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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결정적인 증거 (39/326)

  # 39 38. 결정적인 증거 ──────────────── 마르쿠스는 시라쿠사와 메사나를 돌아다니며 디온의 명단에 적힌 사람들을 모조리 섭외했다.

  총독 루키우스는 그들이 메사나를 떠난 뒤에야 키케로가 증거를 수집해 돌아갔다는 사실을 알았다.

  의뢰인들의 대표인 히케타스가 증인들을 불러 모은다는 소식을 듣고 그쪽에 온 신경이 쏠렸기 때문이다.

  키케로가 릴리바이움으로 향하고 있다는 보고를 들은 루키우스는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그는 수도에 있는 퀸투스나 호르텐시우스와 달리 베레스가 저지른 횡령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호르텐시우스는 베레스가 다른 총독들처럼 단순 뇌물만 수취했다고 알고 변호를 준비 중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만약 호르텐시우스가 베레스의 비리를 전부 알았다면 변호를 맡았을 리가 없는 까닭이다.

  퀸투스는 베레스가 엄청난 횡령을 했다는 사실까지는 알고 있었으나, 그조차 전부를 알지는 못했다.

  반면 루키우스는 베레스의 불법행위를 덮어줘야 하는 입장이라 그가 저지른 일을 전부 알고 있었다.

  솔직히 아무리 매형이라고 해도 이런 사람을 감싸줘야 하나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미 베레스가 횡령한 돈의 일부를 메텔루스 가문이 받았으니 따지고 보면 그들은 공범이었다.

  베레스가 패소하면 루키우스도 증거은닉죄로 기소를 당할지도 모르는 상황인 것이다.

  "제길···진짜로 실행해야 하나?"

  키케로가 어느 정도나 증거를 모았는지 알 수가 없는 상황이라 초조함이 한층 더 심해졌다.

  "예상대로 곧장 릴리바이움으로 갔다면 이런저런 이유를 핑계로 잡아둘 수 있었을 텐데···교활하게 잔머리만 잘 굴려서는."

  루키우스는 신경질적으로 탁자를 두드리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키케로가 지금 릴리바이움으로 향하고는 있다지만 언제 경로를 틀어버릴지 알 수 없다.

  뭔가 일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는 것 같은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증거를 전부 폐기하라는 명령은 내렸지만, 그게 확실히 지켜진다는 보장도 없었다.

  키케로가 계속 이렇게 시칠리아를 활개 치고 다니면 어딘가에서 꼬리가 밟힐 지도 모른다.

  루키우스는 베레스가 제안한 최종수단을 진지하게 검토 중이었다.

  어차피 일이 잘못 돼도 책임은 베레스가 지는 것이지 자신은 몰랐다고 하면 그만이다.

  마음을 굳힌 루키우스는 은밀하게 심복을 불러 명령을 하달했다.

  "가서 그들에게 전해라. 전 총독에게 받은 의뢰를 그대로 수행하라고. 하지만 절대 죽여서는 안 된다. 크게 다치게 해서도 안 돼. 상대는 원로원 의원이라는 점을 결코 잊지 말라고 강조해야 한다."

  "예. 정중히 모시라고 두 번 세 번 일러두겠습니다."

  부하가 물러가자 루키우스가 혀를 끌끌 찼다.

  "총독직에서 물러나고도 해적과 끈이 닿아있다니···이번 일이 끝나면 그 인간과는 거리를 좀 둬야겠어."

  루키우스는 질렸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

  마르쿠스와 키케로는 마차를 타고 계속해서 움직였다.

  앞선 도시에서는 좋은 성과를 거두었지만, 끝까지 순탄하리란 보장은 없었다.

  이제 행적이 노출되었다는 가정을 깔고 움직여야 한다는 게 문제였다.

  시칠리아 전역에 감시의 눈초리가 번득이고 있으니 어떤 방해가 들어올지 모른다.

  덜컹거리는 마차 안에서 키케로가 불쑥 입을 열었다.

  "로마에 돌아가면 내가 고안한 새로운 재판 방법을 도입해볼까 하네."

  "재판 방식이 불공정하게 작용할 거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뭐, 비슷하네. 사실 지금의 로마 법정은 지나치게 변호인에게 유리하거든. 우리가 아무리 철저하게 증거를 모아도 그걸 효율적으로 제시할 토대가 갖춰져 있지 않다는 말일세."

  "하지만 재판 방법을 우리에게 유리하게 바꿔 달라고 해봐야 저쪽에서 거절하면 끝 아니겠습니까."

  "아니. 호르텐시우스는 내가 제안하는 방법이 자신에게 불리할 거라 생각하지 않을 거야. 그는 자신의 변론 실력에 절대적인 자신이 있으니까."

