.

  방패를 든 병사들의 사이로 자리를 잡은 궁수들이 활을 장전하기 시작했다.

  아직 한참이나 거리가 먼데도 개의치 않았다.

  당연히 사거리를 잘못 계산해서가 아니었다.

  선두에서 활을 겨누고 있는 궁병들은 편전을 사용하도록 훈련된 정예병이었다.

  애기살이라고도 불리는 편전은 굉장히 짧은 화살을 통아 안에 넣어서 발사하는 이색적인 화살이다.

  통아가 일종의 가이드레일 역할을 해주기 때문에 정확히 발사만 하면 훨씬 더 강력한 위력을 발휘한다.

  중세 비잔티움에서는 솔레나리온이라는 이름으로 쓰인 무기이지만, 로마의 현 기술로도 구현이 가능하다고 판단한 마르쿠스가 미리 도입했다.

  실제로 편전은 일반 화살보다 훨씬 더 빠르고 멀리 날아가며, 궤도도 일반 화살보다는 직선에 가까워 적이 대처하기가 쉽지 않았다.

  물론 숙련도가 높지 않으면 제대로 다룰 수 없는 물건이라 뛰어난 실력을 지닌 정예 궁병들에게만 지급되었다.

  그래도 적의 사기를 확 꺾어놓는 데에는 처음 보는 신병기만 한 게 없는 법이다.

  편전을 장전한 로마병들의 눈동자가 살기 어린 빛을 발했다.

  그와 동시에 공기를 가르는 파공음과 함께 통아가 편전을 토해냈다.

  피잉! 쒜에에엑!

  편전을 발사하면 통아만 사수의 손에 남아 덜렁거리고 짧은 화살만이 직선에 가깝게 날아간다.

  멀리서 보면 영락없이 사수의 실사로 화살이 땅에 떨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파르티아 궁기병들의 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들은 애초에 아직 한참이나 사거리가 모자랄 텐데 활을 발사하는 로마군의 행동 자체를 이해할 수 없었다.

  모래바람 때문에 날아오는 화살을 육안으로 확인하기 힘들다는 점도 한몫을 했다.

  "크큭, 로마 놈들도 어지간히 긴장했나 보군. 의미도 없이 화살을 낭비······."

  퍼억!

  비웃음을 흘리던 궁기병 한 명이 가슴에 화살이 박힌 채 그대로 말에서 굴러떨어졌다.

  퍼버버버벅!

  이어서 뼈와 살이 꿰뚫리는 파육음과 함께 선두에서 말을 몰던 병사들이 우르르 낙마했다.

  파르티아 기병들은 잠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인지하지 못했다.

  유효사거리까지는 아직 한참이나 남았는지라 화살을 맞았다는 생각 자체를 떠올리지 못한 것이다.

  고대 시대의 화살에 비하면 현재 로마의 편전은 유효사거리가 최대 3배까지 벌어진다.

  화살이 날아와 꽂힌다는 생각을 곧바로 떠올리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

  퍼억, 퍼버벅!

  "크아악!"

  "뭐, 뭐야? 지금 대체 뭣 때문에 쓰러지고 있는 거야!"

  한 차례 더 전열에서 돌진하던 궁기병들이 우르르 쓰러졌다.

  낙마한 병사들의 몸에 박혀 있는 화살을 본 뒤에야 파르티아군은 자신들이 화살공격에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화, 화살이다! 로마 놈들의 화살이 여기까지 날아온다!"

  기세 좋게 달려오던 파르티아 기병들이 혼란에 빠졌다.

  궁기병들이 유효사거리까지 접근하려면 아직 한참이나 거리가 남았다.

  하지만 일방적으로 계속 화살에 두들겨 맞으며 거리를 좁히는 건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본래 이런 상황에서는 지휘관이 부하들을 다잡아야 한다.

  수레나스였다면 곧바로 기병들의 간격을 넓게 벌리고 방패를 든 기병들을 전열에 내세웠을 것이다.

