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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35/326)

  # 35 34.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 마르쿠스는 한참 동안 양피지를 손에서 놓지 못했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그 이름은 마르쿠스에게도 여러 가지로 의미가 있는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카이사르는 고대 로마가 낳은 뛰어난 정치가이자 위대한 전략가였으면서, 최고의 문인이기도 했다.

  군사적 재능으로는 능히 폼페이우스와 겨룰 수 있고, 문학적 소양도 키케로와 어깨를 견줄 만하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모든 행동은 물론 전쟁마저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타고난 정치인이기도 했다.

  특정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이는 이들은 밤하늘에 별만큼이나 많지만, 이토록 모든 분야에서 뛰어난 이는 찾아보기 힘들다.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천재다.

  그것도 역사에서 찾아보기 힘든 최고의 천재 중 한 명이었다.

  마르쿠스가 전생에서 마지막으로 읽었던 책도 카이사르를 주제로 다룬 영웅전이었다.

  그래서일까. 마르쿠스는 카이사르라는 이름을 보고 있자니 감회가 남달랐다.

  '그러고 보니 카이사르는 로마에서도 손에 꼽히는 유명한 빚쟁이였지.'

  대금업은 전부 다른 사람에게 일임하고 있어서 알아차리는 게 늦었다.

  다나에는 마르쿠스가 한참 동안 말이 없는 이유가 카이사르가 빌려 간 액수 때문이라고 착각했다.

  그녀가 면목 없다는 듯 풀이 죽은 목소리로 사죄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 없이 계속 대출을 해주는 바람에···어떻게든 책임지고 회수할 방법을 마련해보겠습니다."

  "응? 아니, 아니. 됐어. 그러지 않아도 돼. 돈을 빌려준 것 자체는 오히려 잘한 일이야."

  "네? 하지만 그래도 이분이 빌려 간 액수는 너무 과도한 게 아닌지······."

  "뭐, 그렇긴 한데 나중에 다 회수할 수 있을 거야."

  마르쿠스는 태연하게 답하며 카이사르가 빌려 간 돈의 액수를 확인해보았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잘못 본 게 아닌가 싶어서 자릿수를 다시 세어 보았다.

  '이 인간 진짜 제정신인가······.'

  평정을 가장하던 마르쿠스의 눈가가 미세하게 찌푸려졌다.

  다나에가 어째서 저렇게 안절부절못하는지 액수를 보니 여실히 이해가 됐다.

  사실 로마 정치가들에게 빚이란 그리 흠결이 되는 요소가 아니었다.

  어지간히 부유한 귀족이 아니라면 누구나 다 출세하기 전에는 빚을 질 정도였다.

  로마의 선거는 사실상 금권선거나 마찬가지라 돈이 없다면 치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거기에 시민들에게 인기를 얻기 위해서는 과감히 주머니를 열어야 할 때도 많았다.

  검투사 시합이나 도로 정비를 사비로 때우는 건 로마에서는 상당히 흔한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가가 상당한 빚을 지고 있는 건 누구나 자연스러운 일이라 여겼다.

  문제는 카이사르가 아직 정치를 제대로 시작하지도 않은 30살의 신인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이제 막 첫 선거를 치르는 젊은이가 어째서 이런 터무니없는 액수의 빚을 지고 있다는 말인가.

  '거의 2천만 세스테르티우스를 빌려 갔는데 여기서 돈을 또 빌려달라고?'

  이번에 키케로가 베레스에게 보상금으로 청구한 액수가 4천만 세스테르티우스였다.

  속주 총독을 지내며 어마어마한 횡령을 저지른 자가 토해내야 할 액수가 저 정도라는 뜻이다.

  그런데 아직 정치에 발도 담그지 않은 신참이 그 절반에 해당하는 빚을 지고 있다.

  누가 봐도 이건 정상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렇게까지 빚을 지고 뻔뻔스레 돈을 더 달라고 하는 배짱이 감탄스러울 지경이었다.

  "이 사람은 대체 지금까지 빌려 간 돈을 어디에 쓴 거야?"

  딱히 답을 바라고 한 질문은 아니었지만 바로 대답이 돌아왔다.

