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 누가 더 좋아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명 실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전무님, 명규진입니다.”
“들어오세요.”
책상에 앉아 있던 문도는 응접용 테이블로 걸음을 옮겼다. 꾸벅 인사를 하며 들어온 명규진도 테이블로 향했다.
“커피 드릴까요?”
사무실 한편에 놓인 커피머신의 전원을 누르며 문도가 말했다.
“네, 감사합니다.”
문도는 머그잔을 아래에 놓고 버튼을 눌렀다. 두 잔을 내려 한 잔은 규진의 앞에 두고 한 잔은 자신의 앞에 내려놓으며 자리에 앉았다.
문도와 직각으로 앉은 명규진의 앞에는 여러 개의 파일철과 태블릿 패드, 자그마한 USB가 차례로 놓여 있었다.
명 실장이 제일 앞의 파일을 문도에게 건넸다.
“우선, 이선우 씨 부친인 이장명 씨가 운영하던 ‘베스트 수학학원’ 관련 서류와 가족관계입니다.”
파일을 연 문도의 눈동자가 검은색 글씨를 쭉 훑는 동안 규진은 뜨거운 커피를 천천히 마셨다.
조사한 바에 의하면, 이선우의 부친과 모친은 모두 중학교 선생님이었다. 모친은 사망하는 그날까지 학교에서 재직 중이었고, 부친은 8년 전쯤 교직에서 물러나 학원을 차렸었다.
문도는 다음 장을, 또 다음 장을 넘겼다.
이장명은 사업에 소질이 있었던지, 학원은 해마다 규모를 달리했다. 학군 좋기로 유명한 동네에서도 잘나가는 학원이었던 모양이다.
사망했던 그 시점, 그는 전 재산을 걸고 대출과 투자까지 크게 받아 학원을 체인으로 키워 내려는 중이었다.
성공하는 건 오래 걸려도 굴러떨어지는 건 한순간이다. 더구나 모든 것을 혼자서 진두지휘하던 배의 선장이 사라졌을 땐 더욱.
투자자. 은행. 사고 피해자. 변제해야 하는 채무는 많고, 남아 있는 돈은 그리 많지 않았다. 나락은 금방이었다.
부모의 그늘이 사라진 남매의 삶은 곧바로 고단해지기 시작했다.
남매는 학군이 좋은 곳으로 소문났던 동네를 떠나 먼 곳에 있는 작은 평수의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이선우는 발레단을 그만두었고, 이민우는 군대를 갔다.
친가의 유일한 친척인 큰아버지 이성명은 캐나다로 이주한 지 20년이 넘었고, 외가로는 이모인 정미숙이 세종에서 살고 있었다.
다음 장을 넘기자 사진이 먼저 보였다.
밝게 웃고 있는 청년의 모습이었다. 이선우와 그리 닮지는 않았지만 반달처럼 휘어지는 눈매가 비슷했다.
그 아래에도 사진이 있었다. 커다란 꽃다발을 들고 공연용 의상을 입은 이선우와 함께 찍은 사진. 그다음으로는 네 식구가 환하게 웃으며 같이 찍은 사진.
이민우의 학력란에 이선우의 집 근처에 있는 대학교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선우가 왜 그 동네를 골랐는지 설명이 되는 부분이었다.
읽어 내리는 속도에 맞추어 명규진이 설명을 더했다.
“이민우 사망 당시 사건 파일도 첨부했습니다.”
서유라의 이름이 보였다. 최지상의 이름도. 문도는 별다른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명규진도 차분히 보고를 이었다.
“사망 당시 이민우는 복학 준비를 하면서 카페 아르바이트와 대리운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날 클럽에 있었던 것도 아르바이트 중이었던 것으로 파악되었고요.”
서류상의 이민우는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부모를 한 번에 잃었으니 평범하다고 하긴 어려웠지만, 특별한 비행의 흔적도, 사고를 친 흔적도 없었다.
“평판은 어땠습니까?”
“SNS와 페이스북으로 보여지기로는 친구도 많고 활발한 성격이었습니다.”
문도는 엎드려 피를 흘리고 있던 청년을 떠올렸다. 그에게는 죽은 남자 1이었을 뿐인 엎드린 시체를.