  하지만 예상외의 사태에 직면한 무타레스는 머리가 새하얗게 변해 적절한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화살이 이렇게까지 멀리 날아온다고? 원래 화살이란 게 이럴 수도 있는 무기였나? 아무리 평지에서 쏜다고 해도 우리 화살은 이거의 절반도 사거리가 안 나오는데? 로마 놈들과 우리의 기술 차이가 설마 이 정도로 벌어져 있다는 말인가?'

  무타레스는 병사의 시신에 박혀 있는 화살을 내려다보았다.

  딱 봐도 파르티아에서 사용하는 화살보다 훨씬 더 짧았다.

  중간에 부러진 자국이 보이지 않는 걸 봐서는 처음 발사했을 때부터 이렇게 짧았던 게 확실할 것이다.

  편전의 원리를 알 리가 없는 무타레스의 머릿속이 더욱 복잡해졌다.

  '짧은 화살을 쏘면 사거리가 이렇게 길어지는 건가? 아니, 애초에 저렇게 화살이 짧은데 어떻게 정확히 발사할 수 있는 거지? 짧고 가벼우면 그만큼 위력이 떨어져야 정상이 아닌가?'

  그가 갈팡질팡 어쩔 줄 몰라 하는 사이에도 로마군의 화살이 파공음을 그리며 날아들었다.

  이제는 파르티아군도 저 작은 화살이 어떻게 날아오는지 알 수 있었다.

  일반적인 화살처럼 커다란 곡선을 그리는 게 아니다. 곡률이 더 작고 무서운 속도로 뻗어오는, 태어나서 처음 보는 괴상한 화살이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더 거리를 좁히자 이제는 편전이 아닌 일반 화살들이 빼곡하게 하늘을 뒤덮으며 날아들었다.

  로마군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개량 합성궁도 당연히 파르티아의 활보다 성능이 월등했다.

  쏟아지는 화살비에 너무 큰 피해를 입은 무타레스가 뒤늦게 이를 갈며 대응책을 내놓았다.

  "젠장, 궁기병들은 간격을 넓혀라. 정면에서는 놈들을 뚫을 수 없다. 일단 물러나라! 그런 다음 측면으로 우회해 방어가 허술한 부분을 공격한다!"

  무타레스는 지금 입은 피해를 자신의 실수라 여기지 않았다.

  분명히 조사한 바에 따르면 로마군은 중무장 보병과 소수의 궁기병을 운용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건 사전에 들은 정보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지 않은가.

  물론 마르쿠스가 이끄는 로마군의 편제는 일반적인 로마군과는 달랐다.

  그는 한참 전부터 파르티아군을 깨부수기 위한 연구에 한창이었다.

  병력의 구성, 사용하는 장비, 병사들의 훈련, 그 모든 걸 파르티아와 상대하는 걸 전제조건으로 삼았다.

  마르쿠스가 이끄는 군단은 사실상 로마군과는 다른 부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알 리가 없는 무타레스는 애꿎은 아군만을 욕했다.

  수레나스는 적의 활이 우수하다는 이야기는 했지만, 이렇게까지 사거리가 월등히 차이 난다고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정보를 모아왔던 자들도 로마군이 저렇게 강력한 화살을 추가로 숨기고 있을 가능성은 제시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이건 전부 무능한 참모진의 탓이다.

  "카렌 장군님, 중장기병을 돌격시켜 로마 궁병 놈들의 기세를 꺾어주십시오."

  기세 좋게 돌격하던 처음과는 반대로 허겁지겁 말머리를 돌린 무타레스의 모습에 카렌이 절로 한숨을 내쉬었다.

  로마군의 화살이 예상외로 강력한 건 사실이었으나 판단이 너무나도 느리다.

  덕분에 눈뜨고 거의 천 명의 궁기병을 잃었다.

  이 정도로 피해가 막심할 상황이 아니었는지라 솟구치는 노화를 억누르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전장에서 자중지란을 일으켜 좋을 건 없었다.

