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 대립의 불씨 >
폼페이우스와 그가 거느리는 6만의 대군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압박이었다.
브룬디시움에 상륙한 폼페이우스는 부하들의 피로를 풀어주기 위해 간소한 연회를 열었다.
원로원은 촉각을 곤두세우며 폼페이우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술라는 자신처럼 무력으로 로마를 전복하는 이가 다시 나오지 못하도록 엄격한 법을 제정했다.
군단을 이끄는 지휘관이 북쪽에서 로마로 귀환할 때는 루비콘 강에서, 그리고 남쪽에서 귀환할 때는 브룬디시움을 벗어나지 않고 군대를 해산해야만 한다.
게다가 지휘관은 개선식이 열리는 날까지는 로마의 성벽 안으로도 들어올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법을 강제할 수 있는 힘이 원로원에 없다는 게 문제였다.
폼페이우스가 마음만 먹으면 술라처럼 수도로 쳐들어와 독재 정치를 피는 건 일도 아니었다.
원로원이 할 수 있는 것은 시민들에게 인기가 있을 만한 법을 마구 통과시켜 지지도를 올리는 것뿐이었다.
원로원의 인기가 확고하면 폼페이우스라 해도 섣불리 행동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마르쿠스도 폼페이우스가 어떤 선택을 내릴지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원로원이 폼페이우스를 견제할 기회만 호시탐탐 보고 있을 거라는 사실은 이미 전에 말해주었다.
그때는 충고를 귀담아듣지 않았지만 지금은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폼페이우스의 생각이 그새 바뀌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적어도 속주 편성안 정도는 강하게 요구를 해주는 게 나한테도 편할 텐데'
폼페이우스의 선택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변수가 워낙 많아 모든 경우의 수를 대비하는 건 무리였다.
그런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마르쿠스의 앞으로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폼페이우스가 동방에서 출발하기 전에 미리 작성한 서신이었다.
<친애하는 마르쿠스. 자네의 경이로운 활약은 내가 있는 다마스쿠스까지 들려오더군. 나는 자네가 언젠가 이렇게 두각을 나타낼 줄 알고 있었지.
그리고 자네가 미리 처리하고 떠난 덕분인지 기사 계급도 충실히 협조를 해주었네. 덕분에 속주 편성을 순조롭게 끝낼 수 있었어.
자네도 이 편지가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으면 전리품을 산처럼 쌓아서 돌아온 내 모습을 볼 수 있을 거라네.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이라면 내 수족으로 움직여주었던 호민관이 재선에 실패했다는 것 정도일까. 그래도 이제 내가 호민관을 통해 뭔가를 얻어내야 할 급은 아니지 않나? 자네도 그렇게 생각할 거라 믿네.>
중간 부분까지 읽은 마르쿠스는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편지를 작성할 때의 폼페이우스의 심정이 너무나 쉽게 예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마르쿠스는 계속해서 자부심이 펄펄 풍기는 편지를 읽어 내렸다.
<나는 이번에 병사들에게 퇴직금으로 경작지를 분배해주겠다고 약속했네. 하지만 사유지를 나눠줄 생각은 추호도 없어.
나와 내 병사들이 해낸 공을 고려하면 당연히 로마가 국유지를 배분해줘야 할 거야. 설령 원로원이 어깃장을 놓으려 해도 내가 직접 나서면 시민들도 내 편을 들어주겠지.
듣자 하니 로마의 시민들이 내가 원로원과 다툴까봐 불안해하던데 전에 말했듯이 난 그럴 마음이 없네. 그 증거로 브룬디시움에 도착하면 보름 내로 군대를 해산할 걸세. 내가 이렇게까지 원로원의 체면을 세워준다면 그들도 내 요구를 받아들여 줄 거라 믿네. 그들도 귀족인 이상 명예를 알고, 양심을 가진 사람일 테니까.
아, 마지막으로 내 아내 무키아가 자네의 장인을 비롯한 여러 남자와 어울린다는 소문이 있던데···여유가 된다면 자네가 좀 알아봐 주게. 사실로 드러난다면 개선식을 치른 뒤 천천히 후처감을 알아봐야겠네. 그러면 내년에 치러질 개선식에서 다시 보기로 하세.>
"하, 폼페이우스···내가 그렇게나 말했는데."
