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러브 어페어-92화 (92/168)

92. 신데렐라의 무도회

“아, 너무.”

깊다는 말은 문도의 혀가 훑어갔다. 침대로 오는 사이 벗겨진 옷은 여기저기에 떨어져 있었다. 하얀 시트 위에 등을 대고 누운 선우의 다리가 문도의 어깨에 걸려 있었다.

열감이 오른 탓에 시야가 흔들렸다. 보이는 것은 전과 다름없이 선명한데 이상하게 둥둥 떠 있는 느낌이었다.

허리를 세운 채로 비뚜름히 웃는 남자도, 남자의 어깨에 걸려 있는 자신의 다리도, 그 위를 비스듬히 스쳐 가는 오후의 햇살도 현실인 듯 현실 같지 않았다.

아흣.

문도가 허리를 잡아 아래로 당기는 바람에 선우는 신음성을 터트렸다.

안쪽을 꽉 채우는 남자의 몸은 거대한 나무 같았다. 그 나무의 밑동 끝까지 바짝 들어와 있는 느낌에 눈을 감고 진저리를 치는데 뜨거운 것이 다리를 훑었다.

“아, 뭐 하는…….”

눈을 뜨니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이마 위로 내려와 있는 서문도의 모습이 보였다. 건조한 눈동자 속, 비릿한 욕망이 고여 있는 모습이 숨 막힐 정도로 퇴폐적이었다.

시선이 버거워 눈을 돌리려는 순간 문도가 선우의 종아리를 혀로 핥았다. 쓰윽, 뜨겁고 축축한 것이 선우의 다리를 훑으며 지나갔다.

아.

선우는 몸을 움츠렸다. 뜨거운 혀가 뱀처럼 다리를 기어 다니는 기분이었다. 한 번씩 깨물릴 때마다 선우의 허리가 얕게 들썩였다. 남자가 발가락을 입에 넣었을 땐, 선우는 입을 틀어막으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 마……. 하지, 말아요…….”

아직도 굳은살이 남아 있는 울퉁불퉁한 발이었다. 발레를 하는 사람들의 숙명 같은 거라 부끄럽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지만, 이렇게 남자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건 다른 문제였다.

“아흣.”

문도가 발가락을 삼켰다. 아니야, 하지 말아요. 깨물리고 빨리는 동안 선우는 고개를 저으며 허리를 비틀었다.

남자는 그저 발가락 하나를 빨고 있을 뿐인데 온몸이 빨리는 기분이 들었다. 눈이 뜨거워지고 아랫배가 조여들었다.

울컥, 물이 터져 나오는 느낌에 선우는 시트를 움켜쥐었다. 아찔하게 조여 오는 느낌에 문도는 목을 뒤로 젖혔다. 뜨거운 숨이 웃음처럼 터져 나왔다.

“좋아?”

남자의 목소리가 몸을 긁었다. 안쪽 깊은 곳에 박혀 있는 문도를 선우는 흐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서문도와 눈빛이 엉킨다. 순간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감각이 밀려오며 다시 아랫배가 세게 조여들었다.

“하……. 너 진짜.”

문도가 잇새를 물며 눈을 질끈 감는다. 그 모습이 좋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선우는 탄식처럼 말했다.

“좋아요, 너무.”

남자가 헛웃음을 웃었다. 짙게 가라앉는 눈동자에는 열기가 꽉 차 있었다. 문도가 선우의 다리를 움켜쥔 채 허리를 뒤로 물린다.

안쪽을 긁으며 내려간 몸이 쿵, 하고 안으로 박히는 순간 선우는 허리를 들어 올리며 탄성을 터트렸다.

“이게 하고 싶었어?”

탁해진 목소리를 들으며 선우는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없는 곳이라면 먼저 입을 맞춰 보고 싶었다. 손을 맞잡고 싶었고, 부드럽고 따뜻하게 몸을 섞는 것도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선우는 남자가 자신을 뜨겁게 원하기를 바랐다. 늘 지배자였던 남자가 여유를 잃고서 흐트러지기를 바랐다.

“하고 싶었어요. 전무님이랑……. 이렇게, 하고……. 싶었어요.”