  어차피 적의 대열을 한 번 무너뜨리려면 중장기병들이 한 번쯤은 돌격을 해야만 했다.

  카렌은 무뚝뚝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로마군의 우측을 겨냥하며 소리쳤다.

  "전군, 로마 놈들의 측면을 강타한다. 적들의 대열을 무너뜨려 아군이 공격할 수 있는 틈을 만들어줘야 한다!"

  카렌은 용맹하게 앞장서서 말을 몰았다.

  덕분에 다시 사기를 회복한 파르티아의 기병들이 고함을 지르며 돌진했다.

  그 광경을 쭉 지켜보는 마르쿠스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편전에 당해서 우왕좌왕하는 궁기병을 보았을 때부터 확신했다.

  지금 이 전장에 수레나스는 없다.

  파르티아 궁기병을 지휘하는 자의 수준은 냉정하게 함량 미달에 가까워 보였다.

  중장기병과 궁기병들의 움직임이 따로 노는 듯한 모습도 눈에 확 들어왔다.

  이유는 안 봐도 훤했다.

  군의 지휘권이 두 개로 갈린 것이다.

  그의 옆에 있는 안토니우스도 이 사실을 눈치챘는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솔직히 이런 흐름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파르티아놈들이 우리를 얼마나 얕봤으면 이런 식으로 전투를 하는 건지 당황스러울 정도입니다."

  "군을 잘 통솔하고 있던 장수를 해임시켜버렸으니 제대로 된 지휘가 나올 리가 없지."

  "결국 전부 마르쿠스 님의 의도대로 흘러갔다고 할 수 있겠군요."

  "······하하, 그렇다고 봐야겠지."

  '이렇게까지 흐름이 좋을 줄은 몰랐지만.'

  마르쿠스가 잘 준비한 덕분이기도 했지만, 당황스러울 정도로 적장이 엉성한 모습을 보여 전황이 더할 나위 없이 좋아졌다.

  그가 측면을 향해 돌아 들어오는 카렌의 군대를 가리켰다.

  "적의 중장기병 토벌은 맡기겠다. 할 수 있겠지?"

  "만족하실만한 결과를 내보이겠습니다."

  궁기병의 지휘를 맡은 안토니우스가 드디어 전선에 나섰다.

  등자와 신형 합성궁으로 무장한 1만에 가까운 궁기병이 벼락처럼 뛰쳐나갔다.

  로마군의 측면을 공격하려던 파르티아의 중장기병은 돌연 나타난 로마군의 대규모 기병단을 발견하고 혼란에 빠졌다.

  기병을 지휘하는 카렌마저 어느 쪽을 먼저 공격해야 할지 순간적으로 헷갈렸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안토니우스는 궁기병들에게 사격명령을 내렸다.

  쉬이익! 퍼억!

  "커억!"

  얼굴에 화살을 정통으로 맞은 중장기병 한 명이 뒤로 고꾸라졌다.

  카렌은 무타레스처럼 결정을 망설이지 않았다.

  로마군의 보병을 치는 사이 궁기병들에게 퇴로를 차단당하면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을지도 모른다.

  그는 우선 로마의 궁기병을 무력화하는 게 최선이라 판단했다.

  "목표를 변경한다. 우선 로마 놈들의 기병을 쳐 죽여라. 그런 뒤에 다시 보병들을 공격한다!"

  본래 궁기병을 공략하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가 중장기병을 내세워 돌격하는 것이다.

  카렌은 유목민족의 장수답게 기본적인 병법은 전부 숙지하고 있었다.

  어차피 궁기병들의 활로는 기병의 얼굴이나 마갑이 가려주지 못하는 부위를 맞히는 게 아니면 큰 타격을 입히기 힘들다.

  그런 자신감을 바탕으로 카렌은 안토니우스의 궁기병들을 향해 돌격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로마군과 파르티아의 제철기술은 현재 상당한 차이가 났다.

  로마군이 사용하는 활과 화살은 파르티아의 무른 철갑옷은 충분히 관통할 수 있는 화력을 자랑했다.

