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9. 갈리아로 가겠습니다 >
89.
선거가 마무리된 지 이틀 뒤, 크라수스의 저택은 귀족파 의원들과 그들이 대동한 노예들로 북적거렸다.
"하하하하! 오늘만큼은 마음껏 먹고 마십시다. 위대한 승리를 축하하며!"
메텔루스 스키피오가 호쾌하게 웃으며 잔을 높이 들었다.
다른 귀족파 의원들도 해맑은 미소로 메텔루스의 축사에 호응했다.
참패가 예상됐던 선거에서 놀라울 정도의 선방을 거둔 의원들은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었다.
심지어 카토마저도 평소와는 다르게 올라가는 입꼬리를 억누르지 못하고 있었다.
그가 조용히 포도주를 홀짝이고 있는 마르쿠스에게 다가가 말했다.
"선거의 최대 공로자가 이렇게 조용히 있으면 되겠나. 자네도 한마디 해야지."
"괜찮습니다. 사실 후보는 아버지께서 선택한 것이고 전 그들의 지원 유세만 했을 뿐이니까요. 좋은 후보를 고른 아버지의 공이 크지요."
"참 겸손도 하지. 로마의 젊은이들이 모두 자네의 반만 따라갔어도 세태가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텐데."
"과찬이십니다."
마르쿠스는 희석한 포도주를 쭉 비우며 흥에 취한 의원들을 둘러보았다.
크라수스는 귀족파 중진들에게 둘러싸여 칭송의 세례를 받고 있었고, 키케로는 오랜만에 저택에서 나온 비불루스와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가까운 곳에 있었기 때문에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가 전부 귀에 들렸다.
"비불루스, 총독 임기가 끝나면 다시 정계에 복귀할 생각이오?"
"모르겠소···제기랄, 1년 동안 꼼짝없이 가축들이 지나다닐 도로나 측량하고 울타리나 고쳐야 하는 신세가 되다니."
"그래도 실패에서 배운 게 아예 없지는 않을 거요. 임기가 끝나면 한층 더 성장한 당신이 되어 있겠지."
"배운 게 한 가지는 확실히 있소. 다시는 카이사르와 대항하는데 최전방에 서지 않을 거요. 나에게는, 아니 원로원 의원들의 9할 9푼 이상은 그럴 능력이 없소. 카토 역시 마찬가지고 실례지만···키케로 당신으로서도 무리라고 생각하오. 나는 물론 당신이 카이사르보다 더 현명하고 학식이 깊다고 생각하지만, 정치가가 지녀야 할 교활한 능력에는 미치지 못할 거라 보오."
키케로가 떨떠름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뭐···내가 교활한 능력이 부족하다는 건 인정하오. 하지만 단순히 교활하다고만 해서 정치를 잘 할 수 있는 건 아니오. 마르쿠스를 보시오. 교활함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올곧은 청년이지만 이번에 실로 큰일을 해내지 않았소이까. 물론 원로원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으니 가능했겠지만."
"아아, 마르쿠스···그래. 그런 젊은이가 진짜 재능이 있는 정치가일 거요. 내가 아니라 마르쿠스가 집정관이었다면 카이사르가 이렇게까지 마음대로 하지는 못했을 텐데···다 내가 무능력한 탓이겠지."
"그렇지 않소. 당신은 할 만큼 최선을 다했으니까. 솔직히 당신을 욕하는 의원들이 양심이 없는 거라 생각하오. 그렇게 자신 있으면 자신이 집정관직에 나가 카이사르와 맞서 보든가."
"말이라도 고맙소. 그래도 나는 이제 다시는 집정관에 출마하지 않을 거요. 책임을 지는 자리는 이제 질렸소. 총독직이 끝나면 그저 소소하게 카이사르를 규탄하는 연설이나 하면서 한 명의 의원으로 지내려고 하오."
비불루스가 포도주를 쭉 들이키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키케로가 재빠르게 빈 잔에 희석한 포도주를 채워주었다.