남자의 목울대가 느리게 솟았다가 내려왔다. 버겁도록 선우를 차지한 남자는 허리를 세우면서 기가 찬다는 듯이 웃었다.

“네가 나를 미치게 하려고 하지.”

응. 당신이 나한테 미쳤으면 좋겠어. 오늘은 그랬으면 좋겠어.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쿵, 하고 남자의 몸이 선우에게로 깊게 박혔다. 아윽, 하는 신음 소리가 절로 튀어나왔다.

남자의 몸짓에 점점 속력이 붙었다. 선우는 눈을 감았다. 오후 햇살이 잔상처럼 남아 금색의 빛들이 감은 눈 안에서 춤을 추듯 흔들렸다.

아, 아아.

입술 사이로 신음 소리가 제멋대로 흘러나왔다. 벌어지는 선우의 입술을 남자가 집어삼켰다. 선우는 남자의 목에 팔을 감았다. 속절없이 흔들리면서도 입을 벌려 남자의 혀를 빨았다.

낮은 탄식과 더운 열기, 짓씹는 욕설들이 선우의 신음과 섞여 들었다. 쾌감이 회오리를 그리며 빙글빙글 돌았다.

아아아, 선우가 흐느끼며 몸을 비틀었을 때, 문도는 하나로 엉켜 든 혀를 제 것처럼 물었다. 닿을 수 있는 끝까지 박아 넣고서 펑, 하고 몸을 터트렸다.

선우는 눈을 질끈 감았다.

붉은 암흑 속에서 빛이 번쩍이는가 싶더니 파도에 몸이 삼켜진다. 우르르 부서지더니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선우는 발작적으로 허리를 들고서 숨을 멈추었다. 온몸이 거품이 되어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문도는 선우의 등을 받쳐 안으며 끝까지 닿아 있는 몸을 한 번 더 세게 밀어 넣었다. 흐윽, 하고 여자의 탄성이 문도의 입속으로 퍼졌다. 절정은 소리 없이 아득했다.

어깨에 매달린 선우가 바르르 떨었다. 제멋대로 수축을 거듭하며 마지막까지 문도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문도는 한 번 더 선우의 입술을 베어 물었다. 창밖에는 노을이 붉게 타고 있었다.

* * *

선우는 천천히 눈을 떴다. 열리는 시야 속에서 하얀색 베갯잇이 보였다.

씻어야 한다는 생각을 마지막으로 했던 것이 기억났다. 잠시만 눈을 감았다가 씻자고 생각했는데, 그대로 잠이 들었나 보다.

“더 자요.”

들려오는 목소리에 선우는 고개를 들었다. 가운을 입은 채로 침대 헤드에 등을 기대앉은 서문도의 모습이 보였다.

잠시 멍한 눈으로 보고 있는데 서문도가 부드럽게 웃으며 선우의 머리카락을 넘겨주었다.

“얼마나 잤어요?”

선우는 꽤 오래 잤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느새 해가 저물었는지 방이 살짝 어두웠다.

“한 시간 조금 넘게?”

“아……. 너무 오래 잤네요. 들어가야 하는데.”

선우는 부스스 몸을 일으켰다. 시트가 흘러내리며 벗은 몸이 드러났다. 선우를 훑고 내려간 서문도의 시선이 유선형의 가슴에 머물렀다.

“색깔이 예뻐.”

갑작스런 말에 선우는 당황했다.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시트를 끌어 올리는데 서문도의 손이 툭, 시트를 내렸다.

“모양은 완벽하고, 맛도 좋아요.”

확 붉어진 선우의 얼굴을 보며 서문도가 웃었다. 나른한 웃음이 선우의 목을 막히게 했다.

“씻고 올게요.”

침대에서 일어나려는데 팔이 잡혔다. 겨드랑이 사이로 손이 들어오는가 싶더니 몸이 위로 쭉 딸려 올라갔다.

벌거벗은 채로 남자의 허벅지 위에 올라 앉혀졌다는 것에 당황하기도 전에 서문도가 선우의 머리를 넘겨주면서 물었다.

“잘 잤어요?”

당황스러운 와중에 목소리가 너무 다정해서 가슴이 울렁거렸다. 문도가 한 번 더 손으로 선우의 머리를 넘겨주었다.