  로마 궁기병들의 활 세례에 파르티아가 자랑하는 중장기병들이 맥없이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카렌은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지만, 돌격 명령을 멈추지 않았다.

  지금 상황에서 등 뒤를 보여 봐야 훨씬 더 큰 피해를 입을 거라는 사실을 잘 알아서였다.

  어차피 거리가 좁혀지면 궁기병들도 더 이상 사격을 지속할 수는 없다.

  예상보다 훨씬 더 큰 피해를 입게 되더라도 승리할 수 있다는 마음 자체는 변하지 않았다.

  안토니우스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돌진해오는 파르티아군과 정면에서 맞서지 않았다.

  후퇴 명령을 내린 궁기병대가 로마군이 있는 진형과는 반대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잔뜩 약이 오른 파르티아 중장기병이 바로 뒤를 쫓아갔다.

  "전력으로 말을 몰아라! 그러면 놈들도 뒤를 돌아 활을 쏘지는 못한다!"

  카렌은 병사들을 독려하며 한참이나 로마군의 기병을 추격했다.

  1만의 궁기병이 전속력으로 도망치니 짙은 모래 구름이 일어났다.

  그래도 파르티아의 기병들은 짙은 먼지구름을 헤치며 추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이제 조금만 더 몰아붙이면 적들을 따라잡을 수 있다고 여겼을 때다.

  마르쿠스가 미리 후방에 숨겨두었던 정예 기병대가 마침내 행동을 개시했다.

  푸블리우스가 이끄는 500의 카타프락토이였다.

  그들은 하얀 천으로 내리쬐는 햇볕을 차단한 채 줄곧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안토니우스는 일부러 파르티아 기병을 아군이 매복한 장소까지 유인한 것이다.

  500명밖에 안 되는 소규모 부대인지라 카렌은 푸블리우스의 접근을 알아차리는 게 너무 늦었다.

  자욱하게 일어난 먼지와 모래만 아니었어도 이 정도로 허를 찔리진 않았을 것이다.

  한참 고함을 지르며 병사들을 독려하던 카렌은 측면에서 들려오는 말발굽 소리에 깜짝 놀랐다.

  뒤늦게 기병들을 수습해 보려 했으나 이미 가속이 붙은 상태인지라 쉽게 방향을 전환할 수 없었다.

  "측면에서 적들의 기습이다! 적은 소수이니 당황하지 말고 응전하라!"

  궁기병들의 화살 세례에 피해를 꽤 입었다고 해도 파르티아 중장기병의 수는 3천이 훌쩍 넘었다.

  반면 로마군의 중장기병은 한눈에 봐도 훨씬 수가 적어 보였다.

  하지만 그중에 200명은 마르쿠스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판금 갑옷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나머지 300명도 주요 부위를 판금으로 가린 경번갑을 입었다.

  파르티아 중장기병 역시 이런 종류의 갑옷을 입고 있었지만, 갑옷의 질이 차원이 달랐다.

  거기에 등자를 이용해 충격력을 극대화시킨 랜스 차징까지 더해졌다.

  두두두두.

  기다란 장창을 겨드랑이에 견착한 로마 카타프락토이가 황급히 방향을 튼 파르티아 기병들을 덮쳤다.

  콰앙! 퍼버벅!

  파르티아 병사들의 몸통이 수박 깨지듯 부서졌다.

  카타프락토이의 돌격 앞에 그들의 무른 철갑옷은 처음부터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로마군이 찔러낸 기다란 장창이 파르티아군 기병 2,3명을 한꺼번에 꿰뚫어버리기도 했다.

  단 한 번의 공격에 500명이 훌쩍 넘어가는 병사들이 짓뭉개졌다.

  정면에서 돌격을 받은 파르티아 기병들은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다.

  상상 이상으로 강력한 로마군의 돌격에 파르티아 기병들은 혼란에 빠졌다. 어쩔 수 없이 자리에 멈춰선 그들은 무기를 휘두르며 응전했다.

