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 12. 귀환 ──────────────── 검투사 양성소의 훈련장 한쪽에서 맹렬하게 검을 휘두르는 한 남자가 있었다.
목검을 들고 펼치는 검술의 기세가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웅장하다.
검을 휘두르는 남자는 훈련장에 나타난 스파르타쿠스의 모습을 보고도 검을 멈추지 않았다. 대신 고개를 힐끗 돌려 짧은 인사를 건넸다.
"왔나?"
"크릭수스, 자네는 시합을 한 날조차 훈련을 쉬지 않는군."
"진즉 이렇게 했다면 그리 쉽게 추월당하지도 않았겠지."
검투 시합이 끝난 당일이라 그런지 훈련장 안에는 두 사람의 모습 외에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자네는 언제나 내 스승과도 같은 사람일세, 크릭수스. 그 어떤 도크토레보다 자네가 나의 실력을 길러주었으니."
"그렇다면 나는 스승으로서 더더욱 실력을 길러야지. 자네에게 잠깐 맡겨둔 카푸아의 일인자 자리를 다시 찾아오기 위해서라도."
"그거 말인데···당분간은 자네와 검을 섞을 수 없을 것 같네."
순간 현란한 움직임을 보이던 목검이 우뚝 멈추었다.
크릭수스가 미간을 좁히며 스파르타쿠스에게로 몸을 휙 돌렸다.
"뭐라고? 어째서?"
"로마 원로원의 귀족자제들이 이번 시합에 온 것은 자네도 알지?"
당연히 알고 있다. 모를까 봐 알려주기 위해 묻는 게 아니었다. 그래도 크릭수스는 대답했다.
"바티아투스가 화려한 시합을 하라고 그렇게 닦달을 했는데 모를 수가 있나."
"그중에 마르쿠스라는 도련님이 있다네. 난 그분을 따라가게 됐어."
"···바티아투스가 자넬 판 건가?"
"내 의지이기도 하네. 그 도련님은 다른 귀족들과는 근본적으로 달라. 그리고 내가 로마로 가는 게 많은 검투사의 처우 개선으로 이어질 거로 생각하네."
크릭수스의 얼굴이 석고처럼 굳어졌다. 스파르타쿠스는 언제나 이런 식이다.
더 이상 밑바닥이 없는 노예가 됐어도 자신보다는 타인을 먼저 생각한다.
처음엔 가식이라고 여겼으나 지금은 아니다.
"다른 검투사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로마 놈들의 딸랑이가 될 생각인가? 자네의 자존심을 다 팔아서라도?"
"아니. 내가 따라갈 도련님은 결코 그럴 분은 아니라네. 난 그 사람을 믿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전력으로 해볼 생각이네."
"···자네가 로마인을 그렇게 말하는 건 처음이군. 하지만 나는 믿지 않네. 뭔가가 바뀔 거라는 희망 따위는 이제 사치일 뿐이니."
크릭수스의 인생에서 그의 기대가 보답받았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베테랑 검투사가 되면 뭔가가 달라질 것이다. 카푸아의 최강이 되면 희망이 보일 것이다.
순진하게도 그런 생각을 했던 시절이 있지만 전부 과거의 일일 뿐이다.
나날이 늘어가는 실력과 쌓여가는 승수에 반비례해 그의 눈에서는 희망이 점차 사라져갔다.
스파르타쿠스는 스승이자 친우인 그에게 진심을 담아 부탁했다.
"과한 기대를 하라고 하진 않겠네. 하지만 절대로 자포자기는 하지 말게. 길면 3년. 짧으면 2년 안에는 반드시 내 성과를 내리라 약속하지. 그렇게 되면 아주 조금이라도 무언가 변하리라 확신하네. 도련님께서도 자네에게 그렇게 전하라고 하셨고."
"자네가 따라가기로 한 귀족이? 나에게 그 말을 전하라고 했다고? 어째서?"
"그건 나도 모르네. 어쩌면 나와 자네의 관계를 짐작하고 배려를 해주셨는지도 모르지. 말하지 않았는가. 그분은 뭔가가 다르다고."
