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 44. 공화정을 위하여 ──────────────── 키케로의 저택은 크라수스의 저택과 같은 팔라티노 언덕에 위치해 있었다.
물론 처음부터 여기에서 살았던 것은 아니다.
지방에서 상경한 그는 처음에는 가문에서 얻어준 수부라의 집에서 생활했다.
그래도 로마 최고의 변호사라는 명성을 얻은 그가 언제까지나 수부라에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베레스 재판이 있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염원하던 팔라티노 언덕에 주택을 마련했다.
거액의 빚을 지긴 했으나 마르쿠스가 무이자로 대출을 해준 덕분에 부담은 없었다.
"허허, 그래도 아예 무이자로 해줄 것까지는 없었는데······."
"저희 사이에 이 정도는 해드려야죠. 부담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 호의에 또 한 번 감동한 키케로는 틈이 날 때마다 마르쿠스의 칭찬을 하고 다녔다.
팔라티노 언덕에 저택을 마련한 덕분인지 키케로의 집은 연일 엄청난 인파로 북적였다.
상담을 원하는 클리엔테스, 키케로를 존경하는 젊은 지식인들,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찾아온 의뢰인들까지.
키케로는 자신을 찾아온 모두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언제나 활짝 열려있던 저택의 대문이 오늘만큼은 외부인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키케로가 주최한 젊은 지식인들의 모임이 개최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참가자들의 면면은 화려했다.
대부분이 로마에서 이름만 대면 알법한 고위귀족들의 자제였다.
키케로와 비슷한 또래의 원로원 의원들도 여럿 모습이 보였다.
공사가 다망한 그들도 키케로의 초대를 받자마자 기꺼이 응했다.
그 정도로 현재 로마에서 키케로의 명성은 대단했다.
젊은 청년들은 드넓은 저택에 여기저기 흩어져 대화를 나누고 식사를 즐겼다.
그중에서도 키케로가 특별히 눈여겨보고 있는 유망한 이들은 안채에서 따로 만찬을 가졌다.
마르쿠스도 당연히 키케로와 식사를 함께 했다.
음식은 모두 신선하고 질이 좋았지만, 키케로의 명성만큼 화려하지는 않았다.
이건 키케로가 인색하거나 안목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모임에 참석한 귀족들의 성향을 고려해 의도적으로 화려한 음식을 제외했기 때문이다.
그 노림수는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현재 이 공간에 있는 젊은이들은 상당수가 스토아 학파의 신봉자였다.
이건 우연이 아니었다.
공화주의에 심취한 젊은 귀족들 중에는 스토아 학파에 빠진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다.
스토아 철학을 따르는 이들은 상당수가 쾌락주의를 혐오하며 절제되고 검소한 삶을 추구했다.
키케로의 경우 스토아 학파는 아니었지만, 그에 영향을 받은 신 아카데미아 학파에 가까웠다.
그래서인지 그는 스토아 학파의 철학자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물론 평민 출신인 그는 뿌리부터 명문 귀족인 이들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같은 원로원 의원이라고 해도 그들은 평민 출신 의원을 대등한 상대라고 인정하지 않았다.
키케로는 내심 속이 뒤틀렸으나 표면적으로는 계속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 노력해 왔다.
그런 수고가 없었다면 이런 자리를 주최할 수 있을 정도의 영향력을 가지지 못했으리라.
키케로가 마르쿠스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는 데는 이러한 이유도 있었다.
정치적 기반이 빈약한 평민 출신에게는 든든한 후원자가 있어야 한다.
마르쿠스는 키케로에게 있어서는 이상적인 동업자였다.
'인성도 확실하고, 공화주의에 심취해 있으니 사상적으로 충돌할 일도 없지.'
키케로는 마르쿠스의 사상적 후견인을 자처하며 그를 여러 귀족들에게 소개시켜 주었다.
마르쿠스도 아직 자기 또래의 젊은 귀족들과는 교류가 얕았기에 키케로의 장단에 맞춰주었다.
"자네들도 크라수스가의 장남에 관한 소문은 많이 들어보았겠지? 이 사람이 워낙 바빠서 이런 모임에는 잘 나오지 못했지만, 드디어 이렇게 참석하게 됐네."
"키케로 님이 직접 초대를 하셨는데 당연히 만사 제쳐두고 달려와야죠."
"하하하, 그렇게 말해주니 어깨가 으쓱해지는군. 자, 내가 다른 이들을 소개해주겠네. 이쪽은 데키무스 브루투스일세. 이지적이면서도 결단력이 있는 청년이지."
마르쿠스보다 한두 살 어려 보이는 청년이 정중하게 팔을 내밀었다.
