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1. 동방원정 사령관 (112/326)

  < 111. 동방원정 사령관 >

  111.

  마르쿠스의 요청을 받은 크라수스는 곧바로 이틀 뒤에 원로원 회의를 소집하겠다고 공표했다.

  크라수스가 이렇게 의원들을 불러모으는 건 흔치 않은 일이었다.

  자연스레 원로원 의원들의 참석률은 굉장했다.

  지병으로 몸을 가누기 힘들거나 부재중인 의원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두가 참석했다.

  "친애하는 의원 여러분 바쁘신 와중에 이렇게 모여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집정관석에서 일어난 크라수스가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참석자들은 어째서 크라수스가 자신들을 소집했는지 설명을 듣고 싶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궁금함을 참지 못한 메텔루스가 손을 들고 물었다.

  "혹시 갈리아에서 카이사르가 또다시 승리를 거두기라도 한 겁니까?"

  "뭐···그런 소식도 들어오긴 했습니다만 그 때문에 회의를 소집한 건 아닙니다. 그래도 겸사겸사 그 일도 논의하고 넘어가야겠군요."

  크라수스의 확인이 떨어지자 귀족파 의원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들은 오매불망 카이사르의 패전 소식만을 기다리고 있었으나, 기대와는 달리 카이사르는 순조롭게 갈리아를 정복해나가고 있었다.

  대놓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귀족파와 달리 민중파의 인사들은 희희낙락 미소를 지었다.

  카이사르의 장인이기도 한 피소가 헛기침을 하며 발언권을 요청했다.

  "이왕 말이 나왔으니 이 문제부터 짚고 넘어가는 게 어떨까요? 카이사르는 지금까지 그 어떤 로마인도 해내지 못한 위대한 업적을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 원로원은 마땅히 이에 대한 찬사를 표명해야 합니다."

  "하! 위대한 업적은 무슨. 그저 야만족들 몇몇 때려잡았을 뿐 아닙니까."

  카이사르의 일이라면 무조건 반대부터 외치고 보는 카토가 이번에도 날카로운 목소리로 반론을 펼쳤다.

  키프로스에서 들어온 막대한 재화를 성공적으로 로마 국고에 귀속시킨 그는 요새 한층 더 발언권이 높아진 상태였다.

  그러나 아무리 카토라고 해도 카이사르의 업적을 쉽게 깎아내릴 수는 없었다.

  어설프게 공격하기에는 카이사르가 이룬 전과가 너무나도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완전히 카이사르의 대변인이나 다름없게 된 피소가 여유로운 웃음을 지으며 두루마리를 펼쳤다.

  "300년 전에 우리는 그 야만족들에게 로마를 점령당한 뼈아픈 기억이 있습니다. 모든 군역에서 면제되는 최고 사제가 어째서 갈리아인이 쳐들어왔을 때는 나가서 싸워야 한다는 예외조항이 있겠습니까?

  갈리아인들은 우리 로마에게 잊을 수 없는 굴욕을 안겨준 상대입니다. 그런 갈리 아를 완전히 정복하는 대업을 고작 야만족 몇몇을 때려잡는 일이라고 폄하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말은 곧 우리 선조들을 모욕하는 행위로 비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현명하고 사려 깊은 카토께서 그런 뜻으로 말한 건 아니리라 믿습니다.

  "

  카토가 별다른 반박을 하지 못하고 혀를 차며 자리에 앉았다.

  피소의 말대로 카이사르의 전공은 온 로마를 들끓게 하기에 충분했다.

  솔직히 대부분의 귀족파 의원들은 카이사르가 이 정도로 군사적 재능이 탁월할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그러나 카이사르는 폼페이우스 못지않은 전술과 지휘능력을 보여주어 모두를 놀라게 하였다.

  북방이 안정된다는 것은 로마에도 엄청난 이득이었기 때문에 귀족파는 대놓고 카이사르를 공격할 수 없었다.

  피소는 침묵에 빠진 카토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의기양양하게 카이사르가 보낸 보고서를 읽었다.

  "카이사르는 갈리아에서 얻은 승리를 바탕으로 알프스 지역을 완전히 로마의 영역으로 삼는 데 성공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로마의 상인들은 이곳을 통과하는데 말도 안 되게 높은 통행료를 지불해왔습니다. 언제 돌변할지 모르는 야만족들 역시 크나큰 위협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럴 걱정이 사라졌습니다."

  원 역사에서 카이사르도 이 알프스 지역을 단번에 평정하지는 못했다.

