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 만둣국(2)
걸을 때마다 비닐봉지가 허벅지에 부딪혔다. 바스락, 소리를 내며 부딪히는 하얀 비닐봉지 안에서 출렁거리는 물소리가 들렸다.
별채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누른 뒤, 문도는 긴 숨을 내쉬며 벽에 이마를 기댔다. 소주와 양주가 섞인 술 냄새가 공기 중에 섞여 들었다.
느리게 감겼다 떠지는 눈꺼풀 사이로 반질반질한 구두코가 보였다. 주차장 바닥의 콘크리트와 그사이에 그어진 실금들까지 선명히 보인다. 씨발, 뭐가 이렇게 잘 보여.
눈깔을 파내 버릴까.
쓸데없이 시력만 좋아선 이선우의 처량 맞은 표정들을 전부 보아 버렸다. 달달 떨리던 숟가락을 들었던 모습이, 고개를 들지 않고 죄지은 사람처럼 만두를 입에 넣던 모습이, 눈물로 젖어 든 원망의 눈동자가.
왜 그렇게 잘 보여서, 지워지지도 않는 건지.
이어지는 회식을 핑계로 제법 마셨는데 취하지도 않았나 보다. 전부 다 기억이 나는 걸 보면.
띵, 하고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알림음에 문도는 고개를 들었다. 휘청 걸어 들어가 습관처럼 2층을 누르려다 픽 웃었다.
가져다줘야지. 그렇게 먹고 싶었던 거라는데. 나 때문에 못 먹은 건데.
2층 버튼에서 손가락을 미끄러뜨려 1층 버튼을 눌렀다. 피식 웃으며 숨을 한 번 쉬고 나니 1층이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문도는 비닐봉지의 손잡이를 단단히 쥐고, 고개를 돌렸다.
며칠간 근처에도 가지 않았던 곳이 보였다. 은은한 불빛이 새어 나오던 곳. 도란도란 장 여사와 이야기를 나누는 목소리가 들려오던 곳. 한 번씩 새벽에도 불이 켜져 있던 곳.
길고 좁은 복도의 끝에 있는 이선우의 방.
후, 숨을 가다듬은 문도는 흔들리지 않고 걸었다. 문 앞에 서서 지그시 눈을 감았다가 뜬 뒤 똑똑 노크를 했다.
“네, 여사님.”
당연히 장 여사인 줄 알고 대답을 하는 이선우의 목소리가 밝았다. 잠시 후면 차갑게 가라앉을 것을 아는데, 그래도 좋았다.
“아…….”
문을 연 이선우가 그대로 멈췄다. 금방 샤워를 마친 건지 얼굴이 말갰다. 말간 얼굴 뒤로 새로 꾸며 준 방의 모습이 보였다. 시안과 사진으로만 접했던 방을 제대로 보는 건 처음이다. 문도는 방 안의 풍경을 천천히 눈으로 훑은 뒤, 물었다.
“방은, 마음에 들어?”
선우는 술 냄새를 풍기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이 방에 머문 지 열흘이 지났다. 3일에 한 번씩 꽃병 사이즈에 맞춘 꽃다발을 배달시키고, 자기 마음대로 공기청정기에 가습기까지 넣어 주고선 이제 와 물어보는 건 뭘까.
물끄러미 바라보았더니 문도가 비스듬히 웃는다. 눈을 꾹 감아 버리고 싶어지는 미소였다. 밤의 남자는 나른하고, 위험하고, 낮게 가라앉아 있어서.
“마음에 안 들어도 그냥 살아.”
목소리에도 잠겨 드는 기분이 든다.
“네. 그럴게요.”
선우의 대답에 문도가 그래, 라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술 냄새는 짙게 풍겨 오는데 선우를 보고 있는 눈빛은 또렷했다. 다시 한번 천천히 방을 둘러본 남자는 방바닥에 무거워 보이는 흰 비닐봉지를 내려놓았다.
“포장해 왔으니까, 먹고 싶을 때 먹어.”
선우는 바닥에 놓인 비닐봉지 사이로 보이는 플라스틱 용기를 바라보았다. 고명과 만두, 육수까지 따로 담겨 있는 모습에 목이 막혀 왔다.