마르쿠스는 편지를 내려놓으며 한탄했다. 그의 한숨 소리를 들은 율리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가왔다.
마르쿠스가 넘겨 준 편지를 빠르게 훑은 그녀의 눈에 황당함이 깃들었다.
"정말로 군대를 그냥 해산해버린다고요? 원로원에게 아무런 약속도 받지 않고?"
"나는 그럴 줄 알고 있었어. 그래서 속주 편성안만이라도 일단 약속을 받아 놓으라고 말을 했었는데 전혀 효과가 없었나보네."
"으음···원로원에서 절대 호락호락하게 나오지 않을 텐데요. 그런데 폼페이우스 님의 편지를 보니 아버지는 참···딸 입장에서 폼페이우스 님에게 죄송할 뿐이네요."
"내가 알기로는 장인어른은 폼페이우스 님의 아내와는 그리 만나지 않았을 거야. 당신도 알지만 장인어른은 음···정숙한 사람을 좋아하잖아?"
"하아···전혀 위로가 안 되는 말이에요."
율리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버지를 사랑하고 존경하기는 했지만, 여자 문제만큼은 편을 들어주고 싶지 않았다.
마르쿠스는 율리아를 더 자극하지 않도록 입을 꾹 다물었다.
사실 카이사르의 사생활 문제 따위에 신경을 기울일 정도로 그는 여유롭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폼페이우스가 군대를 해산할 거라고 친절히 편지로 설명해줬다는 것일까.
덕분에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야 할지 예측은 됐다.
'이렇게 된 이상 원 역사와 너무 괴리가 생기지 않도록 조정을 해야겠군.'
카틸리나 때는 역사대로 흘러가게 하려고 공작을 했는데 완전히 예상외로 튀어나가 버리더니, 이번에는 변화를 주려고 했는데 폼페이우스의 고집을 바꾸는 데 실패했다.
문제는 지금 원로원의 상황이 원래 역사와는 조금 다르다는 것이다.
원래보다 훨씬 더 큰 파문을 일으킨 카틸리나의 반란을 성공적으로 진압한 그들은 기세가 올라 있었다.
풀크루스의 재판에서 지기는 했어도 그 정도는 사소한 해프닝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겼다.
여기에서 폼페이우스가 틈을 보인다면 원로원은 절대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폼페이우스에게 무시당했던 울분을 모조리 풀어내려 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는 안 된다.
폼페이우스가 이렇게 이른 시기에 꺾이든, 역으로 원로원과 사생결단을 내든 마르쿠스의 계획에 심각한 차질이 생기기 때문이다.
'결국 문제를 수습하는 건 내 몫인가. 폼페이우스는 내 수고를 알려나 모르겠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은 수습하는 이의 심정을 알지 못한다.
피곤에 찌든 한숨을 픽 내쉰 마르쿠스는 이후의 일을 의논하기 위해 크라수스의 방으로 향했다.
※※※※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실패를 겪어보지 않은 폼페이우스는 이번에도 당연히 그러리라 여겼다.
자신감 과잉, 곤경에 빠질지도 모른다는 생각 자체가 머릿속에 없었다.
그는 편지로 밝힌 대로 즉각 군대를 해산해 버렸다.
그리고 소수의 군단장과 막료만을 대동하고 아피아 가도를 따라 로마로 북상했다.
폼페이우스의 귀환행렬은 그의 명성만큼이나 화려했다.
동방에서는 알렉산드로스의 재림이라 불리는 위대한 장군이다.
그의 얼굴을 한 번만이라도 보기 위해 가도로 몰려나온 시민들이 열렬한 환호를 보내주었다.
폼페이우스는 피부로 느껴지는 자신의 인기에 흡족해하며 일부러 속도를 늦추었다.
환영인파에 휩싸인 그는 해가 바뀌고도 한 달이 더 지나서야 로마에 당도했다.
