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 세상이 끝날 것처럼 내리는(2)
택시가 병원 앞에 도착을 했을 땐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선우는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을 하며 병원 문을 열었다.
저녁 7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 주간 진료가 끝난 병원은 평소와 달리 휑했다. 1층 커피숍에 복닥거리던 사람들도 없고, 산부인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조명만 환히 빛나고 있었다.
괜찮아. 그럴 거야.
선우는 그렇게 생각하며 엘리베이터를 탔다. 자동으로 열리는 출입문 안으로 들어가는데, 바로 앞 대기석에 앉아 있는 남자의 모습이 보인다.
선우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빈 대기석에 혼자 앉아 있던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선우에게로 다가왔다.
“접수는 해 뒀어.”
생각지 않은 서문도의 등장에 멍하니 서 있는데 뒤늦게 생각이 든다. 장 여사님이 전화를 했나 보다.
“피가 났다며.”
선우는 얕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덧붙이듯 말했다.
“괜찮을 거예요.”
실은 남자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다. 불길한 상상은 시작도 하고 싶지 않아서, 괜찮은 것이 예정된 미래라는 듯 그렇게 말을 하게 된다.
“진료부터 받아.”
“네.”
선우는 접수처로 가서 키와 몸무게를 적었다. 혈압도 재서 수치를 기록한 종이를 제출했다.
“이선우 산모님. 2번 진료실로 바로 가시면 돼요.”
이름은 바로 불렸다. 선우는 긴장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2번 진료실로 향하는 선우의 뒤를 문도가 따랐다.
“이선우 산모님, 출혈이 있었다고요?”
“네.”
“우선 초음파를 보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선우는 초음파실로 향했다. 어두운 방의 의자에 길게 누워 옷깃을 비틀어 쥐었다. 차가운 젤이 발리고 탐촉기가 선우의 배를 문질렀다.
“아이는…….”
당직 의사가 여러 번 배를 둥글게 문지르며 화면 속 아이를 살폈다. 아이는 둥글게 몸을 말고 가만히 있었다.
그 모습은 잠이 든 것 같기도 했고, 쉬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덜컥 내려앉는 마음에 선우는 입술을 힘주어 깨물었다. 아니야. 나쁜 생각은 하지 마.
“괜찮은데, 아래쪽에 피고임이 보이네요. 추후에도 하혈이 있을 수 있습니다.”
“아이 건강과는 상관없습니까?”
불쑥 남자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의사가 안경을 치켜올리며 대답을 했다.
“괜찮을 거라 생각하지만, 솔직히 이런 일은 장담드릴 수가 없습니다. 초기에는 여러 변수가 있으니까요. 일단 유산방지주사를 놓아 드릴게요. 붉은 피가 많이 나온다거나, 배가 아프면 병원에 다시 오세요.”
“그게 전부인가요.”
“네. 현재로선 그게 전부입니다. 무리하지 마시고, 안정을 취하시고요.”
“입원을 하는 것도 고려 중인데요.”
남자의 입에서 입원이라는 말이 나왔다. 의사가 고개를 젓는다.
“이 정도 출혈로 입원을 권하지는 않습니다. 이번 주 분만한 산모님들이 많아서 입원실이 차 있기도 하고요.”
“괜찮을 거예요.”
선우는 문도에게 말했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흔한 증상이었다. 이보다 더 많은 양의 출혈을 한 산모들도 별일 없이 지나가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유난을 떨며 입원까지 할 일은 아니었다.
진료실을 나온 선우는 주사실에서 유산방지주사를 맞았다. 무리하지 말고 안정을 취하라는 말을 간호사에게 다시 듣고, 혹시 돌아가는 길에 피가 더 묻어날까 싶어 스테이션에서 생리대를 빌렸다.
“불안하면 입원을 해.”
수납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문도가 말했다. 선우는 고개를 저었다. 불안을 현실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없는 자리를 꿰어 차고 싶지도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집에 가고 싶어요.”
별채라는 말 대신에 집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문도가 가만히 선우를 응시했다. 그러다 창문 너머를 바라본 뒤 말했다.
“오늘은 내 차 타.”
창문 너머로 흩날리는 눈송이가 보였다. 택시에서 내렸을 때 펑펑 내렸던 눈이 그치지 않고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네. 그럴게요.”
대답을 들은 문도가 선우의 가방을 가져가 걷기 시작했다. 별관과 본관 사이의 통로를 지나 지하 주차장으로 함께 내려갔다.
조수석 문을 연 문도는 의자의 등을 뒤로 젖혀 각도를 조절한 뒤 선우를 불렀다.
“불편하면 다시 조절하고.”
“네.”
벨트를 맨 선우는 비스듬히 누웠다. 시동을 켜고 히터를 튼 문도가 다시 차 밖으로 나갔다. 트렁크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이어 다시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덮고 있어.”
자리에 앉은 문도가 건네는 건 큼직한 체크무늬가 있는 담요였다. 가방처럼 접혀 있는 것을 펴니 선우의 몸을 덮을 정도의 크기였다.
누운 채 담요를 덮는 선우를 보더니 문도가 몸을 기울였다. 팔을 뻗어 어깨에서 무릎까지 담요를 반듯하게 펴 주었다. 선우는 입술만 깨물었다. 고맙다는 말이 입안을 맴돌았지만 뱉어지지가 않았다.
“괜찮을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남자의 목소리로 듣는 괜찮다는 말은 헛된 바람 같은 선우의 말과 다르게 들렸다. 정말 괜찮을 것만 같은 안도감을 준다.
“네. 괜찮을 거예요.”
선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차가 천천히 출발을 한다.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 * *
눈이 끊임없이 내렸다. 차창 밖이 온통 하얬다. 떨어지는 눈발의 기세가 무서울 정도였다.
