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 천국과 지옥 사이에는(3)
마스터룸으로 들어온 문도는 선우의 블라우스를 툭툭 뜯어냈다.
비스듬히 들이치는 오후의 햇살에 하얀 살이 드러났다. 선우가 당황한 눈빛으로 문도를 보았다.
“왜. 재워 준다며.”
“저는 그냥.”
문도는 말을 하려는 여자의 입술을 자신의 입술로 막았다. 턱을 쥐어 벌리며 혀를 넣었다.
아프게 빨고 억지로 벌리며 읍, 숨 막힌 소리를 내는 선우의 입술에 거칠게 키스를 했다.
함부로 휘젓고 게걸스럽게 훑어 먹은 뒤 문도는 입술을 떼었다. 타액이 길게 늘어지며 입술 사이를 잇는다.
“하아…….”
이선우의 얼굴이 붉었다. 투명한 흰 피부는 조금만 자극을 주어도 울긋불긋해진다.
귀를 만지면 귀가 붉어지고 다리를 움켜쥐면 다리가 붉어진다. 문도는 그런 선우를 내려다보다가 무심히 말했다.
“풀어 줄 거 아니면 가요. 피곤해서 맛이 좀 간 것 같으니까.”
혼란스러운 얼굴로 선우가 문도를 보았다. 며칠 전까지 부드럽게 웃어 주었던 남자가 무도하게 나오는 이유를 모르는 얼굴이었다.
낮게 한숨을 쉰 문도는 선우를 떼어 냈다. 자신은 여자를 버릴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빠르면 하루, 늦어도 일주일 안에 이선우는 나락으로 떨어질 거였다.
그런 여자를 한 번 더 내던질 수는 없었다. 버려지기 직전까지 농락해서 바닥까지 비참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가.”
문도는 싸늘하게 말했다. 한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 여자는 자신을 발정 난 개처럼 만들 수 있었다. 벌써 아래는 아플 정도로 단단해져 있었다.
가라고 했는데 이선우가 그 자리에 있다. 풀어 헤쳐진 앞섶을 두 손으로 모아 쥐고서 그를 보고 있었다.
“왜, 하고 싶어요?”
마치 그가 걱정되기라도 한다는 듯 선우가 망설였다. 문도는 실소를 하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 뭘 망설여. 가라면 갈 것이지.
“전무님은요?”
문도는 허탈하게 웃으며 미간을 문질렀다. 기껏 물러나 줬더니 도발을 해 오나.
아. 잊고 있었다. 너는 온통 거짓말이었던 여자였지. 한 번이라도 더 하고 싶어 했던 여자였지.
그렇게 뒤집히지 않으려, 넘어가지 않으려, 버티고 버텼던 나를 기어코 주저앉힌 여자였었지. 네가 아니었으면 나는 아무 일 없이 살았을 텐데.
“빌어먹을 정도로 하고 싶지.”
문도는 말간 이선우의 얼굴을 훑었다. 닷새를 잠 못 이루게 했던 얼굴이었다.
이선우를 잘라 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느라, 어떻게 하면 더 아프게 잘라 낼까 그 생각을 하느라 잠을 잘 수 없었다.
눈을 뜨고 있어도 이선우가 보였고, 눈을 감아도 이선우가 있었다.
늘, 머리가 뜨거웠고 눈알이 뜨거웠다. 숨까지 뜨거워져 입관을 할 때는 미열이 느껴질 정도였다.
“내가 지금 잠이 너무 고프거든.”
조부의 사망 소식을 들은 그 순간 끝인 걸 알았다. 언제까지 팔자 좋은 꽃놀이를 할 수는 없다는 걸.
눈 막고 귀 막아 달콤한 꿈을 꾸는 것도 한때지. 자신의 자리가 그를 부르고 있었다. 이제는 그만 끝내고 돌아와 너의 할 일을 하라고.
“하고 나면 잠이 올까요?”
멍청한 질문을 하는 여자를 보면서 문도는 실소를 머금었다.
그런 걸 묻지 말고 그냥 가. 이 미련한 여자야. 마치 내가 원하면 언제든 해 줄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얼굴로 나를 보면…….
문도는 고개를 틀어 선우의 시선을 피했다. 머리가 뜨거웠다. 이제는 미쳐 가는지 욕망조차 둘로 갈라진다.