폼페이우스는 일단 성벽 밖에 머물며 공식적으로 자신의 요구 사항을 밝혔다.
"원로원은 나 폼페이우스 마그누스가 세운 공을 인정하고 개선식을 거행할 권리를 주십시오. 그리고 다음해의 집정관 선거 후보에 등록하도록 허가해줄 것을 요구합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작성한 동방 속주 재편성안을 허가하고 제 밑에서 종군한 병사들에게 토지를 배분해 주십시오."
냉정하게 평가해 봐도 폼페이우스의 요구는 절대 과하지 않았다.
그가 동방에서 세운 업적을 고려하면 오히려 소박하다고 볼 수 있을 정도였다.
폼페이우스는 여기에서 원로원을 향해 화해의 손길을 내민 것이다.
그러나 원로원은 폼페이우스의 뜻대로 해줄 마음이 전혀 없었다.
군대를 해산한 폼페이우스는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던 까닭이다.
게다가 잇따른 개혁 법안을 통과한 덕에 원로원을 향한 시민들의 지지도 꽤나 높았다.
원로원은 지금이 폼페이우스를 길들일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했다.
카토 같은 강경파는 대놓고 개선식을 제외한 모든 요구를 묵살해버리자고 제안했다.
한술 더 떠서 개선식의 규모도 축소하는 게 어떠냐는 말까지 나왔다.
"폼페이우스는 지금까지 너무나 많은 특권을 누렸습니다. 그러니 이번에는 조금 좌절을 경험해 봐도 좋지 않겠습니까. 지금의 고난이 앞으로의 그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줄 겁니다."
"하하하, 폼페이우스가 무슨 쇠입니까. 때릴수록 더 단단해지게."
"폼페이우스의 성격을 고려하면 자신에 대한 모욕이라고 펄펄 뛸 것 같은데요."
"화내봐야 그가 뭘 어쩌겠습니까. 이미 군대는 해산했는데요."
의원들의 목소리는 너나 할 것 없이 조소로 가득했다.
회의는 폼페이우스의 제안을 거절하는 게 이미 전제된 상태로 진행되고 있었다.
회의장 한구석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마르쿠스는 나지막하게 혀를 찼다.
원래라면 그가 원로원 회의에 참여할 수 있는 건 재무관 임기가 끝나는 내년이었다.
하지만 카틸리나의 반란 때문에 원로원은 현재 예상보다 더 많은 공석이 생긴 상태였다.
덕분에 자동으로 의석을 부여받는 재무관들도 1년 일찍 원로원에 입성할 수 있었다.
마르쿠스는 신참 의원답게 지금까지는 아무런 발언도 하지 않고 조용히 의견을 듣고만 있었다.
하지만 점점 폼페이우스를 향한 매도의 여론이 거세지자 더는 두고 볼 수만은 없게 됐다.
그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고 발언을 요청했다.
"존경하는 의원님들, 아직 경험이 일천하지만 제가 주제넘게 한 말씀 올리고자 합니다."
"오, 마르쿠스, 자네도 이제 원로원 의원이니 기탄없이 말해보게."
키케로를 비롯한 다수의 의원은 아직 한참이나 어린 마르쿠스의 발언에 전혀 불편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마르쿠스가 얼마나 원로원의 호의를 받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광경이었다.
그러나 이건 엄밀히 말하면 지지가 아닌 응원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처신을 잘못한다면 언제 그랬냐며 손바닥 뒤집듯 여론이 뒤바뀔지도 모른다.
마르쿠스는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며 말을 이어나갔다.
"폼페이우스 님이 지금까지 너무 과한 특별대우를 받았다는 건 모두가 공감하는 사실일 겁니다. 하지만 당시 폼페이우스 님 외에는 그런 중임을 맡을 인재가 부족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또한 이번에 로마에 헤아릴 수 없는 커다란 이득을 안겨주었다는 공적은 분명 상찬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그렇지만 폼페이우스는 지금까지 원로원을 무시하는 언행을 너무 많이 보였네. 자네는 원로원에 있지 않았을 테니 실감할 수 없겠지만."