  카이사르를 요주의 인물로 점찍은 다나에가 이미 상당한 조사를 해두었던 까닭이다.

  "주로 책을 사고 아낌없이 사치를 부리고, 애인들에게 줄 선물을 사들이는데 사용하고 있다고 해요."

  "거참 대단하네. 여러 가지 의미로."

  "이번에 빌려 갈 돈은 선거용으로 사용한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조속히 빌려주면 좋겠다고······."

  다나에는 말을 하면서도 어이가 없다는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돈을 빌려 가는 사람이 제발 달라고 부탁하기는커녕 빨리 내놓으라는 식이니 황당할 수밖에 없다.

  "생각보다 조금 더 유쾌한 사람인가 보네."

  "유쾌한 게 아니라 안하무인 아닌가요?"

  "그것보다는 확신이 있어서겠지. 자신은 무조건 돈을 갚을 자신이 있으니 그만큼 당당한 거야."

  "···확실히 자신감 하나는 대단해 보였어요."

  "그런데 그쪽에서 다른 말은 더 없었어? 그냥 돈을 빌려달라고 한 게 끝인 거야?"

  다나에가 아차 하는 표정으로 빠르게 말을 이었다.

  "돈을 빌려줘서 고마우니 한 번 대접하겠다고 전해달라고 했어요."

  "직접 만나자는 건가? 고민을 좀 해봐야겠는데."

  마르쿠스가 잠깐 말을 끊고 생각을 정리했다.

  카이사르와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지는 이미 결정을 내린 사항이긴 했다.

  문제는 타이밍이다.

  지금 만나는 게 길이 될지 화가 될지 아직 확신이 서지 않았다.

  카이사르와의 만남은 폼페이우스나 키케로와는 분명 다를 것이다.

  밑천을 간파당하지 않는 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다.

  '그래. 어차피 시간을 끈다고 딱히 달라질 건 없을 테니까.'

  며칠 뒤면 키케로와 함께 시칠리아로 가서 증거를 수집해야 한다. 이왕이면 그 전에 신경 쓰이는 일은 다 끝내고 싶었다.

  마음을 굳힌 마르쿠스가 다나에에게 카이사르의 이름이 적힌 양피지를 도로 넘겨주었다.

  "앞으로도 이 사람에게는 원하는 액수만큼 마음껏 대출을 해줘. 그리고 내가 곧 시칠리아에 가야 하니 그 전에 보자는 말도 전해주고."

  "예.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다나에는 지체하지 않고 종종걸음을 치며 밖으로 사라졌다.

  마르쿠스는 가볍게 한숨을 한 번 쉬고는 다시 밀려있는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갈대 펜을 들었다.

  ※※※※

  약속의 날짜는 빠르게 다가왔다. 카이사르는 특이하게도 자신의 집이 아니라 커다란 술집을 약속장소로 잡았다.

  로마 상류층은 보통 누군가를 접대할 때는 자신의 집에서 연회를 연다.

  술집은 수준이 낮은 곳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아예 출입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았다.

  과거 마르쿠스가 술집을 자주 드나든다고 눈총을 받은 이유도 이런 배경 때문이었다.

  사회적인 시선이 이래서인지 로마에서는 최고급의 술집이나 레스토랑은 그리 발달하지 못했다.

  간단히 끼니를 때우거나 음식을 포장해 갈 수 있는 포피나, 술과 음식, 도박과 매춘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타베르나 정도가 로마인들이 애용하는 식당이었다.

  물론 타베르나 중에도 분위기가 고급스러운 곳이 없는 건 아니었다.

  집이 아닌 밖을 선호하는 귀족이나 상류층은 어디든 있기 마련이다. 그들의 수요를 충족해주는 호화로운 타베르나는 로마에 몇 군데 존재했다.

  카이사르가 약속장소로 잡은 곳도 로마에서 화려함으로 둘째라면 서러운 타베르나였다.

  마르쿠스는 언제나처럼 셉티무스를 대동하고 지정된 장소로 향했다.

  장소가 장소인지라 다나에는 두고 오려고 했지만, 그녀가 함께 가고 싶다고 해서 동행을 허락했다.

