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러브 어페어-145화 (145/168)

145. 외전 5. 98일(4)

어떻게 마스터룸까지 왔는지 기억이 없었다. 몸이 허공에 떴고, 떨어지지 않으려 문도를 꼭 안았던 것만 기억났다.

장소가 바뀌는 줄도 몰랐고, 침대에 등을 대고 누운 줄도 몰랐다. 입술을 겹치고 있는 남자 외에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선우는 문도의 머리카락 사이로 손가락을 넣으며 몸을 가까이 붙였다. 휘감아 오는 혀를 기꺼이 마주 대었고, 입술이 잠깐씩 떨어질 때면 제가 먼저 찾아가 다시 머금기도 했다. 키스만으로 열이 오르고 숨이 찼다. 발가락이 곱아들고 몸이 엉겨 붙었다.

“참는 게 힘들었어?”

입술을 뗀 문도가 선우의 얼굴을 눈으로 쓸면서 물었다. 잠깐 사이에도 흘러넘치는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가볍게 쪼듯이 입맞춤을 하며 다시 물었다.

“나랑 하고 싶어서?”

이젠 부끄러움도 없어졌나 보다. 선우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문도에게 입을 맞추었다. 포개진 문도의 입술을 안으로 빨며 잘근 씹었다. 낮은 신음 소리를 흘린 문도가 선우의 허리를 바짝 안으며 상체를 일으켰다.

선우는 문도의 허벅지에 올라타 앉은 채로 입맞춤을 이어 갔다. 남자가 주는 모든 것을 받아 마시고 싶었다. 갈증이 나서 그러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닿아 있어도 충분하지 않았고, 쾌감이 흘러넘쳐도 애가 타기만 했다.

“더……. 더 해 줘요.”

낮게 웃는 남자의 소리가 좋았다. 머리카락을 넘겨주는 커다란 손이, 애틋하게 두 뺨을 감싸 오는 따뜻한 온기가 좋았다.

숨 가쁘게 이어지는 입맞춤이 좋았다. 청량하고 깨끗한 체취가 좋고, 맞닿은 살의 느낌이 좋았다. 웃을 때면 비스듬히 올라가는 입꼬리도 좋고, 툭툭 던지는 시니컬한 농담들이 좋았다.

다정히 머리카락을 넘겨주는 손길이 좋았고, 사랑이 듬뿍 담긴 눈동자가 좋았다. 부서지지 않는 단단함이 좋았고, 소년 같은 미소가 좋았다.

맞붙은 입술 사이로 뜨거운 숨이 흘렀다. 옷이 벗겨지고 셔츠가 던져졌다. 갈급하게 달려드는 남자의 입맞춤이 거칠어 아픈 신음 소리가 나왔다.

“아……!”

터지는 신음에 입술을 떼려는 문도의 목을 선우가 감싸 안았다. 잠시도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멈추지 말아요. 계속해 줘.”

미치겠네. 남자의 중얼거림과 함께 입술이 다시 포개어졌다. 몸이 뒤로 넘어가며 문도가 선우를 타고 올랐다. 눈을 감은 선우는 깊게 들어오는 문도의 혀를 받았다.

어지럽게 닿았던 입술은 느리게 떨어졌다. 떨리는 숨을 뱉으며 선우는 문도를 마주 보았다. 이마 위로 흐트러진 머리카락조차 아름다웠다. 곧게 뻗은 콧날과 긴 유선형의 눈을 바라보다 충동적으로 말했다.

“내 거예요.”

가늘게 흔들리는 남자의 눈을 보며 선우는 손을 뻗었다. 아치형의 눈썹을 손가락으로 쓸면서 말했다.

“눈도, 코도, 입도. 다 내 거야.”

누구와도 나누고 싶지 않아. 당신 몸도 마음도 전부 다 내 거야.

그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뻗어 나왔다. 선우는 두 손을 활짝 벌려 문도의 얼굴을 감싸며 말했다.

“그러니까 당신은 나만 보고, 나만 생각하고, 나만 좋아해야 해.”

살면서 이런 원초적인 소유욕을 느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낯설고도 강렬한 감정이었지만 놀랍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너무나 당연했기에.

“당신은 내 거니까.”

하……. 지끈지끈한 전율이 문도의 몸을 관통했다. 사랑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조차 이렇지는 않았다. 어쩌지 못하는 감정의 파도가 밀려와 문도는 선우의 입술을 베어 물며 뒷머리를 그러쥐었다.

“빨리.”

선우는 애원하듯 말했다. 아파도 좋으니 어서 하나가 되고 싶었다. 버겁게 전부를 채워 주었으면 좋겠다. 견딜 수 없는 괴로움이었고 애가 타는 목마름이었다. 온몸이 남자를 향한 욕심으로 터질 것 같았다.

