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 중간이 없네
엎드린 선우의 위로 남자의 몸이 한 번 더 세게 들어왔다. 끝까지 닿아 버린 남자의 분신이 안쪽에서 부풀었다가 가라앉는 것이 느껴졌다.
흐으, 탄식 같은 신음 소리를 내며 시트를 움켜쥐는 선우의 손가락 사이사이로 남자의 손가락이 얽혀 있었다.
움켜쥐듯이 선우를 안은 문도가 몸을 빼지 않은 채로 옆으로 몸을 돌렸다. 늘어진 선우의 몸을 제 품으로 힘주어 당겨 안고는 목 뒤에 입을 맞추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탈진한 선우는 힘겹게 숨을 골랐다. 등 뒤에서 움켜쥐듯이 선우를 안은 문도가 몸을 빼지 않은 채로 물었다.
“같이 씻을까?”
선우는 고개를 저었다. 말을 하는 것도 힘에 겨웠다. 한참을 숨만 쉬다가 간신히 목소리를 냈다.
“조금 있다가 씻을게요.”
가볍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요 그럼. 조금 더 쉬고 있어.”
웃으며 말한 문도가 침대를 내려갔다. 달칵, 파우더룸의 문이 닫히는 소리에 선우는 길게 한숨을 내쉰 뒤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꼼짝도 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기진맥진했지만, 지금 이 시간을 위해 여기까지 왔기에 멈춰 있을 수 없었다. 후우, 심호흡을 한 선우는 일단 침대 옆, 협탁의 서랍을 열었다.
콘돔과 몇 개의 동전, 충전을 위한 선.
전과 다르지 않아 보였지만 그래도 한 번씩 더 확인을 해야 했다. 그동안 시간이 많이 흘렀다는 것을 생각해야 했으니까.
선우는 느리게 몸을 움직여 침대의 왼쪽과 오른쪽에 놓인 협탁의 서랍을 확인했다. 그 뒤엔 맞은편의 길고 낮은 수납장의 서랍도 한 칸씩 조심스레 열어 보았다.
전자기기들, 한쪽에 모아 놓은 리모컨. 노트북과 패드 종류들.
희미한 물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한 칸 한 칸 열었다가 닫았다. 다리 사이가 아직도 아릿해서 숨을 깊게 마시는데 안쪽에서 위잉— 바람 소리가 났다. 드라이기가 돌아가는 소리였다.
선우는 열려 있는 서랍은 없는지 확인을 한 뒤에 옷을 쥐고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
“누워 있지 않고.”
샤워 가운을 입은 서문도가 끝이 젖은 머리를 하고 나오며 물었다. 딱히 할 말을 찾지 못해서 그냥 기운 없이 미소만 지었더니 문도가 가까이 다가왔다.
“힘들면 씻겨 줄 수도 있는데.”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넘겨주면서 말하는 문도를 보며 선우는 고개를 저었다.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아니에요. 많이 쉬었어요.”
“물?”
선우가 대답을 하기 전에 문도가 협탁 위의 생수병을 들어 선우에게 내밀었다.
“씻고 올게요.”
몇 모금을 마신 선우는 물병을 협탁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문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욕실을 향해 걷다가 선우는 멈췄다. 남자의 곁에 있을 수 있을 때 가능한 많은 시간을 확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잠깐 욕조에 몸을 담그고 싶은데, 괜찮으세요?”
전이라면 이렇게 물어보는 일은 주제넘은 행동이라고 생각해서 하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할 수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 남자에게 매일 밤 사랑을 속삭였으니까.
더 이상 주제넘은 행동인지 아닌지 따져 볼 시간이 없었다. 그런 걸 고려할 시간에 차라리 무리를 해서라도 조금 더 찾아봐야겠다고 마음을 굳혀 왔다.
언제 그만두게 될지 모르는 사이, 기회가 있을 때 조금 더 적극적으로 활용을 해야 하니까.
“같이 들어가 달라고?”