"데키무스 브루투스입니다.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만나니 반갑군요."
마르쿠스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데키무스의 팔을 맞잡았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마르쿠스의 머릿속에 데키무스 부르투스에 관한 정보가 쭉 나열됐다.
데키무스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의 휘하에서 갈리아 전쟁을 치른 유능한 군단장으로 알려져 있다.
같은 브루투스지만 카이사르의 암살을 주도한 브루투스와는 다른 인물이다.
물론 주도만 하지 않았을 뿐이지, 그 역시 카이사르의 암살에 참가는 했다.
그는 카이사르의 먼 친척이며 카이사르의 후광으로 출세 가도를 달렸다. 그런데도 카이사르의 암살에 가담해 배은망덕의 상징이라 비난받으며 결국 비참하게 몰락했다.
어쨌거나 카이사르의 암살에 참가한 이니 기본적으로 공화정 체제를 추구하는 이였을 것이다.
이 모임에 참석해 있는 게 이상하진 않았다.
키케로가 다음으로 데려온 사람은 마르쿠스도 익히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그는 소개를 기다리지도 않고 반갑게 웃으며 다가와 마르쿠스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오랜만이로군. 그동안 잘 지냈나?"
"카시우스, 이게 몇 년 만이지? 그리스로 유학 갔다고 들었는데 이제 돌아온 건가?"
"로도스에서 쭉 공부를 하다가 일 년 전에 막 돌아왔네. 로마로 돌아오니 자네 소문이 제법 들리더군."
카시우스 롱기누스는 어린 시절 자주 어울려 다녔던 친구 중 한 명이었다.
스파르타쿠스를 포섭하기 위해 카푸아로 내려갔을 때도 동행했었다.
어린 시절에는 방탕하고 퇴폐적인 삶을 즐겼었는데 오랜만에 재회하니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그리스 철학에 완전히 심취한 그는 열정적인 공화주의자가 되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도 카이사르의 암살 주모자 중 한 명이었지?'
카시우스는 그리 대단한 집안 출신은 아니지만 능력 하나만큼은 출중한 사람이었다.
키케로가 이런 자리에 초대한 사실만 보아도 주변의 평판 역시 꽤 괜찮을 거라는 추측이 가능했다.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따로 조용한 곳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카시우스가 마르쿠스의 잔에 직접 희석한 포도주를 따라주었다.
"다시 만나서 정말 반갑네. 그리고 무엇보다 자네도 나도 이전의 철없던 모습이 아니라는 게 가장 기쁘군."
"그때는 어렸으니까."
"생각해 보면 한심한 나날이었지. 그래도 난 뒤늦게 눈이 뜨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네. 앞으로는 공화정의 가치를 지켜가는 데 내 모든 능력을 다 사용해볼 생각일세. 자네는 어떤가? 이 자리에 있다는 건 우리와 같은 생각이라는 거겠지?"
마르쿠스의 입가에 속내를 짐작하기 힘든 미소가 걸렸다.
그는 손에 든 잔을 입가로 가져가 쭉 들이키더니 호기롭게 술잔을 내려놓았다.
"멋없게 말로 이러쿵저러쿵할 생각은 없네. 행동으로 보여주면 그만 아니겠나."
"역시 자네는 이전부터 호탕한 면이 있다니까. 사실 키케로 님과 친밀한 사이라는 것부터 이미 말이 필요 없다고 할 수 있겠지. 내 생각이 짧았네."
"그런데 자네는 키케로 님과는 어떤 사이인가?"
"존경하는 분일세. 솔직히 말하면 나는 별로 대단한 가문이 아니라는 사실에 약간의 열등감이 있었다네. 하지만 그분은 귀족도 아닌데 당당히 자신의 능력만으로 이런 자리에까지 올라왔지 않은가."
키케로의 이야기를 하는 카시우스의 눈은 선망과 동경으로 가득했다.
그는 주먹까지 불끈 쥐어 보이며 확신에 가득 찬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키케로 님 같은 성공사례가 나오는 것만으로도 이 공화정 체제의 위대함이 설명되는 게 아니겠는가. 로마가 아직도 왕정이었다면 키케로 님 같은 평민이나 나 같은 그저 그런 귀족은 출세할 꿈도 꾸지 못했을 걸세."
"뭐···그건 그렇지."
마르쿠스도 공화정의 장점을 부정할 마음은 없었다.
실제로 로마의 극단적인 공화주의자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었다.
첫 번째는 태어났을 때부터 최상류계층이었던 명문 귀족들.
흔히 옵티마테스라 불리는 파벌 가운데서도 중진으로 통하는 이들이다.
