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 소문의 시작
소문은 메신저 어플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거 최지상 아니야?]
알 수 없는 누군가가 캡처된 사진을 지인에게 보내며 시작된 소문은, 삽시간에 메신저 어플을 타고 번져 나갔다.
서너 명에서 수십 명으로, 수십 명에서 수백 명으로 빠르게 퍼져 나간 이미지 파일은 이내 단체 메시지방에 올라왔고, 얼마 후에는 공개된 익명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왔다.
문제의 이미지는 핸드폰 화면이 캡처된 사진이었는데, 본인이 본인에게 보내는 대화창의 모습이었고, 대화창의 제일 위에는 최상규라는 이름이 있었다.
최상규라는 인물이 주기적으로 자신에게 보내 둔 것은 음성파일과 동영상, 그리고 여러 장의 묶음 사진이었다.
동영상의 썸네일엔 남자와 여자가 엉켜 있는 듯한 모습이 보였고, 블러 처리가 된 사진에는 특정 여자가 반복적으로 찍혀 있었다.
[이거 최지상이랑 S그룹 서유라라는 말이 있던데 진짜일까?]
메신저를 타고 들불처럼 번진 캡처 사진은 반나절 만에 기사화가 되었다.
누군가의 조작일지, 실제 파일이 유출된 것일지를 가늠하는 추측성 기사들이 뜨기 시작했다.
‘C모 배우의 은밀한 사생활’
문도가 노트북 화면에 떠 있는 기사를 확인차 읽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화면을 보니 이틀 전 서용호의 편에 서겠다며 박소영과 함께 집을 나간 서유라의 이름이 보였다.
받지 않고 내버려 두다가 벨 소리가 숨이 넘어가게 울릴 때쯤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고모님.”
— 야!!!!!!!!!!! 너 뭐야!!!!
“뭐가요.”
— 이거 뭐냐고!!!!! 너지? 네가 퍼트린 거지! 야 이 미친 새끼야!! 내가 작은오빠 편 안 들어 준다고 지금 복수하는 거야? 그렇다고 내가 다시 니 밑으로 기어들어 갈 것 같아! 조까!! 야 이 새끼야!!!
서유라가 소리 소리를 지르는 동안 핸드폰을 엎어 두었다. 얼마간 고함이 이어지더니 씩씩거리는 숨소리만 들려왔다. 피식 웃은 문도는 다시 핸드폰을 들고 느리게 입을 뗐다.
“뭐 하나 알려 드릴까요?”
— 됐고! 내려! 당장 내려! 너 그거 안 내리면 나라고 가만히 있을 줄 알아?
“그날 죽은 남자애 중에 청바지 입은 애 있었죠?”
— 뭐?
“걔 이름이 이민우인데.”
— 그래서 그게 뭐! 지금 그게 뭐가 중요해? 내가 말했잖아 지들끼리 뒈졌다고!
“이선우 동생이었어.”
수화기 너머로 정적이 흘렀다.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을 서유라의 얼굴이 보이는 듯했다. 잠을 자지 못해 생긴 두통이 머리를 조여 왔다. 문도는 관자놀이를 꾹 누르며 말했다.
“그러게 제가 똑바로 살라고 했잖아요.”
전화를 끊고 핸드폰을 내려둔 문도는 잠시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이제 열흘 남짓 지났을 뿐인데 잠시 멈춰 서고 싶었다.
많이는 말고 딱 한 시간만. 아니, 하룻밤만 이선우를 마음껏 생각하고 싶었다. 눈을 감고 실컷, 색색의 이선우의 모습을 띄워 보고 싶었다.
희미하게 웃던 모습도 좋겠다. 긴장한 표정도 좋았다. 가만히 그를 보는 모습이어도 좋겠고, 얼굴을 붉힌 모습이어도 좋았다.
원망하는 눈빛이어도, 눈물을 흘리는 얼굴이어도, 마침내는 부서져 허망한 모습이라도 좋으니 이선우와의 기억을 처음부터 끝까지 틀어 놓고서 그 안에서 잠을 자고 싶었다.
아직은 그럴 자격이 없지. 아직은.
문도는 손끝으로 메마른 눈꺼풀 위를 꾹 눌렀다 떼었다. 다시 자세를 바로 한 뒤에 서유라의 번호를 수신 거부로 돌려놓고 장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 네, 전무님.
“게시글 올리세요.”