"일단 몸과 마음이 다시 준비될 때까지는 푹 쉬시오. 이번 선거 결과를 보니 아직은 귀족파의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겠더군. 당신이 충전을 끝내고 돌아올 때까지 충분히 균형을 유지하고 있을 거요."
키케로 같은 사람마저 현재 선거의 판도가 어떻게 된 것인지 꿰뚫어 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원로원 중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 증거로 완전히 흥이 오른 몇몇 귀족들은 눈살이 찌푸려지는 이야기를 대놓고 나누고 있었다.
"자네, 이번에 라티푼디움 하나를 팔았다지?"
"국유지를 너무 많이 빌리고 있어서 농지법에 걸린다고 하더군. 그래서 법이 통과되기 전에 임대권을 처남에게 팔았네. 그 돈으로 어디 몰락해가는 자영농들의 땅을 사야지. 농지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힘들어질 수 있으니까 지금 미리미리 사둬야 해. 자네도 돈 좀 풀라고."
"그럴까? 그런데 농지법 때문에 막상 사둬도 그렇게 재미 못 보는 거 아니야?"
"무슨 소리인가. 무지렁이 평민들 속여 넘겨서 땅 팔게 하는 것 정도야 손쉬운 일인 것을. 그리고 노예들 적당히 굴려서 최대한 많이 뽑아먹으면 절대 손해가 날 리가 없네. 이게 얼마나 쏠쏠한데. 일확천금은 노리지 못해도 안정적으로 길고 가늘게 뽑을 수 있다고."
"자네 말을 들으니 끌리긴 하는군. 그런데 지금 목돈이 별로 없는데···은행에서 대출을 받으면 되려나?"
"그래. 그리고 자영농들 토지를 헐값에 사는 걸 도와주는 업체들이 있으니까. 그들한테 도움을 받으면 되네. 내 거래하는 업체가 있는데 그 업체는 어떤가. 이번에 선거에서 엇비슷하게 균형을 맞췄으니까 앞으로도 우리 세상은 계속될 거라고. 걱정하지 말고 팍팍 뜯어먹어."
'개소리를 찰지게도 하고 있군.'
마르쿠스는 주변에서 들려오는 방탕한 귀족들의 대화에 반사적으로 미간을 좁히고 혀를 찼다.
민중파에게 밀릴 때 조금 움츠러든 듯했으나, 귀족파의 대다수는 원래 저런 자들이었다.
키케로가 옵티마테스에 제대로 뿌리를 박지 못한 이유도 저런 구성원들 때문이었다.
귀족이라는 특권 의식에 취해 아래 계층의 사람들을 수탈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신참자인 키케로가 자신들과 맞먹으려는 걸 곱게 보지 않는 게 당연했다.
카토나 브루투스처럼 공화주의자라서 귀족파인 게 아니라, 귀족이 중심이 되는 원로원의 힘이 강화되어야 자신들에게 유리하다고 생각해 귀족파에 몸을 담은 것이다.
선거란 합법적으로 권력을 쟁취해 자신들의 부를 키우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카토나 키케로는 그런 자들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으나 딱히 제지하지 않았다.
할 수도 없었고 쓴소리를 해봐야 전혀 소용이 없었기 때문이다.
귀족파가 생각하는 공화정이란 소수의 귀족들이 요직을 차지해 순서대로 권력을 나눠 먹는 것이다.
그렇기에 독재자를 혐오하고, 한 사람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걸 극도로 반대하는 것이다.
'좋을 대로 날뛰어봐라. 언제까지나 그럴 수는 없을 테니까.'
귀족들은 이번에 뽑힌 후보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해줄 거라 믿고 있었지만, 기대와 현실은 원래 괴리가 큰 법이다.
마르쿠스가 당선시킨 후보들은 처음부터 귀족들만의 이익을 대변할 생각이 없었다.
물론 귀족파의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귀족에게 유리한 활동을 하긴 할 계획이었다.