이선우가 이만 포기하고 내려갔으면 좋겠는데, 함부로 굴어도 안아 주었으면 좋겠다.
이런 그를 멀리했으면 좋겠고, 동시에 어떤 일이 있다 해도 그를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돌아 버린 거지.
헛웃음 터트리며 돌아서는데 이선우가 그를 팔을 잡았다. 우뚝 굳어 버린 문도에게 선우가 말했다.
“저는……. 전무님이 힘들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불가능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게 우스워서 문도는 여자를 당겼다. 허리를 세게 안아 단단해진 아래를 눌렀다.
“위로를 해 봐. 그럼.”
그 말에 선우가 한 발 가까이 다가오더니 발꿈치를 들었다. 그의 옷깃을 쥐고서 가만히 입술을 부딪쳐 온다. 위로를 하듯이 부드럽게 그를 머금는 선우에게서 달콤한 냄새가 났다.
문도는 욕을 뱉으며 선우의 입술을 아프게 삼켰다. 머리가 핑 돌며 뇌가 끓었다. 이제는 이 마음이 체념인지 절망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니. 다 핑계지. 사실은 그냥 너를 안고 싶을 뿐이야.
문도는 성급한 손길로 선우의 옷을 벗겼다. 제정신이 들기 전에 여자의 몸에 자신을 묻어 버리고 싶었다. 자괴감이 들기 전에, 제법 멀쩡한 척하는 놈이 돌아오기 전에 이선우를 취해야 했다.
“흡.”
몸을 밀어 넣자 선우가 숨을 삼켰다. 단단하게 부푼 분신이 덜 젖은 몸과 마찰하며 뜨거운 열을 내었다. 살갗이 밀리는 통증이 인다. 여자는 훨씬 더 고통스러울 것이다.
문도는 어금니를 물었다. 이를 악물고서 뜨겁고 좁은 곳에 몸을 모두 구겨 넣었다. 아찔한 쾌감에 등이 저릿저릿 끓었다.
내리뜬 시야에 고통을 참아 내는 이선우가 보였다. 너는 알까. 붉어진 네 얼굴이 얼마나 나를 미치게 하는지.
파르르 떨리는 눈썹이, 단내 나는 숨을 몰아쉬는 입술이. 나를 얼마나 아득하게 하는지. 너는 알까.
몸을 물렀다가 단번에 밀어 넣었다. 선우의 입이 크게 벌어진다. 타는 듯한 작열감이 문도에게까지 전해졌다.
“내가, 가라고 했을 텐데.”
문도는 몸을 숙여 여자의 가슴을 쥐었다. 언젠가 붉은 꽃을 움켜쥐었던 것이 생각난다.
으깨진 꽃잎에서는 즙이 나왔었다. 이선우도 으깨어 터트리면 붉은 즙이 흘러나올까.
“왜 말을 안 들어.”
하읍, 숨을 삼키며 선우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런 주제에 문도의 등을 안는다.
“전무님이, 힘……들어, 보여서……. 아흣.”
여자의 말이 툭툭 끊겨 나왔다. 아프게 비집고 들어갈 때마다 여자의 손이 문도의 등을 힘주어 안았다.
“너무…… 힘들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하아. 누가 누굴 걱정해. 정신을 차려야 하는 사람이 누군데. 왜 네가 나를 걱정해. 가진 거라곤 쥐뿔도 없으면서, 곁에 남은 식구라고는 아무도 없는 주제에, 왜 나를 걱정해.
문도는 짙게 숨을 쉬었다. 여자가 너무 바보 같아서 녹슨 칼에 베인 것처럼 화끈거리는 통증이 가슴에 일었다.
이 어리석은 여자를 어떻게 할까. 이 외롭고 가련한 여자를 어떻게 하지.
“이래서 내가 안 하려고 했던 건데.”
속마음이 말이 되어 나왔다.
이래서 하기 싫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여자의 몸에 뜨겁게 파고들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어도, 그러면 안 되는 일이라 생각했다.
장례를 치르는 내내 이선우 너를 생각했지. 네 몸에 나를 묻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밤을 가르고 달려갈까. 아무 말 없이 너를 안고서 다시 돌아올까.