"예. 저도 폼페이우스 님이 원로원을 좀 더 배려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번에 폼페이우스 님의 요구를 전부 들어준다면 원로원이 주도권을 쥘 수 있는 기회는 앞으로 오지 않을 거라는 것 또한 알고 있습니다."
키케로가 마르쿠스의 말을 긍정하며 추가로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리고 폼페이우스는 자기 뜻대로 원로원을 휘두를 수 있다는 확신을 얻겠지. 나는 그와 가까운 사이지만 정치적인 균형을 고려하면 이번만큼은 원로원이 승리해야 하네."
"물론입니다. 당연히 그래야 하고말고요. 다만 로마에 공을 세운 영웅을 완전히 무시해서만은 안 된다는 겁니다. 폼페이우스 님 정도의 공을 세운 지휘관이 개선식조차 변변하게 치르지 못하면 장래에 좋지 않은 선례로 남을 것입니다. 게다가 지금의 복잡한 정국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은 분명 원로원이 치졸한 일을 했다고 여길 겁니다."
"그런 무지한 자들의 말에 일일이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을까?"
"무지한 군중들이 떠들기 시작하면 잘못하면 여론이 형성될 우려가 있습니다. 물론 현재 원로원의 지지는 탄탄합니다. 하지만 폼페이우스 님 역시 방대한 계층의 시민들에게서 지지를 얻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지금은 여론전이 된다고 해도 딱히 밀릴 것 같지는 않은데···오히려 폼페이우스가 화려한 개선식을 치르면 더욱 인기가 오를 테니 우리에게 불리해지지 않겠나."
"반대입니다. 오히려 폼페이우스 님 정도의 공을 세운 사람이 제대로 된 개선식조차 치르지 못한다면 시민들의 동정을 살 겁니다. 커다란 공을 세웠지만 기득권에 탄압당하는 전쟁 영웅. 이런 그럴싸한 인상이 씌워지면 시민들의 동정을 얻기 딱 좋을 테니까요."
여기저기서 그럴듯한 말이라며 동감하는 의견이 흘러나왔다.
카토가 짜증 섞인 신음을 흘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면 개선식 정도는 허가해줘야 한다는 말이로군."
"예. 그리고 최대한 화려하게,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의 규모로 여는 게 맞습니다. 군중들은 눈에 보이는 형태에 집착합니다. 원로원이 폼페이우스 님의 공을 인정하고 마땅한 영광을 누리게 해줬다는 인식만 주면 되는 겁니다. 그러면 나머지 사안은 적당히 핑계를 대며 질질 끌어도 원로원이 심술을 부리고 있다는 인상은 주지 않겠지요."
"명안이로군. 하긴 폼페이우스를 완전히 찍어 누르려면 원로원도 상당한 출혈을 각오해야 할 테니···오히려 서서히 말려서 고사시키는 게 더 효율적이겠어. 원로원의 명예도 손상이 가지 않을 테고."
카토에 이어서 키케로도 폼페이우스의 명예는 살려주는 방향으로 가자고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그에게 어떤 실권도 내어줘서는 안 된다는 것은 확실히 했다.
"일단 가장 중요한 것은 폼페이우스가 집정관에 출마하지 못하도록 하는 겁니다. 폼페이우스가 제안한 요구를 아무리 질질 끈다고 해도 그가 집정관이 된다면 스스로 일을 처리해버리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폼페이우스의 후보 등록을 저지할 방법을 찾는 것입니다."
확실한 방향이 정해지니 물 흐르듯 구체적인 방안이 나오기 시작했다.
마르쿠스의 옆자리에 앉아 있는 카이사르가 코웃음을 쳤다.
본래 그는 히스파니아 지역 총독으로 부임했어야 하지만, 채권자들의 항의로 발이 묶인 상태였다.
그래도 최대 채권자인 마르쿠스가 보증을 서주는 형태로 해결을 본 덕분에 다음 달에는 어떻게든 임지로 떠날 수 있게 됐다.
그가 작은 목소리로 마르쿠스에게 속삭였다.