서문도가 침대에 걸터앉으면서 말했다. 무슨 소리야. 거길 왜 들어와. 괜히 욕심을 부리려다 일을 망치게 생겼다. 선우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그냥 씻을게요.”
“써요. 그게 뭐 큰일이라고 물어보기까지 해.”
한 걸음 한 걸음이 조심스러운 선우의 상황을 알 리 없는 문도가 속 편한 소리를 했다.
“감사합니다. 조금만 쓸게요.”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서 다시 욕실로 가는데 문도가 입을 열었다.
“가끔.”
선우는 뒤를 돌았다. 문도가 웃지 않는 눈을 하고서 선우에게 말했다.
“속을 모르겠어. 이선우는.”
무슨 소릴까. 선우는 굳어져 눈만 깜빡였다.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내가 이선우랑 연애를 하는 건지, 서유라 트레이너랑 잠을 자는 건지 헷갈리게 하지 말아요. 너무 낮추면 매력 없어.”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있는 서문도를 보는데 멍해진다. 탈진할 정도로 잠자리를 가진 뒤에 들어야 하는 말일까.
매력이라고. 이제는 매력까지 있어야 하는 건가.
별채였다. 여기까지 오려고 남자를 유혹했고, 잠자리를 가졌다. 밀어내는 남자를 다시 잡으려 바짝 엎드려 붙잡았고, 밤마다 좋아한다 고백을 했다.
자신의 전부를 매대 위에 올려놓고 파는 기분이었는데 그것만으로도 모자라서 이제는 매력까지 갖추어야 한다고. 쓴웃음을 참으며 선우는 담담히 대답을 했다.
“별채라서 그런가 봐요. 아무래도 긴장이 되는 것도 있고요.”
“그런가?”
가볍게 되묻는 남자에게 선우는 애써 웃어 보였다.
“아직 전무님이 어렵기도 하고요.”
나는 원래 매력 같은 거 없어. 너무 낮추지 않고 당신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는데, 어쨌든 노력은 해 볼게. 그렇게 생각하며 선우는 미소를 지었다.
“씻고 올게요.”
마뜩잖은 표정으로 끄덕이는 남자를 보며 선우는 문을 닫았다. 파우더룸의 문을 소리 없이 잠근 뒤에 크게 숨을 내쉬었다.
안쪽의 욕실로 들어가 욕조에 물을 틀어 놓았다. 씻는 건 나중에라도 할 수 있으니 우선은 핸드폰을 찾아보는 게 먼저였다.
선우는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겨 파우더룸 안쪽에 딸린 작은 드레스룸으로 들어갔다. 사방이 서랍인 공간이 선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 * *
선우가 욕실로 들어간 뒤, 문도는 담배를 빼 물었다. 창가에 앉아 불을 붙이고 깊게 들이마셨다. 후우, 긴 숨이 한숨처럼 흘러나왔다.
괜한 말을 했나.
씻고 오겠다고 말을 한 이선우는 애써 미소를 짓고 있었다. 별채로 돌아온 첫날이기도 하고, 아직은 자신이 편하지 않다는 것도 잘 알겠다. 사실 크게 트집 잡을 일도 아니었다.
그냥…….
너무 조심스러워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선우의 집에서는 이렇지 않았으니까.
조금씩 편하게 웃고 한 번씩 자그맣게 한숨을 쉬던 여자는 사라지고 별채의 직원만 남은 기분이었다. 관계 중에는 느끼지 못했는데 씻고 나오니 확연히 그 차이가 느껴졌다.
괜찮으시면. 감사합니다. 조금만 쓸게요.
그 말을 듣는데 속이 뒤틀렸다. 서유라의 트레이너와 잠자리를 가졌던 과거로 돌아간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묘하게 거리를 두는 느낌이 든단 말이지. 거리를 둔다기보다 선을 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 더 정확한 말이겠다.
아직은 어려운 데다 별채에 돌아와서 그렇다는 이선우의 말을 생각하면 납득은 된다. 그냥 기분상의 문제인가.
“괜히 지랄을 떨었나.”