  하지만 중장기병의 진정한 위력은 돌진하는 말의 운동 에너지를 창에 실어야 제대로 발휘되는 법이다.

  제자리에서 찌르는 창으로는 중무장한 로마군의 판금갑옷에 제대로 된 흠집조차 내지 못했다.

  내리쬐는 사막의 햇볕 아래에서 판금갑옷을 입은 병사들이 장시간 활동하는 건 불가능하다.

  처음부터 상대방의 중장기병만을 격파하고 이탈할 작정이었던 로마 중기병들은 힘을 아끼지 않고 무기를 휘둘렀다.

  설상가상으로 퇴각하던 안토니우스가 다시 말머리를 돌려 파르티아군을 몰아붙였다.

  양쪽에서 공격을 받은 파르티아 기병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빠졌다.

  자연히 진형이 무너지고 병사들은 우왕좌왕 어찌할 바를 몰랐다.

  뒤에서 쏟아지는 화살에 몸이 꿰뚫리고, 앞에서 쏟아지는 장창에 찔려 낙마하는 자가 속출했다.

  "저, 정신 차려라. 우리가 여기에서 무너지면 이 전쟁은 끝장이다. 어떻게든 퇴로를 확보해야 한다!"

  카렌이 고래고래 소리를 치며 병사들을 다잡아보려 했으나 무리였다.

  완전히 붕괴된 대열은 그 어떤 명장이 온다고 하더라도 재건할 수 없었다.

  승기를 잡았다고 판단한 푸블리우스가 크게 외쳤다.

  "적들은 이미 전의를 상실했다. 모조리 쓸어버려라!"

  로마군은 한층 더 격렬하게 파르티아군을 몰아붙였다.

  카렌은 마지막까지 용맹하게 무기를 휘둘렀으나 그의 주변에 있는 병사들의 수는 하염없이 줄어들 뿐이었다.

  마침내 적진을 돌파한 푸블리우스가 카렌을 덮쳤다.

  판금갑옷으로 완전 무장한 그는 거침없이 무기를 들고 전방으로 쇄도했다.

  번쩍이는 판금갑옷을 입은 상대방의 돌격에 카렌은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으아아아! 이놈들!"

  필사적으로 창을 찔러보았으나 푸블리우스는 방어하는 시늉조차 하지 않았다.

  터엉! 하는 소리와 함께 카렌의 창이 맥없이 튕겨 나갔다.

  푸욱!

  뒤이어 푸블리우스의 자비 없는 창날이 카렌의 몸을 꿰뚫고 들어왔다.

  한 차례 피를 토한 카렌은 매마른 입술을 달싹이며 마지막 숨을 토해냈다.

  "아아···수레나스···당신이 옳았······."

  그가 최후로 중얼거린 말은 애석하게도 크테시폰의 감옥에 갇혀 있는 수레나스에게 전해지지 못했다.

  최후의 말을 채 끝마치지 못한 카렌의 몸이 허무하게 말에서 떨어져 내렸다.

  파르티아의 권력의 핵심 중 한 명이자 히르카니아의 지배자인 카렌 가문.

  그 수장의 최후는 너무나도 허무하고 덧없었다.

  카렌마저 사망하자 파르티아 기병들은 이제 더 버틸 힘이 없었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활과 창날의 세례에 파르티아의 중장기병은 전멸을 면치 못했다.

  안토니우스가 무기를 번쩍 들어 로마군의 본대가 있는 방향을 가리켰다.

  사막에 쏟아지는 햇살이 그의 칼 위에서 눈부시게 부서져 내렸다.

  "전군, 지금부터 적의 후방을 향해 우회한다. 단 한 놈도 살려 보내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철저하게 적을 타도하자!"

  로마 기병대가 우렁찬 목소리로 화답하며 진군을 재개했다.

  이제 남은 건 궁기병들을 지휘하고 있는 무타레스 뿐이었다.

  승리의 함성이 모래바람에 실려 드넓은 사막 저편까지 퍼져 나가고 있었다.

  < 118. 예견된 결과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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