다만 그 활동의 상당수는 로마의 전체적인 국익과 연결되는 일이 될 것이다.
복잡한 심경을 품게 하는 연회가 끝난 뒤, 마르쿠스는 앞으로의 일을 논의하기 위해 귀족파의 핵심을 불러모았다.
카토와 키케로, 메텔루스 스키피오와 크라수스가 우르르 사람이 빠져나간 응접실에 남았다.
메텔루스가 살짝 취기가 돈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 지금 논할 주제가 무엇인가?"
"당연히 내년의 일정입니다. 세세한 사항은 그때 가서 정하더라도 일단 큰 줄기는 미리 잡아놔야 하니까요. 제가 저번에도 말했지만 상대방의 행동에 맞춰가는 전략은 통하지 않습니다. 언제라도 치고 나갈 수 있도록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일리가 있는 말이로군. 그러면 자네가 생각하는 구상은 무엇인가?"
"우선 내년 귀족파의 방침은 민생을 최우선으로 돌보는 것으로 가겠습니다. 이는 선거에서 한 번 좋은 결과를 냈다고 바로 풀어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민생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안찰관은 이쪽에서 4분의 3을 확보했습니다. 호민관도 거의 절반을 당선시켰죠. 충분히 민중들이 환호할만한 사업을 전개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일회성에 그치는 선심성 정책은 지양하도록 하겠습니다.
"
키케로가 모호한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는 아까 전 큰 소리로 떠들던 교양 없는 귀족들의 대화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게 생각대로 되겠는가. 귀족파의 의원들 중에는 민생보다는 자신들의 주머니를 먼저 불려달라는 요구를 할 자들이 많이 있을 텐데. 참으로 볼썽사나운 자들이지만 그런 자들을 적당히 달래면서 이끌어가야 하네. 그렇지 않으면 옵티마테스의 세력은 거의 절반으로 줄어들 테니까."
"물론 명심하고 있습니다. 요는 귀족들의 주머니에도 이득이 돌아가게 하면 되는 것이죠. 적절한 정책을 구상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그래? 역시 내가 말할 것도 없었나 보군. 그러면 자네의 의견대로 다음 해는 민심의 확보를 최우선으로 움직인다고 하고, 나머지는 또 뭘 하면 되겠나?"
"카이사르 님에 대한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단순히 속주 방비를 철저히 하는 것만으로 만족할 만한 분은 아니라고 생각하니까요."
다른 누구보다도 카토가 열성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
희석했다고는 해도 꽤 많은 포도주를 마셔서 그런지 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더 날카로웠다.
"마르쿠스의 말이 옳습니다! 카이사르가 어떤 자입니까. 그의 행동은 언제나 눈앞의 일만이 아니라 두수, 세수 앞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행정이 무너진 북방 속주를 재건하겠다? 그건 표면적인 이유일 뿐이고 분명히 추가적인 노림수가 있습니다. 어쩌면 자신에게 허락된 4개 군단을 이끌고 갈리아로 쳐들어갈 셈인지도 모르지요."
메텔루스와 키케로는 카토의 주장이 현실성이 없다는 듯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카이사르가 정치력이 뛰어나고 군사적 재능도 꽤 훌륭하다는 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4개 군단으로 갈리아와 본격적인 전쟁을 하는 건 조금···폼페이우스라면 그럴 수 있겠지만 카이사르가 그 정도의 군재가 있을까요?"
"저도 키케로의 말에 동의합니다. 아무리 카이사르라도 군사적 재능까지 천재는 아니겠지요. 히스파니아 속주에서 야만인들 수백 명을 때려잡은 것과 갈리아와 전쟁을 하는 건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이번에도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카토가 답답함으로 가슴을 쳤다.
사실 어떻게 보면 카토만큼 원로원에서 카이사르를 제대로 평가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그 근거가 태반이 사적인 감정에 기초하고 있었기에 인정을 받지 못했을 뿐이다.
"마르쿠스, 자네는 내 생각에 동의하겠지? 카이사르에게 어떤 계획이 더 있을 거라고 말하지 않았나."