자신이 어려워서 조심스럽게 말을 하는 여자에게 쓸데없이 날카롭게 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도는 한숨을 쉬며 욕실로 향하는 문을 보았다.
이선우가 나오면 아까 했던 말은 신경 쓰지 말라는 말을 하려고 기다리는데, 시간이 꽤 지나도록 나오지를 않았다.
설마 잠이 든 건가.
욕실로 향하던 여자의 지친 걸음걸이가 떠올랐다. 정사가 끝난 뒤에 숨만 쉬며 엎드려 있었던 모습도 생각나 갑자기 욕실에 들어간 선우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며칠 만인 데다가 공간이 달라져서 조금 격하게 하긴 했다. 파르르 몸을 떨면서 그에게 바짝 붙어 오는 게 좋아서 길게 시간을 끌기도 했고. 중간중간 그만하고 싶다는 걸 몇 번이나 붙잡아 다시 흩뜨려 놓았던 게 기억난다.
아니다. 피곤을 푸느라 오래 몸을 담그고 있는 것일 것이다. 어련히 알아서 나오겠지.
혹시 식은 물에서 잠이 든 건 아닐까. 가뜩이나 한 줌밖에 안 되는 몸에 감기라도 들면 어쩌려고.
하다 하다 별.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있다는 걸 깨달은 문도는 한숨을 쉬었다. 담배를 비벼 끄고 일어나 욕실로 향하는 문고리를 잡았다.
“이선우.”
바깥에서 서문도의 목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덜그럭거리며 문고리가 돌아가는 소리도 들려왔다.
선우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10분도 채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바깥에서 서문도가 문을 열려 하고 있었다.
선우는 빠르게 서랍을 닫고 물을 받아 놓은 욕조로 향했다. 따뜻한 물에 발을 담그며 몸을 낮추었다. 똑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며 다시 한번 서문도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물에 몸을 담그며 선우는 대답을 크게 했다.
“깨어 있어요?”
“네. 지금, 나가려고요.”
대답을 하고서 꼬르륵 물속에 몸을 완전히 담갔다. 물이 출렁이며 흘러넘쳤다. 머리끝까지 물에 담그고 얼굴도 몇 번 문지른 뒤에 욕조에서 일어섰다.
수건으로 머리카락을 감싸고 걸려 있는 샤워 가운을 대충 두른 뒤 파우더룸으로 나가 문을 열었다.
“혹시 잠들었을까 봐.”
“노곤하긴 했는데 잠든 건 아니었어요.”
문도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문은 왜 잠가. 가릴 게 뭐가 있다고.”
뭐가 있다니. 뭘 찾으러 들어가지 않아도 욕실 문은 당연히 잠그는 거 아닌가. 언제고 벌컥 열고 들어올 수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 편히 씻을 수 없잖아.
선우는 놀라 쿵쿵 뛰는 자신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문도에게 말했다.
“편히 씻으려면 잠가야죠…….”
어디가 웃긴 말인지 모르겠는데 서문도가 웃었다. 후우. 이렇게 넘어가는구나. 안도감이 든 선우는 머리에 둘렀던 수건을 풀면서 말했다.
“그럼 머리만 말리고 건너갈게요.”
“천천히 해요. 어차피 다들 잠들었을 테니까.”
“네.”
선우는 대답을 하고 파우더룸의 화장대에 놓인 드라이기를 집어 들다가 문도를 불렀다.
“전무님.”
“응.”
“머리 말려 주실래요?”
너무 낮추지 말라고 했지. 이런 걸 말하는 것일까. 선우는 시험을 하는 기분으로 문도에게 드라이기를 내밀었다. 반짝이는 은색의 드라이기를 본 문도가 피식 웃었다.
“중간이 없네, 이선우는.”
남자가 말했다. 드라이기가 남자의 손으로 넘어갔다.
이런 거였구나. 선우는 바람을 맞으며 거울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입꼬리가 올라간 남자가 위잉— 선우의 머리카락에 바람을 불어 주었다.