크릭수스가 잠시 혹한 듯 눈을 반짝였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며 냉정함을 되찾았다.
"나는 믿지 않아. 그래도 자네가 거기에서 뜻한 바를 이루기를 기도하지."
"고맙네. 다른 사람들을 남겨두고 가는 건 마음에 걸리지만, 자네가 있으니 안심할 수 있네. 만약 자네가 없었다면 나는 동료들을 여기에 두고 떠날 수 없었을 걸세."
"···실없는 소리는 그만하고 자네 일이나 똑바로 하게. 자네의 패배는 자네 혼자만의 패배가 아니야. 우리 카푸아 검투사 전원의 패배라는 사실을 절대 잊어서는 안 돼. 이왕 로마로 가는 거 전부 먹어 치울 각오로 임하게. 로마라고 별 다를 것 있겠나. 그곳에 가서도 무적불패의 신화를 써 내려가란 말일세."
"당연히 그렇게 할 생각이네."
스파르타쿠스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
마르쿠스는 함께 온 귀족들을 떠나보내고 카푸아에 이틀을 더 머물렀다.
스파르타쿠스가 함께 가면 상당한 소란이 일어날 것을 우려해서였다.
"바깥은 이제 좀 적응됐나?"
"아직 조금 어색합니다. 어차피 카푸아 시내는 저를 알아보는 사람이 너무 많아 돌아다닐 수도 없고요."
검투사 양성소에서 해방된 스파르타쿠스는 아직 자신의 상황을 완전히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유롭게 활보할 수 있는 로마로 가면 싫어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신은 이제 감금된 노예 검투사 따위가 아니라는 사실을.
"크릭수스한테는 내 말을 잘 전했겠지?"
"물론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크릭수스에게까지 신경을 써주신 것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자네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기 위한 배려가 절반,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한 보험이야."
스파르타쿠스가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마르쿠스는 굳이 이유를 설명해주지는 않았다.
어차피 설명할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다.
스파르타쿠스를 영입한다는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
하지만 이것 때문에 한 가지 사건이 실제의 역사와는 다르게 전개 될 가능성을 가지게 됐다.
바로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이다.
물론 스파르타쿠스가 빠졌다고 해서 반란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예측은 너무 무르다.
역사상 스파르타쿠스 반란의 주범은 세 명.
스파르타쿠스, 크릭수스, 그리고 반란 초기에 사망한 오이노마우스다.
반란의 주범 셋 중 고작 한 명이 빠졌을 뿐이다.
금방 진압될 소규모 반란으로 그칠지 몰라도 검투사들이 들고 일어날 가능성은 상당히 높았다.
엄밀하게 따지면 반란이 일어나주는 게 마르쿠스의 입장에선 더 좋았다.
크라수스 가문은 돈은 풍족할지라도 경쟁자인 폼페이우스에 비하면 군공이 턱없이 부족했다.
이 부족한 군공을 채울 수 있게 해준 사건이 바로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이다.
이 반란을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찍어 누른 크라수스는 여세를 몰아 집정관의 자리까지 오른다.
마르쿠스는 어느 쪽으로 상황이 전개되더라도 문제가 없도록 철저한 계획을 세워두긴 했다.
그래도 굳이 어느 한쪽을 고르라면 반란이 일어나주는 게 더 도움이 된다. 이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크릭수스에게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보낸 건 마르쿠스가 던져준 최소한의 구명줄이었다.
크릭수스가 이 구명줄을 잡는다면 역사와는 달리 반란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반란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군공을 보충할 방안은 있고, 그럴 경우 크릭수스라는 걸출한 무인을 휘하로 영입할 수 있다. 실력 있는 검투사들을 동원해 더 많은 경제적인 이윤을 얻는 것도 가능하다.
일어나도, 일어나지 않아도 대세에는 큰 지장을 미치지 않는다.
반란이 일어나주는 쪽이 조금 더 번거로운 일이 줄어드는 것뿐.
