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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갈리아로 가겠습니다 (91/326)


  < 90. 갈리아로 가겠습니다 >



  90.


  마르쿠스의 제안은 원로원에서 누구의 반대도 받지 않고 통과됐다.


  원로원은 카이사르를 감시할 수 있는 사람을 속주에 보낼 수 있으니 환영했고, 카이사르도 1개 군단을 추가로 얻을 수 있으니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갈리아 속주의 부임이 결정되자 마르쿠스는 남은 안찰관 임기를 최대한 활용해 여러 공공정책을 통과시켰다.


  특히 지속적인 실행이 중요한 위생개선은 후임 안찰관들에게 소홀히 하지 말라고 일러두었다.


  로마를 1년 이상 비우게 될 예정이었기 때문에 처리할 수 있는 일은 전부 끝내놓고 가는 게 중요했다.


  특히 동방 속주에 관한 지시는 갈리아에서 내릴 수 없기 때문에 더욱 세심하게 신경을 썼다.


  "다나에, 동방에서 들어온 연락은 없어? 푸블리우스나 타디우스가 정기보고를 할 때가 됐을 텐데."


  "네. 안 그래도 말씀을 드리려고 했어요. 작은 도련님과 타디우스 님, 그리고 안토니우스 님이 보낸 편지가 도착했어요."


  "안토니우스까지? 일단 전부 가지고 와."


  "알겠습니다."


  다나에가 종종걸음으로 밖으로 나갔다.


  잠시 뒤 그녀는 상당한 두께의 양피지 다발을 들고 돌아왔다.


  마르쿠스는 위에 놓인 순서대로 서신을 집어 들었다.


  가장 위에 놓여 있던 건 안토니우스가 보낸 근황 보고였다.


  동방 속주군의 기병 장교로 임관 중인 그는 크고 작은 전투를 치르며 착실하게 성장하고 있었다.


  원래 역사보다 훨씬 더 빠르게 입대한 만큼 경험적인 측면에서는 훨씬 더 우월할 것이다.


  '슬슬 때가 왔으니 갈리아 원정에 합류하라고 전해놔야겠군. 추천서를 써줄 테니 귀환하라고 하면 얼씨구나 하고 돌아오겠지.'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와 먼 친척 관계였으니 굳이 추천서를 써줄 필요는 없을 것 같았지만, 생색을 내서 나쁠 건 없어 보였다.


  동방과 갈리아에서 풍부한 경험을 쌓은 안토니우스는 분명히 차후 마르쿠스에게 엄청난 힘이 되어줄 것이다.


  안토니우스에게 줄 서신을 작성한 그는 다나에에게 즉각 동방으로 보내라고 건네주었다.


  그녀가 다시 방을 나간 사이 마르쿠스는 또 한 장의 서신을 읽어 내려갔다.


  이번 건 안토니우스의 편지보다 훨씬 더 길고 두꺼웠다.


  동방에서 한창 경험을 쌓고 있는 동생 푸블리우스가 보낸 보고서였다.


  잔뜩 들뜬 마음이 문자에 그대로 드러나 있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절로 웃음이 나오게 했다.


  <형님, 이곳은 로마와는 달라도 너무나 다릅니다. 어째서 형님께서 이곳에서 식견을 넓히고 경험을 쌓으라고 하셨는지 이해가 됩니다.


  사실 형님께서 붙여준 사람들이 워낙 탁월해 재무관 업무는 별로 할 게 없습니다. 대신 일러주신 대로 군대 쪽 일을 더 신경 쓰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말을 잘 다뤄서 그런지 기병장교 일이 제 적성에 맞는 듯하더군요. 타디우스와도 몇 번 만나보았습니다.


  형님에 대한 충성심이 조금 과할 정도로 높은 사람이더군요. 형님을 신의 화신이라 부르며 거의 신봉하는 듯 보였습니다.


  조금 이상한 사람이기는 해도 능력 하나는 확실한 것 같았습니다. 군마의 품종 개량은 착실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별 차이를 느끼지 못했었는데, 이제는 조금씩 그 차이가 느껴지는 수준이 된 것 같아 놀랍더군요. 형님께서는 대체 이런 지식들을 어디서 얻으신 건지 궁금하면서도 경외감이 듭니다.>


  푸블리우스의 편지에서는 형에 대한 동경과 애정이 듬뿍 묻어나왔다.


  같은 형제임에도 명성 차이가 엄청나니 부정적인 생각이 들 법도 한데 그런 기색은 전혀 없었다.


