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만둣국(1)
며칠은 이선우와 마주치지 않고 지냈다. 이른 아침에 출근을 하며, 식사는 본관에서 했다. 퇴근은 늦게 하고 주차장에서 2층으로 직행했다.
“날씨가 많이 추워졌어요. 유자차 담근 거 있는데, 한잔 드릴까?”
새벽을 가르고 본관으로 건너온 문도에게 장 여사가 물었다. 아닌 게 아니라 날씨는 가파르게 추워져 본관으로 건너오는 동안에도 하얗게 입김이 솟았다.
“됐어요.”
장 여사가 따뜻하게 끓인 수프와 토스트 한 쪽을 차려 주었다. 문도는 습관처럼 물었다.
“이선우는요?”
“잘 지냈어요. 그런데 어째 잘 못 먹네.”
아침 식사를 하는 동안 선우가 숙소동의 조리사에게 손뜨개를 배우는 이야기, 엷게 끓인 된장국과 아무것도 넣지 않은 토마토 주스로 연명하고 있는 이야기, 중간중간 낮잠을 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번에는 만둣국이 먹고 싶다길래 얼른 끓여 줬는데, 두 개 먹고 숟가락을 놓더라고요. 맘이 여려서 그런지 해 주면 꼭 몇 숟갈씩은 먹긴 하는데, 시원찮아요. 먹고 싶은 게 있어도 말을 잘 안 하는 것 같아.”
어느 날은 빵이 먹고 싶었던 모양인지 산책을 다녀온다더니 각종 빵을 한 아름 사서 들어왔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숙소동 직원들에게, 장 여사와 양 집사에게까지 골고루 안긴 뒤 작은 머핀 반쪽을 먹었다고. 그나마도 먹고 나서 토를 하고 말았다고.
“세종에 갔다 왔던 거, 선우 씨는 모르죠?”
장 여사가 문도에게 물었다.
“알아서 뭐 하게요.”
병원에 다녀오기 전날, 세종에 내려가 정미숙을 만났다. 아이를 낳을 때까지 선우를 데리고 있겠다는 요지의 말을 전하고 싸늘한 눈초리를 받았다.
“엄마가 해 주는 음식이 먹고 싶을 텐데.”
장 여사가 커피를 내어 주면서 말했다. 아무리 남이 맛있는 음식을 해 줘도 허기가 가시지 않을 거라고. 마음이 데워지는 건 자라면서 먹었던 음식일 텐데, 도통 무언가를 해 달라는 말이 없다고.
“오늘은 뭐 한대요?”
“낮에 친구 만나서 점심 먹고 오겠대요.”
“기사 붙여 보내요.”
“전무님도 못 하는 걸 내가 무슨 수로.”
퉁명스럽게 말하는 장 여사의 목소리에 문도는 씁쓸하게 웃었다.
이선우는 고집스럽게 본가의 차를 이용하지 않는다. 멀리 가고 싶을 땐 택시를 탔고, 가까운 거리는 지하철을 이용했다. 마치 내 삶은 원래 이러니 함부로 끼어들지 말라는 듯이.
“배 아픈 건 어떻대요?”
질문을 하니 장 여사가 한심하게 보았다. 그런 건 네가 직접 물어보지 그러냐는 표정을 숨기지 않으며 대답을 한다.
“임신은 원래 힘든 거라 뚝딱 나아지고 그런 게 아니고. 그냥 내내 힘든 거예요. 그러니까 잘 좀.”
잘해 주라는 말을 하다 말고 삼켜 버리는 장 여사였다. 어머니도, 장 여사도 미래의 일을 묻지 않았다. 어떻게 할 거냐, 결혼을 해야 하지 않냐, 아이는 누구 호적에 올릴 거냐. 무엇도 묻지 않고 간섭하지 않았다.
“방법을 모르겠는걸.”
문도는 식어 가는 커피를 마시며 답했다.
정말 그랬다. 잘해 줬던 날이 분명 있었는데, 아무렇지 않게 머리를 쓰다듬고 이마에 입을 맞추었던 날이 있었는데 까마득했다.
건널 수 없는 강이 두 사람 사이를 메우고 있는 기분이다. 건너가려 발을 내디디면 바닥이 없는 깊은 물이라 볼썽사납게 허우적거릴 뿐이다.
상처 주는 말이나 안 하면 다행이지.
“그래도 지난번에 전무님이 사 왔던 두부 과자는 싹 먹었더라고요. 그런 거 보면 참 신기해.”
몇 번, 장 여사로부터 선우가 자신이 잘 먹었던 음식을 거북해하지 않고 넘기더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씁쓸한 맛이 도는 씀바귀 김치를 먹으며 쓴데 속이 가라앉는다고 했다든지, 달지 않게 국간장으로만 조린 장조림을 몇 번씩 집어 먹었다던지. 그 이야기가 생각나 점심을 먹으러 들렀던 메밀국수집에서 사 온 과자였다.