사실 마르쿠스가 정말로 원한다며 절대로 반란이 일어나지 않게 만들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았다.
마음대로 역사를 바꿔버린다면 이후 어떤 나비효과가 일어날지 알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는 내심 크릭수스가 자신이 던져준 구명줄을 잡지 않을 거라는 확신에 가까운 예감이 있었다.
역사의 큰 줄기를 의도적으로 비트는 순간은 마르쿠스가 모든 게 준비되었다고 느낄 때가 될 것이다.
그때가 오기 전까지는 비정하게 느껴질지라도 이용할 수 있는 모든 걸 철저하게 이용할 뿐이다.
그는 아직도 얼떨떨해 보이는 스파르타쿠스에게도 주의를 주었다.
"로마로 돌아가면 자네도 배워야 할 게 많을 거야. 전투야 지금처럼만 하면 되지만, 이제 그런 것만 신경 써서는 안 돼. 경기장 안이 아니라 밖에서도 관객들을 달아오르게 하는 법을 익혀야만 해."
"싸워서 이기는 거라면 자신이 있지만, 그 외에는 솔직히 그리 잘할 것 같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생각해본 적도 없는 분야라······."
"괜찮아. 경기 전의 인터뷰···아니, 콜로퀴움(사전연설)이나 네가 신경 써야 할 말투, 전부 다 도와주는 사람들이 붙을 거니까. 네가 뭘 궁리해서 짜낼 필요는 없어."
"그런 거라면 괜찮겠군요.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마르쿠스는 마차에 오르며 처리해야 할 일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해보았다.
우선 크라수스를 설득해 사업의 인가를 받아야 한다.
그다음 로마에 있는 검투사 양성소들과 제휴를 맺고, 경기 외적인 스토리를 만들어줄 사람들도 구해야 한다.
타이틀전을 위한 구상도 필요할 것이고, 랭킹 제도나 전반적인 행정을 처리해야 할 인재도 필요했다.
그리고 검투사 시합을 개조하는 것 외에도 신경을 써야 할 일들은 산더미처럼 많았다.
현재 마르쿠스의 지식으로 개혁이 가능한 부분은 언뜻 보면 많은 듯했지만, 실상은 한계가 명백했다.
무언가 아이디어를 제공해도 거기까지 이를 수 있는 구체적인 지식이 결여되어 있는 까닭이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입으로만 대현자라는 조롱을 들을지도 모른다.
지금 시대의 기술로 구현할 수 있는 발명품들을 제시해야 한다.
마르쿠스는 덜컹거리는 마차 안에서 상념에 잠겼다.
'일단 가장 대표적인 건 등자와 편자 정도인가.'
등자란 말 안장에 달린 받침대로 말에서 균형을 잡는 데 매우 유용한 물건이다.
혹자는 이 등자의 발명으로 기병이 소수 귀족의 전유물이 아니게 되었고, 대규모 기병대의 운용이 가능해졌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 등자는 아시아권에서는 이미 기원전 때부터 북방 유목민족들이 개발해 사용하고 있었다.
반면 서양에 들어온 것은 8세기가 지나서다.
5세기경에 들어왔다는 설도 있으나, 이 가설은 아직 공식적으로 확정이 되지는 않았다.
현 로마의 경우 등자가 없는 대신 안장을 개량해 사용했고, 부유한 기사 계급은 어렸을 때부터 기마술을 배워 말에 익숙해지도록 했다.
마르쿠스는 개인적으로 지극히 합리적인 로마인들이 어째서 등자 같은 물건을 떠올리지 못했을까 의문이었다.
의외로 답은 금방 돌아왔다.
귀족 자제들이 한결같은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흠~확실히 말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도움이 되겠군. 하지만 나는 이미 기마술에 익숙해서 그런 물건이 따로 필요 없을 듯한데?"
또 한 귀족은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그런 걸 쓰고 다니면 기마술에 자신이 없다는 인상을 주지 않을까? 그런 건 출세하는데 엄청난 걸림돌이 될 것 같아."
