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 천국과 지옥 사이에는(1)
서명구 회장이 사망했다. 사인은 심장마비였다.
장례는 오일장으로 결정되었다. 검은색 양복을 입은 문도는 장례식장의 입구에 하나씩 놓이는 화환들을 보았다. 부고 소식이 뜨기도 전에 도착한 화환들이었다.
“명 실장님.”
문도는 장례 지도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명 실장을 불렀다.
“조문은 내일 아침 6시부터 받습니다.”
“네. 그렇게 알리겠습니다.”
오늘 아침인가. 문도는 자정이 넘어간 시계를 보며 생각했다. 어수선한 장례식장 한쪽에서는 끊임없는 통곡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회장니이임. 이런 게 어디 있어. 이렇게 가면 어떡하라고. 으으으.”
문도는 가슴을 쥐어뜯는 박소영을 바라보았다.
원하는 것을 조를 때나 제 신세의 설움을 토로할 때면 철퍽 주저앉아 엉엉 통곡을 했었던 그녀는 서명구 회장의 죽음 앞에서 가슴을 쥐어뜯는다.
으으으, 어어어, 길게 이어지는 흐느낌은 낮은 곡조의 노래 같기도 했다.
박소영의 옆에는 서유라가 있었다. 넋이 나간 얼굴로 주저앉은 서유라는 제 어미의 손을 잡고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우리 회장님 가는 길까지 첩 끼고 놀다 가시고. 아주 징하다, 징해. ”
안쪽에 준비된 방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온 서중호가 말했다. 왼팔에는 상주를 의미하는 두 줄짜리 완장을 차고 있었다.
“미친년이 뭘 잘했다고 울어.”
느슨한 타이를 조이면서 서중호가 서늘한 눈으로 박소영을 보았다.
회장은 비아그라를 먹고 박소영과 성관계를 하다 죽었다. 흔히 말하는 복상사였다.
“어차피 몇 시간 뒤면 집으로 가야 하는데 그냥 두세요. 직원들도 있는데 욕은 하지 마시고요.”
상복을 입은 우현희가 다가와 말했다. 우현희의 말대로 박소영이 울 수 있는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새벽이 지나 출입을 막아 놓은 입구의 문이 열리면 조문객이 밀려들 것이다.
장례가 이어지는 5일 동안 박소영은 이곳에 들어올 수 없다. 여기까지 쫓아올 수 있었던 것도 우현희의 배려였다.
“그래요. 내가 생각이 짧았어요. 때 이르게 돌아가시는 바람에 일이 꼬인 거 생각하면 울화가 치밀어서 그만.”
서중호의 말대로 승계 작업이 마무리되기 전에 돌아가셨으니 당분간 시끄러울 거였다. 빈틈만 노리던 서용호, 서미경 일가가 반기를 드는 건 당연할 테고, 연합까지 생각할 수 있었다.
이럴 일을 대비해 몇 겹으로 대비를 해 두었지만, 수월하게 넘어가지는 않을 터였다.
“울 아버지 이렇게 가시네. 끝까지 자식은 뒷전으로 이렇게 가셔.”
벽에 기대어진 커다란 영정 사진을 보는 서중호의 표정에는 허탈함과 피곤함이 어려 있었다. 명 실장이 다가와 서중호에게 말했다.
“부회장님, 대표님, 직접 부고 알리실 분들 목록 검토 부탁드립니다. 서용호 사장님께서는 아침에 도착하신다고 연락 왔습니다.”
타이밍이 좋지 않은 건 서용호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필 서창도와 함께 미국에 나가 있을 때 회장이 사망했으니 부랴부랴 들어와도 장례를 주도하기에는 늦는다.
고개를 끄덕인 서중호가 우현희와 함께 걸음을 옮겼다.
“전무님, 기자들 미디어 라인은 로비까지 정하고 미디어룸도 정리 끝냈습니다.”
“부고 기사는요?”
“최종 버전 나오면 확인하고 바로 메일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문도는 명 실장의 보고에 고개를 끄덕였다. 회장이 위독할 때마다 몇 번에 걸쳐 업데이트가 된 부고 기사는 이제 날짜와 시간, 장소가 최종 확정이 되어 언론사로 보내질 것이다.
