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 이변의 여파 >
충격적인 선거 결과를 마주한 원로원은 거의 아비규환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이날은 집정관 당선자들이 신전에 참배하러 갔기 때문에 원로원 회의에 불참했다.
당사자들이 없으니 초장부터 비난으로 점철된 고성이 회의장에 난무했다.
"카틸리나 그자가 어떻게 집정관에 당선될 수 있소! 대체 원로원은 뭘 한 거요!"
"그러는 당신도 원로원 의원이 아니오! 당신부터 뭘 했는지 말해보시오!"
"뭐라, 당신? 지금 나에게 그런 거요?"
난투라도 벌어질 듯 분위기가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보다 못한 집정관 키케로가 신경질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외쳤다.
"지금 와서 책임소재를 따져서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애당초 제가 카틸리나가 후보로 등록하는 걸 금지하는 표결을 붙였을 때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했습니까? 그때 압도적으로 찬성을 했으니 이번 일은 원로원 모두가 책임을 나눠서 져야 합니다. 제 말이 틀렸습니까?"
키케로가 싸우는 의원들을 번갈아 바라보자 머쓱해진 그들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
회의장이 진정됐다고 여긴 키케로는 숨을 크게 들이쉬며 말을 이었다.
"존경하는 의원 여러분.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지금은 우리끼리 분란을 일으킬 때가 아닙니다. 카틸리나가 자리를 비운 이때 우리의 행동 방향을 결정해야 합니다."
키케로와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은 카토마저 이번에는 그의 편을 들어주었다.
발언권을 얻은 카토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넓은 회의실을 가득 울렸다.
"집정관의 말이 옳습니다! 카틸리나 그자는 로마법의 근간을 무시하는 공약을 내걸고 당선됐습니다. 부채 전액 탕감이라니 그런 얼토당토않은 법이 발의되게 둬서는 안 됩니다."
이제 막 원로원에 들어온 클로디우스 풀케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런데 카틸리나가 아무리 발악을 해봐야 그런 법안이 통과될 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냥 집정관인 실라누스 님이 끝까지 거부권만 행사해도 법안은 부결될 것 같은데요. 실라누스 님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아도 호민관 중 누군가가 할 것이고요. 제가 볼 땐 괜히 호들갑을 떠는 것 같은데······."
풀케르의 말에 소수의 의원이 동의하는 기색을 보였다.
카토가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한탄했다.
"아직도 사안의 심각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한 번만 말할 테니 잘 들으십시오.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으니 문제없다고 생각하는 그 인식이 터무니없이 물러요! 애초에 부채 탕감 따위의 법안이 발의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겁니다!"
"···법안 발의 자체가 문제다?"
"바로 그렇습니다. 그라쿠스 형제 때의 사건을 벌써 잊으셨습니까?"
대다수의 의원들은 카토의 말을 이해하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과거 로마의 모순인 농지법을 개혁하려고 했던 그라쿠스 형제는 원로원의 반대에도 무릎 쓰고 농지법을 통과시키려고 애썼다.
호민관은 집정관과 마찬가지로 입법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원로원과 정면으로 맞서는 게 가능했다.
결국 원로원은 그라쿠스 형제를 막기 위해 원로원 최종 권고라는 비상식적인 수단을 동원했다.
원로원 최종 권고가 발동되면 공화정 수호라는 명목하에 로마 시민의 모든 권리가 정지된다.
신체불가침권을 보장받는 호민관조차 예외가 아니었다.
원로원은 이 최종 권고를 발동해 그라쿠스 형제와 그의 지지자들을 재판도 없이 즉결처분했다.
하지만 원로원 최종 권고는 로마법 어디에도 명시되지 않은 초법적인 권한이었다.
법에 정통하고 분별 있는 의원들은 이 권한이 사용되지 않기를 내심 바라고 있었다.