“아뇨, 괜찮아요.”
“그냥, 좀.”
말을 하다 말고 문도가 선우를 내려다보았다. 남자의 숱이 많은 머리카락이 이마로 흘러내려 눈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음영이 번진 눈동자로 선우를 보던 문도가 마른침을 넘기고 말했다.
“먹어. 아이 생각해서라도.”
선우의 눈동자가 문도를 향했다. 곧게 뻗은 선우의 시선이 깨끗했다. 문도는 문득 처음부터 그랬다는 생각을 했다.
면접을 보았던 첫날부터 이선우의 눈빛은 깨끗하고 곧았다. 서투른 유혹을 해 왔을 때도, 거짓말로 좋아한다고 말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보게 하는 눈. 문득 생각이 나면 가슴이 지끈거리는 눈. 외롭고, 곧고, 슬프고, 아름다운. 그리하여 나의 바닥을 흔들어 버리는 너의 눈.
“내가 어떻게 할까.”
입이 열리고 말이 흘러나왔다. 머리가 아닌 마음 어딘가에서 기어올라 온 말이었다.
“어떻게 하면 날 좀 덜 미워할래.”
이선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떨리는 빛을 머금은 눈동자는 할 말이 아주 많아 보이기도 하고, 전부 삼켜 버려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열린 목구멍으로 다음 말이 기어올라 왔다. 절벽을 오르는 것처럼 갈퀴를 걸어 한 발씩 한 발씩 올라온 말이 입 밖으로 뱉어졌다.
“선우야.”
말해 놓고 보니 별거 아니었다. 그저 조금 뜨끈하고 쓰라린 말이다. 건널 수 없는 깊은 강물 사이로 선우의 이름이 풍덩 가라앉는다.
“할 말 다 하셨으면, 이제 그만……. 나가 주셨으면 좋겠어요.”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선우가 말했다. 문도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병원만 같이 가. 네 바람대로 내버려 둬 줄 테니까.”
놓아줄 수도 없는데 아프게는 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존재 때문에 힘들다면, 그래서 밥도 못 먹을 정도라면.
“알겠어요.”
뒤늦게 취기가 올라오는지, 대답을 하는 이선우를 한 번만 안아 보고 싶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번만. 눈을 질끈 감고서 숨을 깊이 쉴 동안만.
문도는 그 대신 빈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바닥에 떨구어 놓은 만둣국이 세상 다시없이 초라해 보였다.
“주무세요.”
돌아가야 하는 걸 아는데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가슴에 걸려 있던 마지막 미련 한 조각이 남는다.
“아이 사진.”
문을 닫으려던 선우가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 초음파 사진 두 장이 모두 선우에게 있었다. 그는 당연히 원치 않을 거라 생각을 했는지 산모 수첩 안에 끼워 넣어 가져가 버렸다.
“한 장만 줘.”
선우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마음에 들지 않는 건가. 못 할 말을 했나. 나도 아이에게 절반은 권리가 있는데. 물론 아무것도 해 준 건 없지만, 그래도.
“잠시만요.”
화장대로 향한 선우가 산모 수첩을 꺼냈다. 사진 한 번, 그를 한 번 보더니 망설이다가 들고 온다. 마지막으로 건넬 때까지도 마음 내켜 하지 않는 얼굴이었다.
“글씨 쓴 건, 그냥……. 신경 쓰지 마세요.”
건네주는 사진을 보니, 하얀 테두리 여백에 선우의 글씨가 쓰여 있었다.
‘사랑하는 우리 튼튼이. 10주 2일’
문도는 사진 아래의 글씨를 엄지로 쓸었다. 구겨질까 봐 모서리를 집고 피식 웃었다. 동그란 글씨가 귀엽다는 생각을 한다.
“아이는 너를 닮았으면 좋겠어.”
그 말을 끝으로 문도는 뒤를 돌았다. 아이는 이선우를 닮기를 바란다. 이선우의 사랑을 듬뿍 받는 모습에 질투가 나도 미워할 수 없도록. 그의 사랑까지 전부 다 가져갈 수 있도록.
아이는 선우를 닮았으면 좋겠다.