얼마 지나지 않아 메시지가 도착했다. 문도는 장현성이 보내온 메시지 속 사이트 주소를 눌렀다. 대형 포털 익명 게시판에 새로 올라온 게시글이 화면에 떴다.
‘나 C배우 관련 성지글 찾은 것 같음.’
글 속에는 핸드폰 커뮤니티의 익명 게시판으로 이어지는 링크가 있었다. 문도는 다시 링크를 눌렀다. 장 변호사가 심어 놓은 사람이 며칠 전에 미리 올려 둔 글이 보였다.
‘중고 휴대폰을 샀는데 아무래도 분실폰 같아. 그런데…….’
업자에게 속아 분실폰을 샀다는 내용의 글이었다.
‘외장 메모리가 있는데 혹시 주인이 누군지 단서가 있을까 싶어서 열어 봤더니 이상한 파일들이 보여. 좀 무섭다.’
그 아래에는 댓글이 다섯 개 달려 있었다. 내용은 이러했다.
무슨 내용의 파일이냐.
남자 배우의 사생활 같다.
사진도 있냐. 진짜 연예인이냐.
사진도 있고 동영상도 있다. 연예인 맞는 거 같다.
거짓말 아니냐.
장 변호사 측에서 달아 놓은 댓글은 거기에서 멈춰 있었다. 글을 확인한 문도는 테이블에서 일어나 창가에 섰다.
서재의 창 아래로 별채의 후원이 보였다. 울긋불긋 단풍이 들기 시작한 본관의 나무들과 건너편 숙소동의 감나무, 대추나무도 보였다.
숙소동으로 돌아가던 이선우의 모습이 생각난다. 걸을 때마다 물결치듯 일렁이는 스커트를 입었던 너는.
너는 이 소식을 들었을까.
문도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심장이 저미듯이 아팠다. 별일은 아니었다. 이선우의 눈동자에서 빛이 꺼지는 것을 본 이후로 내내 그랬으니.
창가에서 물러난 문도는 다시 테이블 앞에 앉았다. 노트북을 켜고 성지순례 왔다는 댓글이 실시간으로 달리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오늘 오후에는 사진들이 터질 것이고, 내일 오전에는 음성파일이 올라가게 되어 있다.
마른 숲에 불이 번지듯이 퍼져 나갈 때쯤엔 겁을 먹은 최초 유포자가 자진하여 경찰에 핸드폰을 제출하러 간다.
서도 그룹에서는 엄중한 수사를 부탁하는 성명서를 낼 테고, 경찰은 온 국민이 보는 앞에서 서유라의 사건을 재수사해야 하겠지.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외장 메모리에 친절히 모든 증거들을 넣어 두었으니.
시간이 흘러 이선우가 이 소식을 듣기를 바란다. 억울하고 원통했던 마음이 조금이나마 풀어지기를. 동생을 생각할 때마다 아팠을 마음에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기를.
다시 심장이 지끈거리며 아파 와 문도는 피식 웃었다. 뭘 잘했다고 지끈거리고 지랄인지. 제 손으로 부서트려 놓고 마음이 꽤나 아픈 것처럼 굴고 있는 스스로가 가증스럽기도 했다.
실소를 흘리며 자리에서 일어난 문도는 인터폰을 눌렀다.
“여사님, 저녁 준비하지 마세요. 외출합니다.”
의자에 걸쳐 두었던 재킷을 챙겼다. 서유라, 최지상 다음은 서용호였다. 던져두었던 올가미를 조이러 갈 때였다.
* * *
소속사가 발칵 뒤집혔다. 갑작스럽게 호출된 지상은 오 대표와 마주 앉아 단독 면담을 하는 중이었다.
“사실대로 말해. 그래야 우리도 수습이라는 걸 할 거 아니야.”
“아니야. 대표님, 아니라니까요. 저 알잖아요. 최지상이에요. 대표님이 아는 최지상이라구요. 이거 다 조작이라고요.”
지상은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잡아떼었다.
“너한테 걸린 광고가 몇 갠 줄 알아? 그거 위약금이 얼만 줄 아냐고. 일 더 커지기 전에 빨리 수습하게 솔직히 말해. 핸드폰 언제 잃어버렸어?”
오 대표의 추궁에 지상은 원통하고 억울하고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팡팡 두드렸다.