애초에 원로의 대표 격인 집정관을 상대로 최종 권고를 발동한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법에 능통한 의원의 대표 격인 키케로가 염려스러운 표정으로 카토의 말을 받았다.
"그라쿠스 형제 때보다 더 심각한 건 말도 안 되는 법안을 발의할 자가 원로원의 집정관이기 때문입니다. 로마 최고 관직인 집정관의 이름으로 이런 법안이 발의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풀케르도 대강 납득은 했지만, 그래도 마지막으로 한 가지 반론을 던졌다.
"하지만 그라쿠스 형제 때와는 경우가 다른 것도 사실입니다. 농지법은 평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지만, 부채 탕감은 빚을 진 자들이나 환영하지 않겠습니까."
"그 빚을 진 자들의 호응이 얼마나 거셀지 상상해보십시오. 로마에 빚으로 허덕이는 자들은 못해도 천 단위를 넘습니다. 거기에 소문이 퍼지면 이탈리아반도 전역에서 채무자들이 몰려오겠지요."
사태를 파악한 원로원 의원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듣고 보니 꽤 큰 사회문제로 번질 수도 있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분개한 카토가 이제야 사안의 심각성을 이해한 의원들을 한심하다는 듯 둘러보았다.
"이제야 아셨습니까? 지금까지 거액의 빚을 진 자들은 그냥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을 겁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카틸리나라는 구명줄이 내려온 겁니다. 그게 썩은 줄이든 아니든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조금이라도 살아날 가능성이 생긴 자들은 눈이 뒤집혀서 달려들 겁니다. 당장 여기 원로원에도 다른 사람의 돈으로 사치를 누리는 분별없는 자들이 있지 않습니까."
카토는 잠시 말을 멈추고 카이사르 쪽을 바라보았다.
다른 의원들의 시선도 자연히 카이사르에게 집중되었다.
묘한 분위기가 회의장을 잠식했다.
생각해보니 꼭 평민들만 카틸리나에게 동조하란 법은 없었다.
빚에 허덕이는 귀족들도 내심 카틸리나를 지지하고 있을 가능성이 컸고 카이사르가 얼마나 큰 채무를 지고 있는지 모르는 의원들은 없었다.
그들은 '너도 카틸리나와 한패가 아니냐.' 라는 시선으로 카이사르를 흘겨보았다.
그런 불편한 분위기 속에서도 카이사르는 태연하게 손가락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이 모습이 더욱 마음에 들지 않았던 카토가 이죽거렸다.
"정곡을 찔리니 할 말이 없습니까?"
카토가 카이사르를 싫어하는 이유는 단지 그가 공화정에 위협이 될 거라는 생각에서가 아니었다.
공적인 이유만이 아니라 사적인 이유도 있었다.
검소하게 살아가는 걸 미덕으로 삼는 스토아 학파인 카토가 보기에 카이사르는 방종 그 자체였다.
크라수스처럼 원래부터 돈이 많은 사람이라면 그나마 봐줄 만했다.
거기에 크라수스는 최근 여러 가지 자선사업도 많이 하면서 사람들의 인심을 얻고 있었다.
물론 카이사르도 안찰관 시절 화려한 검투사 시합을 개최하고, 시민들에게 밀을 뿌리기는 했다.
그러나 그건 모두 남의 돈으로 한 일이지 카이사르 자신이 번 돈으로 한 일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카토는 자신의 이부남매인 세르빌리아가 카이사르와 연인관계라는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브루투스의 어머니인 세르빌리아는 남편이 있는 몸임에도 카이사르를 열렬히 사모하고 있었다.
카이사르 역시 부인이 있는데도 그녀와 공공연하게 밀회 아닌 밀회를 즐겼다.
카토는 이 파렴치한 행위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저런 자가 최고제사장에 이어 법무관에까지 당선됐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았다.
"카이사르, 당신은 카틸리나 못지않게 엄청난 빚을 지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카틸리나가 부채 탕감 법안을 내면 그 누구보다 열렬히 지지할 것으로 생각되는데 내 말이 틀렸습니까?"