  인근 부족들이 연합해 지역 제압을 명령받은 11군단을 공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로마군의 눈부신 전과에 겁을 먹은 알프스 부족들이 로마에 대항하는 선동에 거의 넘어가지 않았다.

  카이사르의 군단을 공격한 부족들의 숫자는 고작 1만이 조금 넘는 정도에 불과했다.

  마르쿠스가 공급한 로리카 세그멘타타와 신형 글라디우스로 무장한 11군단은 이를 간단히 격퇴했다.

  반란을 일으킨 소수 부족의 장로들은 처형되고 부족 구성원들도 노예로 팔렸다.

  카이사르는 여기에서 얻은 수입 일부를 인근 부족들과 공유했다.

  반기를 든 자들은 처벌을 받지만, 끝까지 로마의 편에 선 자들은 그에 상응하는 이득을 얻는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이제 알프스 지역은 완전히 로마의 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카이사르는 갈리아 서쪽의 베네티족까지 정복했습니다. 이로써 우리 로마의 패권은 서쪽의 대양까지 확장됐습니다."

  피소의 열띤 보고가 끝나자 민중파 의원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로 카이사르의 승리를 칭송했다.

  중립에 가까운 의원들도 이번에는 카이사르의 편이었다.

  거의 매일 같이 들리는 카이사르의 위대한 승리에 민중파의 인기는 날이 갈수록 높아져 갔다.

  이제 로마인들은 카이사르의 군사적 업적을 폼페이우스와 거의 대등하게 놓았다.

  피소의 말대로 갈리아에서 거둔 승리는 단순히 야만족들을 토벌한 정도의 의미가 아니었던 까닭이다.

  폼페이우스는 동방의 위대한 왕조들을 무릎 꿇리며 로마의 영광을 만천하에 떨쳤다.

  로마의 국고로 거둬들인 수입도 갈리아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객관적인 수치와 위상만 보자면 카이사르와 대등하게 여겨지는 폼페이우스가 불쾌할 수도 있다.

  하지만 폼페이우스의 동방 평정은 이제 거의 10년이나 지난 과거의 이야기였다.

  게다가 로마의 바로 북쪽에 붙어있는 갈리아와 저 먼 동방의 왕조들은 로마인들이 느끼는 위협의 정도가 달랐다.

  언제라도 밀고 내려올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그래도 말은 통하는 문명인들의 차이다.

  수백 년을 갈리아인에게 시달렸던 과거의 치욕스러운 기억도 한몫했다.

  대다수의 로마인들에게는 이번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쟁이 지금까지 해소되지 않았던 갈증을 한꺼번에 풀어주는 느낌이었다.

  귀족파 의원들의 시선이 마르쿠스에게 쏠렸다.

  어떻게 좀 해달라는 간절한 요구가 담긴 눈빛이었다.

  안 그래도 이제 슬슬 발언하려던 마르쿠스는 가볍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저 카이사르께서 거둔 위대한 업적을 인정하고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저는 카이사르 님과 2년 동안 함께 전쟁을 수행했기 때문에 그분이 지닌 탁월한 능력을 잘 알고 있습니다.

  갈리아의 가치는 지금까지 로마가 차지한 그 어떤 지역보다도 높습니다. 지금까지 갈리아에 가보지 않은 분들은 쉽게 체감하지 못하실 겁니다.

  하지만 제가 직접 본 갈리아는 이탈리아의 그 어느 땅보다도 비옥한 농토를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갈리아의 토지를 개간하고 농사를 짓는다면 이집트나 아나톨리아에 기근이 들더라도 식량 걱정을 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

  회의장 곳곳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귀족파의 거두인 마르쿠스가 이토록 확실하게 인정했으니 갈리아의 가치를 깎아내릴 수도 없었다.

  귀족파 의원들이 어째서 카이사르를 띄워 주느냐는 의문 섞인 표정으로 마르쿠스를 바라보았다.

  마르쿠스는 그런 의원들의 시선을 흘러 넘기고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저는 국가는 국민의 공과 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누가 국가를 믿고 몸을 바쳐 공을 세우려 애쓰고, 누가 잘못을 범하지 않으려 조심하겠습니까."

  원로원의 부당한 견제에 시달려 낭패를 볼 뻔했던 폼페이우스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일세. 인정할 건 인정해줘야지. 그렇지 않으면 원로원에 대한 신뢰가 대체 어떻게 되겠나."

  "그렇습니다. 그러니 카이사르 님만이 아니라 앞으로 누구라도 공을 세우면 그에 합당한 보상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마르쿠스는 앞으로라는 말을 특히 강조했다.

  키케로나 카토는 마르쿠스의 의도를 간파하고 찬성의 의사를 밝혔다.