물론 마르쿠스는 카이사르가 어떤 계획을 품고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무엇을 할지 당사자인 카이사르보다도 더 잘 알았다.
그러나 그걸 그대로 이야기해줄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마르쿠스는 짐짓 신중한 자세를 연기하며 포도를 한 알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어느 쪽이든 가능성을 열어두어서 나쁠 건 없을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1년에서 2년 정도 갈리아 속주로 가있을까 합니다."
대수롭지 않게 툭 던진 한마디에 자리에 있는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키케로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되물었다.
"자네가 갈리아 속주로 가겠다고? 카이사르의 군단에 막료로 지원할 생각인가?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있습니다. 한 가지 이유보다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이긴 합니다만."
"예를 들면?"
"우선 카이사르 님의 바로 곁에서 그분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관찰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크겠죠. 그리고 카토 님의 의견처럼 정말로 갈리아로 쳐들어가 군공을 세운다면 저도 어느 정도는 공을 나눠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최고 사령관에 비하면 제가 얻을 수 있는 공은 극히 미미하겠지만, 로마에서 손 놓고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낫겠죠."
이번에는 메텔루스가 대경실색했다.
"자네는 만약 카이사르가 갈리아로 쳐들어가면 공을 세울 수 있다고 보는 건가?"
"당연합니다. 그런 계산이 서지 않았다면 원정을 하지 않을 분이니까요. 그러니까 더더욱 누군가가 지켜봐야 합니다."
"하지만 자네가 로마를 비운다면 간신히 체계가 잡혀가는 귀족파가 다시 흔들릴 수도 있지 않겠나?"
"1년 정도는 문제없을 겁니다. 일단 앞서 말했듯 저희의 행동방침과 큰 줄기는 제가 잡아놓고 갈 거니까요. 선거에서 저희를 위해 뛰어줄 후보들도 미리 물색해 둘 예정입니다. 그 정도면 남은 문제는 카토 님과 키케로 님이 충분히 처리하실 수 있을 겁니다."
카토는 마르쿠스의 의견에 가장 먼저 찬성의 의사를 밝혔다.
원로원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곳에 4개 군단까지 준채로 카이사르를 보내는 건 도저히 안심이 되지 않았던 까닭이다.
마르쿠스는 폼페이우스의 휘하에서 군단을 지휘해 지역 점령을 한 공도 있으니 군단장급 인재로 지원해도 문제가 없었다.
"카이사르 님에게 허용된 군단을 1개 더 추가해서 5개 군단으로 한다는 법안을 저희 쪽에서 발의했으면 합니다. 물론 그 1개 군단은 제가 사비로 편성할 것이고, 군단장 역시 제가 맡는다고 하면 잡음은 없을 겁니다. 사위가 장인 밑에서 경험을 쌓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니까요."
"이렇게 쭉 듣고 보니 자네 의견이 확실히 최선으로 보이는군. 나도 카토처럼 불만 없네."
키케로까지 찬성하고 나서자 메텔루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결국 귀족파의 핵심들은 모두 마르쿠스가 군단장 자격으로 카이사르가 부임하는 속주에서 1년 이상 복무하는 것을 허락했다.
대략적인 합의가 끝나자 응접실에는 이제 마르쿠스와 크라수스 두 사람밖에 남지 않았다.
조용히 침묵을 지키고 있던 크라수스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갈리아에는 정말로 1년만 있을 생각이더냐?"
"글쎄요···자세한 건 가서 봐야 알겠지만 1년만으로는 충분치 않을 겁니다. 아마 2년은 있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까지 로마의 그 누구도 갈리아 저 깊은 곳까지 들어가 정복을 완수하지 못했다. 그런데 카이사르가 그걸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아니, 해낸다고 쳐도 5년으로는 턱없이 부족할 텐데."
크라수스와 폼페이우스는 카이사르가 갈리아 원정을 계획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카이사르의 동맹인 두 사람 모두 갈리아 원정의 성공 가능성을 희박하게 보았다.