카이사르는 아주 살짝 미간을 좁혔지만 그게 전부였다.
그는 자신을 향한 의원들의 미심쩍은 시선을 느긋하게 받아넘기며 입을 열었다.
"현명한 동지 포르키우스 카토께서 너무 흥분하셨는지 중요한 점을 놓치신 것 같군요. 빚이 너무 많으니 부채 탕감을 환영할 거라는 건 너무 단순한 논리입니다.
오히려 저같이 빚이 많은 사람들은 저런 과격한 법안을 반길 수가 없습니다. 법안이 통과되었다는 가정을 해보죠. 적게는 수십만에서 많게는 수백만 세스테르티우스를 빌려준 채권자들이 법이 바뀌었으니 깔끔하게 받아야 할 돈을 포기할까요?
"
카이사르는 지금까지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있던 크라수스를 바라보며 물었다.
"크라수스 님은 저 법안이 통과된다면 저에게 빌려준 돈을 없었던 걸로 하실 수 있겠습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지. 내가 빌려준 돈이 얼마인데 그걸 그대로 꿀꺽하겠다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회수할 걸세."
카이사르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다시 카토에게 고개를 돌렸다.
"보십시오. 법이 통과된다고 전부가 아닙니다. 저런 말도 안 되는 법이 통과되면 로마의 경제는 그 즉시 붕괴합니다. 눈 뜨고 돈을 떼어먹히게 된 채권자들은 무장병력을 동원해 강제 추심에 들어가겠죠. 채무자들도 저항할 겁니다. 저같이 거액의 빚을 진 사람들은 목숨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될 게 분명한데 제가 카틸리나의 행동에 지지를 보내겠습니까?"
"······."
카토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을 뿐 한 마디 반박도 하지 못했다.
다른 의원들도 의심의 시선을 거두고 카틸리나를 어떻게 막을지 의논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동방에서 귀환한 뒤 의욕적으로 활동을 재개한 루쿨루스가 한 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카틸리나의 당선 자체를 무효로 만드는 게 지금은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오. 그자도 이번에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선거에 임했을 테니 무리한 활동을 했을지도 모르오. 파다 보면 선거법 위반 사유가 몇 개 나오지 않겠소?"
합리적인 의견으로 보였으나 키케로가 고개를 저으며 긴 탄식을 토해냈다.
"안 그래도 카틸리나가 당선되자마자 선거법 위반을 철저히 조사해보았습니다. 그자는 허무맹랑한 공약과는 다르게 기본 바탕은 고지식한 성격입니다. 선거도 아주 고지식하게 정석적으로 치렀더군요."
"끄응···그럼 이대로 눈 뜨고 그자가 집정관에 오르는 걸 지켜봐야만 하는 것이오?"
"안타깝지만 일단은···지켜봐야겠지요. 그래도 그자의 당선을 무효로 할 수 있는 거리가 있는지 계속 조사해봐야겠습니다. 감찰관들도 총동원하도록 하죠."
아무리 머리를 맞대고 토론해본들 현재로서는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어떻게든 카틸리나의 임기가 시작되는 내년 전까지 돌파구가 나오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엄숙한 원로원 회의실이 머리를 싸맨 의원들의 무거운 한숨으로 가득 찼다.
※※※※
원로원에서 회의가 한창일 무렵, 마르쿠스 역시 자신의 집무실에서 골머리가 썩고 있었다.
율리아와 다나에, 셉티무스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그의 주변을 지키고 있었다.
세 사람의 얼굴에는 모두 '이럴 줄은 몰랐다'는 심정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마르쿠스는 당황한 심경을 드러내지 않도록 표정관리를 하며 현 상황을 돌이켜보았다.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지?'
처음부터 모든 상황이 역사대로 흘러가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다양한 변수가 나올 가능성은 언제나 염두에 두고 있었고, 대응책도 생각을 해두었다.