“하……. 진짜 아니에요. 이게 어떻게 말이 되겠어요. 이런 건 요즘 포토샵으로 대충 꾸미면 다 조작할 수 있는 거 아시잖아요.”
한껏 연기를 펼치고 있지만 지상의 등에선 식은땀이 흘렀다.
“어디서 퍼진 건지도 모르는 이런 캡처 사진 몇 개로 의심하시고 그러면 진짜 섭섭합니다. 저 그렇게 인생 막 살지 않았어요.”
우겨 보지만 속은 바짝바짝 탔다. 이게 웬 자다가 날벼락인지.
‘지상아 이거 진짜 너야?’
아침에 지인으로부터 메시지를 받고 벌떡 일어났었다.
하하하 웃으며 아니라고 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찌라시를 믿냐며.
하지만 머리가 하얗게 비워졌다. 저 사진을 가진 사람은 세상에 단 한 명뿐이다. 그런 사진이 버젓이 돌고 있다는 건 서문도가 일부러 배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노리는 게 무얼까. 이제 와 들춰내려는 이유는?
다행인 건 아직은 화면을 캡처한 사진뿐이라는 거다. 조작이라 우기려면 우기고 넘어갈 수 있었다. 지상은 가슴을 크게 펴며 오 대표에게 말했다.
“그래요. 철없을 때 클럽에서 놀기도 하고 연애도 좀 했어요. 그렇지만 이건 아니에요. 어떻게 저를 의심하세요. 악의를 가지고 유포한 사람을 고소하자고 하셔야죠. 저 이 사람 고소할 겁니다. 입장문도 그렇게 쓸 거구요.”
발칵 뒤집힌 여론을 다시 돌려놓으려면 그 수밖에 없었다. 악의적인 조작이다. 터무니없는 모함이다. 선처 없이 고소하겠다. 지켜봐 달라. 지상은 당당히 가슴을 폈다.
“진짜야? 너 네 말에 책임질 수 있어?”
“믿기 싫으면 믿지 마시던가요. 분실폰? 폰을 분실한 적 없는데 어떻게 분실폰이 있어요. 두고 보세요. 저는 이 사람 찾아서 콩밥 먹일 거니까.”
그때 변호사인지 누구인지 하는 새끼의 말을 들었으면 안 되는 거였는데. 지상은 속으로 쌍욕을 삼켰다.
서유라 측 변호사라 자신을 소개한 그는 배우 이미지를 생각해 사건에서 빠져나가게 해 주겠다고 했었다. 그 대신 핸드폰은 찾을 생각 말고 새로 번호를 파서 만들라고 했다.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지금 내 앞길이 얼마나 창창한데.
아무리 소속사 대표라고 해도 이제 와 소문의 주인이 자신이라고 솔직하게 말할 수는 없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그것만은 안 되었다.
이제 막 비상하려던 찰나였다. 이렇게 무너질 수는 없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했으니 틀림없이 무슨 수가 있을 것이다. 일단은 이 위기를 넘기는 게 중요했다.
“그래. 네가 아니라니까 일단 믿어 볼게.”
오 대표가 마른세수를 하며 심란한 표정을 지었다.
이 소속사에 들어와서 얼마나 깨끗하게 살았는데 당연히 믿어 줘야지. 그렇게 생각한 지상은 네, 하고 대답하며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우선 홍보팀에서 입장문 정리할 테니까 너는 집으로 가지 말고 호텔에서 근신하고 있어. 섣불리 돌아다니다가 기자들 마주치지 말고. 이거.”
오 대표가 차 키를 내밀었다.
“호텔까지 회사 차 타고 가고.”
“네. 감사합니다. 대표님. 실망시켜 드리지 않을게요.”
지상은 마지막까지 예의를 다해 허리를 숙였다. 대표실을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나서야 벽을 치며 쌍욕을 뱉었다.
어떻게 해결하지.
지금은 포토샵이라고 우길 수 있는 캡처 파일일 뿐이지만, 핸드폰 안에는 다른 동영상과 사진들, 그에 더해 그날의 음성파일도 있었다. 만에 하나 그게 터지는 날이면…….
저 멀리까지 뻗어 있던 탄탄대로가 아득한 낭떠러지로 변하는 건 순식간이다.
입술을 꽉 깨문 지상은 핸드폰을 들었다. 이 일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은 하나뿐이었다. 서유라의 번호를 누른 지상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어, 누나. 미안, 전화가 너무 늦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