  어차피 아무리 귀족파가 강짜를 부려도 카이사르에 대한 로마 시민의 지지는 압도적이었다.

  여기서는 대범하게 카이사르의 공을 인정하고 귀족파의 공명정대함을 드러내는 게 더 이득이었다.

  거기에 카이사르에게 합당한 공을 내리면 이후 마르쿠스에게도 공에 걸맞은 보상을 줄 수 있다.

  키케로와 카토가 찬성하고 나서자 다른 귀족파 의원들도 불만을 토로하지는 않았다.

  아직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이들도 마르쿠스와 키케로, 카토가 모두 찬성하는 일이라면 어떤 의도가 있을 거라 믿었던 까닭이다.

  민중파야 원래부터 거절할 이유가 없었으니 원로원의 의견이 오랜만에 통일됐다.

  크라수스는 좌중의 분위기가 어느 정도 진정됐다고 판단하고 화제를 돌렸다.

  "자, 그러면 갈리아 문제는 이쯤 일단락 짓고 오늘 회의를 개최한 진짜 이유를 논의하겠습니다. 현재 아시아 속주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그래서 일단 이집트에서 귀환한 3개 군단 중 2개 군단을 다시 편성해 시리아로 보내려 합니다. 이에 대해 의원님들의 동의를 받고자 합니다."

  "시리아에 위협을 가할 수 있는 나라라고 해봐야 파르티아밖에 없을 텐데요. 설마 파르티아가 시리아를 공격할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까?"

  메텔루스가 미심쩍은 목소리로 물었다.

  다른 의원들도 그와 별다르지 않은 표정이었다.

  "실제로 쳐들어올 가능성은 낮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아무런 대비를 하고 있지 않다면 가능성이 전무 하다고 확신할 수는 없을 것 같군요."

  키케로는 크라수스가 자신들은 모르는 무언가를 알고 있다고 확신했다.

  그가 발언권을 요청하고 입을 열었다.

  "우선 집정관께서 알고 계신 정보를 들려주십시오. 그래야 원활한 토론이 진행될 것 같군요."

  "그 부분은 저보다 더욱 상세한 정보를 알고 있는 마르쿠스에게 맡기겠습니다."

  크라수스의 지명을 받은 마르쿠스가 다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집정관 석이 있는 앞으로 나가 원로원 의원들을 둘러보며 설명을 시작했다.

  "파르티아의 내전이 끝났다는 소식을 들으신 분도 있으실 거고, 아직 듣지 못한 분도 계실 겁니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중대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내전에서 패배한 미트리다테스의 장자가 현재 시리아에 피신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파르티아의 정당한 왕권을 가진 계승자라 주장하고 있습니다."

  "···파르티아의 왕위 계승자가 시리아에 있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파르티아의 현 왕인 오로데스는 왕권에 대한 집착이 굉장히 심한 이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절대로 자신의 왕좌를 위협할 수 있는 이를 살려두지 않을 겁니다."

  비불루스가 신중하게 이의를 제기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시리아를 공격할 만큼 생각이 없지는 않을 것 같은데···기껏 해봐야 암살자를 파견하는 정도가 아니겠소?"

  "저도 그럴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봅니다. 하지만 암살을 대비한 조치는 이미 물샐틈없이 취해놓았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그리고 2개 군단을 배치하려는 건 허튼 마음은 먹지 말라는 경고의 의미이기도 합니다."

  비불루스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의원들은 섣불리 말을 꺼내지 않고 신중하게 상황을 살폈다.

  미트리다테스의 장자를 옹립해 파르티아를 칠 것인가, 아니면 그의 주장을 무시하고 파르티아와 화평을 맺을 것인가.

  어느 쪽도 쉽게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아니었다.

  이번에는 귀족파와 민중파의 구분도 없었다.

  의원들은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며 이후의 대처방안을 모색했다.

  미트리다테스의 장자를 내세워 파르티아에 개입하자는 의견이 8할 정도로 다수를 점했다.

  강경한 성향인 카토는 특히나 열정적으로 파르티아를 정벌해야 한다고 소리를 높였다.

  "파르티아와 영원히 친구로 남을 거라면 싸우지 않는 게 좋습니다. 하지만 국제 정세에서 영원한 친구라는 말은 애초에 성립이 되지 않습니다. 파르티아는 계속해서 국력을 불려가고 있고, 우리는 그걸 계속 보고 있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언젠가 한 번 꺾어놔야 할 상대라면 지금만큼 좋은 기회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파르티아는 강합니다. 그들이 쳐들어오는 거라면 우리 용맹한 군단이 어렵지 않게 격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침공해 들어가는 건 너무 위험 부담이 큽니다."