  마르쿠스가 워낙 어렸을 때부터 구름 위의 존재였기 때문에 질투나 시기가 싹이 틀 여지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한참이나 더 근황 보고로 내용을 채운 푸블리우스의 편지는 다음과 같은 말로 편지를 끝마쳤다.


  <이곳의 준비는 이제 거의 완벽한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 가지 걱정이 있다면 여기에서의 일이 밖으로 새어나가는 것 정도일까요.


  물론 철저히 보안을 유지하고 있으니 기우에 지나지 않겠지만, 타디우스는 주로 로마 본토의 감시를 신경 쓰고 있더군요.


  하지만 저는 로마만이 아니라 폰투스나 아르메니아, 파르티아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속주 어디에 첩자를 심어뒀을지 모르니까요. 그럼 저는 형님께서 동방으로 건너오실 때를 기다리며 계속 경험을 키우고 있겠습니다.>


  푸블리우스는 성실하게도 그동안 자기가 처리한 모든 일들과 느낀 점을 따로 적어두었다.


  편지를 책상에 내려놓은 마르쿠스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타국의 첩자라···확실히 없을 가능성보다는 있을 가능성이 더 높지.'


  동방속주에서 벌이고 있는 모든 사업은 로마까지 전해지지 않도록 정보 통제를 하고 있었다.


  타디우스는 비밀 엄수를 위해 로마인 대신 검증된 현지인을 더 많이 기용했다.


  그러면 로마로 소식이 들어올 가능성은 적겠지만, 푸블리우스의 말대로 타국의 첩자가 섞여들어 올 확률은 높아진다.


  물론 최대한 검증된 사람만을 채용했고, 그마저도 진짜 중요한 사항에는 접근할 권한이 없었으나 주의를 기울일 필요는 있어 보였다.


  '파르티아는 몰라도 폰투스나 아르메니아는 엄청나게 사람을 풀어놓았겠지. 로마의 존재 자체가 그들에게 있어서는 존망의 위협일 테니까.'


  마지막으로 펼쳐 든 타디우스의 정기보고서는 이전과 크게 다른 내용은 없었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드디어 마르쿠스가 주문한 갑옷이 완성되었다는 소식 정도가 눈에 띄었다.


  타디우스는 새롭게 만든 이 갑옷의 성능을 온갖 미사여구를 늘어놓아 칭송하기에 바빴다.


  페르세우스가 사용한 아이기스의 방패도 이런 방어력은 보여주지 못했을 거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이 갑옷의 혁신적인 진화 덕분에 무기도 새로운 변화를 맞이했다.


  기존에는 무거운 방패를 들고 싸워야 해서 글라디우스 같은 짧은 검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로마군은 특히 밀집대형을 주로 취했기 때문에 더더욱 날이 짧은 무기를 선호했다.


  그러나 새로 개발된 갑옷은 종래의 어떤 무기로도 돌파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방패의 필요성이 많이 감소했다.


  덕분에 병사 개개인이 이전보다 더 넓은 전투 공간을 맡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마르쿠스는 15세기에 유럽에서 크게 성행한 롱소드를 조금 더 일찍 도입해 보기로 했다.


  실제로 갑옷과 무기를 다뤄본 사람들은 이 조합에 굉장히 높은 점수를 주었고, 동방속주에서는 로마군에 최적의 조합을 찾기 위한 연구가 지금도 진행 중이었다.


  물론 아직까지는 군단 전체를 이런 무기로 무장시킬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았다.


  잘해봐야 천 명 정도를 무장시키는 게 한계였다.


  물론 이 시대에 중세후기의 무장을 갖춘 병사 천명이면 이미 그 자체로 결전병기다.


  천 명까지는 힘들지 몰라도 수백 명만 갖춰도 전장의 판세를 결정지을 수 있는 전력이 되리라.


  이 외에도 편전이라고 불리는 신형 화살의 훈련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이 역시 많은 훈련이 필요한지라 수천 단위로 운용하긴 힘들겠지만 그 위력만큼은 상당했다.


  어쨌거나 타디우스에게 맡긴 일은 지금 단계에서는 전부 호조를 보이고 있었다.


  파르티아의 왕자인 미트리다테스 3세에게도 막대한 선물로 호의를 얻는 데 성공했다.


  설탕이 조금 과하게 들긴 했지만, 그 정도는 상정범위 내였다.


  '이제 푸블리우스의 말대로 첩자만 주의하면 되겠군. 하지만 아무리 철통 같은 보안을 유지해도 모든 걸 완전히 틀어막는 건 무리일 텐데.'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밖으로 새어나가면 무언가를 꾸미고 있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다.