도로의 차선이 보이지 않은 지는 오래되었다. 온통 하얀 눈밭을 비상등을 켠 차들이 엉금엉금 기어가고 있었다.
“아직 신사역 앞인 거죠?”
“응.”
10분이면 지날 곳을 한 시간이 걸려 지나고 있다. 기어가는 수준이긴 해도 늘어선 차들이 조금씩 움직이는 중이라 기다리며 나아가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도착하면 깨워 줄 테니까, 한숨 자.”
문도는 선우에게 말했다. 선우는 네, 하고 대답을 했지만 눈을 감지는 않았다. 떨어지는 눈송이들 너머의 어딘가를 보며 입술을 말아 물 뿐이다.
차는 30분이 넘도록 제자리였다. 와이퍼가 눈을 밀어내는 소리가 차 안을 메웠다. 문도는 달칵, 차 문을 열었다. 그 소리에 선우가 휙 고개를 돌려 문도를 보았다. 불안한 눈빛으로 문도를 본다.
“상황 좀 보고 올게.”
“네.”
알겠다고 대답을 하는 선우가 문도에게 시선을 떼지 않는다. 창백하게 질린 얼굴이 눈보다 하얬다. 문도는 차분히 선우에게 말했다.
“금방 올게.”
얕게 고개를 끄덕이는 선우를 두고 문도는 밖으로 나왔다. 차 안에서 보았던 것보다 상황이 심각해 보인다. 흩날리는 눈발에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데, 차는 끝없이 늘어서 있었다.
문도는 길을 따라 걸었다. 눈에 발이 푹푹 파묻혔다. 코트 깃 사이로 눈보라가 휘몰아친다. 비상등을 켜고 있는 차들 사이를 지나 50미터쯤 걸어가니 한남대교로 진입을 하는 구간에 차들이 엉켜 있는 모습이 보였다.
문도처럼 하나둘 밖으로 나와 보는 운전자들이 늘어났다. 퇴근길 교통 상황과 맞물린 폭설은 도심 한가운데에서 사람들을 고립시키고 있었다.
“미치겠네. 제설 차량은 언제 오는 거야.”
“못 온다는데요. 저쪽 논현동 고갯길에서 후륜구동 차들이 미끄러져서 꽉 막혔대요.”
“대교만 건너면 그래도 어떻게 될 것 같은데. 앞에 아무래도 사고 난 것 같죠?”
도심 곳곳이 난리 났다는 소식이 운전자들 사이에 알음알음 전해졌다. 대강의 상황을 파악한 문도는 다시 뒤를 돌았다. 길은 다시 눈이 하얗게 덮여 있었다. 사라진 발자국 위에 다시 새로운 발자국을 만들며 걸었다.
“앞에 접촉 사고가 난 것 같아. 정리가 되려면 시간이 걸릴 것 같고.”
되돌아오는 모습이 보일 때까지 걱정이 반, 긴장이 반이었던 선우는 얕게 한숨을 쉬었다. 눈보라를 헤치고 되돌아온 문도의 어깨와 머리에 하얀 눈송이가 달려 있었다. 차 안으로 들어오기 전 털어 내는 모습을 보았는데도, 그사이 다시 앉은 모양이다.
“천천히 풀리겠죠?”
“아마도.”
온풍으로 따뜻한 차 안에 남자의 주위에만 냉기가 있었다. 곧 풀리겠지. 그럴 거야. 선우는 불안한 마음을 눌렀다. 유산방지주사도 맞았고, 출혈량도 많지 않았다.
다시 적막이 내려앉았다. 문도가 라디오를 틀고 주파수를 맞추었다.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채널을 틀어 놓고 묵묵히 앞을 본다.
차는 조금씩 앞으로 움직였다. 완만한 경사가 있는 진입 구간이 교차하는 곳에 다다랐을 때였다. 반대편 차선에서 움직이던 버스가 어느 순간 주르르 미끄러지더니 쿵 소리를 내며 앞차 두 대를 한꺼번에 박아 버렸다.
삐용삐용 요란한 경적 소리가 울리며 쿵, 쿵, 쿵 차들이 연속으로 부딪혔다. 여기저기서 경보음이 울리고 미끄러지며 돌아가는 차들까지, 반대편 도로가 삽시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하는 모습이 보였다.
쿵.
건너편 차선의 차가 옆으로 돌며 안전봉을 밀고 문도의 차에 부딪혔다. 운전석 뒷부분의 문에 쿵, 하는 충격이 오며 차체가 흔들렸다.
“괜찮아?”
순간적으로 선우에게 팔을 뻗은 문도가 물었다. 느린 부딪힘인 데다 안전봉이 한 번 막아 줘서 충격은 크지 않았는데 선우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는 것이 보였다.
“아…….”
얼어붙은 선우의 눈동자에 공포가 어렸다. 아랫배를 감싼 손이 덜덜 떨리는 것이 보였다.
“어떡……하죠…….”
선우의 눈시울에 삽시간이 눈물이 차올랐다.
“왜.”
“피가……. 피……가.”
울컥하고 흘러나온 커다란 덩어리가 느껴졌다. 선우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담요를 잡았다. 차마 들춰 보지 못하고 눈물만 뚝뚝 흘리는데 문도가 선우의 손을 치운 뒤 담요를 들추었다.
베이지색의 모직 바지에 붉은색 얼룩이 번지고 있었다. 아니. 아니야. 선우는 번져 가는 피를 바라보다 두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괜찮을 거야. 주문처럼 외웠던 말이 더는 생각나지 않았다.
“안 돼……. 우리 튼튼이……. 어어어.”
선우는 울음을 터트리며 배를 감싸 쥐었다. 높아지는 울음소리 위로 새하얀 눈이 무정하게 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