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 해신탕
문도는 본관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휴가에서 돌아온 회장에게 인사를 겸한 아침 식사를 같이하기 위해서였다.
“오셨어요?”
손에는 반찬 그릇을 올려놓은 쟁반을 든 장 여사가 주방에서 나오며 문도에게 인사를 건넸다. 온 집 안에 진득한 육수 냄새가 감돌고 있었다.
“냄새가 진하네요.”
“어제 말복이었잖아요. 삼계탕으로 부족하셨는지 회장님이 해신탕 요청하셨어요.”
별장에서도 별의별 음식들을 찾아서 먹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민어를 통째로 올려놓고 껍질부터 부레까지 오물오물 먹었다고.
“오래 사시겠네, 우리 회장님.”
문도의 말에 장 여사가 눈을 끔뻑하며 다이닝룸으로 고갯짓을 했다. 회장이 다이닝룸에 있다는 뜻이었다.
“일찍 일어나셨네요. 휴가는 잘 다녀오셨어요?”
문도는 다이닝룸으로 들어가며 회장에게 인사를 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직이었고, 상석에 회장이, 그 옆자리에 박소영이 앉아 있었다.
“무, 문도. 오, 오랜만에, 보는 거, 같아. 로, 롱타이므, 노 씨.”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는 회장의 얼굴이 반질반질하게 빛나고 있었다. 굽었던 허리도 제법 꼿꼿해졌고 쭈그러들었던 피부도 팽팽해졌다. 하루가 멀다 하고 보양식을 찾아 먹은 결과인가.
“평창이 좋았나 보네요. 회장님 10년은 젊어지신 것 같은데요.”
자리에 앉으며 말하자 회장이 벙글 웃었다. 옆자리에 앉은 박소영이 문도에게 눈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아유 요즘 기운이 얼마나 좋아지셨는지, 휠체어 거의 안 쓰잖아. 우리 회장님 30년은 더 사셔야죠. 그쵸오?”
생글생글 웃는 박소영의 얼굴은 피곤해 보였다.
하루 24시간 남의 비위를 맞추고 산다는 게 그리 쉽지만은 않은 일인지 회장이 날로 건강해질수록 박소영은 조금씩 푸석해지고 있었다.
“누가 30년을 더 산다고요? 아버지, 어뜨케 잠자리는 편안하셨어요?”
서중호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모습이 보였다. 말끔히 넘긴 머리에 스킨 냄새를 풍기며 들어온 서중호는 문도의 옆자리에 앉았다.
“아유, 누구겠어. 우리 회장님이시지. 나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울 회장님 딱 30년만 더 사셨으면 좋겠어.”
박소영의 말에 서중호가 멈칫하더니 둥글게 눈을 굴리며 크게 웃었다.
“아하하, 그래야죠. 그럼요. 우리 회장님 30년이 무어야 50년은 더 사셔야죠. 이 작은 아들 소원입니다. 만수무강하소서.”
문도는 물을 마시며 실소를 감췄다. 30년을 더 살면 아버지 서중호는 아마 미칠 것이다.
평생토록 왕이 되지 못하고 세자로 살다 죽으라는 건 지독한 저주였다. 눈이 돌면 사고를 가장한 살인을 저지를지도 모르지.
“좋은 아침입니다. 아버님, 편히 주무셨어요?”
우현희가 내려와 인사를 하면서 안으로 들어왔다. 모일 사람은 모두 모였다. 장 여사가 주방에 신호를 주었고, 방짜 유기 그릇에 담긴 해신탕이 앞앞이 놓였다.
“오오오오.”
다리를 꼬아 앉은 자그마한 닭에 통째로 올린 낙지와 손바닥만 한 전복을 보고 서명구가 감탄을 했다. 아직 턱관절은 조절이 되지 않는 것인지 벌어진 입으로 침이 흘러내렸다.
“아이참. 이렇게 아이 같으시다니까. 회장님, 천천히 드셔야 해요. 장 여사, 낙지랑 전복 잘게 잘라 줘요.”
