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7. 원로원의 새로운 얼굴 >
87.
마르쿠스가 이집트에서 돌아왔을 때 로마에는 몇 가지 큰일이 있었다.
첫 번째는 카이사르가 재혼을 한 것이다.
율리아의 어머니 코르넬리아와 사별하고 두 번째 아내 폼페이아와 이혼한 그는 아직까지 독신인 상태였다.
집정관이자 최고 사제인 카이사르가 언제까지 독신으로 지낼 수는 없었다.
그는 원로원의 유력자인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에게 딸을 달라고 부탁했다.
피소는 온후하고 공정한 사람이라 귀족파와 민중파를 막론하고 모두에게 인기가 좋았다.
그는 귀족파 의원들처럼 카이사르를 미워하지도, 민중파처럼 숭배하지도 않았다.
그저 객관적으로 카이사르라는 인물을 평가했다.
그리고 충분히 딸을 맡겨도 될 만한 사람이라고 결론 내렸다.
다만 한 가지만큼은 확실하게 약속해 달라고 요구했다.
"딸아이와 결혼하면 외간 여자와는 관계를 최소로 해야 하네. 그 아이를 무조건 최우선으로 생각하겠다고 맹세한다면 결혼을 허락하겠네."
카이사르는 흔쾌히 수락했다.
피소의 딸 칼푸르니아의 나이는 올해 열아홉으로 딸 율리아보다도 어린 나이였다.
20살 이상 더 어린 아내를 맞이한 카이사르는 약속대로 아내에게 충실했다.
칼푸르니아는 소문과는 다른 카이사르의 자상함에 완전히 매료됐다.
이 의미는 굉장히 컸다.
원로원 안팎으로 명망이 있는 피소가 적극적으로 카이사르의 편을 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기세가 오른 카이사르는 자신에게 유리한 정책을 거침없이 펼쳐나갔다.
이런 상황 때문에 두 번째 커다란 사건이 일어났다.
바로 또 한 명의 집정관인 비불루스가 사실상 국정을 포기해 버리고 칩거한 것이다.
안 그래도 그는 카이사르에게 연달아 당해 저택에서 두문불출하는 일이 많았다.
집정관이라는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지만, 카이사르를 막지도 못했고 시민들에게는 원망만 잔뜩 들었다.
거기에 같은 귀족파조차 처음과는 달리 점점 비불루스의 능력을 의심하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럼 너희가 해보든가'라고 외치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화를 내봐야 비불루스의 평가만 깎일 뿐이었다.
집정관은 막중한 권한을 가지고 있지만 그에 따른 책임도 큰 법이다.
만약 일이 잘 풀렸다면 지금과는 반대로 비불루스는 귀족파의 찬사를 받고 입지를 확실히 굳힐 수 있었을 터.
책임을 지는 위치란 그런 것이다.
이제 와서 동료 의원들을 탓할 마음은 없었다.
그래도 야속한 마음이 드는 건 사실이었다.
카이사르를 막지 못한 건 온전히 비불루스만의 탓은 아니었던 까닭이다.
그가 정치적 입지를 완전히 상실하게 된 계기는 집정관 임기가 끝난 뒤 맡게 될 속주의 임지 탓이었다.
본래 비불루스와 카이사르는 이탈리아 전역의 삼림과 가도를 정비하는 역할을 맡기로 했었다.
그러나 카이사르는 순순히 그럴 마음이 없었다.
농지법으로 인기를 얻고, 피소와의 결혼으로 중립파를 흡수한 그는 본격적으로 자신의 속주 임지를 바꿀 계획을 실행했다.
카이사르의 충실한 수족 호민관 바티니우스는 민회에서 이 말도 안 되는 인사배정을 바꾸겠노라 선언했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농지법을 통과시키고 시민들의 권리를 드높이기 위해 몸을 아끼지 않은 영웅이 어째서 이런 불합리한 대우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까!
카이사르는 이미 히스파니아 속주에서 그 능력을 증명한 사람입니다. 로마에 반항하는 이민족들을 토벌하고 로마의 영토를 넓혔습니다.
그런 인재가 이탈리아 내의 가도를 정비하며 시간을 허비한다니요. 이건 말이 되지 않습니다. 지금 갈리아 속주의 상황을 보십시오.
갈리아 키살피나와 일리리아 속주는 사실상 행정이 마비된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수한 인재를 이런 곳에 파견해야 합니다! 카이사르의 임지를 삼림과 가도 정비에서 갈리아 키살피나와 일리리아로 변경하는 법안에 찬성해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
바티니우스의 열정적인 연설은 시민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충분했다.