“몇 봉 더 사다 주지 그랬어요.”
“그랬죠. 그런데 한 봉 먹더니 손을 안 대더라고요. 딱 그때만 땡겼나 봐.”
두부 과자. 억지로 붙잡아 와서 해 준 게 그거 하나라는 거에 문도는 쓴웃음을 삼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출근할게요.”
차차 적응하겠지. 문도는 그렇게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아현과 헤어진 선우는 손을 흔들어 택시를 잡았다.
“부암동 다온 손만두 앞에 세워 주세요.”
며칠 동안 계속 먹고 싶었던 만둣국을 이제 먹으러 간다. 몇 번이나 나와서 먹고 들어갈까 생각했지만, 아현과 약속을 잡은 날이 있어 그날 한 번에 나갔다가 오려고 꾹 참았었다.
임용 막바지 준비를 하는 아현이기에 오랜 시간을 뺏을 순 없어 시험공부를 하고 있는 학원 근처의 카페에서 차만 간단히 마셨다.
만둣국을 먹으러 가자고 말을 건네 볼까 했지만, 동네가 멀어도 너무 멀어서 맛있는 식사는 시험이 끝나면 같이 하자고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그때쯤엔 배가 불러 오려나. 그럼 말을 해야겠지. 뭐라고 해야 할까.
주변 사람들에게 알릴 생각을 하면 아직은 막막했다. 선우는 차창 너머로 어둠이 내리고 있는 한강을 바라보았다. 12월이 되어 그런지 이젠 정말 겨울 날씨였다. 6시도 되지 않았는데 하늘은 어두웠고 도로를 달리는 차들도 헤드라이트를 켜고 있었다.
“부암동으로 만둣국 드시러 가시나 봐요.”
차가 많아져 속도가 나지 않자 기사가 말을 걸어왔다.
“네.”
“거기 만둣국 맛있죠. 내려오다 보면 북촌에 칼국수도 괜찮아요.”
“아, 정말요?”
“고 아래 안국동에 곰탕도 괜찮고.”
맛집 정보를 전해 준 기사는 차가 밀린다며 라디오를 틀더니 노래를 흥얼거렸다.
선우는 뭉근히 아파 오는 배를 한 손으로 감싸며 차창 밖의 풍경을 보았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바람에 속이 많이 울렁거렸지만 조금만 버티자고 생각하며 멀미를 견뎠다.
노량진에서 부암동까지 생각보다 오래 걸려 도착을 했다.
택시에서 내린 선우는 크게 숨을 쉬었다. 시린 공기를 가득 마신 뒤 가방을 움켜쥐고 불빛이 켜진 이층집을 향해 걸었다. 정원을 지나고 주차장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는데 육수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드디어 먹으러 왔네.
선우는 속으로 배 속의 아이에게 말해 보았다.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이건 자신이 당기는 게 아니라 아이가 당기는 것 같았다. 한 번 먹었던 음식이 이렇게 사무치게 먹고 싶을 리가 없을 테니.
식당 안으로 들어가니 직원이 2층의 넓은 방으로 안내를 해 주었다. 저녁 식사 시간이 되어서 그런지 다른 테이블에도 손님들이 제법 있었다. 2인용으로 마련해 둔 창가의 좁은 자리에 앉은 선우는 우선 주문을 했다.
“만둣국 한 그릇만 주세요.”
만둣국만 먹으면 울렁거리는 속이 싹 가라앉을 것만 같았다. 그때 맛있긴 했어도 특별히 맛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는데 생각만 해도 입에 침이 고였다.
혼자서 멍하니 기다리고 있기가 뭐해서 핸드폰을 꺼냈다. 인터넷을 켜고 가입해 둔 맘카페에 접속을 했다.
가뜩이나 냄새에 예민한데, 남편이 베란다에서 라면을 끓여 먹는 바람에 속이 뒤집혀 구토를 했다는 이야기를 읽는다.
기껏 끓인 라면을 한 입도 못 먹고 버린 남편도 불쌍하고, 문이 닫힌 베란다에서 나는 라면 냄새를 맡고 토하는 자기도 불쌍해서 엉엉 울어 버리고 말았다는 글을 읽으며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나만 그런 건 아니었구나. 위안도 받고 안도도 하며 다음 글을 클릭하는데 입구에 여러 명의 사람들이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무심히 고개를 들었다가 마주친 얼굴에 멈칫 몸이 굳었다.
“갑자기 만둣국을 사 주시겠다고 하시고, 잘 먹겠습니다. 전무님.”
“식사하러 부암동까지 온 건 처음이죠?”
