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 별채에서의 마지막 밤
달칵.
문이 닫히는 소리는 아주 작았다.
문도는 천천히 눈을 떴다. 사방은 어둠이었고 옆은 비어 있었다. 온기가 빠져나간 자리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고요한 밤이었다. 벽 너머의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들리지 않는다고 해서 이선우가 움직이지 않는 건 아닐 것이다.
조심스럽게 움직이다가 소리가 날 때마다 숨을 멈추는 여자의 모습이 그린 듯이 보였다. 그 순간조차 춤을 추듯이 움직이고 있겠지.
아주 작은 소리에도 소리 없이 놀랐다가 다시 바람처럼 물결처럼 부드럽게 움직이며.
몸을 일으킨 문도는 욕실로 향했다. 파우더룸의 서랍장에 넣어 두었던 이민우의 휴대폰을 꺼냈다.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쓰게 웃었다.
마지막으로 서로를 조용히 바라보았던 순간을 생각했다. 선하고 맑은 눈동자가 의심 없이 그에게 머물렀던 순간을.
이제 다시는 볼 수 없겠지.
나는 너를, 너는 나를.
우리는 서로를 부수어 놓을 테니까.
문도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이선우를 향한 동정도 연민도 거두어 낸다. 천천히 눈을 뜬 문도는 숨을 깊이 쉬었다. 핸드폰을 단단히 쥐고 어둠을 걸었다.
끝을 내러 갈 시간이었다.
* * *
진열장 앞에 도착한 선우는 조심스레 몸을 숙였다.
발아래에서 삐그덕거리는 소리가 나, 다시 한번 숨을 멎고서 움직임을 멈추었다.
소리가 나지 않도록 힘주어 잡은 수납장 문을 살며시 당기며 열었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 나타난다.
선우는 심호흡을 하고서 안쪽의 합판에 손을 댔다. 남자가 밀었을 때 드르륵 소리가 났었던 것이 기억나 살짝 들면서 옆으로 천천히 밀었다.
조용한 소리가 나며 문이 밀렸다. 선우는 입술을 앙다물고서 끝까지 밀었다.
숨죽인 순간들이 느리게 흘러, 째깍째깍 초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합판이 밀리며 금고 문이 천천히 드러났다. 금고의 문이 열릴 수 있을 만큼 합판을 밀어놓은 선우는 번호 키에 떨리는 손을 가져다 댔다.
숨을 삼키고서 기억하고 있던 번호를 하나씩 신중하게 눌렀다.
삐삐삐삐.
제발.
속으로 빌며 삐, 마지막 별표를 누르는데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주먹을 꽉 쥐며 눈을 질끈 감는데 삐리릭, 잠금장치가 풀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천천히 금고의 문을 열자, 윗칸에 놓인 핸드폰이 보였다. 투명한 지퍼 백 속에 네 개의 핸드폰이 들어 있었다.
언뜻 보아도 민우의 핸드폰과 같은 제조사, 같은 모델이었다. 까진 모서리며 흠집까지 민우의 핸드폰이 틀림없었다.
민우야.
입을 틀어막은 선우의 눈에서 눈물이 뚝 떨어져 내렸다.
여기 있었구나. 너를 찾으려고 내가 여기까지 왔어. 누나가 왔어.
떨리는 손으로 지퍼 백을 집어 든 선우는 떨어지는 눈물을 손등으로 훔쳐 냈다.
울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마지막 확인만 하고 빨리 이 집에서 나가야 했다. 남자가 깨기 전에, 어서.
마지막 확인을 위해 선우는 지퍼 백의 윗부분을 양쪽으로 벌렸다. 제일 먼저 민우의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안 될 걸 알면서도 버튼을 눌러 화면을 켜 보았다.
오랜 시간 방치되어 있었으니 당연히 화면이 들어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반짝, 불빛이 들어오며 화면이 켜졌다.
“아…….”
화면을 보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소리가 새어 나왔다.
이상했다. 민우의 핸드폰은 이렇게 깨끗하지 않은데. 액정이 깨어져 번진 곳이 있어야 하는데.
선우는 핸드폰에 손가락을 대고 ‘ㄴ’자를 그렸다. 잠금장치가 풀리며 메인 화면이 나타났다.
역시 이상했다. 바탕화면에 깔린 어플이 빼곡했었는데 이 핸드폰의 바탕화면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다급해진 선우의 손가락이 화면을 그었다. 없었다. 메신저 어플도, 민우가 자주 쓰던 SNS 어플도, 통화 목록도, 문자메시지도 모두 비어 있었다.