그리고 두 번째가 키케로처럼 조상 중 고위공직자를 거친 이가 없는 신참자들. 흔히 노부스 호모라고 불리는 자들이었다. 평민 출신이 절대다수인 이 계층에서는 의외로 골수 공화주의자들이 많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자기 능력으로 사회의 상류층까지 당도한 이들은 자신에게 기회를 준 체제에 애정을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대에서도 자수성가한 부자들이 보수적인 성향을 띄게 되는 건 드문 일이 아니었다.
이런 공화주의자들에게 독재자들은 자신들의 소중한 터전을 부수려는 악마로 보일 것이다.
카시우스가 마르쿠스의 빈 잔을 채워주며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건 그렇고 자네는 결혼 생각은 없나? 보통 지금쯤이면 다들 소식이 들려오는데 유독 자네만 그런 소문이 없어서 말이야."
"하긴 해야지. 지금 신중하게 고민 중이네."
"자네라면 어마어마한 가문에서 줄지어 혼담이 오고 있을 테니 고르는 것만으로도 고역이긴 하겠군. 아, 그런데 설마 이전에 보았던 트라키아 여자아이도 후보인가? 지금쯤이면 대단한 미녀가 되었을 것 같긴 한데."
"글쎄······."
아무리 해방 노예가 자유민이라고 해도 명문 귀족과 혼인하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그런 경우가 간혹 나오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극히 예외의 경우였다.
"다른 귀족들은 흉을 보겠지만 나는 그런 게 지탄받을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네. 사실 내가 존경하는 분도 증조할머님이 해방 노예 출신이시거든."
"어차피 그 아이는 나와 결혼할 마음은 없어. 정확히 말하면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
"하긴···자네 정도의 위치라면 더욱 신중하게 신부를 골라야 할 테니까. 똑똑한 아이라면 자네의 사정을 다 고려하겠군."
마르쿠스는 살짝 난감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 역시 슬슬 진지하게 혼처를 정해야겠다고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이 문제에 관해서 다나에와 이미 이야기를 나눈 바 있었다.
안 그래도 최근 그녀는 소녀의 티를 벗고 완연한 여인의 매력을 갖추기 시작했다.
기사 계급 중에는 그녀와 혼인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도 꽤 있었다.
동생인 푸블리우스도 다나에를 한 번 건드리려고 한 적이 있었을 정도다.
마르쿠스 역시 목욕 시중을 받을 때 난감한 기분을 느꼈던 게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면 마음이 동하긴 했다. 그것도 꽤 많이.
거기에 동생의 일까지 더해지니 소유욕이 한층 더 강하게 끓어올랐다.
목욕 시중을 들던 중 마르쿠스와 시선이 마주친 다나에는 그의 마음을 짐작했다.
총명한 그녀는 처음부터 마르쿠스를 독점하는 걸 바라지 않았다. 애초에 그게 불가능하다는 걸 잘 알았던 것이다.
푸블리우스와의 일로 위기감을 느꼈던 그녀는 솔직한 심정을 토로했다.
"도련님의 아내가 될 수 없다는 건 잘 알아요. 하지만 제 첫 번째는 도련님이 되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안 될···까요?"
그런 말을 듣고 안 된다고 할 수 있는 남자가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마르쿠스는 다나에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그다음 일은 너무 강렬했던지라 카시우스의 앞에서 떠올리기 조금 곤란했다.
상념에서 빠져나온 마르쿠스가 의도적으로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자네의 부인은 꽤 명망 있는 가문 출신 아니었나?"
"유니아 말인가? 그렇지. 그녀 덕분에 내 삶이 바뀌었으니까. 아, 안 그래도 자네에게 소개해주려고 한 사람이 있었는데 마침 저기 오는군."
카시우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근처를 지나가고 있는 젊은 청년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처남, 이쪽일세!"
카시우스에게 처남이라고 불린 청년은 귀티가 흐르게 생긴 미남이었다.
입고 있는 옷은 그리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옷감의 질 자체는 굉장히 좋았다.
누가 봐도 명문 귀족가의 도련님이라는 느낌이 물씬 풍겼다.
"매제, 여기 있었군."
청년이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기품 있는 어조에 얼굴도 선한 인상이라 절로 호감이 가는 사내였다.
카시우스가 잔을 하나 더 가지고 와 청년에게 넘겨주었다.
"내가 예전에 말한 적 있었지? 이 친구가 크라수스가의 장남일세. 그러고 보니 이름도 자네와 똑같이 마르쿠스로군."
"알고 있네. 나는 베레스 재판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거든."