눈에 띄는 훤칠한 남자들 무리 속에 서문도가 있었다. 선우와 눈이 마주친 남자는 자리에 앉으면서도 이쪽을 보고 있었다.
테이블은 거리가 있는데, 자리가 마주 앉은 형국이었다. 선우는 핸드폰으로 시선을 내렸다. 게시글을 눌러 스크롤을 아래로 내렸지만 무슨 내용인지 하나도 읽히지 않는다.
왜 하필.
꼬박 일주일을 기다렸다가 먹으러 왔는데. 하필 오늘 여기로 밥을 먹으러 왔을까. 날을 잘못 잡았다는 생각과 동시에 굳이 여기까지 밥을 먹으러 온 남자가 원망스러웠다.
“만둣국 나왔습니다.”
핸드폰만 바라보고 있는데 직원이 따끈한 김이 오르는 만둣국을 앞에 내려 주었다. 물끄러미 만둣국을 바라보던 선우는 숨을 마신 뒤 숟가락을 들었다.
앞접시에 만두를 하나 꺼내 놓고 숟가락을 들었다. 가늘게 손이 떨려 왔다. 건너편에 앉은 남자 때문인지, 먹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자신의 처지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도.
너무 먹고 싶었던 거라 선우는 만두에 숟가락을 가져다 댔다. 간장을 조금 적신 뒤 반을 갈라 입에 넣는데 건너편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속이 비틀린 듯 아파 오며 울렁거렸다. 고개를 숙인 선우는 만두를 입에 넣고 씹었다. 국물도 떠서 입에 넣고, 고명으로 올라간 잘게 찢은 양지도 입에 넣었다.
그렇게 만두 한 개의 절반을 먹고, 남은 반쪽의 만두에 수저를 가져다 댈 때였다. 욱, 하고 구역질이 올라오려 했다.
선우는 손등으로 입을 막고 질끈 눈을 감았다. 울렁거렸던 속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가 천천히 다시 눈을 떴다. 고개를 드는데 뚫어져라 선우를 보고 있는 서문도와 눈이 마주친다.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 자리를 떠야겠다고. 더는 먹을 수 없겠다고.
하지만 내내 먹고 싶었던 한 그릇이었다. 조금이라도 더 먹어 보고 싶은 미련에 다시 숟가락을 들었다. 고개를 숙인 채 국물을 뜨는데 손이 달달 떨려 왔다. 입술까지 가져온 국물을 입에 흘려 넣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읍.”
결국 속이 뒤집혔다. 식당에서 토할 수 없는 노릇이라 입을 틀어막고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아직 만두가 그득히 남아 있는 그릇이 보였다. 울컥 서러움이 솟았다. 그럴 일이 아닌 걸 아는데도 그랬다.
다음에 먹자. 다음에.
마음을 다지며 눈가를 훔친 선우는 빌지를 들었다. 남자가 있는 쪽은 시선도 두지 않고 룸을 나와 계단을 내려오는데 뒤를 따르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걸음 소리만 들어도 서문도인 것 같았다. 선우는 걸음을 빨리하며 계단을 내려갔다. 그러다 턱에 걸려 비틀거리는 순간, 강한 힘이 선우의 팔을 잡았다. 반사적으로 뒤를 돌았더니 낮게 가라앉은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내가 있어서 못 먹는 거지?”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고개를 돌리며 팔을 뿌리치려는데, 서문도가 다시 그녀를 잡았다.
“먹고 와. 내가 갈 테니까.”
“아니요.”
“먹고 싶었던 거잖아.”
“이젠 아니에요.”
차갑게 말하는 선우를 남자가 돌려세웠다. 밝게 타고 있는 눈동자로 선우를 응시하더니 깊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내가, 그렇게 싫어?”
울컥 마음이 솟지만 선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왜 하필 오늘이었는지, 내내 기다렸던 만둣국인데 그거 한 그릇 맘 편히 먹으면 안 되는 건지. 왜 많고 많은 자리 중에 시선이 닿는 곳에 있었는지.
“놔주세요. 일행분들 있으시잖아요.”
“상관없어. 데려다줄 테니까 만두는 포장해서.”
남자가 빌지를 빼앗아 드는 순간 눈물이 속수무책으로 고여 들었다. 그냥 가게 내버려 두지. 왜 쫓아와서 끝까지 나를 초라하게 해. 선우는 원망을 감추지 못하고 말했다.
“왜……. 나한테 왜 이래요?”
고였던 눈물이 뺨으로 흘러내린다. 선우는 손등으로 거칠게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나 좀, 편하게……. 그냥 좀 내버려 두면. 그래 주면 안 되는 거예요?”
서문도가 뻣뻣이 굳는다. 선우는 남자의 팔을 뿌리치고 계단을 내려왔다. 그냥 다, 모든 게 다 엉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