"저 현명한 무리가 정적에 대한 견제보다 국익을 생각하는 날이 정녕 올 거라 보는가?"
"오도록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글쎄···어지간한 충격요법으로는 어림도 없을 것 같은데. 우리는 지금 어떻게 하면 로마의 영광을 위해 전력으로 노력한 사람의 콧대를 멋지게 꺾어줄 수 있을까 논의하는 광경을 보고 있는 거라네."
카이사르의 목소리에는 숨길 수 없는 혐오감이 짙게 배어있었다.
마르쿠스의 심경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물론 두 사람이 어떻게 느끼든 상관없이 회의는 착착 진행되었다.
원로원은 폼페이우스의 요청 중 첫 번째, 개선식을 열어달라는 사항만 허가해주기로 결론을 내렸다.
역사상 가장 화려한 개선식을 열어 원로원이 폼페이우스를 예우하는 듯한 모양새를 취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토지배분과 속주 편성안은 시간이 필요한 문제라는 핑계로 지연작전을 펴기로 했다.
카이사르는 이 대목에서 믿어지지 않는 듯 대놓고 한숨을 퍽퍽 쉬었다.
"폼페이우스의 얼굴에 먹칠하는 것은 그렇다 쳐도, 동방 속주 편성은 어떻게든 처리를 해야 하는 문제 아닙니까. 이건 시간을 끌면 끌수록 로마의 손해로 직결됩니다."
당연히 카이사르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의원은 없었다.
원로원은 자신들이 생각해낸 계책을 묘수라며 서로 자화자찬하기 바빴다.
확실히 폼페이우스에게 망신을 준다는 의미에서는 묘수가 맞았다.
부하들에게 이미 약속한 토지 분배가 길어지면 폼페이우스는 부하들에게 면목이 서지 않는다.
동방 속주 편성도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정복지에서 위신이 깎일 수밖에 없다.
이제 남은 건 폼페이우스가 집정관에 출마하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기만 하면 된다.
루쿨루스가 여기에서 묘안을 냈다.
그는 동방 사령관에서 해임될 때 폼페이우스에게 엄청난 굴욕을 당한 적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폼페이우스의 체면을 깎아내리는 일에는 거의 물 만난 고기처럼 나섰다.
"모두가 알다시피 집정관 입후보 등록은 선거가 열리는 여름 전에 끝내야 합니다. 그리고 원칙적으로는 반드시 후보자 본인이 카피톨리노 언덕으로 와야 합니다. 하지만 개선장군은 개선식이 열리는 날까지는 성벽 안으로 들어올 수 없습니다. 즉, 개선식 일정을 집정관 선거가 끝난 이후로 잡으면 폼페이우스는 집정관 후보로 나올 수조차 없을 겁니다."
"오오, 그거 좋은 방법입니다. 그런데 그가 부재중 출마를 허용해 달라고 정식 요청하면 어떻게 합니까?"
키케로가 씩 웃으며 즉각 대답을 들려주었다.
"부재중 후보 등록은 원칙적으로는 후보가 로마에 오지 못할 때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폼페이우스는 성벽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있을 뿐, 로마에는 있지 않습니까. 말장난이긴 해도 원로원이 거부하는데 법리적으로 문제 될 건 없습니다."
"그러면 폼페이우스가 개선식을 포기하고 집정관직에 출마할 가능성은?"
"그거야말로 말이 안 되지요. 로마 역사상 가장 화려하게 열릴 개선식을 포기한다고요? 폼페이우스는 1년만 참으면 집정관쯤이야 얼마든지 될 수 있다고 생각할 위인입니다. 차라리 1년 참는 한이 있더라도 개선식을 선택하는 쪽을 고를 겁니다."
원로원이 앞으로도 과두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여기서 폼페이우스의 목줄을 틀어쥐어야 한다.
키케로도, 카토도, 다른 중진들도 자신들의 행위를 부당한 탄압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이건 모두 공화정의 미래를 수호하기 위한 구국의 결단이다.
자기기만이 아니라 대다수의 원로원 의원들은 정말로 이렇게 생각했다.