그날 아침 경찰 조사를 받고 나온 서유라를 병원에 보낸 뒤 그쪽으로는 한 번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었다.
찍었던 사진은 USB로 옮기며 핸드폰에서 바로 지웠고, USB는 장 변호사가 건네준 핸드폰과 함께 금고에 보관을 했다.
어찌 되었는지 궁금하지도 않았고, 궁금하지 않았으므로 묻지도 않았다. 서유라의 문제는 서유라의 문제일 뿐, 그가 엮일 필요는 없는 일이므로.
아버지야 보호자를 자처하고 나선 상황이니 개입을 한다 쳐도, 그와는 관련이 없는, 없어야만 하는 일이었기에 문도는 먼지 묻은 손을 툭툭 털고 다시 일상을 살았었다.
“이건 김영재와 최지상 관련한 파일이구요.”
다른 파일이 문도에게 넘어왔다. 후루룩 읽으며 명 실장의 보고도 같이 들었다.
“김영재는 최지상이 속해 있던 더블 에이전시 소속이었습니다. 최지상이 이선우 씨와 접촉한 건 묵밥집이 처음이었고, 여자관계는 현재 깨끗합니다. 마지막으로.”
커피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은 규진은 마지막 파일을 문도의 앞으로 밀었다.
“이선우 씨 관련한 파일입니다.”
고개를 끄덕인 문도는 파일을 열지 않았다. 다른 파일들 위로 올려놓고 명 실장을 보았다.
“핸드폰 업체는요?”
“오후에 약속 잡아 놓았습니다. 만나 보고 다시 알려 드리겠습니다. 관련 파일들 전부 담아 둔 USB입니다.”
USB까지 건넨 뒤 규진이 전무실을 나갔다. 문도는 소파 깊이 등을 기댔다.
잠시 그렇게 있다가 적막 속에서 파일을 열었다. 그리고 종이 위에 쓰여 있는 이선우의 삶으로 걸어 들어갔다.
마지막 장을 덮은 문도는 핸드폰을 꺼냈다. 이선우의 번호를 올려 두고 잠시 바라보다 통화 버튼을 눌렀다.
— 네, 이선우입니다.
소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선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전화를 받네요?”
— 아, 네. 워치로 받을 수 있는데 이게 스피커폰처럼 다 들리는 거라. 잠시만요.
뭐야, 누군데, 서문도?
서유라의 목소리가 크게 들렸다. 네, 전무님이세요, 잠시만 통화하고 올게요. 야, 빨리 와야 해! 네, 금방 와요.
이선우의 대답이 들린 뒤 수화기 너머가 고요해진다.
— 네, 전무님. 말씀하세요.
“그냥. 뭐 하고 있나 궁금해서.”
창 너머의 구름을 보며 문도는 말했다.
— 아……. 네……. 유라 씨랑 동영상 촬영하고 있었어요.
“무슨 동영상?”
— 달고나 커피라고, 유행하는 커피를 만드는 건데요. 믹스커피를.
거기까지 말한 선우가 잠시만요, 라고 했다. 네, 유라 씨, 가요, 라고 말한 뒤 그를 부른다.
— 전무님, 죄송한데.
“죄송할 짓은 하지 말고.”
— 유라 씨가 불러서요.
문도는 발을 동동 구를 이선우를 생각했다.
누군가 파일을 읽었다면 팔자 한번 더럽게 사납다고 했을 이선우는 서문도와 서유라 사이에 끼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서유라가 중요해요, 내가 중요해요?”
너는 발을 동동 구르고, 나는 그걸 지켜보겠지. 헛된 노력을 계속하도록 내버려 두고 구경을 하겠지.
부모를 잃고, 꿈을 잃고, 동생도 잃은 팔자 사나운 너는 마지막까지 재수가 없어서.
— 네?
“서유라가 좋아, 내가 좋아?”
불행의 불행을 거듭해 온 너는 왜 마지막까지 불행을 안겨 줄 나에게 뛰어들었을까.
왜 하필 나를 기만해서, 제 발로 걸어서 나락으로 가는 줄도 모르고 있나. 운도 더럽게 없지.