  "이사우리쿠스, 그건 너무 소극적인 주장입니다. 파르티아 따위는 우리 로마군의 상대가 되지 못해요. 그들은 고작 셀레우코스 왕조와 아웅다웅하던 자들입니다. 우리는 셀레우코스 왕조는 물론 폰투스와 아르메니아를 죄다 무릎 꿇렸어요. 파르티아 따위를 두려워할 이유가 없단 말입니다."

  "그건 사실과 다르오, 카토."

  지금까지 별다른 말이 없던 폼페이우스의 묵직한 목소리가 장내를 울렸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자 폼페이우스는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는 말을 이었다.

  "파르티아의 기병 전력은 결코 얕잡아 봐도 될 수준이 아니오. 게다가 파르티아의 영토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는 사막은 우리에게는 익숙지 않은 지형이라오. 생각 없이 쳐들어갔다가는 크나큰 낭패를 보게 될 거요."

  이번에는 카토도 반박을 하지 못했다.

  지금 원로원에서 군사적인 문제로 폼페이우스에게 이견을 제기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던 까닭이다.

  카토는 이의를 제기하는 대신 의문을 제기하는 형태로 소박하게 불만을 드러냈다.

  "그렇다면 위대한 폼페이우스께서는 우리 로마가 파르티아를 정복할 힘이 부족하다고 보시는 겁니까?"

  "나는 그런 말은 한마디도 한 적이 없소. 순수하게 국력만 놓고 보자면 파르티아 따위는 로마의 적이 될 수 없지.

  만약 파르티아가 이탈리아 북부에 있었다면 진즉 우리에게 점령당해 나라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을 거요.

  하다못해 폰투스나 아르메니아 정도의 위치였다면 쉽게 쳐들어갈 수 있었겠지만, 파르티아는 그보다도 더욱 동쪽에 있소. 그리고 아까도 말했지만 익숙하지 않은 사막 지형까지 고려해서 보급로를 짜야 하지. 이런 점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원정을 하는 건 위험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을 뿐이니 내 말을 곡해하지는 말아주시오.

  "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이라면 저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처음 이 안건을 가져온 사람은 마르쿠스가 아닙니까. 그라면 좋은 묘책을 가지고 있을 거라 확신합니다. 내 말이 틀렸소, 마르쿠스?"

  갑작스레 지목을 받은 마르쿠스는 당황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은 그가 바라는 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위대한 폼페이우스의 고견은 저도 가슴속 깊이 새기겠습니다. 십 년 전 마그누스께서 동방을 평정하실 때 저는 그 모습을 옆에서 쭉 지켜보았습니다. 그때 제가 보고 듣고 느낀 모든 것이 소중한 경험으로 제안에 축적되어 있음을 느낍니다. 만약 동방원정이 결정된다면 저는 제 스승이나 다름없는 마그누스 님의 조언을 최대한 따를 생각입니다."

  마르쿠스가 잠시 말을 멈추고 폼페이우스 쪽을 돌아보았다.

  그는 더없이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마르쿠스에게 손짓을 보냈다.

  "의원님들의 대다수는 파르티아를 언젠가는 한 번 싸워야 하는 적으로 인식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제 생각도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그들을 완전히 복속하지는 못할지라도 한 번 정도는 무릎 꿇려 놔야 합니다. 물론 신중하게 접근하자는 의원님들의 걱정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닙니다. 마그누스께서 지적하신 대로 보급과 지형문제, 그리고 몇 가지 더 해결해야만 하는 과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나름의 대비책을 다 마련해두었습니다.

  "

  마르쿠스의 단호한 대답에 귀족파 의원들 사이에서 환호성이 솟구쳤다.

  지금까지 그가 이런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였을 때는 단 한 번도 예상이 빗나간 적이 없었다.

  의원들은 이번에도 그럴 거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원정에 소요될 군량과 장비는 이미 공급처를 마련해두었습니다. 물론 로마 시민들에게 돌아갈 곡물량이 줄어들 일은 없을 겁니다. 다만 한 가지 원로원의 허가를 받아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인가?"

  "파르티아와의 분쟁은 실로 다양한 분야가 얽힌 문제입니다. 게다가 파르티아의 영토는 명백히 내년에 속주 총독으로 부임하게 될 크라수스 님의 관할 범위를 벗어난 땅입니다.

  카이사르 님처럼 사후 허락을 구하는 형태로 원정을 가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파르티아는 갈리아와는 다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준비가 갖춰져 있지 않으면 아군의 피해가 너무 커질 우려가 있습니다.