박소영의 목소리를 들으며 문도는 젓가락을 들었다. 아침부터 낙지 다리 물고 뜯을 기분은 아니라 가볍게 무쳐 낸 배추 샐러드를 먼저 먹은 뒤 숟가락을 들었다.
이런 건 이선우를 먹여야 하는데.
걸쭉하고 진한 국물이 미끄덩거리며 목구멍을 넘어가는 순간, 자연스럽게 이선우가 생각났다.
어젯밤의 지친 걸음걸이를 생각하니 불러다 한 그릇 떠 주고 싶은 심정이다. 다 먹을 때까지 지켜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싸 달라고 할까.
진심으로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 웃음이 나왔다.
제대로 미쳤구나.
숙소동 주방에서도 어련히 알아서 잘해 먹일 거였다.
그래도.
문도는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뽀얀 닭의 배에는 마늘과 찹쌀이 빼곡히 차 있었다. 국물에는 인삼과 대추가 모양 좋게 올라가 있고 손바닥만 한 전복은 질기지 않도록 섬세하게 칼집이 들어가 있었다.
살고자 하는 욕망이 드글드글한 음식이었다.
진시황이 불로초를 찾으라 동쪽으로 사람을 보냈다던가. 죽고 싶지 않다는 회장의 집념이 이 한 그릇에 가득 묻어나고 있었다.
이선우에게 이 음식을 먹이고 싶은 이유는, 그 여자는 스스로를 돌보지 않기 때문이었다.
오로지 본인 목으로 넘어가는 음식에 집착을 떠는 회장을 보니 그 대비가 더욱 극명해진다.
이선우는 심하다 싶을 정도로 그를 조심스러워하고 서유라의 각종 만행을 덤덤히 견디지만, 심지어 숙소동 직원과 장 여사를 위해 제 일이 아닌 일까지 손을 걷고 나서지만, 스스로를 돌보지는 않았다.
서유라를 대신하여 다치는 것을 아무렇지 않아 하는 것만 보아도 그랬다. 자그마한 아파트의 냉장고에는 과일 몇 개와 생수만이 있었다.
한때 탐욕 때문에 그에게 접근을 했다고 생각했었다는 게 믿기 어려울 정도로, 이선우는 스스로에게 무심하고 담백했다.
그런 이선우가 선명한 욕망을 드러낼 때는 오직 한순간, 그의 곁에 있고 싶다고 말을 할 때였다.
그럴 때만 자신의 마음을 뚜렷하게 드러냈다. 다 필요 없고 서문도 하나만 있으면 된다는 말이 진심이었다는 것을 이제는 믿었다.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문도는 해신탕에는 거의 손을 대지 않은 채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선우가 보고 싶었다. 주말이 되면 나가서 뭐라도 사 먹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좋아하는 음식을 맘 편히 먹을 수 있게 해 주고 싶었다.
“벌써 일어나게? 출근하려고?”
문도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서중호가 고개를 들어 물었다.
“네.”
“아니 뭘 벌써부터 출근을 하고 그래. 넌 너무 독하게 하더라. 쉬엄쉬엄해. 그러다 몸 상할라.”
자기 자식이 열일하고 있음을 회장에게 깨알같이 어필하는 아버지에게 웃어 보인 뒤 어머니와 회장에게 인사를 하고는 문도는 다이닝룸을 나왔다.
별채에 돌아가면 이선우가 와 있을까. 진하게 내린 커피를 마시고 싶어지는 아침이었다.
* * *
뒷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 보니 서문도가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눈이 마주치자 선우가 인사를 하기도 전에 문도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왔어요?”
“네. 식사하시고 오시는 길이세요?”
“응.”
건성으로 대답한 문도가 커피머신으로 다가가 컵을 놓고 버튼을 눌렀다. 위잉— 머신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더니 향긋한 커피 냄새가 거실까지 물씬 풍겨 왔다.
“커피?”
문도가 물었다. 선우는 순간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네?”
