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 미친놈
눈을 뜨면 아침이었다.
새벽이라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밖은 푸르스름한 어둠이니.
며칠간 죽은 듯이 잠을 자고 싶었는데, 그조차 뜻대로 되지 않았다. 눈을 감으면 잠 대신 이선우가 밀려왔기 때문에.
문도는 자리에서 일어나 욕실로 향했다.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고 묵묵히 셔츠를 입었다. 타이를 매고 커프스링크를 채웠다.
며칠이 지났는지는 알지 못했다. 눈을 뜨면 아침이 되었고, 일과를 마치면 밤이 되었고, 다시 아침이, 다시 밤이 되었기 때문에.
서중호는 대국민사과를 했고, 부회장직에서 사퇴를 했으며, 그 일로 울화병이 생겨 병원에 입원을 했다. 아버지가 이 집으로 돌아오는 일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문도는 시계를 찬 뒤 팔을 내렸다. 진열장 위에 올려 둔 핸드폰을 들려고 손을 뻗는데 잠시 머리가 하얗게 비었다.
문도는 그 자세 그대로 서서 눈을 지그시 감았다. 조금 뒤면 괜찮아진다는 것을 안다. 원인 역시 알고 있다. 잠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몇 초가 지나자 누군가 툭 건드려 준 것처럼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문도는 핸드폰과 재킷을 챙겨 들었다. 멀리 해가 뜨는 것이 보인다.
내려가 아침을 먹을 시간이었다.
1층의 주방으로 내려가니 오랜만에 장 여사가 건너와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것 같네요.”
문도의 말에 장 여사가 흘깃 시선을 들어 그를 보았다. 눈을 보니 아직 마음이 다 풀리지 않은 모양이다.
“간단히 주세요. 커피나 한잔하게.”
문도는 커피머신의 버튼을 누르며 말했다. 수납장에 정리되어 있는 머그잔을 꺼내 머신 아래에 놓고 온도가 오르기를 기다리는데 장 여사가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침은 드셔야지. 요즘 계속 커피만 드신다면서요.”
접시를 꺼낸 장 여사가 가져온 샌드위치와 청포도를 담았다.
“뭘 잘했다고 밥을 먹어요. 서유라는 죽었고 아버진 화병으로 누워 계신데.”
덤덤히 말하자 장 여사가 그를 물끄러미 보았다. 커피머신의 버튼을 누른 문도는 접시로 손을 뻗어 청포도 한 알을 집었다.
그래도 여사님이니까 가져온 성의를 봐서 한 알 정도 먹어 주는 건 알려나.
커다란 포도알을 입에 넣고 씹었더니 툭, 껍질이 터지며 달콤한 즙이 새어 나왔다. 그거 하나 먹었다고 뜨거운 칼날이 가슴을 죽 그어 내리는 것 같은 통증이 인다.
익숙한 통증이다. 이선우를 보낸 후 하루에도 몇 번씩 심장이 찢기는 통증이 일었다. 그러려니 한다. 이러다 나아지겠지.
그리 크게 힘든 것은 없었다. 그저 이따금 가슴이 아프고 별채가 텅 빈 무덤 같을 뿐이다. 사실은 실감도 잘 나지 않았다. 커다란 공허가 그를 둘러싸며 감각도 무뎌진 듯했다.
“참……. 속도 좋으셔.”
장 여사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문도는 담담히 물었다.
“내 속이 좋아 보여요?”
장 여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문도는 웃으며 말했다.
“그럼 다행이고.”
청포도 한 알을 더 뜯어 입에 넣었다. 달콤하고 청량한 맛이 꼭 이선우 같다는 생각을 한다.
“두고 가세요. 알아서 먹을 테니까.”
문도는 커피를 챙겨 다이닝룸으로 향했다. 장 여사가 몇 걸음 떨어져서 그를 쫓아왔다. 테이블 위에 샌드위치와 청포도를 올려놓고 몸을 돌리더니, 갑자기 한숨을 쉬며 말을 했다.
“선우 씨가.”
이런.