일반 시민들이 보기에도 집정관을 지낸 인물이 삼림을 돌보고 길을 측량하는 건 도저히 정상으로 보이지 않았다.
카이사르를 미워하는 원로원이 심술을 부리는 것으로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여기에 폼페이우스가 쐐기를 박았다.
민회에 참석한 그는 연단 위에서 카이사르를 지지하는 연설을 했다.
"카이사르의 능력은 제가 보증하겠습니다. 그는 우리 로마의 북방을 든든히 수호하는 방벽이 되어줄 것입니다. 시민 여러분, 저를 지지하는 마음만큼 카이사르 역시 신뢰해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는 절대로 여러분들을 실망시키지 않을 것입니다!"
폼페이우스에 이어서 중립파인 피소까지 카이사르를 지지하고 나섰다.
안 그래도 카이사르 쪽으로 쏠려있던 민회의 분위기는 그대로 굳어졌다.
사실 속주 총독 배정은 원로원이 반쯤 억지를 부린 게 맞았던지라 그들도 할 말이 없었다.
원로원파 소속에 속하는 호민관들도 감히 거부권을 행사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처음부터 정상적인 속주를 배정했으면 그냥 넘어갔을 텐데 괜한 역풍을 맞아버린 것이다.
이미 기세를 탄 바티니우스는 거침없이 법안에 추가 조항을 삽입했다.
"갈리아 속주와 일리리아 속주는 수년 이상 버려지다시피 한 채로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이 두 속주에 각각 총독을 배정하는 건 너무 비효율적입니다.
그러니 두 속주를 하나로 묶고, 총독의 임기를 5년으로 연장해야 합니다. 카이사르가 지휘하는 군단은 현재 두 속주에 있는 3개 군단에 추가로 1개 군단을 더 편성해 4개 군단으로 책정하겠습니다. 물론 여기서 추가로 편성하는 군단의 재원은 총독인 카이사르가 부담할 것입니다.
"
바타니우스의 제안은 논리적으로 하자가 없었다.
총독의 임기는 본래 1년이지만 특수한 임무를 맡고 부임하는 경우라면 처음부터 연장이 가능했다.
갈리아 속주는 북방 이민족으로부터 로마를 수호하는 울타리와도 같다.
이곳을 완벽히 재건하기 위해서 5년의 시간과 4개 군단을 동원하는 건 충분히 합리적이었다.
거기에 4개 군단 중 1개 군단은 카이사르의 사비로 편성된다고 하니 예산도 절약할 수 있다.
시민들로서는 반대를 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물론 귀족파는 결사반대를 외쳤다.
언제나처럼 카토가 반대의 선봉에 섰다.
그는 저번에 오물투척을 당했음에도 기죽지 않고 민회의 연단에 섰다.
"선량한 로마 시민 여러분! 여러분들은 카이사르에게 속고 있습니다. 카이사르가 로마의 안위를 위해 갈리아 속주를 맡는다?
그는 언제나 겉으로 하는 말과는 다른 의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카이사르가 지금까지 얼마나 비열한 행동들을 했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카이사르는 원로원의 중진인 크라수스 가문을 이용하기 위해 자신의 딸을 이용했습니다. 권력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딸을 판 겁니다!
하지만 고결한 크라수스 가문은 카이사르의 꾐에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이번에는 명망 있는 피소의 어린 딸을 아내로 맞이했습니다.
우리 로마가 언제까지 이렇게 가족을 정치의 수단으로 이용해야 합니까. 언제까지 이렇게 타락한 행위를 보고만 있어야 합니까.
카이사르가 계속해서 승승장구하게 놔두면 로마의 이런 도덕적 해이는 계속해서 심화될 것입니다. 그러니 반대해야 합니다! 저는 시민 여러분이 올바른 판단을 내릴 거라 믿습니다!
"
열정적인 연설이긴 했으나 시민들은 따분하다는 표정으로 듣고 있었다.
원래부터 카토는 민중들에게는 그리 인기가 많지 않았다.
그의 연설의 진가는 원로원 의원들의 사기를 고취시키는데 특화되어 있었다.
다수의 시민들을 상대로 연설할 때는 그의 뒤를 이어 발언해줄 동료 의원이 필수적이었다.
보통은 비불루스가 그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바티니우스 법이 통과될 때, 비불루스는 카토의 지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농지법이 통과될 때의 악몽 같은 기억이 그의 발목을 잡았던 까닭이다.