이건 민우의 핸드폰이 아니야.
눈앞이 깜깜해지는 순간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거 찾아요?”
선우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달칵, 불이 켜지며 시야가 밝아졌다. 한 손에 핸드폰을 들고서 서문도가 싸늘하게 웃고 있었다.
선우의 입이 소리 없이 벌어졌다. 충격으로 커다랗게 뜨인 눈동자에 혼란이 소용돌이를 그렸다. 한참을 정지해 있던 선우는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왜…….”
다음 말을 잇지 못하는 선우의 머리는 암전이 된 듯 까맣기만 했다. 이게 무슨 일이지. 왜 저 사람이 핸드폰을 들고 있어.
“어째서…….”
눈으로 보는데도 이 상황이 어떻게 벌어진 것인지, 머릿속이 아직 정리가 되지 않았다. 왜. 어떻게. 당신이 왜.
현실감이 없어서인지, 갑자기 켜진 불 때문인지 시야가 흔들렸다.
잘 보이지 않아서 선우는 눈을 가늘게 떴다. 번진 시야 속에서도, 가늘어진 시야 속에서도 자신을 보고 있는 남자는 서문도가 맞았다.
“동생 핸드폰 찾아?”
서문도의 목소리는 믿기지 않는 장면을 현실로 만들어 주었다.
정지해 있던 화면이 움직이며 눈이 아리게 생생해졌다. 남자가 걸어오는 모습을 선우는 넋 없이 바라보았다.
‘부모님은 돌아가셨고, 남동생은? 군대 갔다고 했었나요?’
먼 기억이 출렁이며 밀려온다. 선우는 눈을 가늘게 좁혔다.
‘어머니는 어떤 분이셨어요?’
부드러웠던 목소리가 생각나며, 한 겹의 물결이 더해졌다.
‘서유라 말고 이선우. 이선우 뭐 했냐고.’
친근했던 미소 위로 다시 하나가 더해지고.
‘내가 좋아?’
다시 그 위에 하나가 쌓여,
‘오늘은 올라와요.’
마지막을 완성하였다.
하아…….
더는 부정할 수 없어진 순간, 선우는 탄식을 뱉었다. 멀리, 환영처럼 보이는 수평선 너머를 보았다. 멀리에서부터 밀려오는 절망의 물결을 바라본다.
파도에 파도가 더해져, 더 높은 파도가 되는 모습을, 끝내는 거대한 해일이 되어 커다랗게 몸을 세우는 모습을 선우는 멍하니 바라보았다.
더 이상 높아질 수 없는 파도가 우르르 쏟아지며 그녀를 삼켰다. 모든 것이 부서지는 순간, 선우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뜨거운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문도는 그런 선우를 보고 있었다.
절망이 서서히 번지며 그녀를 삼키는 모습을 보았다. 차근차근 빛이 꺼지는 모습을. 그리하여 마침내는 텅 빈 눈으로 그를 보는 모습을 흔들림 없이 바라보았다.
“언제부터…….”
목이 메었는지 이선우가 힘겹게 침을 넘겼다. 주저앉은 이선우가 그를 올려다보았다. 붉은 눈시울 속 공허한 눈동자가 그에게로 향했다.
“언제부터 알았어요?”
그게 중요할까. 문도는 떨고 있는 이선우를 보았다. 대답은 하기 나름이었다. 어제라고 할 수도 있고, 연애를 시작했을 때라고 할 수도 있었다.
굳이 고른다면, 너를 가장 상처 낼 수 있는 때. 그때로.
“처음부터.”
하아. 선우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문도는 빛을 잃은 눈동자 위로 참담함이 번져 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절망의 끝을 보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질끈 눈을 감은 여자는 아픔으로 몸을 오그렸다. 후드득 떨어지는 눈물이 바닥을 적셨다. 작은 손엔 하얗게 힘이 들어가 있었다.
“민우.”
한참 몸을 오그렸던 여자가 동생의 이름을 말하며 눈을 떴다. 주저앉았던 몸을 힘주어 일으킨다.
꼿꼿하게 허리를 편 선우가 그를 똑바로 보는데 그 눈에 서문도는 더 이상 들어 있지 않았다.
네가 나를 지웠구나.