이런 반응을 봐서는 아마 구상은 했음에도 실질적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개발을 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마르쿠스는 이 점을 진지하게 고민해보았다.
등자를 만들어도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기 때문이다.
마르쿠스가 조사를 통해 밀랍 수첩에 정리 해놓은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1. 어차피 기사 계급 이상은 어렸을 때부터 기마술을 배우기 때문에 등자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아마 등자 같은 건 실력이 떨어지는 초보들에게나 필요한 거라 여길 확률이 높다.
2. 로마는 직접적으로 북방 유목민들에게 시달린 게 아니라 등자의 위력을 알아차리는 게 늦었다. 원래 사람은 한 번 털려봐야 그 무서움을 몸으로 느끼는 법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실제 등자를 쓰는 게 얼마나 기병의 위력을 올려주는지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
다행히도 마르쿠스에게 그 정도의 지식은 있었다.
등자를 쓰지 않아도 기마술이 뛰어난 사람들이라면 얼추 비슷한 위력을 보일 수 있으나, 엄청나게 차이가 나는 분야가 한 가지 있다.
바로 겨드랑이에 창을 끼워 돌격하는 카우치드 랜스를 쓰는 창기병의 돌격이다.
등자를 쓰지 않는 창기병의 돌격과 등자를 써 말의 무게까지 전부 싣는 게 가능한 창기병의 돌격은 비교 자체가 되지 않는다.
이건 확실하게 기마술로 커버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물론 현 로마군의 기병운용과는 다른 방법이라 거부감을 보이는 사람들이 나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쟁에서 쓸 수 있는 카드란 많을수록 좋은 법이다.
일단 제대로 만들어 놓으면 카이사르나 폼페이우스 같은 천재들은 그 가치를 알아볼 것이다.
그리고 다행히도 편자는 등자보다는 도입하기가 더 용이했다. 편자란 말의 발굽이 마모되지 않도록 달아주는 금속재의 장치다.
도로가 거의 정비되지 않은 장소라면 편자 없이 맨발굽으로 달려도 마모가 빨리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로마처럼 단단한 도로를 사방팔방에 깔아놓은 곳은 이야기가 다르다.
이런 데서 편자 없이 말을 굴리면 말의 발굽이 그야말로 남아나지 않게 된다.
로마인들도 이걸 알기 때문에 이미 금속재로 만든 말 전용의 신발을 만들어 신겼다.
하지만 현대적인 편자와 비교하면 편이성과 효율성이 비교가 되지 않는다.
현대식의 편자는 기원전 10세기에 나온 것으로 로마의 기술로도 충분히 제작가능하다.
실제로도 셉티무스에게 물어보니 굉장히 긍정적인 반응이 나왔다.
"괜찮은데요? 돈이 될 것 같습니다. 도련님은 정말로 기발한 생각을 자주 하시는군요."
"그럼 이걸 만들 기술력 자체는 충분하다고 봐도 되겠지?"
"물론이죠. 원리와 구조, 용도만 알려준다면 못 만들 물건이 아닙니다. 실력 있는 장인들에게 맡기면 반년 안에 상용화가 가능한 제품이 나올 겁니다."
"좋아. 그럼 돌아가자마자 개발에 착수하도록 하자."
간만에 기분이 좋아지려던 찰나, 마차가 덜컹하고 흔들렸다.
둔부에 거센 충격을 느낀 마르쿠스가 이를 갈며 속으로 되뇌었다.
'그리고 이 최악의 승차감을 자랑하는 마차와 수레도 어떻게든 개량을 해야겠어.'
앞으로도 여기저기 돌아다닐 일이 많을 텐데 평생 이런 마차를 타고 다닐 수는 없다.
사실 마음을 놓을 때가 아니긴 했다.
잠깐만 고민을 해봐도 처리해야 할 문제가 이만큼이나 많이 나오는 게 현실이 아닌가.
무엇보다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해 봐도 뭐 하나 쉽게 처리할 수 없다는 점이 가장 걸렸다.