비불루스만이 아니었다. 카토를 제외한 대다수의 의원들이 반대연설을 하지 못했다.
그들은 여기서 시민들의 뜻에 거스르면 두 달 뒤의 선거에도 엄청난 영향이 갈 수 있다고 판단했다.
카이사르는 애초에 그걸 노리고 선거를 앞둔 시기에 이런 법안을 제출하게 한 것이다.
임기 전만 해도 무작정 거부권만 행사하면 되는 줄 알았던 비불루스는 자신의 식견이 얼마나 짧았는지 뼈저리게 실감했다.
"이제 어떻게 할 겁니까? 세상에 속주 2개에 4개 군단을 5년간 통치한다고요? 지금이 전쟁 중도 아닌데 이건 너무하지 않습니까."
"비불루스, 처음에 그렇게 자신하지 않았습니까. 대책을 마련해 보세요, 대책을!"
"카이사르에게 이렇게 질질 끌려다니기만 할 겁니까?"
비불루스에게 뾰족한 해법이 있을 리가 없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갈리아 키살피나는 현대로 치면 이탈리아의 북부, 일리라아는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에 해당한다.
여기서 프랑스 남동부에 해당하는 갈리아 키살피나 트란살피나 총독 메틸루스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뜬 것이다.
카이사르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바티니우스는 카이사르의 임지에 갈리아 트란살피나까지 추가하는 수정안을 또다시 통과시켜버렸다.
선거를 앞두고 있는 원로원은 반대의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고 바티니우스 법이 통과되는 걸 멍하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비불루스에게 가장 큰 비극은 카이사르와는 달리 그의 임지는 변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집정관 비불루스의 말대로 삼림과 가도를 정비하는 역할을 맡을 사람은 필요합니다. 그러니 비불루스 본인의 의견을 존중해 그의 임지는 그대로 두었으면 합니다."
바티니우스는 얄밉게도 그렇게 강조했다. 이 의견이 카이사르에게서 나왔다는 걸 모르는 의원들은 없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비불루스는 본인이 한 말을 도로 주워담을 수 없었다.
차라리 동방 속주로 부임이라도 했으면 일말의 위로라도 받을 수 있었겠지만, 집정관 임기가 끝나도 이탈리아 전역의 도로나 측량해야 하는 신세였다.
카이사르와 함께 진흙탕에 잠기려고 했는데 본인 혼자 똥물을 뒤집어쓴 격이 된 것이다.
그럼에도 동료 의원들은 카이사르를 막지 못했다고 연일 그를 성토했다.
정치판에 계속 있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결국 비불루스는 건강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남은 임기를 모두 자택에서 요양하겠노라 선언했다.
원로원은 난리가 났으나 비불루스는 더는 집정관직을 수행할 여력이 없었다.
덕분에 카이사르는 임기 끝까지 단독으로 집정관직을 수행할 기회를 얻게 됐다.
자연히 선거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정책을 입안하기도 쉬워졌다.
카이사르가 총독으로 부임하는 이탈리아 북부의 정세는 현재 심상치 않았다.
게르만계 수에비족의 족장인 아리오비스투스가 태풍의 눈이었다.
그는 갈리아와 게르마니아를 나누는 레누스 강(라인 강)일대를 주름잡고 있는 강대한 세력의 왕이었다.
갈리아 서쪽으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싶었던 그는 자신의 영역을 로마가 보장해주기를 원했다.
로마 역시 굳이 게르만족과 싸우기를 원치 않았다.
카이사르는 아리오비스투스를 로마의 친우로 대우하는 결의를 끌어냈고, 원로원도 이에 동의했다.
게르만과의 전쟁에서 카이사르가 군공을 쌓는 기회를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르쿠스가 로마로 돌아온 시기는 로마가 아리오비스투스를 인정한다는 결의문을 발표한 바로 다음날이었다.
귀족파 의원들은 젊은 천재의 귀환을 진심으로 반겼다.
원로원에서 귀환 보고를 마친 마르쿠스는 곧바로 귀족파의 대책회의에 불려갔다.
상황은 최악에 가까웠으나 완전히 절망적인 건 아니었다.
일단 비불루스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키케로가 완전히 귀족파에 합류했다.
명문 귀족이 아닌 그가 귀족파의 일원이 된 이유는 민중파의 독주를 막기 위해서였다.
귀족파는 그를 일종의 비상대책 위원으로 여겼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역시 첫째도 선거, 둘째도 선거, 셋째도 선거입니다."