너는 나를 거부하지 못할 테니, 하루만, 이틀만, 장례가 끝나는 닷새 동안만 너를 안을까.
그래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닷새 동안 벽에 기대어 잠깐씩 눈을 붙이며 버텼다. 끝은 정해져 있고 너는 너무 불쌍했으니까.
“이선우.”
문도는 선우의 이름을 불렀다. 선우가 그를 올려다보았다. 물기가 어려 있는 맑은 눈동자가 속을 아프게 훑었다.
멈추어 있는 그에게 선우가 먼저 입술을 맞추어 왔다. 팔을 올려 그의 목을 감고서 그의 입술을 머금었다. 작고 부드러운 혀가 그를 달래 주듯이 움직였다.
문도는 질끈 눈을 감았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를 생각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도 생각했다.
너와 자기 전에 잘라야 했을까. 한낱 돈을 밝히는 여자라 생각했을 때 그만두어야 했을까. 너의 정체를 알았을 때 밟아 버렸어야 했었나.
어쩌다 나는 이렇게 되었을까. 나를 배신할 너를 이해하고 싶지 않았는데. 도둑처럼 숨어든 네 외로움 따위 헤아리고 싶지 않았는데.
“하아…….”
선우가 입술을 뗐다. 문도는 여자의 작은 얼굴을 손으로 감쌌다. 어여쁜 얼굴을 오래오래 보았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말은 이런 때 쓰는 건가 보다.
처음으로 되돌릴 수 있다면.
너를 몰랐던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문도는 의미 없는 가정을 해 보았다.
사실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알고 있었다. 이 집에 여자를 들였던 순간도, 욕망에 굴복했던 순간도, 정체를 알았던 순간도 아니었다.
그날, 그때 네 동생을 모른 척하지 않았어야 했다.
서유라가, 최지상이, 장 변호사와 아버지가 조용히 덮어 버릴 것을 예감했을 때, 나의 일이 아니라고 외면하지 않았어야 했다.
더러운 물에 손이 닿을까 인상 쓰며 뒤로 물러서지 말았어야 했다.
그때의 외면이 이렇게 아픈 칼날이 되어서 너와 나를 찢어 놓을 줄 알았더라면.
문도는 선우의 입술을 다시 머금었다. 여자는 순순히 입을 벌리며 그의 숨을 받아 냈다. 어지럽게 얽히는 동안 이선우의 안이 젖어 들었다. 젖은 속살이 부드럽게 그를 감쌌다.
문도는 허리를 움직였다. 한결 부드러워진 안을 파고들었다. 선우의 입에서 더운 숨이 터져 나왔다. 흔들리며 신음하는 이선우를 보는데 더럽게 좋았다.
욕망에 지고 만 자신이 더 이상 후회되지 않는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아득해질 때까지 여자를 취해 볼 작정이다.
문도는 속력을 높였다. 가슴을 움켜쥐고서 게걸스럽게 빨았다. 입술을 훑었고, 허리를 움켜쥐었다. 선우의 밭은 신음 소리가 침실을 울린다. 젖은 살이 갈라지는 소리가 그 위로 어지럽게 뒤섞였다.
“아, 전무님, 제발.”
여자가 애원을 했다. 붉게 벌어진 입술에서 신음이 끊이지 않고 흘러나왔다. 종국에는 파르르 떨면서 허리를 들어 올렸다.
문도는 떨고 있는 여자의 몸을 멈추지 않고 파고들었다. 절정이 이어진 여자는 울먹이며 그를 찾았다. 견딜 수 없다고, 이제는 그만하고 싶다고 애원하는 선우를 훔치고 또 훔쳤다.
외롭고 외로운 너는 그 가난한 마음에도 사람을 들이지. 얼마 남지도 않은 마음을 결국 내게로 흘려보내고 말아. 곁에 있는 나를 확인하고서야 다시 눈을 감고 잠을 자는 너는.
너는 어떻게 될까.
만신창이가 된 너는 어떻게 살아갈까.
아무도 없는 너는 긴긴밤 무슨 생각을 할까.
나를 증오할까.
나를 잊을까.
덧없는 생각이었다. 문도는 흔들리는 이선우를 품에 안았다. 숨도 쉴 수 없을 만큼 세게 안고서 입을 맞추었다. 가슴에 뜨거운 바람이 휘몰아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