먼 미래의 일까지 고려하면 곤란함은 거의 갑절이 됐다.
현재 계획의 기본 골자인 카이사르 사후 전까지 그의 그늘에 숨어 세력을 불린다는 방침은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이후를 고려하면 벌써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카이사르가 죽어도 옥타비아누스가 건재하면 경쟁이 꽤 힘들 것 같은데······.'
옥타비아누스는 정치력만 보자면 로마 전체를 통틀어도 으뜸으로 뽑히는 괴수급 인물이다.
도서관에서 얻은 책으로 읽어보면 읽어볼수록 혀를 내두르게 되는 귀재였다.
까놓고 말해서 동등한 세력을 가지고 있다면 마르쿠스가 이길 가능성은 그냥 0이다.
그나마 지금 계획하고 있는 일만 잘 진행된다면 옥타비아누스의 힘을 거의 절반으로 깎는 게 가능하지만, 그래도 위협적인 인물인 건 변하지 않는다.
마르쿠스는 함께 마차에 타고 있는 세 사람에게 물었다.
"셉티무스, 다나에, 스파르타쿠스. 정상적으로 성장했을 때 이길 수 없는 상대를 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디까지나 가정이니 각자 떠오르는 방법을 하나씩 말해봐."
가장 먼저 입을 연 사람은 바로 옆에 앉아 있는 다나에였다.
"제일 좋은 방법은 성장하지 못하게 하는 것 아닐까요?"
"확실히 그게 정론이긴 해."
하지만 그 부분에서는 이미 생각해둔 바가 있으니 더 의견을 들을 필요는 없다.
다음은 마부석에 있는 스파르타쿠스가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사실 자신의 기량을 올리는 게 가장 확실하지요. 이것 이상의 방법은 없습니다."
"정말 확실하고도 좋은 방법이지만 그게 가능했다면 애초에 내가 물어보지도 않았겠지?"
"···죄송합니다."
기록으로 보면 스파르타쿠스는 기습 전략도 사용했다는데 역시 사람은 환경에 따라 변하는 법인 듯하다.
마지막은 그나마 믿을 만한 셉티무스다. 그는 마르쿠스의 기대 어린 눈빛에 곤란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사전에 회유하는 것. 정 안 되면 암살하는 것. 대략 이 정도가 떠오르는군요."
"암살은 위험부담이 너무 커. 뒷감당이 쉽지 않잖아. 회유해도 사자의 새끼를 키우는 꼴이 될지도 모르고."
결국 어느 쪽을 선택하더라도 찝찝함은 남는 상황이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지만 결국엔 그래봐야 흰 종이 한 장이다.
마땅한 답을 내지 못한 마르쿠스는 그냥 의자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에라 모르겠다. 어차피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놈. 조금 더 시간을 들여서 대처법을 마련해두면 되겠지.'
옥타비아누스가 태어날 때까지는 아직 10년이란 세월이 남았다.
그때 마르쿠스가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는지에 따라서 취할 수 있는 대응의 폭도 달라질 것이다.
지금 섣불리 결정해놓으면 사고의 틀을 제한하는 결과만 낳을 가능성이 높다.
도서관의 책만 무한정 뽑을 수 있었다면 걱정거리가 확 줄어들었을 텐데 그저 아쉬울 따름이다.
'그래도 뭔가 방법이 있겠지. 생각해둔 바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니까.'
아쉽긴 하지만 불가항력인 부분을 끝까지 품고 있어봐야 자신만 손해인 법.
일단 앞으로 일어날 굵직한 사건과 주요 인물들을 안 것만으로도 절박함은 느끼지 않게 됐다.
도서관의 능력을 해명하든 해명하지 못하든 마르쿠스는 그저 자신의 길을 가면 된다.
멈춰 서서 고민만 하고 있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여전히 짜증날 정도로 덜컹 거리는 마차 안에서.
마르쿠스는 옆에 앉아있는 다나에조차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우구스투스···로마 최초의 황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