그러나 지금 같은 커다란 변화가 전혀 예상치 못한 이유로 발생하는 건 상정 외였다.
마르쿠스가 예측했던 변수는 기껏해야 무레나가 선거법 위반으로 유죄가 나오는 것 정도였다.
그때를 대비해 증인들을 매수하는 방식으로 무죄를 끌어낼 준비까지 해놓은 상태였다.
그런데 승부 조작에 연루되어 선거에서 낙선해 버릴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무레나 그 인간은 가만히만 있었어도 알아서 집정관이 됐을 텐데.'
과한 욕심이 신세를 망친다는 건 동서고금을 통틀어 변하지 않는 진리다.
문제는 무레나가 본인 신세만을 망친 게 아니라 로마 정계를 대혼란에 빠트리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이걸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현재로서는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이런 마르쿠스의 마음과는 반대로 주변의 반응은 그저 여유롭기만 했다.
셉티무스는 다소 놀라기는 했어도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카틸리나 님이 집정관에 당선되어 바깥은 상당히 혼란스러운 모양이더군요.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을 테니 당연한 일이긴 합니다."
다나에가 이어서 말했다.
"도련님은 일이 이렇게 흘러가실 줄 알고 카틸리나 님에게 선거비를 빌려주신 거겠죠?
마르쿠스가 두 사람의 눈치를 살피니 정말로 그렇게 믿는 듯 보였다.
율리아만이 놀라움과 의문이 반반 섞인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마르쿠스 님은 정말로 이런 사태가 일어날 거라고 내다보고 계셨던 건가요? 그래서 선거가 끝나면 로마 정국이 혼란스러워질 거라고······."
마르쿠스는 내심 모든 걸 털어놓지 않았던 과거의 자신을 전력으로 칭찬하고 싶었다.
그냥 선거 결과로 큰 파문을 일으킬 테니 안전에 신경을 쓰라는 정도로만 말한 것은 최고의 선택이었다.
마르쿠스는 심혈을 기울여 연습했던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전부 예측하고 있었고말고. 그러니까 카틸리나에게 돈을 빌려준 거지."
"세상에······."
율리아의 입에서 존경과 감탄이 어린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다나에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루쿨루스 님이 동방에서 연전연승할 때조차 몇 년 뒤에 밀값이 폭등할 거로 예측하신 분이 도련님이십니다. 당연히 이런 일쯤이야 손쉽게 알 수 있으셨겠죠."
"···뭐, 그렇지."
마르쿠스는 표정의 미동조차 보이지 않는 자신이 대견스러웠다.
이게 다 평소에 했던 피나는 훈련 덕분이었다.
"그렇다면 이후의 전개도 도련님의 손바닥 위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 봐야겠군요. 과연 이번에는 얼마나 원대한 구상을 그리셨을지······."
경의로 넘쳐흐르는 셉티무스의 말에 마르쿠스는 위장이 시큰거리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이제 와서 사실은 전혀 몰랐다고 실토할 수는 없었다.
마르쿠스는 모든 상황을 완벽히 제어하는 초인으로 부하들에게 인식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줄곧 그렇게 행동해 온 이상 여기에서 틈을 보일 수는 없었다.
그런 그의 마음을 알 리가 없는 다나에가 곤란하기 짝이 없는 질문을 던져왔다.
"그러면 저희는 이제 어떻게 움직이는 게 좋을까요? 앞으로 흘러갈 상황을 알아야 도련님께 도움이 되는 쪽으로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아서요."
"흠···그래? 그래도 일단 너희들의 생각을 한번 들어보고 싶구나. 앞으로 로마 정계는 어떻게 흘러갈 거라고 보느냐."
"글쎄요. 많은 사람들이 카틸리나 님이 부채를 탕감한다는 법안을 발의할 거라고 하시던데 저는 개인적으로 의문이에요. 그래 봐야 당연히 다른 집정관이나 호민관이 거부권을 행사할 거잖아요. 가능성 없는 법을 계속해서 밀어붙이느니 그냥 깔끔하게 포기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아니, 그건 아닐 거야."