  로마 법정의 재판 절차는 현대 못지않게 굉장히 정교했다. 하지만 정교한 만큼 속도가 느리고 복잡하다는 단점도 존재했다.

  재판은 1차 공판과 2차 공판으로 나뉘는데 2차 공판이 끝나는 즉시 배심원들이 평결에 들어간다.

  문제는 2차 공판의 마지막이 변호인단의 최종 연설로 끝난다는 점이었다.

  충분한 토의 시간이 마련되면 모르겠지만, 배심원들에게는 그럴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즉, 배심원들은 변호인단의 미려한 연설이 뇌리에 선명한 상태에서 결정을 내리게 되는 것이다.

  대다수의 변호사들은 이런 이유로 법정이 기소인보다는 변호인에게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물론 키케로는 이 2차 공판에 변화를 주자는 주장을 할 마음은 없었다.

  변호인단이 받아들이지 않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가 노리는 건 2차 공판이 아니라 1차 공판이었다.

  "키케로 님이 본 재판에서 노림수가 확실히 있다면 저는 증거와 증인에만 신경을 쓰면 되겠네요."

  "지금도 충분히 잘해주고 있네. 루키우스가 어떤 수로 우리를 방해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충분히 대처할 수 있겠지."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닙니다. 사람이 초조해지면 어떤 해괴한 짓을 할지 모르니까요. 그렇게까지 바보는 아니겠지만 무력을 사용하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죠."

  "하하, 설마 그 정도로 멍청하려고."

  그러나 말이 씨가 된다고 했던가.

  두 사람의 대화가 채 마무리되지도 않았을 때다.

  마차의 속도가 훅 줄어들더니 마부석에 앉아있는 스파르타쿠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련님. 앞에 길을 가로막은 자들이 있습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으니 주의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마르쿠스와 키케로가 시선을 한 번 교환하고는 거의 동시에 헛웃음을 흘렸다.

  "바보가 맞았네요."

  "믿기지가 않는군. 이 정도로 막나갈 줄이야."

  마차 밖을 슬쩍 내다보니 앞을 가로막고 있는 자들은 거의 스무 명에 달했다.

  마차를 돌려 달아나려고 하면 언제든 쫓아갈 수 있도록 말까지 준비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인원을 많이 준비했네요."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는 한쪽 눈을 안대로 가린 험상궂은 사내였다.

  단단히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었는지 부하들까지 전부 날이 잘든 무기를 지니고 있었다.

  지금 지나가는 길은 인적이 드문 곳이기는 해도 도적이 나온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그런데도 기다렸다는 듯 이렇게 나온 걸 보면 목적은 뻔했다.

  곱게 넘어가긴 틀렸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은은한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마르쿠스가 태연히 마차 밖으로 나와 말을 걸었다.

  "그렇게 길을 막고 있으면 지나갈 수가 없으니 좀 비켜주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뭐야, 상황 파악이 안 되는 건가?"

  안대를 낀 우두머리가 부리부리한 눈을 치뜨며 반문했다.

  스물에 달하는 장한들의 살벌한 시선에도 마르쿠스는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우리를 잡아서 몸값을 타려는 겁니까? 얼마쯤 생각하고 계신지 물어봐도 될까요?"

  "몸값은 됐으니 일단 우리와 함께 가줘야겠다. 나쁘게 대하지는 않을 테니 너무 반항하지는 말고. 몇 달 정도 극진하게 모시다가 풀어줄 테니까."

  "복장을 보아하니 산적은 아니고 해적 같은데···누가 우리를 잡아 오라고 시키기라도 했나 봅니다?"

  "그건 알 거 없다. 그냥 너희들은 얌전히 우리를 따라오기만 하면 되는 거야."

  보통의 해적들이라면 당연히 몸값을 요구하지 몇 달 동안 갇혀 있으라는 말 따위 하지 않는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의심은 거의 확신으로 굳어졌다.

  배를 덮친 게 아니라 어설픈 산적처럼 길을 막고 있는 이유도 짐작이 갔다.

  시칠리아에서 로마로 가는 배를 습격하는 건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

  지중해 남쪽이나 동쪽과 달리 서쪽은 어느 정도 로마의 통제 하에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대한 꼬리를 밟히지 않게 이런 방식을 선택한 것이리라.

  '진짜로 이런 최악의 자충수를 둘 줄이야. 폼페이우스를 그 정도로 의식했던 건가?'