  손가락으로 책상을 툭툭 두드리던 마르쿠스는 순간 번뜩이는 책략을 떠올렸다.


  첩자가 있다고 해도 그들이 얻을 수 있는 정보는 한정되어 있다.


  그렇다면 그 사실을 역으로 이용해 상대방의 행동을 강제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마르쿠스는 즉시 타디우스에게 보낼 세세한 명령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내친김에 자신이 로마를 비웠을 때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해줘야 할 클로디우스에게 보낼 서신도 적어두었다.


  안토니우스에게 보낼 편지를 부치고 오자마자 다시 나가야 할 처지가 된 다나에가 뾰로통하게 볼을 부풀렸다.


  "어차피 서신을 여러 통 쓰실 거였으면 한 번에 주시지 그러셨어요."


  "아, 미안. 이건 갑자기 떠오른 생각이라서 말이야. 클로디우스에게는 반드시 내가 로마를 떠난 뒤 이걸 실행하라는 말을 전해줘."


  "역시 클로디우스 님을 이용해서 원로원을 견제할 생각이신가요?"


  "아니. 이건 민중파가 시민들의 지지를 얻는 데 필요한 일을 적어둔 거야. 아무래도 폼페이우스 님 혼자서는 로마의 국정을 운영하기 힘들 테니까 내가 뒤에서 몰래 지원을 해줘야지. 안 그러면 순식간에 다시 귀족파에게 주도권을 빼앗길걸?"


  로마의 균형을 위해서는 아직까지는 민중파와 귀족파 둘 중 한 명이 고꾸라지는 그림이 나와서는 안 된다.


  물론 귀족파의 현실은 암울했으나 겉으로 보기에는 아직까지는 팽팽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마르쿠스가 동방으로 갈 때까지는 이런 구도를 유지해주고 있어야 한다.


  "귀족파에게 민중의 인기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주긴 했지만, 클로디우스가 이걸 실행하면 무게추는 다시 민중파로 기울 거야. 하지만 귀족파도 드러내놓고 반대를 할 수는 없겠지. 자기들 주머니도 두둑해지는 일이 될 거거든."


  "그런 마법 같은 일이 가능한가요?"


  "그래. 너도 시리아 서쪽에 있는 키프로스 섬을 알지? 거길 로마의 영토로 만들 거야."


  "전쟁을 하시겠다는 건가요?"


  "아니. 키프로스는 이집트 선대왕의 유언에서 로마에 넘겨진 지역이었어. 지금까지는 시리아와 이집트가 모두 건재해서 그 유언을 집행하지 않았을 뿐이지.


  하지만 시리아는 이제 로마의 속주가 되었으니 이집트 혼자서는 로마의 결정을 막을 수 없어. 물론 그다지 도덕적이지 않은 일이라 원로원이 드러내놓고 이 일을 주도하긴 힘들겠지만, 호민관이 이 법을 민회에서 통과시키면 이야기가 달라. 원로원은 못 이기는 척 하면서 속으로는 환호성을 내지를 걸?


  "


  다나에가 조금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율리아 마님에게 로마는 이집트와 우호 관계를 맺었다고 들었는데요. 이집트 파라오의 왕권을 보장해준다고···그런데 키프로스를 뺏어가 버리면 그 결의를 어기는 게 아닌가요?"


  다나에의 말대로였다. 현재 키프로스 섬은 이집트의 파라오 프톨레마이오스 아울레테스의 동생이 다스리고 있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키프로스는 이집트령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로마의 결의는 프톨레마이오스가 이집트를 계속 다스릴 수 있도록 보장해주는 것이었다.


  키프로스는 협정 범위 밖이라고 해도 이집트에서 반론을 제기할 수 없었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에 가까웠지만 원래 국제관계는 힘이 강한 쪽이 하는 말이 곧 법이다.


  키프로스에 보관되어있는 막대한 양의 보물을 털어오면 시민들에게는 곡물을 뿌릴 수 있고, 귀족들의 금고에는 은화를 넣어줄 수 있다.


  다만 문제는 그 악역을 누가 맡느냐인데 클로디우스는 이런 일에 제격이었다.


  마르쿠스는 클로디우스가 키프로스의 프톨레마이오스에게 가진  원한을 잘 알았다.


  과거 그가 해적에게 잡혔을 때 몸값으로 키프로스의 프톨레마이오스에게 돈을 빌리려 한 적이 있었다.