죽음을 애도하기에 앞서 준비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비애는 잠깐이고 삶은 이어져야 하니까.
“고생이 많아요.”
문도의 말에 명 실장이 아닙니다, 인사를 하고는 물러났다.
문도는 흰 국화꽃이 장식되고 있는 거대한 제단을 바라보았다. 벽에 기대어진 커다란 영정 사진이 직원들의 손에 들리더니 제단 한가운데로 놓인다.
영정 사진 주위로는 노란 국화가 꽂혔다. 샛노란 테두리 같은 국화꽃을 보다가 문도는 서 회장이 박소영에게 사 주었던 노란색 페라리를 생각했다.
그때 그 차를 사 주지 않았더라면 회장은 박소영 위에서 죽는 일은 없었을까.
죽음을 예감하여 페라리를 사 준 걸까, 페라리를 사 주는 바람에 죽음에 이른 걸까.
생각은 이선우로 이어진다.
오르막이 시작되는 큰길 입구에서 내려 달라고 했던. 조심히 들어가시라는 인사를 남기고 룸미러 너머로 빠르게 멀어졌던 이선우.
끝이 오려고 이선우는 그렇게 달콤했을까. 그렇게 달콤했기에 끝이 온 걸까.
헛된 생각이다.
문도는 건조한 시선으로 고인의 영정 사진을 바라보았다. 가슴을 쥐어뜯는 박소영이 보인다. 끝은 허망하였다.
* * *
조문객은 끝없이 밀려들었다. 정재계의 유명 인사가 등장을 할 때마다 사방에서 플래시가 번쩍거렸다.
상주를 맡은 서중호의 모습이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그 옆에는 서문도와 우현희가 있었다. 가십을 다루는 포털에는 상복을 입은 서유라의 모습도 올라왔다.
하루 늦게 도착한 서용호는 상주의 완장을 찬 서중호를 보고 눈을 뒤집었다.
어디서 장남을 두고 차남이 상주 노릇이냐며, 배워 먹지 못한 상놈의 새끼라고 삿대질을 했다.
다 늦게 도착해선 차려 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는 건 여전하다며, 가져갈 테면 가져가시라 서중호는 상주 완장을 바닥에 던졌다.
장막 뒤에서 벌어진 일이었지만, 두 사람 간의 팽팽한 분위기는 숨겨지지 않았다.
서중호 부회장의 경영 승계가 순조롭게 이루어질 것인가에 대한 기사와 승계 구조에 대한 분석까지, 경제 섹션 뉴스는 온통 서도 그룹 이야기였다. 채 정리되지 않은 지분에 대한 상속세와 서미경, 서유라까지 변수에 들어갔다.
늦은 밤, 문도는 흡연석으로 지정된 야외의 벤치로 향했다.
장례 3일 차. 피로가 누적되자 발목까지 진창에 잠긴 것만 같았다. 흡연을 위해 나와 있는 조문객들과 인사를 나누고 담배를 꺼냈다.
조문객들이 적당히 들어갈 때를 기다리는데, 괘념치 말고 편하게 피라며 야당의 국회의원 하나가 다가와 담뱃불을 붙여 주었다.
“서 전무가 할 일이 많겠어. 회장님 살아 계실 때 화투를 몇 번 같이 친 적이 있는데 말이지.”
담배를 한 모금 빨더니 후 연기를 뱉으며 말을 잇는다.
“이 양반이 신기한 게 뭐냐면, 잃지를 않으시는 거야. 크게 쓸어 간 판은 별로 없는 것 같은데 끝나 보면 서 회장님 담요 아래가 제일 두둑했거든.”
손해 보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던 조부의 이야기를 들으며 문도도 길게 연기를 내뿜었다. 가을장마가 시작된다더니 안개 같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뿌옇게 내리는 비 사이로 낮게 퍼지는 담배 연기를 보는데 눈에 익은 여자가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이선우였다.
단정한 검은색 원피스를 입고 머리를 하나로 내려 묶은 이선우가 쇼핑백 몇 개를 들고서 주차장 길을 올라오고 있었다.
“우리끼리는 그런 말이 있었어요. 서 회장님 가시는 길만 따라가면 망하지는 않는다.”