전쟁에서 패배하지 않는 것과 그 넓은 지역을 전부 로마의 패권 아래로 끌어들이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크라수스는 카이사르가 적당한 군공만을 쌓고 군대를 물리리라 내심 확신했다.
그가 아는 카이사르는 모험을 좋아하긴 해도, 성공 가능성이 희박한 도박을 즐기는 자는 아니었다.
폼페이우스 역시 크라수스와 비슷한 생각을 가졌다.
역사가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는 건 마르쿠스뿐이었다.
"갈리아 원정은 아마 로마인이라면 누구나 열광할 수밖에 없는 결과로 끝날 겁니다. 그리고 로마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이 원정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갈리아의 비옥한 토지와 레누스강 유역에 있는 막대한 자원은 로마를 유지하는 데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요소니까요."
"갈리아가 정말로 그렇게 비옥한 농토가 될 수 있다고? 사람이 살기에 적합한 기후를 가진 땅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농사를 짓기에 좋은 땅이라고 장담할 수만은 없지 않겠느냐."
"제가 따로 조사를 한 바에 의하면 갈리아의 토지는 농사를 짓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4윤작법을 도입한다면 로마의 식량 생산량을 어마어마하게 높여줄 겁니다.
그리고 앞으로 로마는 점점 더 많은 철광석이 필요할 겁니다. 레누스 강 서쪽에 있는 지역에는 풍부한 양의 철광석이 매장되어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걸 채굴할 수 있는지 한 번쯤은 확인해볼 필요가 있을 겁니다.
"
마르쿠스는 다른 곳은 몰라도 알자스-로렌 지방은 무조건 손에 넣어야 한다고 결론을 내린 상태였다.
현대로 치면 프랑스의 그랑테스트 레지옹에 속하는 행정구역이다.
이곳은 프랑스의 철광석 생산량의 9할을 담당할 정도로 엄청난 천연자원을 갖추고 있었다.
원 역사보다도 훨씬 더 많은 철을 필요로 하게 될 현 로마 입장에서는 포기할 수 없는 땅이었다.
게다가 갈리아의 땅은 이탈리아보다도 훨씬 더 높은 생산력을 가지고 있었다.
위생개선으로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될 로마의 인구를 감당하려면 갈리아의 비옥한 토지가 필요하다.
즉, 카이사르의 갈리아 원정은 향후 로마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대한 분기점이 될 것이다.
원 역사에서는 성공하게 되니 큰 걱정은 없었으나 그렇다고 마냥 손 놓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어떤 나비효과가 예상치 못한 변수를 가져올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마음 같아서는 마르쿠스도 갈리아 원정 내내 군단장으로 참여하고 싶었으나, 더욱 중요한 일이 있기에 그럴 수는 없는 입장이었다.
일단 카이사르가 원정에서 확실하게 성공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도록 도와주는 게 그의 계획이었다.
그리고 투자의 대가로 알자스-로렌의 자원 독점과 자신이 미리 봐둔 토지를 우선적으로 개간할 수 있는 권리를 이미 약속받았다.
카이사르는 마르쿠스가 요구하는 땅에 정확히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흔쾌히 수락한 것이다.
상식적으로 아직 가보지도 않은 땅에 그토록 엄청난 천연자원이 묻혀 있을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하겠는가.
마르쿠스의 머릿속에서는 조잡하기 짝이 없는 갈리아의 지도와는 정반대로 지극히 선명한 미래의 구상이 착착 완성되고 있었다.
'드디어 그 책을 활용할 때가 왔군.'
마르쿠스의 자신감의 원천은 천기누설에 가까운 정보를 쥐고 있다는 확신에 있었다.
이제 글자 하나하나까지 암기할 수 있을 정도로 뇌리에 각인된 책, 갈리아 전기가 아무도 상상 못 할 원정의 성공을 약속하고 있었다.
< 89. 갈리아로 가겠습니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