허리가 들리고 속옷이 내려갔다. 다리가 벌어지며 뜨거운 것이 닿았다. 선우는 숨을 삼키며 남자의 목을 안았다. 마침내 하나가 되는 순간, 선우는 탄성을 지르며 허리를 비틀었다.

“이렇게 하고 싶었어?”

이를 악문 목소리로 문도가 물었다. 선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파도 좋았다. 아파서 좋았다. 버겁도록 자신의 안에 들어온 것이 좋았고, 끝까지 닿아 있는 것이 좋았다.

“응. 이렇게……. 당신이랑…….”

뜨거운 웃음을 삼킨 문도가 허리를 물렸다가 단숨에 다시 진입을 했다. 선우는 신음을 터트리며 문도의 목을 안았다. 아플 정도로 난폭해지는 키스를 받아 내며 눈을 감았다.

당신이 나만 보고 나만 생각했으면 좋겠어. 지난 일들은 어쩔 수 없다 해도 앞으로는 전부 나였으면 좋겠어.

사랑이 이렇게 다양한 색깔일 줄 전에는 몰랐다. 눈이 멀 것 같은 질투심을 느낀 것도 처음이고, 끓어오르는 욕심을 갖게 된 것도 처음이었다.

누군가를 생각하며 통증을 느껴 본 적도 없었고, 서러워 울어 본 적도 없었다. 잃을까 봐 불안해 본 적도 없었고, 갖고 싶어 욕심부린 적도 없었다. 전부 다 문도가 처음이었다. 서문도가 이선우의 처음이며 전부였다.

멀고 먼 과거에도 질투가 났다. 자신밖에 모른다는 걸 알아도 부족했다. 더 많이 원했으면 좋겠고, 더 많이 안아 주었으면 좋겠다.

언제 이렇게 이 남자를 좋아하게 되었을까. 선우는 남자의 목을 거듭 안았다. 닿아 있는데도 더 닿고 싶은 마음만이 가득했다.

남자가 밀려올 때마다 세상이 밀려났다. 시간도 공간도 저만치 물러나며 오로지 이선우와 서문도만이 존재했다. 당신은 내 거야. 선우는 문도의 입술을 베어 물며 생각했다. 빛의 조각들이 춤을 추며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백일을 이틀 남긴 밤의 일이었다.

* * *

99일로 넘어가는 자정에 선우는 벌거벗은 몸으로 문도의 품에 안겨 있었다. 뒤의 남자가 나른한 한숨을 쉬며 가슴을 부드럽게 쥐는데 몸 곳곳에서 아릿한 아픔이 일었다.

움직일 기운도 없어 쌕쌕 숨만 쉬는데 엉망이 된 방 안의 풍경이 보였다. 여기저기 벗어 던진 옷, 저만치 밀려난 침대 시트, 바닥에 아무렇게나 흩어진 콘돔의 포장지들.

서서히 정신이 돌아오는데 눈을 질끈 감고만 싶어진다. 아아. 내가 대체 무슨 말을 한 걸까. 뒤늦게 자괴감이 밀려들었다. 눈을 질끈 감고 어떻게든 잊어 보려는데, 퍼뜩 아이 생각이 났다.

규원이.

잘 자는지 확인해야 하는데 까맣게 잊고 있었다. 선우는 벌떡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칡넝쿨처럼 몸에 감긴 팔이 꼼짝하지 않았기에.

“규원이 보고 올게요.”

“잘 있겠지.”

문도가 대답하며 선우의 허리를 한 번 더 당겨 안았다.

“그래도.”

“괜히 잘 자는 애 깨우지 말고 그냥 있어.”

목소리에 웃음기가 섞인 것 같은 건 착각일까. 선우는 어떻게든 이 상황에서 벗어나 보고자 팔을 꿈틀대며 말했다.

“그러면 잠깐……. 옷이라도.”

“옷을 왜 입어. 참느라 힘들었을 텐데, 몇 번 더 해야지.”

그 말에 선우는 흠칫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문도가 웃음 머금은 얼굴로 선우에게 말했다.

“내가 누구 거라고?”

아아. 선우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문도에게서 벗어나려 버둥거리는데 벗어나기는커녕 아래로 끌려 들어가 문도의 몸에 갇히게 되었다.

“선우 너 때문에 공든 탑 무너졌는데. 어떡할래.”

“그게 왜…….”

나 때문이냐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하겠다. 못 참겠다고 했던 것도 자신이었고, 더 해 달라고 졸랐던 것도 자신이었던 것이 너무 선명히 생각나서.