키케로는 귀족파 의원들을 둘러보며 몇 번이고 강조했다.
"올해 카이사르에게 주도권을 빼앗긴 건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니 일단 올해의 패배는 인정하고, 내년의 정국을 준비해야 합니다. 이번 선거에서조차 참패하면 내년의 상황은 더욱더 절망적이 될 것입니다."
반론은 나오지 않았다.
크라수스가 신중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선거가 중요하다는 사실은 여기 있는 모두가 인지하고 있을 것이네. 당연히 마음 같아서는 이기고 싶지. 문제는 현실적으로 그럴 수 있느냐 하는 점일세."
"솔직히 말하면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크라수스 님께서 모은 후보들은 지금으로서는 최선의 인물들입니다. 최대한 선거활동을 지원하고 법에 저촉되지 않는 선까지 돈을 쏟아 부어야지요."
키케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마르쿠스가 입을 열었다.
"주제넘지만 제가 이 상황에 대해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오오, 물론이지. 지금 국면에 도움이 되는 말이라면 뭐든지 환영일세."
지금까지 원로원에 숱한 이득을 안겨다 준 마르쿠스의 구상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인물은 없었다.
모두의 시선이 충분히 집중되었다고 판단한 그는 목을 가다듬고 현 상황을 냉정하게 되짚었다.
"우선 지금의 상황은 빈말로도 좋다고 할 수 없습니다. 사실 최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도 아버지께서 건강을 회복하시고 적극적으로 의정활동을 하신 덕분에 완전히 막다른 골목까지 몰리지는 않았습니다. 만약 좋은 후보들을 내세우지 못했다면 귀족파는 정무관을 단 한 자리도 얻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건 그렇지···크라수스 님께서 제때에 건강을 회복하신 건 유피테르 신의 도우심이라고 볼 수밖에 없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일단 시간이 너무 부족합니다. 지금 상황에서 선거가 열리면 백이면 백 참패합니다. 그러니 선거를 뒤로 미루죠. 두 달 정도만 선거를 연기해도 시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할 기간은 충분히 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슨 핑계를 대고 선거를 연기한다는 말인가?"
"듣자하니 제가 이집트에 있는 동안 암살모의가 있었다고 하던데요. 그걸 구실로 삼으면 될 겁니다."
귀족파 의원들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원로원에서 필사적으로 묻은 덕분에 회자되지는 않고 있었으나, 마르쿠스의 말대로 얼마 전 원로원을 발칵 뒤집은 일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폼페이우스를 노린 암살모의 사건이었다.
미수가 아닌 모의에 그친 이유는 주모자 중 한 명이 카이사르를 찾아가 음모를 실토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증거가 없었고 심증만 있던 상황인지라 카이사르는 이걸 공론화하지 않았다.
원로원 측에서도 암살은 부정적으로 보는 이들이 많았기에 성토의 목소리가 높았다.
카토조차 정치적으로 반대 입장이라고 암살을 하는 건 치졸한 일이라며 선을 그었다.
카이사르도 귀족파가 암살을 주도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일단 물증이 없는 이상 이걸로 누군가를 공격해봐야 역풍을 맞기 딱 좋았다.
그래서 민중파와 귀족파는 이 암살모의를 그냥 해프닝으로 덮어버리기로 암묵적인 합의를 맺었다.
마르쿠스는 그 점을 다시 들고 나온 것이다.
카토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암살모의를 공론화시키면 우리에게 좋을 게 없지 않을까?"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민중파와 사이가 좋지 않다고 암살까지 하려고 생각하는 시민은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애초에 그런 생각을 할 자들이라면 우리에게 표를 던지지 않을 테고요. 실제로 같은 원로원 의원을 암살한다는 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짓인지 여기 모두가 공감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런 의견을 모아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하는 겁니다. 암살 같은 비열한 짓은 결코 허용되지 않고, 범인을 찾아내기 위해 조사를 해야 한다고 하면 됩니다. 그리고 위험을 느끼셨을 폼페이우스 님에게도 공식적인 위로 성명을 발표해야겠지요.
"
"의심을 받지 않도록 이쪽에서 먼저 행동을 하자는 거로군."
"예. 그리고 이걸 핑계로 선거를 자연스레 연기하면 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민중파에 밀린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마르쿠스가 귀족파 의원들을 한 명씩 둘러보며 눈을 맞추었다.
질문에 곧장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마지막으로 마르쿠스의 시선을 받은 키케로가 확신 없는 어조로 답했다.
< 87. 원로원의 새로운 얼굴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