깨닫는 순간 뭉텅 무언가가 뜯어져 나간 듯했다. 허무한 웃음이 나왔지만 문도는 흔들림 없이 자신을 담고 있지 않은 눈동자를 마주했다.
선우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민우 핸드폰 주세요.”
“내가 왜.”
냉정히 말하는 문도를 선우가 노려보았다. 빛이 꺼진 눈에 다른 색의 불이 타올랐다.
“왜라뇨. 당연히 주셔야죠. 제 동생 거예요. 돌려주세요.”
“싫다면?”
그 말에 선우가 손을 뻗었다. 문도는 핸드폰을 쥐고 있는 손을 위로 올렸다. 선우가 발꿈치를 세워 덤벼들며 말했다.
“줘요. 민우 거야. 내 동생 거야. 돌려줘요!”
닿지 않는 핸드폰을 빼앗으려고 애쓰며 선우가 외쳤다.
“가져가 봐.”
그 말에 선우의 눈동자가 붉게 타오르며 번뜩이는 빛을 발했다. 아득바득 달려들어도 가질 수 없어지자 선우가 문도의 옷깃을 틀어쥐며 울음을 터트렸다.
“돌려줘! 하나밖에 없는 내 동생이 죽었어!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죽었다고! 나한테, 저녁에 보자고, 그랬던 애가 죽었어! 민우가 죽었다고!”
피 같은 눈물이 선우의 눈에서 뚝뚝 떨어져 내렸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이 모든 게 전부 다 이 남자의 잘못이었다.
당신이 핸드폰만 가져가지 않았어도 내가 이렇게 참담하지도, 비참하지도 않았어.
“그래. 죽었어. 다시 살아나지 않아.”
남자의 말은 선우의 가슴을 후벼 팠다. 현장에서 듣지 못했던 사망 선고를 듣는 기분이었다. 아아아아, 선우는 소리 내어 울었다.
오랜 시간 묵혀 두었던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어째서 이래. 왜 나한테 이래. 내 동생이 죽었다고. 나는 핸드폰 하나 찾으러 왔을 뿐이야.
그게 그렇게 큰 욕심이야? 그게 그렇게 하면 안 될 짓이야? 처음부터 잘못한 건 너희들이잖아. 함부로 가져간 건 너희들이었잖아.
그런데 왜 이렇게 나를 비참하게 해. 왜, 나를 이렇게 벼랑으로 몰아. 어떻게 이렇게 잔인할 수 있어.
비명 같은 울음이 공간을 휘감았다. 어떻게 이런 남자를 좋아했을까. 처음부터 전부 다 알고서 나를 속였니? 바보 같은 내가 재밌었어?
당신이 어떻게 내게 이래. 어떻게 내게 이렇게 잔인해. 이건 너무하잖아.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
“이선우.”
끄윽끄윽 소리를 내며 흐느껴 우는 선우를 문도가 불렀다. 선우는 팔을 잡아 자신을 떼어 내는 남자를 보았다.
“이걸로는 아무것도 입증할 수 없어. 너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는 뜻이야. 그래도 이걸 원해?”
웃음이 나왔다. 원하냐니. 당연한 거 아닌가. 애초에 내 것인데. 네가 함부로 가져간 내 동생의 것인데.
뜨거운 눈물을 흘린 선우는 문도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돌려줘. 우리 민우 거야.”
“최지상의 핸드폰은 갖고 싶지 않고?”
목이 턱 막혀 오는데 서문도가 이어서 말했다.
“한 번 더 말해 봐.”
무슨…….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내 옆에 있고 싶다고 한 번 더 말해 봐. 혹시 알아? 내가 전부 다 넘겨줄지.”
선우는 허망한 웃음을 삼켰다. 이상했다. 울 만큼 울었는데, 또 눈물이 흘러나왔다. 이런 남자에게 무엇을 바랐나. 무엇을 기대했을까.
“당신 정말 바닥이구나. 사람도 아니야.”
남자가 피식 웃었다.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 와서 선우는 힘주어 주먹을 쥐었다.
서문도의 손이 펴지는 것과 동시에 핸드폰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선우는 황급히 몸을 숙여 핸드폰을 쥐었다.
“가지고 가. 내가 돌아오기 전에 사라지는 게 좋을 거야.”
그대로 걸음을 옮긴 서문도가 중문을 열었다. 쾅,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며 벽이 흔들렸다. 핸드폰을 쥔 선우는 흐느끼며 울었다.
별채에서의 마지막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