  로마의 최고 명문 귀족 클라우디우스 가문인 그는 당연히 돈을 빌릴 수 있을 거라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키프로스의 프톨레마이오스는 클로디우스가 요구한 돈에 한참 미치지 않는 돈을 내어주며 그를 모욕했다.


  덕분에 그는 하마터면 해적의 손에서 풀려나지 못할 뻔했다.


  그때의 아찔했던 기억을 떠올리면 지금도 절로 이가 갈리고 분노가 끓어오를 터.


  그런 그에게 키프로스를 병합하라고 하면 아마 기뻐서 그 자리에서 펄쩍펄쩍 뛰어다닐 것이다.


  다만 키프로스 병합의 공을 온전히 민중파가 다 먹게 둘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분명 귀족파에서도 불만이 쏟아져 나올 게 틀림없다.


  마르쿠스는 그런 점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카토를 키프로스의 재산 압류인으로 지목했다.


  이 하나의 인사로 마르쿠스는 세 가지의 이득을 거머쥘 수 있었다.


  첫 번째는 귀족파의 불만을 억누를 수 있다는 점.


  두 번째는 청렴한 카토라면 분명 중간에 재산을 빼돌리지 않고 키프로스의 재보를 그대로 로마 국고로 환수할 거라는 점.


  마지막 세 번째는 카토가 어쩔 수 없이 1년 이상 로마를 비울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마르쿠스는 자신과 카이사르가 모두 로마를 비우면 폼페이우스가 홀로 원로원을 상대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클로디우스를 통해 뒤에서 지원을 해준다고 해도 불안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귀족파의 핵심 공격수인 카토가 사라진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키케로는 폼페이우스와 사이가 좋은 편이었기에 그렇게 독하게 몰아치지는 못한다.


  카토만 없다면 폼페이우스 혼자서도 능히 귀족파를 억누를 수 있을 것이다.


  카토가 돌아올 때쯤이면 마르쿠스도 갈리아에서 귀환할 테니 아무런 문제가 없다.


  마르쿠스의 지시를 전부 이해한 다나에는 클로디우스에게 지시사항을 전달하기 위해 다시 밖으로 나갔다.


  통통 튀는 그녀의 뒷모습이 왠지 모르게 가벼운 투정을 부리는 것 같아 웃음이 나왔다.



  ※※※※



  혼자서 작업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끝낸 마르쿠스는 마지막으로 논의할 사항을 끝마치기 위해 삼두 회의를 소집했다.


  약속 장소인 폼페이우스의 응접실에는 세 사람 이외는 누구의 출입도 허용되지 않았다.


  심지어 폼페이우스의 노예들조차 음식과 음료를 가지고 들어올 수 없었다.


  폼페이우스는 직접 카이사르와 마르쿠스의 잔에 포도주를 따라주었다.


  "자네 둘이 모두 로마를 떠난다고 생각하니 조금 걱정이 되는군. 물론 크라수스가 남아 있지만 나와 그는 협력할 수 있는 사이가 아니니까 더욱 그런 마음이 든단 말이지."


  "심려치 마십시오. 제가 아버지께 잘 말씀 드렸으니까요. 그리고 오히려 적절하게 대립각을 세워주시는 게 주변에 오해를 사지 않습니다. 지금 저희 모임도 표면상으로는 갈등 봉합을 위한 임시회의 같은 느낌이니까요. 두 분께서는 평소처럼 계속 싸워주시는 게 좋습니다."


  "그런 말을 들으니 마음이 좀 놓이는군. 크라수스와 친하게 지내야 한다는 말을 들었으면 난 도저히 끝까지 연기를 지속하지 못했을 거야."


  마르쿠스와 카이사르가 육성으로 소리 내어 웃었다.


  카이사르가 포도주잔을 비운 뒤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마르쿠스, 자네가 클로디우스를 설득해 키프로스를 합병하게 한 것 같은데···괜찮은 건가?"


  "딱히 문제 될 게 있습니까?"


  "자네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왕권을 강화하는데 협력한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키프로스를 빼앗기면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도 파라오 자리를 유지하기 힘들어질 것 같은데?"


  "아, 물론 그건 그렇겠죠."


  마르쿠스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프톨레마이오스와의 협약은 외부로 유출하지 않는다고 했으나 삼두 연합에게는 예외로 알려주었다.


  공동으로 로마를 이끌어나가는 사이였으니 숨겼다가는 이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까닭이다.


  물론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는 이 협약을 절대 발설하지 않겠다고 신들의 이름 앞에 맹세했다.