여기서 그 이름을 들을 줄은 몰랐네. 다른 건 다 되는데 아직 그게 안 됐다. 문도는 웃는 것도 아니고 찡그리는 것도 아닌 기이한 표정을 지었다.
이선우의 이름은 화살처럼 그를 관통한다. 표정 관리가 잘 되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지나며 날카로운 상흔을 입혔다.
“급하게 나갔는지 짐을 다 두고 갔길래, 남은 짐 가져다줬어요.”
문도는 한 번 숨을 마신 뒤 대답을 했다.
“잘하셨네요.”
“전무님한테 받은 선물로 보이는 게 있어서 그건 2층 서재 책상 서랍에 뒀구요.”
몰랐었다. 문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잘하셨어요. 건너가 보세요.”
장 여사가 그를 물끄러미 한참 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어찌 그리 모질까. 내 손으로 키웠어도 전무님 이렇게 모질 땐 내가 가슴이 다 시려.”
문도는 눈을 들어 장 여사를 마주 보았다. 어릴 때부터 끼고 키웠다 해도 언제나 한 발짝 물러서 있던 장 여사가 선을 넘어오는 건 오랜만이다.
“그러게, 좀 물렁하게 키우시지 그랬어요.”
문도는 머그잔을 들며 답했다. 테두리에 입술이 닿는데 장 여사가 묻는다.
“부모 잃고 동생도 그렇게 갔다는데 불쌍하지도 않았어요?”
뜨거운 커피가 속을 훑으며 내려갔다. 문도는 가만히 장 여사를 보다 대답했다.
“불쌍하죠. 불쌍하니까 놔줬지.”
담담한 그의 대답이 기가 막힌다는 듯 장 여사가 고개를 저었다. 등을 돌려 몇 걸음을 걷다 못 참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돌아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내가, 짐 가져다주려고 갔다가 의사를 다 불렀어요. 사람이 정신 놓고 앓는 거 몇 년 만에 보나 몰라. 눈앞에서 픽 쓰러지는데 내가 얼마나 놀랐던지.”
문도는 힘주어 머그잔을 잡았다. 달구어진 칼날이 심장을 쑤석거렸다. 컵을 잡고 가만히 숨을 쉬는데 장 여사가 말을 이었다.
“그때가 쫓겨난 지 며칠은 되었을 땐데, 어떻게 누구 하나 들여다보는 사람이 없어.”
너무하네. 문도는 장 여사를 보며 아프게 웃었다. 왜 내게 이런 이야기를 해. 안 그래도 마음이 아파 숨을 쉬기가 힘든데, 얼마나 더 아프라고.
“죽을 쒀 주려고 해도 뭐가 있어야 쒀 주지. 냉장고에 떨렁 수박 반 통, 그것도 속만 파먹고 껍질만 남은 게 말라붙어 있는 걸 보는데…….”
지끈, 심장이 쪼개지듯 아파 오며 한 번 더 그 증상이 왔다. 시야가 하얗게 바래며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제멋대로 떠들고 있는 장 여사에게 그만하라고 말을 할 수도, 듣기 싫다고 귀를 막을 수도 없었다.
“사람은 아파서 자꾸 까무룩 정신을 놓지, 그 와중에 날 보고 웃긴 왜 웃어. 남녀 간에 그럴 수도 있지, 불쌍해도 어쩌겠나, 그러고 돌아왔는데……. 세상에.”
그런 기막힌 사연이 있을 줄이야.
장 여사의 목소리가 멀리에서 들려왔다. 손을 저으며 웃는 이선우의 모습이 막을 틈 없이 재생되었다.
‘수박은 들고 올라올 엄두가 안 나서 못 샀거든요.’
‘그럼 몇 통 더 사다 놓을까요?’
‘아니에요. 이것도 많아요. 다 먹지도 못하고요.’
사랑했던 날의 추억이다. 유일하게 마음 놓고 이선우를 좋아했던 그 여름의 밤들.
투툭, 소리와 마음이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손에서 힘이 풀렸다. 밀려난 머그잔이 식탁 아래로 떨어지며 쨍그랑 깨졌다.