이선우 빨리 안 와! 멀리서 찢어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선우가 한숨을 쉬었다.
— 전무님 그건, 당연히…….
아, 거품 꺼지기 전에 빨리 오라구!
서유라의 목소리가 이선우의 목소리를 잡아먹었다.
— 죄송해요. 가 볼게요.
다급히 말한 이선우는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질문에 대한 답을 들은 셈이었다.
* * *
“전무님, 들어가겠습니다.”
자정 즈음하여 호출 전화를 받고 2층으로 올라온 선우는 중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마스터룸에서 나오던 서문도와 눈이 마주쳤다.
“왔어요? 앉아요.”
문도가 소파로 향하면서 말했다. 1인용 라운지체어에 앉을 거라 생각했는데, 3인용 긴 소파에 앉는다.
선우는 살짝 난감한 표정으로 1인용 체어를 보았다. 앉으라 하니 앉긴 해야겠는데 1인용 상석에 앉는 건 꺼려져서였다.
“이쪽으로 앉으라고.”
서문도가 자신의 옆자리를 가리켰다. 어색할 것 같은데……. 선우는 조심스럽게 사이를 띄우고 문도의 옆자리에 앉았다.
“보고……할까요?”
보고를 해야 하냐고 물어보는 이유는, 서문도의 머리가 선우 쪽으로 많이 기울었기 때문이었다. 코끝이 닿을 것 같은 거리에서 서문도가 되물었다.
“어떻게 하고 싶어요?”
어떻게 하고 싶냐니……. 그건 당신이 결정할 일이잖아.
“저는, 음.”
뭐라 말을 시작하기 전에 입술이 포개졌다. 치약의 민트맛이 전해지며 입안이 화해졌다.
정말, 이 사람은 정말, 키스를 너무 잘해.
부드럽게 빨았다가, 세게 당겼다가, 놀리듯이 핥는다. 세포들이 사르르 녹아드는 기분에 선우는 손끝에 힘을 주었다. 그걸 눈치챘는지 서문도가 선우의 팔을 들어 자신의 어깨에 얹게 했다.
자세가 바뀌는 줄도 몰랐다. 입술이 떨어지는 바람에 눈을 드니 서문도의 다리 위에 올라앉아 있었다.
“그래서, 누가 더 좋다고요?”
현실 세계로 막 돌아온 선우에게 서문도가 물었다. 선우는 눈을 깜빡였다. 갑자기 무슨 이야기인가 싶어서. 그러다 생각이 났다. 낮에 왔던 전화와 난처했던 질문이.
“그야, 당연히…….”
전무님이죠. 한마디면 되는데 자신을 빤히 올려다보는 눈동자를 보니 괜히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이처럼 무릎에 올라앉은 자세로, 자신의 한쪽 뺨을 감싸 쥐고 있는 남자에게 당신이 좋다고 말을 하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나 보다.
“노력이 모자랐나?”
비스듬히 웃은 서문도가 선우의 얼굴을 당겼다. 커다란 손으로 뺨과 귀, 뒷머리까지 감싸고서 입술을 맞추어 온다. 아까보다 진하고 깊은 입맞춤은 선우가 달뜬 숨을 뱉을 때까지 멈춰지지 않았다.
“이제 대답할 수 있겠어요?”
언제 자세가 변했는지 이번에 선우는 소파에 누워 있었다. 자신을 올라타다시피 한 서문도가 조명을 가리며 선우의 위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누가 더 좋아.”
빛을 가린 남자에게서 빛이 쏟아지는 것 같다. 자꾸 대답을 잊는 선우에게 문도가 다시 입을 맞추었다. 벌을 주듯 아프게 깨물고 숨이 막히도록 깊이 파고들었다.
“말해요.”
잠시 숨을 터 주며 남자가 물었다.
“전무, 님이요.”
선우는 토해 내듯 말했다.
“전무님, 이…… 좋아요.”
기어이 대답을 받아 낸 남자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선우의 상기된 뺨을,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부풀어 오른 입술을 손끝으로 만지더니 웃으며 물었다.
“방으로 갈까?”
네.
선우가 할 수 있는 대답은 그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