* * *
잠이 오지 않았다.
뒤척이다가 결국 일어나 앉은 선우는 협탁의 스탠드 불을 켰다. 무언가가 꾹 누르는 것처럼 가슴이 답답했다.
“낮잠을 너무 많이 잤나 봐.”
적막한 방 안에 선우의 목소리가 울렸다. 11주가 다 되어 가니 눈으로도 보일 만큼 배가 살짝 나왔다. 전에 입었던 바지를 입으면 허리가 답답하고 불편할 정도였다.
선우는 습관처럼 아랫배에 손을 올렸다. 다독다독 도닥이며 휘잉— 바람 소리가 나는 바깥을 보았다. 한 뼘 정도 열려 있는 커튼 틈새로 어둠이 보인다. 남자의 가라앉은 눈동자를 떠올리게 하는 어둠이었다.
마음이 바짝 말라 건조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서문도를 보아도 아무렇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맛집을 알려 주었던 택시 기사 아저씨나 동네를 산책하다가 만나는 복슬복슬한 털강아지의 주인. 그 정도로 멀어서 마음 없이 웃어 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튼튼이를 빨리 만났으면 좋겠다. 그럼 좀 편해질 거 같은데.”
아이가 있으면 온 신경이 아이에게 쏠릴 테니,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아이에게 말해 보았다.
‘튼튼이’라고 정식 태명은 아니고 별칭처럼 부르고 있었는데, 그걸 남자에게 들킨 걸 생각하니 얼굴이 조금 뜨거워진다.
그나마 나은 사진으로 골라서 준 거였다. 다른 사진에는 빼곡하게 아이를 향한 구구절절한 심경이 쓰여 있었으니까.
피식 웃었던 마지막 표정이 생각난다. 아이는 너를 닮았으면 좋겠다는 알 수 없는 말도 자꾸 떠오르고,
‘선우야.’
담담히 불렀던 그 이름이.
후우. 선우는 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괜히 한 번 화장대를 살폈다가 커튼도 다시 여몄다. 왜 이렇게 속이 답답한 건지.
꼬르륵.
그 와중에 배는 고파 왔다. 임신이라는 게 그다지 숭고한 일이 아니라는 걸 이런 때에 깨닫는다.
짐승처럼 배가 고프고, 통제할 수 없는 생리 현상에 시달린다. 매시간이 불편하고 거북한 게 임신이었다.
불을 켠 선우는 주방으로 향했다. 속이 비는 걸 염려한 장 여사가 냉장고에 이런저런 음식들을 넣어 두었다. 냉장고 문을 여는데 제일 가운데에 아까 넣어 둔 만둣국이 보였다.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냉장고 문을 닫았다. 다른 걸 꺼내 먹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냥, 마음이 턱 막혀 온다.
선우는 냉장고 문에 등을 기댄 채 한참을 서 있었다. 먹고 싶은데, 먹기 싫었다. 먹기 싫은데, 먹고 싶었다.
이게 어떤 마음인지, 왜 만둣국 한 그릇에 이다지도 복잡한 마음이 드는 건지. 두 손으로 얼굴을 덮고서 길게 숨을 뱉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선우는 뒤를 돌아 다시 냉장고 문을 열었다. 배가 많이 고팠다. 따뜻한 국물이 먹고 싶었다. 잡내 없이 칼칼했던 만두가 먹고 싶었다.
인덕션 위에 작은 냄비를 올리고, 포장을 풀어 육수부터 넣고 팔팔 끓였다. 따로 포장되어 있는 만두를 넣고 조금 더 끓인 뒤 그릇에 부었다. 양념이 된 고명을 얹은 다음 수저와 함께 식탁으로 들고 왔다.
“후우.”
뜨겁게 김이 나는 만두를 후후 불어서 입에 넣었다. 하나를 먹고, 또 하나를 먹었다. 국물을 마셨다가 다시 하나를 더 먹었다. 따뜻한 국물에 속이 풀어지며 온기가 돌았다.
맛있어.
한 그릇을 깨끗하게 비운 뒤, 선우는 긴 숨을 쉬었다. 아이를 가지고 나서 먹은 음식 중에 제일 맛있는 한 그릇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