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 다시, 별채
“오늘 선생님이랑 마지막 수업이 될 거라고 말했었죠?”
수업을 마친 선우는 개나리반 아이들을 모아 놓고 말했다. 여섯 살 여자아이들이 올망졸망 앉아 네에, 하고 대답을 했다.
“그래서, 선생님이 오늘은 개나리반 친구들에게 줄 선물을 준비했어요.”
선우는 교실 한쪽에 두었던 쇼핑백을 가져왔다. 사이즈별로 준비한 핑크색 튀튀 스커트와 토끼 모양 간식 꾸러미가 든 쇼핑백을 아이들 앞에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이건 유주 꺼. 수아 꺼. 자, 마지막으로 지안이 꺼.”
아이들이 와아, 소리를 지르며 스커트를 꺼내 보았다. 방글방글 웃는 얼굴을 보며 선우도 미소를 지었다.
“선생님, 그럼 이제 선생님 못 보는 거예요?”
수아가 토끼 모양 간식 꾸러미를 들고서 선우에게 물었다. 유난히 선우를 잘 따르던 아이였다. 바라보는 눈에 눈물이 울멍울멍 고여 있었다.
“아니이.”
선우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미소를 지어 주었다.
“왜 못 봐. 선생님이 놀러 올 건데. 길을 가다가 볼 수도 있고, 선생님이 놀러 올 수도 있는데.”
웃으면서 하얀 거짓말을 한다. 비죽비죽 울음을 참는 수아를 안아 주며 선우는 교실 한편의 사물함을 가리키며 말했다.
“선생님 보고 싶으면 사진 저기 우리 찍어 놓은 사진 봐도 되고. 그치?”
아이들은 누군가를 금방 따르기도 하고 금방 잊기도 했다. 전에 맡았던 선생님이 돌아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선우를 잊고서 방실방실 웃으며 폴짝폴짝 뛰어다닐 것이다. 그 사실이 위안이 되었다.
“자 그럼 오늘 수업은 여기서 끄읕.”
수업 종료를 외친 선우는 아이들 외투를 단단히 입히고 구두와 운동화를 꼼꼼히 신겼다. 노란 승합차에 차례로 태워 안전벨트도 두 번씩 확인하며 매어 주었다.
“지안이 안녕~”
“유주도 안녕~”
“수아도, 안녕~”
마지막으로 수아를 엄마에게 인계하고 난 뒤 선우는 손을 흔들었다. 총총 땋은 머리를 한 수아가 길 끝에서 뒤를 돌아보며 선우에게 손을 흔들었다.
“안녕.”
선우는 작게 소리 내서 말했다.
오늘로 닷새가 지났다. 떠날 준비는 되어 있었다.
“이모.”
퇴근하며 미숙의 집에 들른 선우는 손에 들려 있던 쇼핑백부터 내밀었다.
“이게 뭐야?”
“오는 길에 사 왔어요. 맛있어 보여서요.”
이모가 좋아하는 빵집의 빵과 케이크를 넘겨주며 말했다. 그나마 견디기 쉬운 냄새 중에 하나가 빵 냄새와 커피 냄새였다.
“너 주려고 내가 끓여 봤는데, 맛이 어떨지 모르겠다. 전에 혜숙이가 너 가졌을 때 이것만 그렇게 먹었거든.”
미숙이 뒷베란다에서 냄비를 들고나왔다. 엄마도 좋아하고 선우도 좋아했었던 콩비지찌개였다.
“저 이거 좋아하는데.”
“알지. 양념간장도 해 놨어. 비벼서 먹을래?”
육수에 불린 콩 간 것을 넣어 김치와 함께 끓인 비지찌개를 받은 선우는 밝게 웃었다. 흰 밥을 말아 양념간장을 넣어 비볐다. 한입을 가득 먹고서 미숙에게 말했다.
“맛있어요.”
“다행이다. 도통 뭘 못 먹어서 걱정했는데.”
선우는 애써서 입안의 음식을 삼켰다. 어쩌면 이모가 해 주는 마지막 음식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힘들어도 끝까지 비웠다.
“학원은 오늘로 그만둔 거지?”
“네.”
“대학원 준비할 거라고?”
“네. 배불러 오면 어차피 수업은 못 할 거 같아서요.”
평상시처럼 웃으며 차를 마셨다. 주말인 내일, 이모는 더 추워지기 전에 이모부와 함께 월정사에 다녀오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저도 여행 다녀오려고요.”
“너도?”
“인터넷 보니까 아이 낳으면 당분간 여행은 꿈도 못 꾼다고 하더라고요. 배 속에 있을 때 부지런히 다니래요.”