  "저기입니다. 저곳이 툴리오가 운영하는 타베르나입니다. 알아보니 상류층 상대로 가장 잘 나가는 곳이라고 하더군요."

  "그만큼 좋다는 뜻인가?"

  "좋다는 의미가 고급스러움을 말하는 거라면 아닙니다. 술이나 음식 맛은 건너편에 있는 제피루스의 타베르나가 더 좋다고 합니다. 이곳은 여자들이 가장 예쁘다고 하는군요. 그리고 접대도 아주 잘한다고 합니다."

  "대충 어떤 곳인지 이해가 됐어."

  마르쿠스는 피식 웃으며 셉티무스를 따라갔다.

  화려하게 장식된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쭉 늘어선 노예들이 요란하게 인사를 건넸다.

  "4층으로 안내해주게."

  셉티무스의 말에 중년의 남성이 공손하게 허리를 숙이며 답했다.

  "죄송합니다. 4층은 귀빈께서 전세를 놓으셨습니다. 2층과 3층에는 자리가 있으니 그곳에서 즐기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아아, 괜찮네. 4층의 그 귀빈과 약속이 되어 있으니까."

  "아, 일행이셨군요. 알아보지 못해 죄송합니다. 곧바로 위로 모시겠습니다."

  노예들의 성대한 환영을 받으며 마르쿠스는 계단을 올라갔다. 저 위에서 깔깔거리는 여인들의 교성과 음악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 층 단위로 전세를 내고 즐긴다 이거지? 빚이 펑펑 늘어나는 이유가 짐작이 가네.'

  카이사르가 언제나 여자들을 끼고 술을 마셨다는 기록은 없었다. 하지만 이 정도의 지출을 가볍게 한다는 데서 씀씀이가 어떤지 간접적으로나마 짐작해 볼 수 있다.

  이런 사람이 공적으로는 금욕주의자였다는 게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마르쿠스 일행이 4층에 이르렀다.

  속이 다 비칠 정도의 얇은 옷을 입은 여인들이 춤을 추고, 악사들이 티비아와 리라를 연주하고 있었다.

  이쯤 되면 혼자만의 연회를 즐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르쿠스가 도착하자 음악이 멈추고 여인들도 춤을 중단했다.

  그 건너편에 비스듬히 누워 퇴폐적인 분위기를 한껏 풍기는 한 남자가 있었다.

  흐트러진 풍경 속에서도 우아하게 가다듬은 토가 자락이 확 눈에 들어왔다.

  옆에 앉아 있는 여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그가 천천히 얼굴을 든다.

  폼페이우스처럼 수려한 외모는 아니었다. 마르쿠스처럼 남자답게 선이 굵은 미남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지적이면서도 야성미가 느껴지는 눈매는 사람의 이목을 잡아끄는 데가 있었다.

  신비한 두 눈동자가 터벅터벅 걸어오는 마르쿠스를 주시하고 있다.

  가늘게 호선을 그린 입술을 뚫고 나른한 듯하면서도 힘이 넘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직접 얼굴을 보는 건 처음인가? 생각보다도 더 훤칠한 대장부로군."

  도저히 채무자라고는 볼 수 없는 당당한 어조였다. 마르쿠스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남자의 목소리가 천천히 이어졌다.

  "만나서 반갑네. 내가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일세."

  마르쿠스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카이사르의 맞은편 자리에 비스듬히 앉았다.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입니다. 이렇게 직접 만나게 돼서 반갑군요."

  카이사르가 웃으며 옆에 앉은 여인에게 손짓을 보냈다. 그녀가 마르쿠스의 앞에 놓인 잔에 포도주를 따라주었다.

  "나 역시 장성한 자네를 이리 보게 되니 반갑네. 자네는 어렸을 때라 기억나지 않겠지만 나는 예전에 한 번 자네를 본 적이 있거든."

  "그렇습니까?"

  "그래. 크라수스 가문에 돈을 빌리러 갔을 때였는데 그때 어렸던 자네와 한 번 마주친 적이 있지. 하지만 이렇게 보니 그때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군."

  카이사르의 말에는 묘한 울림이 있었다. 실제로 마르쿠스의 혼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고 말했을 리는 없지만, 그래도 분명 남다른 데가 있는 안목이었다.