  마르쿠스는 머리를 긁적이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자각은 없을 테지만, 그래도 기회를 한 번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받기로 한 의뢰비에 추가금을 얹어드릴 테니 제 쪽으로 붙으시죠. 어느 쪽으로 봐도 그게 이득일 겁니다."

  "···돈을 더 주겠다고?"

  해적들의 얼굴에 일순간 당혹감이 서렸다.

  그러나 우두머리 해적은 일말의 고민도 하지 않았다. 그가 손을 들어 올리며 동요하는 부하들을 다잡았다.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긴 해도 받아들일 수 없다. 이건 단순한 금전적인 문제가 아니라서 말이지."

  "그렇습니까? 여기 계신 분이 로마의 원로원 의원이라는 걸 알고도 그런 말을 하는 건가요?"

  "그러니까 지금 이렇게 네 말을 들어주고 있는 거다. 그래도 이제 더 잡담을 나눌 시간은 없으니 순순히 따라와라. 그렇지 않으면 다소 거친 방법을 쓸 수밖에 없으니까."

  해적들의 반응만으로도 이미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다 얻었다.

  키케로가 원로원 의원이라는 걸 알고도 납치를 하려고 하고, 추가금을 준다는 제안도 거절한다.

  즉, 해적들의 배후에는 더한 권력을 지닌 자가 있다는 뜻이다.

  애초에 이런 말도 안 되는 짓을 할 사람은 베레스 밖에 없었으니 더 알아볼 것도 없었다.

  마르쿠스 역시 그걸 다 알면서 일부러 시간을 끈 것이다.

  해적들도 평소라면 문답무용으로 습격을 했을 테지만, 절대 큰 상처를 입히지 말라는 명령 때문에 괜히 마르쿠스의 말에 말려들었다.

  그게 그들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나는 분명히 기회를 줬으니 너무 원망하지 말도록."

  갑자기 급변한 마르쿠스의 말투에 우두머리가 위화감을 느낀 찰나, 뒤에서 망을 보던 부하가 허겁지겁 달려왔다.

  "두, 두목님 뒤에서 상당한 수의 마차와 수레가 오고 있습니다."

  "뭐? 이 시간대에는 원래 통행이 드문 곳인데···쯧, 어쩔 수 없지. 목격자가 생기면 로마 시민권자인 경우 같이 잡아가고, 아니면 죽인다. 그리고 저기 원로원 의원과 젊은 놈을 빨리 잡아 와. 마부 놈도 로마 시민이면 죽이지 말고 생포하고."

  "예!"

  두 명의 해적이 무기를 꺼내 들고 키케로와 마르쿠스를 향해 다가왔다.

  그럼에도 마르쿠스는 전혀 위기감을 느끼지 않는 듯했다.

  태평한 표정의 그의 앞에 스파르타쿠스가 당당히 버티고 섰다.

  그가 차분한 목소리로 해적들을 향해 말했다.

  "그 이상 다가오면 목숨을 보장 못 한다."

  "뭐라는 거야, 마부 주제에. 진짜 주인을 위하고 싶으면 반항하지 말고 그냥 순순히 따라오라고."

  해적 한 명이 검을 겨누며 위협적으로 걸음을 옮겼다.

  반면 다른 한 명은 스파르타쿠스의 체격과 분위기를 보고 심상치 않은 느낌을 받았다.

  그가 잠깐 기다리라고 말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이미 스파르타쿠스의 코앞까지 다가간 해적이 경쾌하게 몸을 날렸다.

  상대의 실력을 파악하지 못한 자만이 할 수 있는 어리석은 자살행위다.

  촤악!

  뭔가가 번쩍인다고 느꼈을 뿐이다. 섬광처럼 뻗어 나온 검에 동강이 난 해적의 목이 허공을 날았다.

  속절없이 허물어진 해적의 피와 시신이 땅바닥을 수놓았다.

  사람의 살과 뼈는 생각만큼 쉽게 절단되지 않는다.

  한 자루 검으로 저렇게나 깔끔하게 사람의 목을 날리는 건 해적들에게도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허름한 투니카 사이로 드러난 장비가 햇빛을 받아 번쩍였다.

  두뇌회전이 빠른 우두머리는 일이 잘못됐다는 예감을 받았다.

  동시에 일정 거리를 두고 마르쿠스의 뒤를 따라오고 있던 마차와 수레들이 도착했다.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대동한 호위들이 차례차례 완전무장을 한 채 모습을 드러냈다.

  단순한 노예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모두 제대로 된 훈련을 받고 전투에 능숙한 군인 출신이었다.

  마르쿠스는 노예반란을 진압한 뒤, 반쯤 사병화 된 군인들을 대량으로 가문에 흡수했다.