“그건 맞지. 서윤이만 해도 데리고 어디 갈 때면 짐이 한 보따리야. 그래서 어디 다녀올 건데?”
“제주도요. 요즘 한달살이 하는 곳들이 많이 있대요.”
선우는 목적지를 확실히 말했다. 인터넷에서 찾아 둔 숙소 사진도 미숙에게 보여 주었다.
“천천히 쉬면서 바닷가 산책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선배 언니도 거기서 만나기로 했어요.”
혹시 혼자 다녀온다는 걸 걱정할까 봐 은정 선배도 팔았다. 일단은 아무도 찾지 못할 곳에 숨는 게 우선이었다.
반전세로 얻은 집은 나중에 매물로 내놓으면 될 거였다. 그땐 이모에게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고 처리를 해 달라고 부탁을 할 생각이다.
“제주도 좋지. 얼마나 있다 올 건데?”
“일단은 보름 정도 생각하고요, 더 있고 싶으면 조금 더 있을 수도 있어요.”
집은 깨끗이 정리를 해 두었다. 인터넷과 TV, 정수기 렌탈 서비스는 해지를 했다. 당분간 생활할 돈도 현금으로 찾아 놓았다.
“그래도 늘 몸조심하고.”
“네. 조금이라도 안 좋으면 병원 바로 갈게요.”
월정사에 잘 다녀오시라고 인사를 하고, 맛있는 것을 사 드시라 봉투도 억지로 쥐여 드렸다. 지하의 주차장까지 따라 내려온 이모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한 뒤, 시동을 걸었다.
서교동 329번지.
아무 곳에도 적어 두지 않은 주소를 속으로 되뇌며 선우는 오송역으로 출발했다.
쉬이익, 귀를 먹먹하게 하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선우는 창밖을 보았다. 어두운 밤, 보이는 것은 멀리서 빛나는 어딘가의 불빛뿐이다.
용산이 종착역인 열차는 이제 막 광명을 지났다.
들고 있는 핸드백 이외의 짐은 다리 맡에 놓아둔 16인치 작은 캐리어 하나가 전부였다. 낡아서 상처가 많이 난 캐리어를 보는데 힘없는 웃음이 나왔다.
공연이나 대회 스케줄을 다닐 때 기내용으로 들고 다니라고 아빠가 선물해 준 거였다. 저걸 들고 별채도 갔었고, 쫓겨 나와 다시 집으로도 왔었다.
네가 같이 있었구나. 아주 혼자는 아니었네.
짙은 녹색의 낡은 트렁크에게 말을 걸었다. 삶의 여정을 동반했던 낡은 가방만을 들고 이제는 다시 서울로 간다.
고민이 많았다. 외국도 생각했었고 강릉이나 제주도도 생각했었다. 들고 나는 사람이 많이 있는 관광지와 작은 소도시들을 인터넷으로 매일 밤 헤매고 다녔다.
부모님 장례식에서 처음 봤었던 큰아버지가 살고 계신 캐나다로 갈까, 그래도 이모 있는 세종에서 멀지 않은 대전이나 청주 같은 곳에 숨어 있을까.
그러다 마지막으로 고른 곳은 서울이었다. 어쨌든 지금 선우는 아이도 낳아야 했고, 병원도 다녀야 했다. 너무 멀거나 인적이 드문 곳은 병원에 가야 할 때 불편할 테니 대중교통이 잘 되어 있는 곳으로 가야 했다.
모래사장의 모래알처럼 서울의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 숨어드는 게 차라리 나을 거 같다는 생각으로 독채 에어비엔비를 한 달간 예약하고, 선불로 모두 지급을 마쳤다.
열차가 서울로 진입했을 때 핸드폰이 울렸다. 이 연락을 끝으로 핸드폰은 역사의 쓰레기통에 버릴 예정이었다.
“네. 차는 오송역 주차장에 세워 뒀어요. 위치 보내 드릴게요. 키는 안에 넣어 놨구요. 네. 계좌로 입금해 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차는 중고차 딜러에게 팔았다. 헐값이지만 받아서 아이를 키우는 데 보탤 생각이다. 이제는 정말 아껴 살아야 하니까.
천천히 속력을 줄인 열차가 용산역에 도착을 했다. 우르르 내리는 사람들을 따라 선우도 내렸다. 커다란 역사는 불이 밝고 사람들이 많았다. 그 많은 사람들 사이로 섞이며 선우는 가만히 모자를 눌러썼다.
택시는 상가 주택이 많은 홍대 뒷골목에 멈춰 섰다.