청년은 마르쿠스에게 시선을 돌리고 팔을 내밀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마르쿠스 유니우스 브루투스라고 합니다. 베레스 재판에서 증언하신 모습은 아주 감명 깊게 보았습니다.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정중하면서도 예의 있는 인사였다. 말하는 태도에서부터 높은 품격이 절로 드러났다.
하지만 마르쿠스는 그런 것보다는 청년의 이름에 관심이 쏠렸다.
마르쿠스 유니우스 브루투스.
셉티무스에게 초대장을 받았을 때 한눈에 들어왔던 이름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훗날 카이사르의 암살을 주동하게 되는 핵심 인사 중 한 명.
카시우스와 함께 모의를 했다고는 하지만, 후대에 전해지는 이름은 브루투스 쪽이 압도적으로 유명했다.
카이사르가 남긴 '브루투스, 너마저.'라는 유연은 현대에서조차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실제로 카이사르는 저런 말을 하지 않았다는 설이 유력하나 카이사르가 브루투스를 아꼈다는 것만큼은 진짜였다.
그는 카이사르의 연인 중에서도 가장 큰 애정을 받은 세르빌리아의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브루투스는 그런 카이사르의 호의를 마냥 좋게 생각하지는 못했다.
평생토록 카이사르의 사생아가 아니냐는 소문에 시달려야 했던 까닭이다.
브루투스의 가문은 공화정 말기에도 최고의 명문이라 칭송받는 유니우스 가문이었다.
과거 로마의 왕정을 무너뜨리고 공화정을 건국한 루키우스 유니우스 브루투스의 피가 그의 몸속에 흐르고 있었다.
브루투스는 자신의 핏줄에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고, 이것이 그를 열정적인 공화주의자의 길로 이끌었다고 전해진다.
마르쿠스는 브루투스와 카시우스를 번갈아 바라보며 내심 헛웃음을 흘렸다.
'데키무스에 카시우스에 브루투스까지. 이거야 원 암살자 총출동이구만.'
과연 젊은 공화주의자들의 모임은 떡잎부터 남다르다고 봐야 할까.
이렇게 모아놓으니 살짝 오싹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속내야 어쨌든 앞으로의 일을 고려하면 이들과 최대한 좋은 관계를 맺어둬야 한다.
마르쿠스는 브루투스의 팔을 잡으며 마주 미소를 지었다.
"저야말로 공화정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유니우스 가문의 후계자를 만나 영광입니다."
"영광이라니요. 크라수스 님과 달리 아직 이룬 게 없는 몸입니다. 위대한 선조에 부끄럽지 않게 앞으로 더 노력하라는 질책을 들어야 마땅하죠."
브루투스는 마르쿠스를 크라수스라고 칭했다. 아마도 그의 이름 역시 마르쿠스이기 때문일 것이다.
"겸손이 과하십니다. 가문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능력을 지니셨으니 키케로 님이 초대를 하셨겠지요."
"좋게 봐주신 키케로 님에게는 감사할 따름입니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정진할 생각입니다."
"키케로 님과는 예전부터 알던 사이신가요?"
"예. 개인적으로도 친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제 외삼촌과는 조금 서먹한 사이시라···제가 중간에서 중재 역할을 할 수 없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브루투스의 외삼촌이라면 마르쿠스도 익히 아는 사람이었다.
바로 마르쿠스 포르키우스 카토, 달리 소(小)카토라고 불리는 인물이다.
소 카토 역시 마르쿠스가 요주의 인물로 주시하고 있는 자들 중 한명이었다.
그가 소 카토로 불리는 이유는 그의 선조인 마르쿠스 포르키우스 카토와 완전히 이름이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조는 대(大)카토, 후손은 소 카토로 구분했다.
대 카토는 그 유명한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를 견제한 걸로 유명한 논객이다.
그는 나이 80까지 장수했는데 나중에는 자신의 노예인 살로니아를 해방시킨 뒤 그녀와 재혼하는 기행을 저질렀다.
이 살로니아에서 이어진 가계가 바로 소 카토로 흐른다.
불현 듯 마르쿠스의 머릿속에 방금 전 카시우스가 했던 말이 스쳐 지나갔다.
'카시우스가 말한 존경하는 분이라는 게 카토를 말하는 거였나 보군.'
소 카토도 자신의 선조처럼 공화정을 지켜야 한다는 신념으로 투철한 인물이었다.
어찌나 철저한 공화주의자였는지 공화정을 강화하기 위해 독재를 한 술라에게도 박한 평가를 내렸다.
"카토 님도 키케로 님도 공화정을 위한다는 신념은 같은데 사이가 서먹하신가 보군요. 애석한 일입니다."