피식 웃음이 나온 문도는 선우에게 다시 한번 물었다.
“커피 마실 거냐고요.”
“아……. 저는 괜찮아요. 나중에 따로 마시면 돼요.”
“아무도 없는데 같이 마셔요.”
선우의 대답도 듣지 않고 문도는 커피 한 잔을 더 내렸다. 아일랜드 위에 올려놓고서 선우를 보니, 여전히 머뭇거리고 있었다.
“식겠네.”
문도의 말에 선우가 주위를 살피더니 조용히 다가왔다. 아일랜드 앞에 서는 선우에게 문도는 머그잔을 내밀었다.
“잠은, 잘 잤어요?”
양손으로 머그잔을 쥐고 커피를 마시는 선우에게 물었다. 선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네, 하고 대답을 했다.
문도는 커피를 마시는 선우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원래는 쿠키라도 꺼내 줄 생각이었다.
테이블에 마주 앉아 마시다가 혹시라도 누가 오면 서유라에 대해 이야기하는 중이었다는 말을 하면 그만이니까.
그런데 이렇게 나란히 아일랜드 앞에 서서 커피를 마시고 있노라니 헛웃음이 나온다. 눈에 이선우 입술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런 새끼가 조절은 무슨 조절.
문도는 선우의 손에서 머그잔을 빼앗아 들었다. 아일랜드 위에 내려놓으며 고개를 숙였다.
“아. 잠시만요. 여기는.”
어깨를 움츠리며 피하는 선우의 턱을 문도가 잡아서 제게로 돌리며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선우는 굳은 채로 움직이지 못했다.
“뽀뽀하자고 2층까지 갈 순 없잖아.”
입술을 뗀 문도가 태연하게도 말했다.
“누가 오면 어떻게…….”
“안 와.”
선우의 말을 끊으며 다시 입술을 찾는데, 선우가 입술을 피하며 말했다.
“그래도.”
“오면 어쩔 거야. 같이 커피 마시는 중이라 하면 되지.”
누가 이렇게 커피를 마셔요. 선우는 목까지 차오른 말을 삼켰다. 기어이 선우의 입술을 가져간 남자는 급기야 선우의 허리를 당겼다.
꼼짝 못 하게 가두어 놓은 뒤 다정한 눈빛으로 선우를 보며 부드럽게 입을 맞추었다. 정말이지, 이 남자는 키스를 너무 달콤하게 하는 게 문제였다.
순식간에 발끝까지 저릿저릿하게 만들어 놓는 남자를 보며 선우는 애원하듯 말했다.
“전무님, 그만요.”
큰 소리도 낼 수 없어 작게 속삭이는데 멀리서 벌컥,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깜짝 놀란 선우가 문도를 올려다보았다.
“방해꾼이 있긴 있네.”
문도는 피식 웃으며 몸을 돌렸다. 거실로 나가니 하아아암— 하품 소리를 크게 내며 서유라가 복도를 걸어 나오고 있었다. 문도는 유라에게 가볍게 인사를 건넸다.
“우리 고모님, 부지런해지셨네요?”
“아 씨.”
걸어 나오다 문도를 본 서유라가 깜짝 놀라며 욕을 했다.
“너무 부지런해지지는 말고요. 적응 안 되니까.”
웃으며 말하는 문도를 서유라가 흘끔거리더니 왜 저래, 라고 하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커피머신 옆에 두었던 핸드폰을 가지러 주방으로 향하니 선우가 긴장한 얼굴로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문도는 피식 웃었다.
“진짜 놀랐어요?”
고개를 끄덕이는 선우가 토끼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문도는 가볍게 선우의 머리카락을 넘겨주었다.
“다녀올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요.”
빨리 보내 버리고 싶은 건지 선우가 바로 대답을 했다.
“네.”
그러더니 잠깐 머뭇거리다 작게 말했다.
“기다릴게요.”
부드러운 바람 같은 목소리가 문도를 스쳐 갔다. 하루 종일 생각 날 것 같은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