왁자하게 퍼지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문도는 스쳐 가는 여자를 보았다.
가는 물방울이 머리카락에 맺힌 여자의 시선이 잠시 문도를 향했다가 스치듯 지나간다. 아주 살짝 고개를 숙인 것도 같은데 확실치는 않았다.
장례식장 입구에서 이선우는 핸드폰을 들었다. 통화를 하는 듯하더니 이내 안으로 들어갔다.
“케미컬 크게 키우실 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손자가 이렇게 잘해 나가니 회장님 마음이 얼마나 든든하실지.”
“과찬이십니다.”
문도는 빙그레 웃는 것으로 허울뿐인 칭찬에 답했다. 다시 시작되는 수다를 들으며 길게 담배 한 모금을 마셨다.
‘기운 내세요.’
장례가 시작되던 날 이선우에게 메시지 한 통을 받은 게 전부였다.
담담한 위로 한마디 건네고 조용히 그를 기다리는 이선우는 2층을 얼마나 뒤져 보았을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부지런히 찾아보기를 바란다.
* * *
“이건 드라이 맡기고, 이건 옷장으로. 하……. 며칠 잠을 못 잤더니 눈알이 빠질 것 같아.”
초췌한 모습의 서유라가 눈에 인공눈물을 넣으면서 말했다.
다른 사람들을 몰라도 사 남매는 자리 비는 일 없게 하라는 서용호의 말에 서유라는 근처의 호텔을 얻었다. 그나마도 잠을 잔다기보다 잠깐 들어가 씻고 나오는 정도라고 했다.
렌즈 세척액이며 인공눈물, 속옷과 자신이 쓰는 특정 샴푸 등 필요한 물건들을 읊어 주며 챙겨 오라는 말에 이것저것 더 챙겨 온 참이었다.
“비타민하고 영양제예요. 장 여사님이 공진단도 넣으셨어요. 힘드실 때마다 아침저녁으로 하나씩 씹으면 된대요.”
선우가 하나씩 꺼내 주며 설명했지만 서유라는 다 귀찮은 듯 손을 휘휘 젓고는 멍하니 앉았다가 묻는다.
“엄만 어때?”
박소영은 계속 울고 있었다. 눈을 뜨면 울고, 울다가 기운이 빠지면 옆으로 넘어갔다. 주치의가 붙어서 수액을 놓아 가며 돌보는 중이었다.
“계속 그 상태세요.”
“하…….”
심란한 표정으로 서유라가 머리를 넘기더니 선우를 올려다보았다.
“들어가 봐. 장 여사한테 엄마 좀 잘 챙기라고 하고.”
“네. 약 챙겨서 드세요.”
가 보라고 손짓을 하는 서유라에게 인사를 하고 발걸음을 돌려 나오는데 한 무리의 남자들이 입구로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며 들어오는 서문도의 모습이 보였다. 살짝 가라앉은 표정이지만 담담한 모습이었다.
그 옆으로 TV에서 몇 번인가 보았던 정치인도 보였고, 사진으로만 보았던 재벌가 사람들도 눈에 보였다.
스치며 시선이 만났지만 아주 잠시였다. 서문도는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들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고, 선우는 홀로 장례식장을 나왔다.
택시를 불러 놓고 기다리는데 한두 방울씩 하늘에서 비가 떨어졌다.
안개 같은 비가 굵어져 투둑투둑 내려온다. 선우는 손을 뻗어 내리는 빗방울을 만졌다.
다른 사람이었고, 다른 세상이구나.
알고 있었는데도 새삼스러웠다. 남자는 다른 세상에 속한 사람이었다. 자신과 어울려 주기는 해도 먼 곳의 사람이었는데 잠깐 잊고 있었다.
선우는 서명구 회장을 처음 보았던 날을 생각했다. 박소영이 국산 차를 받고 울었던 날이었다.
선우가 인사를 했을 때 휠체어에 앉은 서 회장은 고개도 까딱이지 않고 스쳐 지났었다. 그 눈에 선우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언젠가 서문도 역시 자신을 그렇게 스쳐 갈까. 그렇게 되겠지. 당연한 일인데 마음이 아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