부드럽게 스쳐 가는 손길이 두피를 스쳐 목 아래로 떨어졌다. 머리부터 목까지 저릿거리는 기분에 선우는 낮게 숨을 삼켰다.

“네. 그러니까 이제 씻고.”

나갈 준비를 해야 했다. 저녁을 먹고 나면 곧 밤이 될 거였다. 휴가는 오늘까지였고, 내일을 위해선 남자도 별채로 돌아가야 했다.

“오늘 여기서 자고 갈까요?”

서문도가 선우의 머리카락을 귀에 꽂아 주면서 말했다.

“네?”

되묻는 선우에게 담담히 대답을 한다.

“내려가서 저녁도 먹고, 쇼핑도 하고.”

“출근하셔야 하잖아요. 저도 아침에 별채에 가야 하고.”

“나는 새벽에 들어가면 되지. 이선우 씨는 집에 들렀다 왔다고 하면서 아침에 바로 출근하면 되고.”

빙그레 웃는 얼굴을 보는데 그래도 될까, 망설임이 싹텄다.

오늘 하루는 같이 있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온밤을 같이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었다.

원했던 건 신데렐라의 무도회 정도.

단 몇 시간, 자신의 처지를 잊고 싶었을 뿐이다. 당연히 12시를 넘길 생각은 없었는데, 아쉬움이 발목을 붙들었다.

“그래도 괜찮으시겠어요?”

“나는 좋아.”

문도가 비스듬히 기대 있던 상체를 일으키며 선우의 허리를 당겨 안았다.

아랫배가 맞붙을 정도로 바짝 당겨지는데 안쪽에서 무언가 흘러내렸다. 이상한 느낌에 다리를 조였더니 문도가 눈썹을 들면서 선우를 보았다.

“위에서 해 보려고?”

놀리려 하는 말이겠지만 말문이 막히는 건 마찬가지였다.

“아니요, 그런 게 아니라 안에서 뭐가 흘러서.”

뱉어 놓고 나니 이 또한 민망한 말이었다. 다리 사이를 흐르고 있는 액체가 무엇인지 서문도가 모를 리 없었다. 선우의 얼굴이 화끈거렸다.

“씻어야겠어요.”

일어나려는 선우의 팔을 문도가 잡았다. 민망해서 눈을 맞추지 못하고 고개를 트는 선우의 턱을 잡아서 제게로 고정시켜 놓고 물끄러미 본다. 그러다 피식 웃으며 말했다.

“미친놈이라고 생각하고 들어.”

웃고 있는 눈이 까맣게 가라앉아 있었다. 숨통을 조이는 눈동자에 선우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마른침만 넘겼다.

“아무 데도 가지 말고, 나랑 있어.”

무슨 말일까. 이해가 잘 되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가슴이 아려 왔다.

무슨 말이냐고 되묻기 전에, 아주 질이 나쁜 농담이었다는 듯 서문도가 비스듬히 웃었다. 그러더니 예의 그 부드러운 손길로 선우의 머리를 쓸어 넘겨주었다.

네.

그 대답을 할 수 없는 선우는 문도의 어깨에 팔을 올렸다. 고개를 비틀어 문도의 입술 위에 자신의 입술을 포개며 눈을 감았다.

가벼운 입맞춤을 할 생각이었는데 마음이 아쉬워 느리게 입술을 떼었다. 천천히 눈을 뜨니 서문도가 알 수 없는 눈으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

그렇게 그저 말없이 서로를 보았다. 시간은 멈춘 듯 느리게 흘렀고, 세상엔 오직 두 사람만이 남은 것 같았다.

날카로운 벨 소리가 울린 건 그때였다. 문도의 옆에 놓아둔 핸드폰을 들었다. 서중호였다. 마주 앉은 선우를 보며 문도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

“예, 아버지.”

— 회장님 운명하셨다.

참담한 서중호의 목소리 뒤로 박소영의 비명 같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안 돼, 안 돼. 울부짖는 목소리를 들으며 문도는 눈앞의 선우를 바라보았다.

저녁 못 먹이겠네.

문도는 불을 끄듯이 눈을 한 번 감았다 떴다.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문도는 건조한 목소리로 중호에게 말했다.

“지금 들어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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