“너 때문이지. 사람 새끼 돼 보겠다고 몇 달을 참았는데 선우 네가 작정하고 나를.”

작정하고라니. 선우는 당황해서 고개를 저었다.

“작정한 게 아니라, 그냥…….”

“작정한 거잖아. 쑥하고 마늘만 처먹던 나한테 진수성찬 차려 놓고 먹어 보라 한 거 아니야.”

“아니. 그게 아니라.”

내가 왜 그랬을까. 뒤늦게 진한 후회가 밀려들었다.

“다음부터 참기 힘들면 그냥 말을 해. 어차피 사람 되긴 글렀으니까, 기왕 이렇게 된 거 짐승처럼 밤새.”

선우는 팔을 들어 문도의 입을 틀어막았다.

“산후우울증이 와서 그래요. 호르몬이…….”

입이 가려진 문도의 눈이 웃음으로 가늘게 휘었다. 초라한 변명을 하던 선우의 얼굴이 붉어졌다. 강렬했던 소유욕이 사라진 자리에는 낯뜨거움만이 남았다. 내가 왜 그랬을까.

산후우울증이 와서 그런 거야. 감정의 기복이 심해지고 짜증이 많이 난다고 책에도 쓰여 있었어. 선우는 애써 그렇게 생각을 했다.

그런 선우의 팔을 떼며 문도가 팔목에도, 팔꿈치 안쪽에도 입을 맞추더니 눈썹을 올리며 물었다.

“한 번 더?”

아니요, 아니. 괜찮아요. 선우의 대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문도가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가끔은 웃음 소리가, 또 가끔은 새된 비명 소리가 들려오던 마스터룸이 조용해진 건 새벽이 되었을 때였다.

* * *

팀원들에게 커피와 백설기를 돌리는 것으로 문도는 아이의 백일을 기념했다. 전무님은 이런 거 안 하실 줄 알았다는 송 팀장의 말에 피식 웃으며 그러게요, 라고 말하고 평소보다 조금 이른 퇴근을 했다.

집에 도착하니 회사에서 보았던 백설기가 또 보였다. 테이블 위에도, 주방에도, 선물용으로 포장된 쇼핑백 안에도 들어 있었다.

“애 이리 줘 봐.”

선우에게서 규원을 받은 문도는 아이를 높이 들었다. 높이 올라가는 걸 좋아하는 규원이 토끼 같은 두 개의 아랫니를 보이며 웃었다. 반달처럼 휘어지는 눈을 보며 문도는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을 보던 선우도 웃었다.

“사진은 저녁 먹고 찍기로 했어요.”

“응.”

“아버님만 괜찮다 하시면 같이 찍는 건 어때요?”

백일이지 않냐며 연락해 온 서중호도 저녁 식사에 불렀다. 물 먹고 내려앉은 사람이긴 하지만 여전히 그룹을 지배하는 영향력은 적지 않았다. 적으로 돌릴 생각은 없었다.

“규원이한테는 그래도 할아버지니까.”

“그래. 난 괜찮아. 아버지도 아마 괜찮다 하실 거야.”

가족이 없는 선우의 마음을 알았다. 아이에게는 단단한 울타리를 만들어 주고 싶을 거였다.

“그리고 여사님도…….”

“우리끼리 한 번 찍고, 어머니 아버지랑 같이 찍고, 장 여사님이랑도 한 번 더 찍어. 세종 내려가면 거기서도 한 번 더 찍고.”

마음이 놓인다는 듯 웃는 선우를 보는데 많은 순간들을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도는 규원을 한쪽 팔로 안고 다른 팔로 선우를 당겨 안으며 말했다.

“우리 둘이서만도 찍어.”

매년, 선우와 둘이서만 사진을 찍어 두어야겠다고 생각을 한다. 먼 훗날 돌아보았을 때 생이 전부 이선우로 가득했으면 좋겠다.

“건너갈까?”

“네.”

문도가 선우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임신을 하고서 아이를 혼자 키우겠다고 결심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흘렀을까. 선우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문도와 규원을 바라보았다.

비스듬히 웃으며 머리카락을 넘겨주는 남편이 있고, 그 품에는 남편과 똑같이 생긴 아들이 안겨 있었다. 하루하루가 행복하고 소중해서 시간이 가는 것이 아까운 날들.

“고마워요.”

그때 나를 잡아 줘서. 혼자 두지 않아서.

“뭐가.”

피식 웃은 문도가 선우의 손을 잡았다. 남편의 손을 맞잡으며 선우는 말했다.

“그냥 다, 고마워요.”

선우의 말에 문도가 가볍게 웃었다. 손을 잡고 본관으로 향하는 길을 걸었다. 가족들과 식사를 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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