다나에의 추론을 율리아가 즉각 기각했다.
의문 섞인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다나에에게 율리아가 이유를 들려주었다.
"카틸리나 님을 떠받치고 있는 지지 세력의 대다수는 거액의 빚을 지고 있는 채무자들이야. 그들의 지지로 집정관에 오른 이상 카틸리나 님은 자신의 지지자들을 버릴 수 없어. 만약 당선되었다고 모른 척 해버리면 악에 받친 지지자들에게 암살당할 걱정부터 해야 할걸?"
"아, 그렇군요. 카틸리나 님의 지지자들은 특히나 강성일 텐데 그런 사람들의 뜻을 받아줘야 하니······."
"자신의 지지층을 버리면 정치가로서 생명은 그걸로 끝이야. 그분에게 남은 길은 원로원과 대립하느냐, 아니면 자신의 정치생명을 끝장내면서 지지자들을 배신하느냐. 이 두 가지 외에는 없어. 그리고 아마 높은 확률로 원로원과 대립하는 길을 고르겠지."
마르쿠스의 생각도 율리아와 같았다.
카틸리나는 이미 호랑이 등에 탄 형국이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그냥 앞으로 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율리아의 말 그대로다. 카틸리나는 부채 탕감 법안을 줄기차게 발의할 수밖에 없어. 이것만은 예정된 미래라고 봐야 할 거야."
"그러면 자연히 커다란 사회 혼란이 일어날 텐데···마르쿠스 님은 여기에서 어떤 노림수를 취하시려는 거죠?"
이번에는 율리아가 대답을 들려줄 수 없는 질문을 던졌다.
반짝이는 그녀의 눈동자에서 가르침을 얻고 싶어 하는 열망이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마르쿠스가 이번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취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였다.
아직 이 세 가지 방안 중 어느 쪽으로 움직여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은 상태였다.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한 마르쿠스가 선택의 기로에 놓인 찰나, 예상치 못한 구원의 손길이 찾아왔다.
조심스럽게 집무실로 들어온 노예 한 명이 손님이 왔다는 소식을 알린 것이다.
"도련님, 이번에 집정관으로 당선되신 카틸리나 님이 급히 도련님과 상의할 게 있다고 하십니다."
"그래? 당장 응접실로 안내해 드려라."
내심 쾌재를 부른 마르쿠스가 자리에서 일어나 율리아에게 양해를 구했다.
"이야기는 손님을 돌려보낸 뒤에 마저 하지."
"예. 저도 나름대로 마르쿠스 님의 의도를 생각해보고 있겠습니다."
집무실에서 나온 마르쿠스는 곧바로 응접실로 향했다.
미리 도착해 있던 카틸리나는 어쩐지 굉장히 안절부절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마르쿠스의 얼굴을 확인한 그가 반색하며 다가오더니 다짜고짜 두 손을 덥석 잡아 왔다.
"시간을 내줘서 정말 고맙네."
"고맙긴요. 집정관에 당선되신 분인데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만사 제쳐두고 모셔야죠. 참, 당선 축하드립니다."
"아아···그래, 정말 고맙네. 자네가 아니었으면 난 이 자리에 있지 못했을 걸세. 자네에게 빌린 돈은 내 반드시 갚겠네."
"하하, 확실하게 갚기만 하신다면 여유롭게 상환하셔도 됩니다. 그나저나 급히 상의하고 싶으시다는 건 어떤 내용인가요?"
카틸리나가 어떤 문제로 골치가 아플지는 대강 예상을 하고 있었다.
율리아의 추론대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니 답답한 심경일 것이다.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던 카틸리나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더니, 자신의 절박한 심경을 그대로 토로했다.
"부탁이네, 제발 나 좀 도와주게."
< 57. 이변의 여파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