  "종종 그런 이야기는 듣습니다. 크면서 철이 많이 들었다고요."

  "인격만 성숙해진 게 아니라 능력적으로도 흠잡을 데가 없지 않나. 자네가 만든 물건에 이 로마 전체가 들썩이고 있는데."

  "마차와 마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물론 그것도 그렇지만 내 기준에서는 등자와 편자가 더 놀랍더군."

  우뚝.

  포도주를 들어 입으로 가져가려던 마르쿠스의 몸이 순간 그대로 굳어졌다.

  등자와 편자는 표면상으로는 마르쿠스가 제작한 물건이 아니었다. 아직 군사적으로는 주목받을 생각이 없었기에, 제작의 공은 전부 크라수스에게 돌려놓은 상태였다.

  폼페이우스도 크라수스가 그 정도의 재능이 있는지 의심을 했었지만, 우연의 산물이라 치부하고 넘어갔었다.

  하지만 카이사르는 너무나 태연하게 등자와 편자가 마르쿠스의 발명품이라는 걸 꿰뚫어 보았다.

  '떠보는 건가?'

  마르쿠스는 최대한 대수롭지 않은 표정을 가장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건 제가 아니라 아버지와 여기 제 뒤에 있는 셉티무스가 제작한 것입니다. 저는 그걸 옆에서 돕기만 했고요."

  "그런가. 그건 마차와 달리 군사적인 물품인 만큼 과한 주목은 끌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로군. 굉장히 사려 깊은 성격을 가지고 있어."

  마르쿠스의 몸을 한줄기 소름이 훑고 지나갔다.

  단순히 떠보는 게 아니었다. 한 번 대화를 주고받은 것만으로도 내면에 깔린 의도가 전부 파헤쳐지는 느낌이다.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생소한 감각.

  소름이 돋는 상대방의 통찰력에 마르쿠스의 입가가 바싹 말랐다.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과는 근본부터가 다르다.

  뒤에서 느껴지는 셉티무스와 다나에의 시선을 의식조차 할 수 없었다.

  마르쿠스는 눈앞의 상대 한 명에게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표정과 목소리가 무너지지 않도록 피나는 노력을 해왔다.

  덕분에 내면은 혼란스러워도 겉으로는 어떤 티도 내지 않고 평정을 유지하는 척 할 수 있었다.

  "어떤 근거로 그런 추론을 하셨는지 들어볼 수 있을까요?"

  정곡을 찔렸음에도 마르쿠스의 태도는 여전히 여유롭게만 보였다. 카이사르의 눈에 일말의 감탄이 스쳐 지나갔다.

  그가 흡족하게 웃으며 술잔을 들었다.

  "나는 자네의 아버지를 아주 잘 알거든. 정치력도 괜찮고, 사업수완도 훌륭한 분이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군사적인 이해도는 절망적···아니, 조금 아쉬운 수준이라네."

  "하지만 그런 깊이 있는 지식이 없어도 등자나 편자는 충분히 개발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아니. 그건 말에 대한 이해도가 충분하지 않다면 구상조차 할 수 없는 물건이야. 발명이란 그걸 뒷받침해주는 지식이 없다면 결코 나올 수 없네. 노예 반란이 끝난 뒤 가끔 자네 아버지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봤는데 확신이 들더군. 등자와 편자는 그 사람의 작품이 아니야."

  "······."

  "게다가 자네는 나이가 되지 않는데도 반란군 토벌에 따라나섰지. 자네가 저 물건을 만들었다고 확신한 이유도 바로 이것이네. 자신이 도입한 물건의 성능을 관찰하고,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개선점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었나?"

  마치 직접 보기라도 한 것처럼 확신 어린 말투였다. 마르쿠스는 내심 헛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단하시네요."

  "난 그래서 자네에 아주 관심이 많았다네. 아직 어린데도 어떻게 저런 물건을 떠올릴 수 있을까 궁금했지. 한데 이번에 마차와 마구까지 싹 뜯어고친 걸 보니 더더욱 감탄과 함께 의문이 짙어지더군."

  카이사르가 술잔을 쭉 비우고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물었다.

  "자네, 지금 어디까지 보고 있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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