  어차피 사업을 하려면 지금처럼 무력이 필요할 때가 있는 법이니 아깝지 않은 투자였다.

  대열을 형성한 부하들이 마르쿠스의 명령을 기다렸다.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는 자들은 살려둬. 나머지는 전부 죽이도록."

  "명대로 하겠습니다."

  스파르타쿠스를 필두로 한 마르쿠스의 호위들이 해적들을 향해 쇄도했다.

  완전히 혼란에 빠진 해적들이 우두머리를 향해 원망어린 시선을 보냈다.

  "이야기가 다르잖아! 세 명에서 네 명 정도 납치하면 될 거라고 했으면서!"

  "저 새끼들 딱 봐도 훈련받은 군인들이야! 우리가 어떻게 이기냐고!"

  "멍청한 놈들아! 그런 소리 하기 전에 일단 저놈들부터 막아!"

  우두머리가 뭐라고 명령을 내리려 했으나 이미 늦었다.

  순식간에 해적 두 명이 스파르타쿠스의 검에 베이고 너부러졌다.

  사기가 바닥난 해적들은 체계적으로 조직된 호위병들과 제대로 된 싸움조차 벌이지 못하고 허물어졌다.

  스파르타쿠스는 해적들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가장 먼저 말들의 주변에 있는 자들을 처치했다.

  막힘없이 해적들을 쓸어나가는 그의 모습을 감탄하며 지켜보던 키케로가 불쑥 입을 열었다.

  "설마 이렇게 될 줄 예상하고 있었나? 그래서 일부러 저들에게 거리를 두고 따라오라고 한 것이고."

  "설마요. 저들을 데리고 온 건 어디까지나 만에 하나 있을지도 모를 일을 대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거리를 두고 따라오라고 한 것은 눈에 띄지 않기 위해서고요."

  "솔직히 호위들이 너무 과한 무장을 숨기고 다니는 게 조금 불만이긴 했었네. 하지만 이렇게 자네의 조심성 덕분에 위험을 넘길 수 있었으니 내 생각이 짧았던 것 같군."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그래도 덕분에 일이 좀 더 쉽게 풀리겠어요."

  부하들이 몰살에 가까운 피해를 입자 승기가 없다고 판단한 우두머리가 무기를 버리고 항복했다.

  어찌나 빠르게 쓸려나갔는지 남아있는 해적들은 다섯도 채 되지 않았다.

  무릎을 꿇고 납작 엎드린 우두머리의 표정은 공포에 질려있었다.

  그가 간절한 표정으로 가까이 다가온 마르쿠스를 올려다보았다.

  "자, 자비를······."

  "그러니까 얌전히 돈을 준다고 할 때 협력했어야지."

  싸늘한 어조에 우두머리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겁에 질린 반응을 잠시 두고 보던 마르쿠스가 말을 이었다.

  "그래도 아직 쓸모가 있을 테니 네 처우는 대답을 듣고 결정하도록 하지. 어때? 아직도 널 고용한 자와의 의리를 지킬 생각이냐?"

  "다, 당연히 아닙니다! 살려만 주신다면 시키는 대로 전부 다 하겠습니다."

  "그래? 그럼 우선 너에게 우리를 납치하라고 한 자, 십중팔구 베레스겠지? 그가 너희들에게 의뢰를 했다는 증거를 가져올 수 있나?"

  우두머리가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당연히 할 수 있습니다!"

  "좋아. 그리고 하나 더. 네 고용주에게 전해라. 맡은 의뢰는 성공했고, 납치대상은 잘 모시다가 몇 달 뒤에 풀어주겠다고. 물론 널 믿을 수는 없으니 제대로 지시를 수행한 게 확인이 될 때까지 여기 인질로 잡혀 있어야겠지. 서신을 전하는 건 부하를 대신 보내고."

  "예? 그거야 당연히 시키는 대로 따르겠습니다만······."

  어리둥절해 하는 해적 우두머리와 달리 키케로는 마르쿠스의 의도를 눈치챘다.

  "좋은 생각이로군. 베레스와 루키우스는 우리가 감금되어 있다고 믿고 경계를 거의 하지 않을 테니까. 앞으로는 눈에 띄지 않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겠어."

  "예. 마음 놓고 승리를 자축하고 있을 그자들에게 시원하게 한 방 먹여주도록 하죠."

  예상 밖의 사태에 당황할 베레스의 얼굴을 상상한 키케로가 시원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세간에서는 모두가 질 거라고 예상하는 재판이었다. 증거 수집이야 순조로웠지만, 미약한 불안감이 떠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제 아니었다.

  재판 날짜가 이토록 기다려지는 건 실로 오랜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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