  "자네가 나와 함께 갈리아에 가 있을 때 키프로스가 병합된 것이니 자네는 협약을 어긴 게 아니라고 발뺌할 셈인가? 논리적으로 하자가 없긴 하지만 그건 좀 상도덕에 어긋난 행동 같은데. 물론 정치 에 상도덕 따위가 개입할 여지는 없지만."


  "오해십니다. 저는 한 번 맺은 협약은 철저히 지킵니다. 사실을 그대로 말하지는 않더라도 거짓말은 하지 않습니다. 저는 프톨레마이오스 아울레테스의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최적의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 겁니다."


  "그의 입지를 뒤흔드는 게 왕권 강화의 방법이라고?"


  "예. 눈뜨고 키프로스를 빼앗기면 이집트 주민들의 분노는 엄청나겠죠. 알렉산드리아 시민들도 파라오를 욕할 겁니다. 안 그래도 친로마적 행보를 보이는 사람인데 그 로마에게 키프로스를 빼앗겼으니까요. 본인은 부정해도 누가 봐도 로마에 아부하기 위해 키프로스를 떼어다 바친 걸로 보이지 않겠습니까."


  폼페이우스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지. 그러면 최악의 경우 파라오에서 쫓겨나고 다른 자가 왕위에 오를 수도 있겠는데? 아울레테스에게 후계자가 없는 것도 아니지 않나. 나이가 제법 찬 공주가 한 명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렇겠죠. 십중팔구는 쫓겨날 겁니다. 그러면 그는 당연히 로마로 망명을 올 것이고 우리에게 협정을 준수해 달라는 요청을 하겠죠? 그러면 합법적으로 이집트에 밀고 들어갈 명분이 생깁니다. 정당한 왕인 아울레테스를 위해서 말이죠."


  마르쿠스의 말을 이해한 카이사르가 재미있다는 듯 고개를 젖히고 박장대소했다.


  "그리고 아울레테스는 자신에게 반기를 든 신하들과 권력에 위협이 되는 핏줄까지 처단하겠군. 반대하는 자들을 전부 치워버릴 수 있으니 결과적으로 보면 왕권이 안정되는 것도 사실일 테고. 천재적인 협정 이행법이로군."


  "그렇죠?"


  "아울레테스를 파라오로 재옹립하는 과정에서 로마군이 이집트로 들어갈 테니 우리의 영향력을 이집트에 더 깊숙하게 박아넣을 수도 있겠군. 아니, 사실상 이집트를 클리엔테스로 삼을 수 있는 기회가 되겠는걸. 자네가 직접 나설 건가?"


  "저와 폼페이우스 님이 함께 나서는 게 가장 그림이 좋을 겁니다. 제가 갈리아에서 돌아올 때쯤이면 시기가 딱 맞을 겁니다."


  카이사르는 보면 볼수록 마르쿠스가 자신과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결정을 내릴 때 반드시 두수 세수 앞을 바라보고 안배를 한다는 점이 특히 그랬다.


  '그렇다면 갈리아에 따라오는 것도 무언가 생각해둔 바가 더 있는 건가?'


  통찰력이라면 로마에서 따를 자가 없다고 자신하는 카이사르도 마르쿠스의 속내를 전부 꿰뚫어 보지는 못했다.


  그래서 은근히 더 기대됐다.


  카이사르는 아직까지 마르쿠스의 능력이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 다 파악하지 못했다.


  자신의 사위이긴 했지만 가끔 섬뜩할 때가 있을 정도였다.


  그래도 전장에 나가면 보통은 자신의 능력을 밑바닥까지 다 드러내는 법이다.


  카이사르는 이번 원정을 마르쿠스의 그릇을 온전히 가늠해볼 기회로 삼기로 했다.


  그러나 상황은 예상보다 더 급박하게 돌아갔다.


  카이사르와 마르쿠스가 임지로 떠나기도 전에 갈리아의 동향이 심상치 않다는 전갈이 날아든 것이다.


  현대 스위스에 해당하는 헬베티아에 거주 중인 헬베티족이 게르만족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대이동을 시작했다는 보고였다.


  부족 전체가 대이동을 하니 당연히 기존에 타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부족들과 마찰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대혼란의 전조가 갈리아 곳곳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즉각 군단을 편성한 카이사르와 마르쿠스는 북방을 향해 출병했다.


  가족들과 오붓한 인사를 나눌 여유도 허락되지 않았다.


  로마의 역사에 일대 획을 그을 갈리아 원정은 이렇게 아무도 생각지 못한 형태로 시작되었다.



  < 90. 갈리아로 가겠습니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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