  "

  "···일리가 있는 말이오. 그래서 우리가 어떤 권한을 부여해줬으면 좋겠소?"

  "동방 속주 총독인 크라수스 님에게 파르티아와 관련된 모든 문제를 일임하겠다는 결의를 통과시켜 주십시오.

  입법, 사법, 행정, 외교와 관련된 모든 분야에서 원로원의 사전재가는 물론 사후재가도 받지 않을 권한이 필요합니다. 물론 이건 파르티아와 연관된 사안으로만 한정 지을 겁니다. 다른 문제에 관해서는 다른 총독들과 마찬가지로 원로원의 권위를 인정하고 따르겠습니다.

  "

  좌중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사실 원정에 나선 속주 총독은 원로원의 통제를 받는 일이 거의 없었다.

  당장 카이사르만 해도 모든 걸 사후보고로 돌리고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일을 처리했다.

  그러나 그걸 암묵적으로 넘어가 주는 것과 명시적인 권리를 주는 건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컸다.

  마르쿠스가 굳이 이런 방식을 취한 건 파르티아와의 전쟁 그 자체가 걱정돼서가 아니었다.

  그것보다는 파르티아와의 전쟁 이후의 일을 염려해서였다.

  폼페이우스의 전례가 말해주듯이 너무 큰 공을 세우면 그에 따른 반작용이 있기 마련이다.

  확고한 귀족파로 여겨지는 크라수스가 폼페이우스 같은 일을 겪지는 않겠지만,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서 나쁠 것은 없다는 게 마르쿠스의 지론이었다.

  게다가 원로원의 허가를 필요로 하지 않는 권리는 협상에서도 굉장히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파르티아는 대국이었다.

  한두 번 전투에서 이긴다고 고꾸라뜨릴 수 있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유리한 위치를 잡고 협상으로 마무리 지어야 하는 경우도 고려해야 했다.

  파르티아의 문제를 마음대로 처리해도 좋다는 권한을 받으면 그 어떤 조건으로 협상하든, 어떤 방식으로 파르티아와 싸우든 마르쿠스의 마음이었다.

  훗날 어떤 일로도 추궁을 받지 않을 것이고, 폼페이우스처럼 속주편성안이 가결되지 않아 전전긍긍해야 할 필요도 없게 된다.

  평상시 원로원이었다면 아무리 마르쿠스라고 해도 그런 권한을 내려주는 걸 꺼렸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귀족파는 무섭도록 세력을 키우고 있는 카이사르를 강하게 의식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폼페이우스와 이간질을 해보려고 해도 이게 좀처럼 쉽게 되지 않았다.

  만약 카이사르마저 폼페이우스만큼의 세력을 거느리게 되면 귀족파는 이제 그들을 견제할 수 없다.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가 사이좋게 손을 잡고 로마를 양분해버릴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그들의 마음속을 잠식하고 있었다.

  이걸 막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귀족파의 인물을 강하게 밀어줄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귀족파의 대다수 의원들은 파르티아와의 전쟁을 찬성한 것이다.

  크라수스가 파르티아를 꺾어서 동방을 평정한다면 카이사르에게 밀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일단 크라수스가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를 감당할 수 있도록 힘을 키워주고 보자.'

  귀족파 의원들은 잠깐의 고민 끝에 마르쿠스의 요구를 들어주기로 의견을 모았다.

  민중파에게는 카이사르가 지금까지 이룬 업적을 기념해 감사제를 연다는 조건으로 합의를 받아냈다.

  동방 원정군의 최고 사령관은 명목상으로는 속주 총독인 크라수스가 맡았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군을 지휘하게 될 이가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기존에 소아시아 총독으로서 관할하게 될 10개 군단에 이번에 시리아로 떠나는 2개 군단까지 더해졌다.

  거기에 파르티아와 관련된 모든 문제를 원로원의 동의 없이 처리할 수 있다는 절대적인 권한까지 움켜쥐게 됐다.

  사실상 크라수스를 동방의 왕으로 임명하는 거나 마찬가지인 파격적인 인사였다.

  그러나 귀족파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이번 조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마르쿠스가 이번 동방원정을 통해 얻고자 하는 진정한 노림수가 무엇인지.

  귀족파는 이미 자신들이 마르쿠스가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빠졌다는 걸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르쿠스는 박수갈채를 쏟아내는 원로원 의원들을 향해 공손히 허리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예상대로 움직여줘서 고맙다.

  그러한 진심이 가득 담긴 거짓 없는 감사의 인사였다.

  < 111. 동방원정 사령관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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