“왜 그러고 계세요! 뜨겁게!”
놀란 장 여사의 목소리에 문도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발등을 적신 검은 액체가 발밑으로 번져 가는 모습이 보였다.
사방으로 깨어진 머그잔. 쏟아져 버린 커피. 데인 상처.
돌이킬 수 없다는 게 너무나 자명하여, 웃음이 나왔다.
* * *
“IR팀에서 연락 왔는데, 주주 총회가 금요일로 잡혔답니다.”
삐—
이명이 울리며 시간이 정지했다. 문도는 쥐고 있던 펜이 데구르르 굴러 바닥에 떨어지는 모습을 보며 눈을 좁혔다.
“전무님. 전무님?”
송정태의 목소리가 들렸다. 시야가 뿌옇게 번져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검은 머리와 덩어리진 얼굴이 보일 뿐이다.
“펜이 멀리도 굴러가네요.”
송정태가 펜을 내려놓는 순간 다시 시간이 흐른다. 문도는 그제야 고개를 들어 송정태를 보았다.
“계속하세요.”
“아, 네. 회장직은 공석으로 두는 안건, 우 대표님 부회장직 선임에 대한 안건, 이렇게 두 안건 중심으로 진행한다고요.”
대단히 비윤리적으로 비쳤던 회사의 이미지는 천천히 정상으로 돌아왔다.
서중호 부회장이 이 모든 것은 동생인 서유라의 말을 그대로 믿었던 본인 탓이라 사죄하며, 만인 앞에서 엎드려 눈물을 흘렸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네. 알았습니다. 퇴근하세요.”
송정태에게 말을 하고 문도도 재킷을 입었다. 기사를 호출하고 불이 꺼진 사무실을 지났다. 지하로 내려가 대기하고 있는 차를 타고 눈을 감는다.
일상은 똑같이 흘렀다.
눈을 뜨면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아침을 먹은 뒤 출근을 했다. 회의와 미팅을 반복하다 점심을 먹고, 업무 협약 건에 이은 합동 생산 건을 검토하며 저녁을 먹었다. 밤에는 밀린 보고서를 훑어보다가 퇴근을 했다.
텅 빈 무덤 같은 별채로 돌아오면.
자주 시간이 멈추었다. 술을 한 잔 따라 소파에 앉으면 의식은 잠깐씩 휘발되었다.
어느 미친놈의 꿈을 꾸기도 했다. 꿈인지, 생시인지, 그 어디쯤의 경계인지는 잘 모르겠다. 사막 위의 신기루처럼 환영이나 환각일지도.
그 미친놈은 자신과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폐허를 뒤지고 있었다.
모든 것이 부서져 버린 폐허의 한가운데에 앉아 조각난 벽돌들을 헤집고 있다. 몇 개를 주워 들고 어딘가로 휘적휘적 걷는다.
한 번씩 흐르는 눈물을 닦아 가며 걷던 그 남자는 비질을 한 듯 깨끗이 치워 놓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렇게 앉아 부서진 벽돌을 하나씩 이어 간다.
남자는 그 짓을 몇 번이나 반복하였다.
손이 부르트도록 조각들을 모아 벽을 쌓는다. 그렇게 쌓아 올린 벽에는 온통 금이 가 있었다. 이음새가 맞지 않아 바람이 휭휭 새는 벽은, 조심스럽게 벽돌을 얹는 동작에도 이내 무너져 내렸다.
다시 폐허에 앉게 된 남자는 허망한 얼굴을 하더니 두 손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선우야, 선우야, 부르지 못했던 이름을 불러 가며 울었다.
눈을 뜨면 사라질 그 세계 속에 하염없이 우는 남자를 남겨 두고 문도는 눈을 떴다. 손에는 비스듬히 술잔이 들려 있고 건조한 눈꺼풀은 버석하였다.
미친놈.
어디에선가 울고 있을 그 남자를 비웃으며 남은 술을 마저 마셨다. 시간이 지나면 모두, 잊혀질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