"예. 아무래도 두 분 사이에 미묘한 자존심의 충돌이 있는 것 같습니다."
"흠···그래도 두 분 다 진실로 공화정을 위하는 마음은 같으니 나중엔 의기투합하실 겁니다."
"예. 저도 그러길 바랍니다."
얘기를 하면 할수록 브루투스의 이미지는 마르쿠스가 상상하던 것과는 달랐다.
생각보다 훨씬 더 겸손했고, 인성이 훌륭한 청년이었다.
군공을 중시하는 로마에서 군사적 재능이 일천한 그가 어째서 평가가 높았는지 알 수 있었다.
이런 진솔한 청년이 훗날 현실을 파악하지 못하고 암살이란 최악의 수단을 택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신념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이념의 차이로 한 사람을 죽이는 정도면 인류의 역사에서는 오히려 사소한 분쟁에 꼽힐 것이다.
인류는 지금으로부터 2천 년이 더 지나도 이념의 차이로 인해 전쟁을 일으키고, 수백만이 넘는 사람이 죽는다.
씁쓸하지만 이게 현실이었다.
마르쿠스와 카시우스, 브루투스는 이후에도 오랫동안 여러 가지 화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중에서도 단연코 가장 화제가 된 것은 지금 로마의 골치를 썩이는 해적문제였다.
카시우스가 무겁게 한숨을 내쉬며 한탄했다.
"해적들이 최근에는 아피아 가도까지 출몰했다고 하네. 물론 이놈들은 곧바로 참수 당했다고는 하지만, 해적들이 얼마나 우쭐해 있는지 어렵지 않게 이해가 되더군."
"매제의 말대로일세. 그리고 지금 가장 큰 문제는 이 해적들의 기세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걸세. 난 솔직히 내년에 로마로 들어오는 밀이 충분할지 확신이 들지 않네. 내 주변도 지금 아무리 비싸도 밀을 닥치는 대로 사들이고 있을 정도니."
마르쿠스는 짐짓 모르는 척 포도주를 홀짝였다.
"그래도 다행히 아슬아슬하게 부족하지는 않은 모양이더군요."
"크라수스 님의 말대로 지금은 어떻게든 버티고 있긴 합니다. 하지만 미래를 생각해 보면 불안할 수밖에 없더군요."
현재 로마의 귀족들은 대다수가 브루투스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시중에 아무리 밀이 비싸게 풀려도 귀족들은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주머니를 열었다.
덕분에 타디우스가 조금씩 밀의 공급을 늘려도 가격은 요지부동이었다.
이 추세대로라면 내년이 오기 전에 모든 밀을 판매할 수 있을 지도 몰랐다.
이런 상황을 꿈에도 모르는 카시우스와 브루투스는 작금의 현실이 그저 불안할 뿐이었다.
"이게 다 루쿨루스가 미트리다테스를 끝장내지 못해서 생긴 일일세."
"그렇지. 세상에 그렇게나 전투에서 이겼는데도 부하들이 파업을 했다니. 대체 평소에 인망을 어떻게 쌓았다는 말인가."
"루쿨루스가 미트리다테스를 끝장내 줘야 이 해적들도 잠잠해질 텐데······."
해적들이 미트리다테스의 지원을 받는다는 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미트리다테스를 토벌하고 해적들의 돈줄을 끊는다면 분명 지금보다는 상황이 나아질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원인을 뿌리 뽑지 않으면 완전한 해결책은 될 수 없다.
마르쿠스는 바로 그 점을 지적했다.
"카시우스, 미트리다테스가 죽어도 이미 해적들이 마련한 배와 항해사들이 사라지지는 않네. 그러니까 미트리다테스보다는 해적들을 먼저 쓸어버리는 게 정답일 걸세."
"하지만 지금 해적들은 지중해 전역에 전진기지를 갖추고 있네. 사방팔방에서 날뛰는 저들을 대체 어떻게 소탕할 수 있겠나."
"글쎄···구체적인 수단이야 나는 모르지. 하지만 그 수단을 구상할 수 있는 사람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지 않나."
카시우스의 눈썹이 꿈틀 치켜 올라갔다.
"설마······?"
"그래. 어쩔 수 없지만 로마는 또다시 한 사람의 영웅에게 기댈 수밖에 없을 걸세. 폼페이우스 마그누스라는 대 전략가에게."
브루투스와 카시우스의 표정이 참담함으로 물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한 마디의 반박도 할 수 없었다.
한 사람의 독주를 막으려 해도 현실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시대의 바람이 또다시 폼페이우스를 향해 불어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