결국 폼페이우스의 개선식 날짜는 9월의 마지막 날을 하루 앞두고 치르기로 결정됐다.
이날은 다름 아닌 폼페이우스의 생일이었다.
이것 또한 원로원이 생각해낸 기가 막힌 핑계였다.
자신의 생일에 개선식을 치르는 건 로마인에게는 말로 다 표현 못 할 정도로 명예로운 일이었다.
로마의 위대한 영웅 폼페이우스는 그만큼 특별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는 포장이 뒤따랐다.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본 카이사르는 화를 낼 기력조차 없다는 듯 그냥 웃었다.
"내가 저런 꼴을 안 보고 속주 총독으로 간다는 게 그나마 다행일세. 하지만 로마에 남아있어야 할 자네는 꽤나 골치가 아프겠군."
"그러게 말입니다. 그래도 원로원이 폼페이우스 님을 막다른 골목까지 몰아붙이게 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일단 한숨 돌릴 수는 있을 것 같네요."
"저자들은 폼페이우스가 군대를 해산했을 뿐, 그 군인들은 여전히 이탈리아 내에 있다는 자각이 없는 것인가? 폼페이우스가 그럴 마음만 먹는다면 군대를 소집해 로마로 밀고 들어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품는 이가 없다는 게 믿기지가 않는군."
"군대를 해산했으니 폼페이우스 님은 술라와는 다르다는 인식이 공고해진 거죠. 원래 사람이란 게 인식이 한 번 박히면 다른 측면은 좀처럼 고려할 수 없게 됩니다."
"뭐···사실 내 생각도 폼페이우스가 술라처럼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네. 자신의 목숨이 위험하다고 생각될 때라면 모를까. 술라는 타인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먼지만큼도 신경을 쓰지 않았으니까 태연히 그런 짓을 할 수 있었겠지. 하지만 폼페이우스는 다르거든. 그런 점이 인간적으로 매력적이기는 하지만 정치적으로는 대성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고."
마르쿠스가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폼페이우스에게 보낼 원로원의 공식 성명이 압도적인 찬성표로 가결되었다.
카이사르가 얼굴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폼페이우스에게 한 번의 기회는 있네. 개선식이 열리기 전에 시민들을 대상으로 공식석상에서 연설할 기회가 찾아올 테니까. 잘 준비해서 시민들을 선동한다면 여론을 반전시킬 수도 있을 거야. 물론 폼페이우스의 웅변 능력을 고려하면 확률이 1할도 채 되지 않겠지만."
"1할도 높습니다. 5푼쯤 되겠지요."
"그런데 폼페이우스는 자네와 친하지 않나? 그쪽에서 자네에게 지혜를 구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는데."
마르쿠스가 피식 웃으며 반문했다.
"폼페이우스 님이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그거야 당연히···아, 아니겠군. 적어도 당분간은 그럴 일은 없겠어. 자네의 충고를 무시하고 군대를 해산한 뒤 낭패를 봤으니 어떻게든 스스로 해결을 해보려고 하겠지. 바로 도와달라는 신호를 보내는 건 그의 드높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못할 테니까."
"예. 아마 한동안 상당히 고생해야 할 겁니다. 물론 동방 속주 문제를 고려하면 저도 상당히 머리가 아프긴 한데···해결을 할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리고 제가 이렇게 골치가 아픈만큼 폼페이우스 님도 고생을 좀 해야 합니다. 그래야 공평하죠."
"하하하, 그래. 그럼 당분간 폼페이우스와 접촉할 마음이 없다는 걸로 알고 있겠네."
마르쿠스의 시선이 지금쯤 폼페이우스가 있을 세르비우스 성벽 남쪽 방면을 향했다.
"제가 굳이 먼저 접촉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때가 되면 그쪽에서 먼저 저를 찾을 테니까요."
원로원 회의장을 나온 마르쿠스가 하늘을 향해 나지막한 휘파람을 불었다.
현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게 평온한, 그래서 더 묘하게 들리는 바람 소리가 구름을 타고 남쪽 하늘로 흘러가고 있었다.
< 69. 대립의 불씨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