찜닭 잘하는 집. 더블 크루아상. 라라 미용실. 불이 들어온 상가의 간판들을 읽으며 선우는 거리를 걸었다.
군데군데 게스트 하우스 안내 표지판이 많이 보였고, 분식집, 펍, 커피집 등의 다양한 작은 가게들이 골목마다 있었다.
329번지.
아트 미술학원 옆 하나 오피스텔 403호.
몇 번이나 외웠던 주소를 읊조리며 상가를 훑다가 ‘아트 미술학원’을 발견했다. 선우는 걸음을 빨리했다. 드르륵드르륵 캐리어의 바퀴 소리가 선우의 걸음 소리를 뒤쫓았다.
길을 건너온 선우가 마침내 오피스텔 앞에 섰을 때였다. 달칵 소리가 나며 오피스텔 앞에 주차되어 있던 차의 문이 열렸다.
새까만 구두. 탄탄하고 길게 쭉 뻗은 다리. 눈처럼 새하얀 셔츠와 그녀를 향해 고정되어 있는 밝은 갈색의 눈동자.
뚜벅뚜벅 걸어오는 남자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렸다. 한 대 맞은 것처럼 머리가 멍해진다. 마주 서는 그 순간까지 믿을 수 없었다. 이해할 수도 없었다. 당신이 왜 여기에 있지.
“늦었네.”
서문도가 말했다. 담담한 듯 고요한 눈동자가 선우를 훑었다.
“이러니 내가 너를 어떻게 믿겠어.”
희미한 미소를 짓는 남자는 다시 보아도 서문도였다.
어떻게…….
황망함에 멈춰 선 선우는 멍하니 생각했다. 어떻게 알았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는데. 부동산에도 가지 않았고 이모에게도 말하지 않았는데. 사람을 붙였나.
그 생각에 긍정이라도 하듯 남자가 피식 웃었다.
“전부터 생각했지만 너는 너무 몰라.”
무엇을……? 이라고 선우가 생각할 때였다.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어디까지 할 생각인지. 너무 몰라.”
문도가 말했다. 어떻게 여기를 알고 왔는지 아직도 이해되지 않았지만 한 가지 사실은 분명히 알겠다.
서문도가 지켜보는 한, 어디로도 도망칠 수 없음을.
뒷자리에 앉은 이선우는 가만히 차창 밖을 볼 뿐,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문도는 백미러를 통해 비추어지는 선우의 모습이 감정이 없는 인형 같다는 생각을 했다.
서울로 올라오던 그 밤에 당연히 사람을 붙였다. 그것도 여러 명을. 계좌를 추적하고 동선을 파악했다.
입금처와 거래 내역, 이선우가 탔던 택시의 번호와 던져 버린 핸드폰의 위치까지 알고 있다.
순순히 올라올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래도 이렇게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릴 각오까지 할 줄은 몰랐지.
기껏해야 집을 내놓고 다른 도시로 이사를 가겠지. 적어도 정미숙에게는 이야기를 하겠지. 도움을 요청하고 며칠 어디 다른 곳에 머물 생각을 하겠지.
절박해진 이선우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몸소 겪어 놓고서 그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이선우는 정말로 아무도 모르게 혈혈단신으로 아이를 낳아 기를 생각을 했다. 누구의 보살핌도 없이 남은 8개월을 버텨, 아이를 안고서 완전히 숨어 버릴 생각을.
“독하네. 이선우.”
씁쓸한 마음은 소리가 되어서 흘러나왔다.
“정말 혼자서 아이 낳을 생각이었어?”
문도의 말에 선우가 룸미러를 보았다. 시선이 짧게 마주치고, 선우가 대답을 하지 않은 채 다시 창밖을 본다.
차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이태원의 언덕을 올랐다. 별채의 차고에 차를 세운 문도는 뒷좌석 문을 열었다. 짐을 꺼내고 선우를 엘리베이터에 태워, 별채의 안으로 이선우를 데려왔다.
“2층 내 방에서 지내.”
알겠다는 대답도, 싫다는 대답도 없었다. 모든 것을 체념하고 포기한 사람처럼 선우가 문도의 공간을 향해 걸었다. 유령처럼 걸어 중문을 열고 마스터룸의 방문을 열었다. 그러고도 안으로 안으로 자꾸만 들어갔다.
반쯤 열려 있는 마스터룸으로 따라 들어간 문도는 우욱, 선우의 토하는 소리를 들었다. 헛구역질을 하며 전부를 쏟아 낸 이선우가 소리 죽여 울었다.
다시 시작된 별채에서의 첫 번째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